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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의  분노는 정당한가?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라는 비교문은 누구나 기억하는 문장일 것이다. 꺾을 수 없는 글의 위력을 나타낸 말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문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대는 펜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사진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글은 상황의 진실을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2% 부족한 그 무엇이 있다. 그러니 상황의 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사진보다 적절한 무기는 없어 보인다.

 

전쟁의 참상을 느끼는데 백 마디 말보다 더 효과가 큰 사진이 한 장 있었다.  바로  베트남 전쟁시 네이팜탄에 맞아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나체로 거리를 뛰던 한 소녀의 사진일 것이다. 광주민주화 항쟁은 또 어떤가. 폭도로 내몰렸던 광주 시민들 중 살아남은 자들이 숨겨 둔 사진이 하나 둘 비밀스럽게 새어 나온 뒤 우리는 그 추악한 실체와 진실을 알게 되지 않았던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20만 촛불이 수놓인 광화문 거리 사진은 그 순간을 영원한 역사의 현장 기록으로  남겨놓아 보는 이들의 가슴을 뒤흔든다. 영화를 보듯, 잘려 나간 다리에서 물속으로 다이빙을 하던 성수대교 참사 현장, 인화물질의 위험을 알면서 강경진압을 한 경찰로 인해 화마의 희생자가 된 용산 철거민의 비극적인 참사, 그 모든 사건을 담은 사진에 의분을 일으키지 않는 이들이 있을까?

 

매그넘 사진 서른 한 장에 시인 조병준이 글을 쓴 <정당한 분노>는 사진이 지닌 위력과 필력이 더해져 모두에게 정당한 분노의 눈길로 세상을 보라고 강력하게 권고한다. 사실 분노를 발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성경에는 하루 종일 분을 품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잠언까지 있다. 그런데 평화를 노래하는 시인 조병준,  그는 왜 분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권유하는 것일까?

 

분노, 조심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단어에는 힘이 담겨 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분노가 얼마나 치명적인 부정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지. 분노의 대상뿐만 아니라 분노의 주인까지 다치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의 성현들이 분노하지 말라고 가르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사람이 다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분노해야 할 때가 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을 때,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쓰고 냉철해진 머리로 생각을 해도 그 분노가 정당한 분노일 때, 불의와 부패와 부도덕이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고 머리가 아니라 몸이 비명을 지를 때, 그럴 때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때로는 인내가 아니라 분노가 우리의 도덕률이 될 때가 있다. 불의와 부패와 부도덕이라는 이름의 탱크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할 때, 약하디 약한 살과 피만 가진 인간이 그 앞을 막아설 수 있는 힘은 분노뿐이다.

 

그렇다. 그가 고른 사진들은 불의와 부패 부도덕한 전장의 참상, 억압의 현장에 대한 생생한 증거 기록들로 모두의 정당한 분노를 자극하는 것들이다. 천안문 사태 때 무시무시한 탱크 캐터필러 앞을 맨몸으로 막아 선 청년들의 모습,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방패와 몽둥이 찜질로 피 흘리며 굴비처럼 엮여 끌려가던 학생, 청년들의 모습, 제 또래 소년에게 총을 겨누고 감시하는 산살바도르 소년병의 모습 앞에 정당한 분노를 발하지 않거나 흐르는 눈물과 비애를 애써 감추려는 이들이 있을까?

 

명절을 며칠 앞두고 대책 없는 철거민이 되어 항의하다 화마에 숨져 간 용산 철거민들의 참혹한 광경 앞에, 일제고사 거부라는 이유로 한 순간 학교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외쳐야 하는 현실 앞에 분노하지 않을 심장이 있을까?

 

정당한 분노가 너와 나의 힘이고 무리의 힘이 되는 그날, 정당한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그날까지 펜보다 강력한 무기를 부디 놓지 말자.  '상황과 진실을 환기'시키는 한 장의 사진 앞에 선 이들마다 정당한 분노를  발하며 연대할 것이기에.

덧붙이는 글 | <정당한 분노>는 매그넘 사진에 조병준이 글을 쓰고 가야북스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정당한 분노 - 때로는 분노가 우리의 도덕률이 될 때가 있다

조병준 지음, 매그넘 사진, 가야북스(2008)


태그:#정당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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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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