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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차] LOS ARCOS - LOGRONO 27.9km  

산티아고 제 7일차 코스도
▲ 지도 산티아고 제 7일차 코스도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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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다니는 편인지라 허기진 배를 달래거나 하루 이틀 정도 불편하게 자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고 머나먼 이국땅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까지 와서 최소한의 먹거리와 불편한 잠자리를 감수하고 달랑 세숫비누 하나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씻고 빨래까지 다 해결하고 있노라면 가끔은 내 처지가 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생을 작정하고 온 길이지만 일부러 고생을 할 작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딱딱하고 긴 바게트에 치즈와 베이컨과 계란을 넣어서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주스나 커피를 마시면서 식사를 해결한다(한국에서라면 이런 식단이 고급 양식 스타일 일 수도 있겠지만). 앞서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하루 경비가 평균 20유로였는데 지금 내가 사용하는 경비는 고작 10유로를 넘기지 않고 있다.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도 출발할 때 날씨는 화창했다. 같은 날씨가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니 나는 그늘만 찾아  다니는 중이다. 하지만 카미노의 외국 친구들은 햇살이 바른 양지쪽만 찾아다닌다. 매일 단짝이 되어 같이 걸었던 스페인 친구 마뉴엘과 프랑스 깐느에 산다는 25살 아가씨 케푸신, 나만 보면 아들이라며 늘 안아주던 벨기에인 부부는 한국인들에게 참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는 외국인이다.

좌로부터 마누엘 케푸씬 벨기에 아저씨 부부
▲ 카미노 친구들 좌로부터 마누엘 케푸씬 벨기에 아저씨 부부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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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뉴엘은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에서 크레덴시알을 발급받아 이곳까지 장장 4개월에 걸쳐서 3500km를 걸어왔다고 한다. 그가 걸었다는 그 길을 나도 걷고 싶어서 그가 사용한 지도를 아끼던 모자와 바꿨다.

그는 로마에서부터 주로 성당에서 잠자리와 먹을 것을 해결하면서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하는데 비용은 800유로밖에 안 들었다고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스페인에서 알베르게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는데 혼자 하려니 일이 너무 많아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계지점인 살라만카에 사는 40대 후반의 자그마한 체구의 남자다. 프랑스 아가씨 케푸신은 한국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산티아고 길을 걸었는데 잎담배를 말아서 피우는 것을 즐겼다.

아침마다 나를 찾아와 오늘도 꼭 함께 걷자고 했는데 스페인어와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아 그와 동행하는 순례길이 꽤 편했다. 케푸신은 그라농이라는 수도원 숙소에서 만난 아일랜드 청년인 마이클에게 첫눈에 반해 그만 상사병을 앓는 지경에 이르러 산티아고 길을 끝내 다 못 걷고 중간에 프랑스로 돌아가 버렸다.

그 후로는 다시 못 만났는데 케푸신은 어찌어찌 마이클의 메일주소를 수소문해서 알아내 메일을 보냈는데 그 메일주소가 스펠이 한두 군데 틀렸는지 계속 반송되었다는 후문만 전해 들었다.

그들은 내 성이 moon인지라 나만 만나면 하늘의 달을 가리키며 ‘문’을 외치곤 했던 다정한 친구였다고 기억한다. 다시 산티아고에 가게 되면 꼭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한낮의 어두컴컴한 숲길에 들어서는 한국 여성들
▲ 숲 한낮의 어두컴컴한 숲길에 들어서는 한국 여성들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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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숲길로 들어서고 있는 한국여성 세 사람. 마담블루(마리)와 세실리아 그리고 인도행 회원. 느릿느릿 걷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가. 마리님은 지난날 서반아어를 공부하셨는지 스페인어 실력이 상당해 그와 함께 걸으면 식당이나 알베르게 같은 곳에서 참 편했다.

마리님과 세실리아님은 꽤 오랫동안 세계 각국을 여행하다가 산티아고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들은 산티아고를 다 걷고 나면 포르투갈과 바르셀로나로 계속 여행을 할 거라고 했다. 두 사람의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다. 

산티아고의 동식물들
▲ 꽃 산티아고의 동식물들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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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의 나라 스페인을 상징하는 것처럼 잎이 늘씬하고 색깔이 화려하게 벌어진 붉은 꽃. 투우를 하는 투우사의 붉은 망토와 탱고를 추는 무희의 정열적인 치맛자락 같지 않은가. 아침 이슬을 맞아 더욱 고혹스런 자태를 뽐내는 것 같다.

거대한 고목으로 자란 밤나무
▲ 밤 거대한 고목으로 자란 밤나무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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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이나 됐을까, 이백 살쯤 됐으려나. 작은 마을 골목길에 선 밤나무인데 나무 둘레가 족히 오륙 미터는 됨직하다. 많은 밤들이 그대로 떨어져 길 위에서 썩어 가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배낭 무게로 인해 어깨 죽지가 아프지만 크고 좋은 밤들만 골라 집어넣는다.

생각해보라. 누군들 산길에 주인 없는 밤들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는 줍지 않을 수 있을까. 덕분에 배낭의 무게는 평상시보다 3~4kg이나 더 늘어났다. 그래도 이 밤들을 알베르게에서 삶아 다른 사람들과 나눠먹고, 생밤을 까서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는 호사도 같이 누렸다.

목초지 사이로 낙엽이 수북한 숲길이 구불구불 연이어 나타난다. 그런 길을 걷다보면 순례하는 고행자(?)의 신분을 금방 망각하고 가슴이 벌렁거리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산티아고에 오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또 칭찬한다.

누구나 살면서 일에 쫓기거나 이런 저런 핑계로 떠나고 싶은 여행을 일 년, 이 년 혹은 그 이상 계속 미루게 되지 않나. 그래서 어떤 책들은 무작정 떠나라고 충동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를 포기해야만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수십그루의 나무들이 손에 손 맞잡고
▲ 연리지 수십그루의 나무들이 손에 손 맞잡고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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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이 플라타너스인데 이십여 그루의 나무들이 전부 손에 손을 잡고 놀이를 하는 것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냥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연리지처럼 뿌리는 제각각이지만 몸체는 하나로 붙어 있다고 한다. 접붙이기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여름 가로수로도 그늘로도 아주 훌륭하다.

산티아고의 동식물들
▲ 꽃 산티아고의 동식물들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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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서 만져보니 갓 핀 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하게 생긴 꽃이다. 말랑말랑한 고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줄기가 인형의 팔다리처럼 투명하다. 숲의 요정들이 꽃대에 앉아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오늘은 이곳 로그로노로 오기 전에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한 결과 포도따기 아르바이트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미국인 J·T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자는 약속을 단단히 하고 왔는데 포도밭의 포도들이 알이 덜 영글어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포도밭에서 하루 아르바이트를 하면 50유로를 벌 수 있다고 했는데 헛소문이었던 것 같다. 먼 이국땅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잔뜩 기대를 했는데 헛물만 켜다만 셈이 되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알베르게는 신축한 것이라 깨끗하고 호스피탈레로들도 친절했다. 로그로노를 8~9km 남겨둔 비아나에서 시골장이 열렸기에 값도 싸고 오랜만에 비타민을 제대로 섭취할 욕심으로 포도와 복숭아, 사과, 바나나 등을 샀더니 그만 비닐봉지가 가득 차 버리고 말았다. 

몇 걸음을 걷기도 전에 무게의 압박이 만만치 않아 로그로노까지 가지 않고 오늘은 그냥 비아나에서 머물 작정으로 알베르게를 찾는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결국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허겁지겁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를 찾아들어가 배낭에서 비옷을 꺼내 입었다. 그런데, 아뿔사. 비를 피할 처마를 찾는다고 그만 알베르게를 한참 지나 내리막길로 들어서버린 것이 아닌가.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니 소나기는 퍼붓고, 양손에는 과일봉지가 묵직하게 들려있고. 내려온 길을 다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예정된 길을 내처 걷기로 작정하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건 몰골이 영 말이 아니다. 비옷을 입은 채 맨 배낭무게도 무게지만 양손에 들린 과일 봉지가 주는 압박감도 만만치 않다. 이 무슨 사서 고생인지.

길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에게 온갖 인심을 쓰고도 남은 과일들로 인해 오늘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고생을 또 하는 경우가 생길까, 싶다.

산티아고에도 네잎크로바는 있다
▲ 네잎크로바 산티아고에도 네잎크로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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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꼭 찾아보는 네잎 클로버가 스페인에도 있었다. 산티아고 숲길마다 계속해서 찾아냈다. 열 몇 장을 한국으로 가져와 잘 말리고 있는 중이다.

산티아고의 동식물들
▲ 도마뱀 산티아고의 동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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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달팽이와 도마뱀들. 산티아고에서 만난 도마뱀 가운데 색깔이 화려한 것들과 바위에 붙어 있는 이 녀석들은 사람을 보고 빠르게 도망가지 않는데, 숲이나 오솔길에서 만난 녀석들은 어찌나 빠르게 도망을 가는지 카메라를 미처 들이대기도 전에 사라지고 만다.

이곳 달팽이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큰 나무들이 아닌 작은 꽃나무 가지 마른 곳에 전부 올라가 있는데 천적을 피해서 그러는 것인지 종족 번식을 하기 위해서 그러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진기한 광경이었다.

생장 피드포르를 출발해서 오늘까지 총 132.5km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12km남짓 지나온 로스 아르코스 교회광장을 지나서 나가는 길에 2시 30분경에 문을 여는 알베르게가 있다. 이곳의 유명한 음식인 또르띠아를 꼭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길을 조심해서 찾아서 전진하면 첫 숙소와 두 번째 숙소가 나오는데 선택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하면 좋을 것 같다. 그곳에서 약 7km정도 더 가면 산솔이라는 마을이 나오고 1km정도 더 가면 토레스 델 리오라는 2인실 숙소도 있는데 참 편한 곳이다.  

이곳에서 약 11km를 더 가면 비아나라는 조금 큰 마을이 나오는데 교회 옆의 숙소에는 침대가 없고, ‘오루호’라는 전통주가 유명한 곳이다. 슈퍼마켓과 부엌이 있고 호스텔과 사설 숙박시설이 많은 곳이다.

다시 9km남짓 걸어가면 로그로노가 나오는데 이곳 알베르게는 3시 반에 문을 열고 6유로의 알베르게가 있다. 이 마을에는 가을에 포도따기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하루에 약 50유로정도 준다고 한다. 거리 축제기간에 간다면 즐거움은 배가 될 것 같다.

우체국이나 약국, 병원들이 있는 마을이고 라우렐이라는 골목길에 가면 타파스라는 토속주와 와인 로제가 유명하다. 예쁜 성당 ‘이글레시아 산 바르톨로메’와 중세시대의 다리가 유명한 마을이다. 건조한 곳이라 약국에서 립크림을 샀더니 4유로씩이나 한다.


태그:#산티아고, #카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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