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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대에서 빈부 격차가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다. 지금 세계는 어떤가?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데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그들을 충분히 먹이고도 남을 음식을 그대로 버리고 있다.

 

지금 평화 기구 건설에 20억 달러가 필요하고 난민 정착에 50억 달러, 영양실조, 기아 퇴치에 190억 달러,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탕감에 300억 달러가 있으면 된다고 하는데 그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 1년 동안 전 세계 군비 지출 총액이 무려 7800억 달러인데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한다. 이건 문제가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탐욕의 시대>에서 장 지글러가 비판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그것이 공허한 말에 그치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충분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안 한다. 오히려 문제가 심각해진다. 장 지글러는 <탐욕의 시대>에서 왜 그런 현상이 심화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동시에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세력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서문이라면 <탐욕의 시대>는 본문인 셈이다.

 

가난한 나라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외채'

 

누가 더 세계를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는 '부채'를 언급한다. 가난한 나라들은 외채를 들여 나라를 발전시키려고 한다. 외채를 얻어서 자국 내 사회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제반 생산력을 향상, 개발이 순조롭게 되면 차츰 빌려 쓴 돈을 갚으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장 지글러는 "외채는 마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종양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 그런 것인가?

 

외채를 빌린 나라들이 일반적으로 농업 생산국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공업제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 20년 동안 공업제품의 가격은 6배 이상 뛰었다. 반면 농산품 가격은 내려갔다. 폭락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외채에 따른 이자와 분할 상환금을 지불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오히려 외채를 계속해서 빌려야 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이건 어찌해서 버텨볼 수 있을지 모른다. 더 큰 문제는 고위층의 국고 횡령 등이다. 제3세계의 지도자들은 놀라운 정도로 비리를 저지른다. 일례로 콩고민주공화국은 외채가 150억 달러였는데 원수의 개인 재산이 80억 달러에 이르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아이티의 경우는 더 심하다. 이곳의 독재자는 2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돈을 횡령해 개인 계좌로 넣었는데 그 돈이 오늘날 아이티의 외채와 거의 맞먹는다.

 

이것은 그들 개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다. 장 지글러는 "스위스, 미국, 프랑스 등지의 일부 민간 은행들과의 협조 체계 하에 이루어지는 조직적 배임 행위"라고 지적한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나라들이 충분히 막을 수 있음에도 모른척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들로써는 손해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장 지글러는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를 언급하는데 결론은 하나다. 외채가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은 가난한 자를 파고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장 지글러는 '외채 탕감'을 말한다. 엄청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세계 금융체제가 붕괴되거나,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그는 이런 우려를 알았는지 몇 가지 숫자를 통해 그것이 큰 위험이 아니라는 증거를 댄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몇 가지 문제로 인해 전 세계 증권거래소에서 주식의 가치가 하락했다. 그런데 그 가치만큼의 금액이 제3세계 122개국의 외채를 합한 금액보다 무려 70배가 넘는다고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부채를 탕감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부채를 탕감한다면? 엄청난 효과가 생긴다. 장 지글러는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 외에도 그는 시장원리주의와 세계화를 지지하는 국제기구들과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 제국들,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을 거세게 비판한다.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과정을 폭로하는데 놀랍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자행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해도,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그들은 여전히 힘이 있다. 그 힘은 절대적이다. 장 지글러 또한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연대'를 말한다. 가능한가?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돌아보면 혁신적인 일들은 언제나 그런 과정을 거쳤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다들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탐욕의 시대>는 그 첫걸음이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려주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준다. 어쩔 수 없다, 고 버릇처럼 말하는 회의주의자들에게는 이것이 쓸모없는 걸음일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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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난, #제3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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