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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러 갈래? 죽도시장에 가면 값싸고 맛있는 식당을 아는데…."

새해를 맞아 친구 사무실에 들렀더니, 점심을 먹으러 죽도시장에 가자고 조른다. "이 근처에서 간단히 먹으면 안 될까?" 했으나 친구 녀석은 꼭 재래시장에 가자며, 나름대로 그 이유를 댄다.

"새해에 처음 봤는데, 맛있는 걸 먹어야 되지 않겠나? 1인분에 3천500원인데 맛이 괜찮더라! 그곳이 '대화식당'이야. 대화를 많이 하라고 그렇게 지은 모양이지!"

친구 너스레에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포항과메기 맛이 이런 것이구나
▲ 포항죽도시장 과메기 판매점 앞 포항과메기 맛이 이런 것이구나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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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만에 간 죽도시장. 새해 첫 휴일이고 날씨까지 포근한 덕인지 시장은 찾는 이들 발길로 북적거렸다. 어느덧, 식당 앞에 도착했으나 손님이 꽉 차서 앉을자리가 없었다. 주인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조금만 기다리라"는 안내를 한다.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식당 앞에 기다리는 모습도 여럿 보인다.

어찌할까?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난감할 노릇이다. 잠시 기다려서는 빈자리가 날 것 갔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식당에 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죽도 어시장을 한 바퀴 돌고 와서 밥 먹자."
"그렇게 하자!"

포항죽도시장은 동해안 전통시장 가운데 가장 큰 재래시장이다. 시장 규모와 더불어 해산물 등 다양한 상품이 전국으로 유통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죽도시장의 자랑거리는 역시 해산물이다. 죽도시장 하면 으레 생선회가 떠오를 정도니 가히 그 유명세가 짐작된다.  

죽도시장은 다른 전통시장처럼 수산물, 농축산물, 잡화 등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어시장이다. 어시장 입구에서부터 가게에는 생선과 해산물을 다듬고 써느라 정신이 없다. 상가마다 장보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와글와글 시끌벅적한 죽도어시장 풍경... 참 정겹다

30여년간 운영한 '할매고래고기'점은 이제 30여년간 할매가 아파서 며느리가 운영하고 있다.
▲ 포항죽도시장 어시장 입구 고래고기 판매점 30여년간 운영한 '할매고래고기'점은 이제 30여년간 할매가 아파서 며느리가 운영하고 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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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이 고향인 친구가 고래고기 '원조'식당으로 내 옷깃을 이끈다. 친구가 클 때에는 어시장에 고래고기 가게가 여럿 있었으나 지금은 몇 안 된다고 귀띔했다. 더욱이 '할매집' 고래고기가 유명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할매가 안 보이네요. 어디 가셨는교?"

친구가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어무이(어머니) 몸이 아파 작년부터 가게에 못나오시고 제가 맡아 합니다."

할머니의 며느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여주인은 부위 별로 고래고기를 썰면서도 우리와 친절히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 

어시장에서 전복, 갈치 등을 파는 아주머니
▲ 죽도시장 어시장 어시장에서 전복, 갈치 등을 파는 아주머니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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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어가 어시장 시멘트 바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참 이체롭죠?
▲ 죽도시장 어시장에서 팔리는 생선 큰 문어가 어시장 시멘트 바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참 이체롭죠?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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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은 탓에 어시장 경매상황을 직접 볼 순 없었다. 넓은 어시장 공간에서 생선 소매가 한창이다. 커다란 문어가 어시장 시멘트 바닥에 놓여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어시장 여기저기엔 꽁치, 고등어, 전복 그리고 이름모를 여러 생선들이 장보러 나온 사람들 눈길을 쏠리게 한다. 하지만 우리처럼 어시장 볼거리를 즐기는 사람들도 무척 많은 듯했다.

겨울철이라 특별히 많이 잡히는 생선은 달리 없는 모양이다. 문어가 제법 비쌌다. 어느 할머니는 구정 제수용을 미리 장만할 요량으로 상인과 문어 흥정을 해보았으나 영 신통한 가격이 나오질 않아, 끝내 발길을 돌리신 모습도 보인다.   

우렁찬 목소리로 생선들을 팔려는 젊은 남자 상인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다. 힘차게 파닥이며 물을 튀기는 활어가 오늘따라 무척 힘차게 보였다.

여러 해산물을 본 탓인지, 코끝을 멤돈 바다내음 탓인지, 이내 시장기가 돈다. 시장 좌판에 앉아 막 썬 회 한 접시 먹고픈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해산물은 다음으로 미루고 친구가 찜해둔 대화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노린노린한 고등어와 된장찌개가 참 먹음직하죠?
▲ 대회식당 주방의 간고등어와 된장찌개 노린노린한 고등어와 된장찌개가 참 먹음직하죠?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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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들어서자 고등어 굽는 냄새가 시장기를 더욱 자극한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그 놈들도 초상권이 있는데…" 웃음을 지으신다. 손수 소금으로 간을 치고 밀가루 입혀서 굽는 간고등어. 노른노른하게 굽힌 고등어를 보고 있으려니, 왜 그리 군침이 많이 도는…. 큰 그릇에 미리 갖다 준 숭늉을 연거푸 몇 사발 먹을 수밖에 없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쌀과 보리를 반씩 섞은 밥그릇에 된장과 나물을 넣고 비볐다. 비빔밥과 더불어 먹는 간고등어 맛은 한마디로 "죽인다!" 배추와 무 시래기를 넣은 된장도 얼마나 맛있던지…. 밥과 반찬을 더 달라면 얼마든지 주는 후한 인심으로  밥이 더욱 맛있었던 모양이다.

노린노린하게 굽힌 간고등어, 시래기 넣고 끊인 된장찌개 그리고
▲ 맛있는 밥상 노린노린하게 굽힌 간고등어, 시래기 넣고 끊인 된장찌개 그리고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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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곡 숭늉, 쌀과 보리 섞은밥, 된장찌개가 맛있게 보이질 않나요?
▲ 보리 비빔밤 잡곡 숭늉, 쌀과 보리 섞은밥, 된장찌개가 맛있게 보이질 않나요?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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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싸고 푸짐한 음식과 후한 인심... 밥맛을 더 좋게

대화식당에서 배불리 먹는데 정신이 팔려 정작 '대화'는 없었다. 대신,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배가 불러왔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 더 이상 지체할 순 없었다. 후식으로 커피는 다른 곳에서 먹을 요량이다. 친구가 '길 카페'에서 먹자고 권유했다. 이른바 '길 다방'은 시장 안에서 손수레로 이동하면서 파는 커피장사를 일컫는다.

그런데 친구는 죽도시장을 빠져나와 국화빵과 호떡 파는 포장마차에 발걸음을 멈추는 게 아닌가? 여기 커피가 맛있단 말과 함께….

인심이 묻어난 듯, 국화빵이 더 맛있어 보인다.
▲ 녹차가루 든 국화빵 인심이 묻어난 듯, 국화빵이 더 맛있어 보인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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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이 먼저 인사를 했다. '어! 이 분이 장사를…' 내심 놀랐다. 필자가 잘 아는 분의 아내였기 때문. 고학력인 남편이 몇 달전 회사가 문을 닫은 까닭에 부인이 직접 이 자리에 선 사연이 있었던 게다.

밝은 표정을 잃지 않으면서, 오가는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다. 술술 얘기도 잘 풀어낸다. "단골도 많이 잡았다"고 "녹차가루를 넣고 국화빵을 만들었다"면서 맛 평가까지 부탁했다.

커피 값 계산으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커피 값은 무슨…."

주인 눈초리가 매섭다. 결국, 빵값 천원만 내고 커피 값은 주질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영일만뉴스(www.01manfriend)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국화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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