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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나가 잡은 물고기는 저렇게 마른 풀줄기에 끼워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내다 판다.
 바다에 나가 잡은 물고기는 저렇게 마른 풀줄기에 끼워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내다 판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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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 모여 잡은 물고기를 나누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대부분 조그만 카누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다.
 해변에 모여 잡은 물고기를 나누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대부분 조그만 카누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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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수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눈이 시리도록 맑았다. 아름답기만 이 바다를 삶의 터전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에도 있었다. 바다는 어부를 낳고 키운다. 바다에서 잡은 고등어처럼 생긴 생선꾸러미를 든 남자들을 모래사장에서 볼 수 있었다. 시선을 들어 해안을 보니 여러 척의 나무배가 모래사장 위에 올라 앉아 있다.

생선을 바닷물에 헹구는 사람도 보인다. 고깃배는 크지 않고 작다. 풍랑이 심하게 일면 그대로 뒤집어 질 것 같다. 그런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아오는 사람들.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생선을 많이 잡을 수 있으려나, 궁금하다.

다음에 들른 곳은 수아이 공항이었다. 예전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활주로와 건물 하나가 유적처럼 남아 있다. 넓은 활주로 위에는 예전에 사용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텅 빈 활주로 위에 서 있으려니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이다. 하긴 누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살겠는가. 시간이 지나갔다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않는 수아이 공항. 차 옆에 서있는 이는 운전기사 아또이.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않는 수아이 공항. 차 옆에 서있는 이는 운전기사 아또이.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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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의 전형적인 농촌풍경. 수확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동티모르의 전형적인 농촌풍경. 수확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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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들이 산책하는 수아이 공항... 시간이 정지한 듯

다시 딜리로 돌아가기 위해 길 위로 나섰다. 한 시간쯤 달리다보니 추수가 한창인 논이 보인다. 누렇게 익은 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볏단을 만지고 있다. 아이들은 길옆으로 자동차가 멈춰 서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길옆에는 물소와 송아지가 있고, 그 옆에는 어린 동생을 안고 서 있는 어린 소녀가 있다. 안은 자세가 독특하다. 허리 위에 아이를 앉히고 팔을 아이의 허리에 둘렀다. 한두 번 안아본 솜씨가 아닌 듯 조금도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차에서 내린 김에 마을로 들어가 둘러보기로 했다. 빨래를 하는 여자 아이가 눈에 띄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는 나무로 만든 다리 위에 걸터앉은 채 검은 고무통 안에 손을 집어넣고 빨래를 하는 중이었다. 고무통은 거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리 아래 흐르고 있는 도랑물은 뿌옇게 흐려 있었다. 그 물에 빨래를 헹구면 도로 더러워질 것 같았다.

아이는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이방인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하던 빨래를 내던지고 일어나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사진을 찍어주니 수줍은 듯이 웃는다. 어느 사이엔가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 모여선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리고 카메라 액정을 보여주니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어느 집 마당에서는 볍씨를 말리고 있었다. 동티모르에서는 논에서 모내기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추수하는 것까지 골고루 볼 수 있었다. 모내기 하는 논 옆의 논에서는 벼가 익어가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물론 논에 허수아비도 있다. 참새가 있으면 허수아비가 있는 건 당연하지 않나.

이 마을에는 공동우물터가 있었다. 우물 옆에는 플라스틱 물통이 줄지어 놓여 있고. 젊은 여자가 물통으로 만든 두레박을 이용해서 물을 길어 올린다.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제법 깊다. 퍼올린 물은 시원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미지근하다.

마을 공동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아이들.
 마을 공동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아이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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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메 호텔에서 마신 아라비카 커피 한잔. 그리고 화단에서 본 꽃 한송이.
 사메 호텔에서 마신 아라비카 커피 한잔. 그리고 화단에서 본 꽃 한송이.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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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해야 맛볼 수 있는 사메 호텔의 진한 티모르 커피

사메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50분경.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손님은 우리뿐이다. 음식을 주문하고 주방 안을 들여다보니 양파를 까고 있다. 음식이 나오려면 한 시간쯤 기다려야 하니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러 나간다.

이 마을에 병원이 있었다. 병원 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폐쇄된 병원인지 사용하는데 문을 닫은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진료용 침대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더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면 하나를 채운 책장에는 약상자들이 잔뜩 들어가 있는데 그다지 더러워 보이지 않는다.

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호텔 식당으로 돌아오니 주문한 티모르 커피가 나왔다.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티모르 커피는 주문한다고 금방 나오지 않는다. 십여 분 이상은 족히 기다려야 나온다. 티모르 사람들은 진한 커피에 알이 굵은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신단다. 티모르 설탕은 입자가 굵어 단맛이 별로 나지 않는다. 한 숟갈을 푹 퍼서 입안에 넣으면 입자가 오도독거리면 씹히는 것이 사탕을 먹는 것 같다.

장 이사가 사메 호텔의 커피맛이 좋다고 했는데 마셔보니 정말 맛있다. 이곳에서 커피가 생산되기 때문이란다. YMCA에서 판매하는 피스커피가 바로 사메에서 생산된다. 이 곳에 YMCA가 운영하는 커피 가공공장이 있다. 하지만 그 곳에는 가보지 못했다. 커피 수확과 가공이 끝나서 담당자인 양동화 간사가 딜리에 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날 저녁, 딜리로 돌아가는 대로 양 간사를 만날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늦게 딜리에 도착하는 바람에 만나지 못하고 약속을 다음 날로 미뤄야 했다.

사메 시장 풍경. 가게문에 번호가 차례대로 적혀있다. 순서대로 끼워야 이가 맞다.
 사메 시장 풍경. 가게문에 번호가 차례대로 적혀있다. 순서대로 끼워야 이가 맞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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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잡화점 청년의 갑작스런 등장(?). 이 사진을 찍고 난 다음 제대로 한 컷 다시 찍었다.
 유쾌한 잡화점 청년의 갑작스런 등장(?). 이 사진을 찍고 난 다음 제대로 한 컷 다시 찍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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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웃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보다

점심식사를 하고 사메의 시장을 둘러보았다. 시장은 제법 규모가 컸다. 볼거리도 많았고 먹을거리도 많았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는 곡식을 파는 가게에서 원두를 팔고 있다.

사메에서 딜리로 가는 길은 한창 포장 중이었다. 무너진 도로를 보수하고 있는 것이다. 콜타르를 찌그러진 드럼통 안에 넣고 끓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콘크리트를 버무리는 작은 기계도 보았다. 우기가 코앞인데 이제야 보수를 하면 우기에 다리 도로가 무너지거나 떠내려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산간마을에서 한 시간쯤 머물면서 돌아보기로 했다. 차를 타고 휙 지나쳐가는 것과 내려서 그 땅을 걸어보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나. 산은 가파르고 땅은 척박해 보인다. 그 산길을 소년이 말 두 마리를 이끌고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어미 말과 망아지다. 소년은 걷다말고 낯선 사람들을 돌아보고, 망아지는 어미 곁으로 더 바싹 다가가고.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 역시 경계하는 기색 하나 없이 사진기 앞에 모여든다. 낯선 사람들을 향해 맑게 웃어주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밝은 미소 속에서 절망을 발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이 마을에 골고다가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서 있다. 성모마리아 상이 있고, 도마뱀 조각이 있고, 하얀 들꽃이 피어있다. 꽃 위에는 벌레 한 마리가 내려앉아 향기를 탐하고 있다. 낡은 성당이 있고, 전통 양식의 가옥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상이 있다. 가톨릭과 토속신앙은 어떻게 접목되어 이들의 일상에서 나타날까, 궁금해진다. 돼지를 죽이고 돼지피를 뿌리는 것만이 토속신앙의 전부가 아닐 텐데 말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교실 하나가 있다. 책상과 걸상 위에는 먼지가 앉아 있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있다. 예전에 사용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것들을 보면 예전에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사람들의 온기가 사라진 것들은 처음부터 온기가 깃들지 않았던 것들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 어째서 그럴까?

능선을 따라 난 길을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 달려온 길이 보이고, 달려갈 길이 보인다. 말을 이끌고 말 등에 짐을 싣고 능선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산을 넘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산 위의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한참동안 지켜보지만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는다. 길은 길로 이어져있으므로 길 끝에 서기 전에는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법 아니던가.

이 마을에서 여러 날 묵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는 일 없이 그냥 산 위에 앉아서 아래만 내려다봐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자동차에 타고, 길 위로 나선다.

사메 근처 산간마을에서 만난 다리를 꼬고 있는 건방진(?) 개구쟁이들. 날씨가 쌀쌀한데도 맨발에 반바지를 입고 있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등장이 즐거운 모양.
 사메 근처 산간마을에서 만난 다리를 꼬고 있는 건방진(?) 개구쟁이들. 날씨가 쌀쌀한데도 맨발에 반바지를 입고 있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등장이 즐거운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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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메에서 딜리로 돌아가는 중 잠시 내려 휴식을 취했던 산간마을. 풍경이 아주 일품이었다.
 사메에서 딜리로 돌아가는 중 잠시 내려 휴식을 취했던 산간마을. 풍경이 아주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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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이에서 딜리까지 12시간.... 190km를 엉금엉금 달리다

다시 시장이다. 딜리에서는 시장을 찾아서 그리 헤맸건만 길 위로 나서니 여기저기서 시장과 마주친다. 시장에는 구경거리가 많아서 좋다. 시장의 모습은 어디나 얼추 비슷하다. 규모가 좀 더 크거나 작거나 할 뿐. 그래도 진력나지 않고 재미있기만 하다.

이곳에서는 묶여 있는 원숭이와 마주친다. 붉은 줄에 묶인 원숭이는 한 손을 입에 대고 우물거리고 있다가 사진기를 들이대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넌, 뭐야?

담배와 잡화를 파는 남자가 윗몸에 담요를 두른 채 서 있다. 이곳은 날씨가 제법 쌀쌀한가 보다. 구경하는 아이들 중에는 겨울 솜옷을 입고 있는 아이도 있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이 마을에서 장례행렬을 보았다.

시장 한쪽에 커다란 건물이 있기에 들어갔다. 당구대가 놓여 있고, 당구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젊은 남자들이다. 벽 한쪽에 제법 값이 나가보이는 오토바이가 한 대 세워져 있다. 젊은이가 오토바이 위에서 폼을 잡고, 조경국 기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남자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인다.

자동차에서 내리면서 조경국 기자, 나, 장 이사, 아또이는 뿔뿔이 흩어진다. 각자 관심사가 다르기에 보고자 하는 것도 다르고 보는 속도 또한 다르다. 묻지는 않았지만 느끼는 것도 다르지 않을까?

주유소에 다녀오겠다고 했던 장 이사가 나중에 길거리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며 페트병에 담긴 석유를 엄청나게 부어댔다는 말을 했다. 페트병 몇 개를 넣어야 통이 다 찰까? 그걸 물어보는 걸 잊었다.

오전 8시 반에 수아이 호텔을 출발했는데 우리가 딜리의 엘리자베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8시가 얼추 다 되어서였다. 수아이에서 딜리까지의 거리는 190km. 수아이에서 딜리로 오는 길에는 시간을 빨아먹는 블랙홀이 존재하는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수가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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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10박 11일동안 동티모르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태그:#동티모르, #수아이, #딜리, #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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