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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 앞바다에서 작은 배에 그물을 싣고 고기잡이에 나선 아이. 고기잡이는 해안가에 사는 동티모르 주민들의 주 수입원이다.
 딜리 앞바다에서 작은 배에 그물을 싣고 고기잡이에 나선 아이. 고기잡이는 해안가에 사는 동티모르 주민들의 주 수입원이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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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뚜알라 가는 길에 바라본 바다. 깊이에 따라 날씨에 따라 바다 색이 다르게 보인다. 멀리 보이는 육지는 동티모르에 속해 있는 섬 가운데 가장 큰 아타우로섬.
 뚜뚜알라 가는 길에 바라본 바다. 깊이에 따라 날씨에 따라 바다 색이 다르게 보인다. 멀리 보이는 육지는 동티모르에 속해 있는 섬 가운데 가장 큰 아타우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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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서 가장 많이 본 것을 꼽으라면 바다다. 바다,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다의 색깔은 하나가 아니었다. 바닷물의 빛깔은 육지와 가까운 곳과 먼 곳이 달랐고, 수심이 얕은 곳과 깊은 곳이 달랐다.

자코섬이 보이는 뚜뚜알라까지 안내를 맡았던 로고스리스시스의 전흥수 고문은 동티모르의 바다가 지중해의 바다보다 아름답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동티모르의 바다는 오염되지 않고 순수했다. 그래서 그런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바다에 동티모르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배를 띄우고 물고기를 잡았다. 그래서 바닷가를 지나다 보면 생선꾸러미를 들고 배에서 내리는 어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딜리의 바닷가에서는 배를 띄우지 않고도 그물만으로 물고기를 잡는 사람도 있었다.

그물만 들고 바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그물을 던지면 물고기가 잡힌다는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서도 바다가 보이지만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는 '뚜뚜알라'에 가보기로 했다. 딜리에서 얼추 260km쯤 떨어져 있다는 뚜뚜알라 해변의 게스트하우스까지 가는 데 9시간쯤 걸렸다. 한 시간에 얼마나 간 것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석양 속에서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이 배를 해안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석양 속에서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이 배를 해안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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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나오는 데 1시간은 기본, 기다리는 여유를...

동티모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는 바우카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상록수부대가 주둔했다는 로스팔로스에 들렀다가 가느라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던 것이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자동차가 속력을 제대로 내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하지만 동티모르 여행은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는 길이 중요했다. 쉬엄쉬엄 가면서 동네 구경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시장에 들르고 하는 것 말이다.

점심식사를 하는 데 한 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했다. 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하면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어떤 식당에서는 주문하고 나니 그제서야 양파 껍질을 벗기기 시작하는 것도 봤다. 그러니 독촉은 금물. 그저 기다리고 기다릴 뿐이다. 음식이 나오면 활짝 웃어주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10월 8일 오전 8시 반쯤 엘리자베스 호텔을 출발했다. 바다를 찾아 떠나는 길에 바다를 지나간다. 딜리의 해안도로를 달린 것이다. 바다만 보려면 굳이 멀리 갈 필요는 없다. 딜리에서도 바다는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딜리 해변에 나가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바다에 들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홀딱 벗고 신나게 논다.

딜리 해변도로를 벗어나 조금 달렸을까, 길옆으로 커다란 건물 한 채가 보였다. 건물 앞의 마당에는 많은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어, 학교다. 차에서 내려서 보니 운동장 한쪽에는 염소 여러 마리가 있다. 아이들은 비를 들고 학교 마당에 수북이 쌓인 나뭇잎을 쓸어 모으고 있었다. 운동장, 제법 넓다. 마음껏 달리고 놀 수 있을 것 같다.

헤라 초등학교의 교무실.
 헤라 초등학교의 교무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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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 초등학교 선생님과 아이들. 한창 청소 시간이었는데 도중에 방해를 하고 촬영 했다.
 헤라 초등학교 선생님과 아이들. 한창 청소 시간이었는데 도중에 방해를 하고 촬영 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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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갑작스레 차에서 내린 이방인들이 신기한지 눈을 빛내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여기서도 우리가 구경꾼이 아니라 아이들이 구경꾼이었다. 이곳의 아이들도 구김살 없이 활짝 웃는다. 눈이 예쁘다.

몇몇 아이들은 공책을 들고 건물 그늘 아래에 모여 있었다. 선생님이 숙제검사라도 하나, 했더니 맞다. 칠판이 있고 천정이 높은 교실 안에서 선생님 한 분이 열심히 공책검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 앞에 앉은 아이는 교실 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우리를 보는데 선생님은 공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헤라(Hera)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654명이고 교사는 11명이라고 했다. 학교 선생님 한 분이 나와서 귀찮은 기색 없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간 김에 교무실도 살짝 들여다보았다.

동티모르의 학제는 우리와 같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조경국 기자가 친절하게 설명해준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선생님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아이들이 더 먼저 난리를 친다. 결국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아우성을 쳐도 선생님을 그저 웃을 뿐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밀려 뒤로 물러나기까지 한다.

뚜뚜알라 가는 길에 촬영한 공동묘지. 동티모르는 마을 가까이 묘지가 있다. 세상을 떠난 이가 어부였는지 배 모양으로 묘를 만들었다.
 뚜뚜알라 가는 길에 촬영한 공동묘지. 동티모르는 마을 가까이 묘지가 있다. 세상을 떠난 이가 어부였는지 배 모양으로 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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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죽은 자들의 마을'

뚜뚜알라 가는 길에는 학교만 있는 게 아니라 '죽은 자들의 마을'도 있었다. 마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공동묘지라고 해야 하는 건가. 제법 넓은 묘지에는 담이 둘러쳐져 있고 작은 철문도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이 어수선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보인다.

무덤은 오래된 것부터 최근에 만들어진 것까지 다양했다. 콘크리트를 견고하게 바른 것, 하얀 사각타일을 정성껏 붙인 것 등 무덤의 형태는 많이 달랐다. 어떤 무덤은 돌만 잔뜩 올라가 있기도 했다. 이들 무덤에는 하나같이 십자가가 붙어 있었다.

죽은 자의 마을은 사람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누구라도 죽기 마련이니, 남의 죽음을 보면서 언젠가 다가올 내 죽음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퇴락한 무덤을 보면 더 마음이 스산해진다. 세월의 흐름은 어떤 것이든 낡게 만든다. 한쪽 귀퉁이가 무너진 무덤은 그 위로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돌이키게 하고.

동티모르를 여행하다보면 묘지를 많이 보게 된다. 뚜뚜알라 가는 길에 본 공동묘지처럼 규모가 큰 것도 있고, 한 기만 달랑 있기도 한다. 자동차도로 옆에 십자가와 네모반듯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놓인 것을 본 적도 있다. 그 길에서 죽은 사람을 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티모르의 장례식. 아이들이 붉은 꽃을 들고 앞장서 가고 뒤에 가족들이 따른다. 묘지까지 가는 동안 기도문을 외우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동티모르의 장례식. 아이들이 붉은 꽃을 들고 앞장서 가고 뒤에 가족들이 따른다. 묘지까지 가는 동안 기도문을 외우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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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만 본 것은 아니다. 며칠 뒤, 수아이에 갔다가 오는 길에 들른 마을에서 우연히 장례식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무리지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 같아 눈 여겨 보았더니 장례식이란다. 우리나라처럼 상복을 차려 입지 않았고,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분위기만은 숙연했다. 한참동안 지켜봤더니 그들은 마을길을 지나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묘지로 올라가고 있었다.

딜리에서 뚜뚜알라까지 가는 길은 2차선으로 포장되어 있다. 도로를 달리다보면 길옆에서 노점상을 비롯한 가게를 많이 볼 수 있다. 대부분 과일이나 생수를 판다. 코카콜라와 스프라이트 캔을 팔기도 한다. 장작을 파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드물게 공예품을 팔기도 한다. 음식 노점도 있다. 생선을 통째로 꼬치에 꿰어 불에 구운 것을 판다.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도 주유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페트병에 든 휘발유를 사서 넣는다. 손수레에 휘발유 통을 싣고 팔러 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도 주유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페트병에 든 휘발유를 사서 넣는다. 손수레에 휘발유 통을 싣고 팔러 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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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한켠 자리잡은 노점상. 동티모르에는 이렇게 수레에 물건을 싣고 다니며 파는 이들이 많다.
 시장 한켠 자리잡은 노점상. 동티모르에는 이렇게 수레에 물건을 싣고 다니며 파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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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에 넣은 석유를 파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거리주유소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가 많이 이용한단다. 

과자나 라면종류를 파는 가게도 있는데, 대부분 상품 위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 앉아 있다. 그런 걸 보면 먼지라도 털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안하는 것 같다. 제법 큰 시장에서도 물건 위에 먼지가 잔뜩 앉아 있는 것을 많이 보았으니까.

고구마와 감자, 땅콩, 계란을 파는 가게도 있다. 1달러를 주고 땅콩 한 봉지를 샀는데 볶지 않아서 먹지 못했다. 바나나도 한 송이를 1달러 주고 샀다. 덜 익었는지 한 입 베어 먹었더니 떫은맛이 남는다.

북적임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가난한 시장

동티모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바우카우에 도착해 주유소에 들렀다. 먼 길을 가려면 기름을 빵빵하게 채워야 하지 않나. 주유소에는 커다란 슈퍼마켓이 있다. 들어가서 시원한 캔 음료를 사들고 나와 마시는데 어린 아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대여섯 살쯤 되었으려나. 아이의 시선이 캔음료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아이에게 내밀었더니 덥석 받으면서 씨익 웃는다.

주유소의 기름 주입기 옆에는 한 여자가 고추로 만든 소스를 팔고 있었다. 페트병과 플라스틱 병에 담긴 고추 소스, 엄청나게 맵다. 식당에서 한번 먹어봤는데 어찌나 맵던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는데도 매운 맛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동티모르에서도 고추를 즐겨 먹는 것 같다. 시장에 가면 갓난아이 손톱만한 고추부터 큰 고추까지 고루 볼 수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그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주유소에서 고추 소스를 팔고있는 여인. 동티모르의 고추 소스는 정말 '핫'하다. 설마하고 많이 먹었다간 뜨거운 맛을 볼 각오해야한다.
 주유소에서 고추 소스를 팔고있는 여인. 동티모르의 고추 소스는 정말 '핫'하다. 설마하고 많이 먹었다간 뜨거운 맛을 볼 각오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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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으로 치장한 포르투갈 식당 내부. 동티모르에선 빨리빨리가 통하지 않는다. 주문하고 1시간 정도 느긋하게 기다리면 음식이 나온다.
 푸른색으로 치장한 포르투갈 식당 내부. 동티모르에선 빨리빨리가 통하지 않는다. 주문하고 1시간 정도 느긋하게 기다리면 음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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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는 포르투갈 식당에서 했다. 식당 건물 앞마당에 탁자와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다. 외국인 손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주문하자마자 음식이 나오는 경우란 거의 없으니까. 최소 40분에서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식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퇴락한 건물을 둘러보기로 했다. 포르투갈이나 인도네시아 점령시절 '높은 분'의 저택이나 관청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추정된다. 건물 뼈대와 벽들만 남았지만 규모는 제법 컸다. 유럽식 정원까지 갖췄다. 녹슬고 찌그러진 철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간다. 오래 묵은 먼지 냄새와 곰팡내가 같이 난다. 칠이 벗겨진 건물 벽, 녹슨 양철 지붕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퇴락한 건물이 아깝다.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면 볼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복원해야 할 건물이 어디 이 곳 뿐이겠나. 동티모르에는 부서지고 버려진 건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전의 흔적이리라.

그곳을 둘러보고 시장으로 간다. 시장이라기보다는 포장도로를 사이에 두고 길옆으로 길게 노점이 이어져 있다. 시장답게 다양한 물품들을 판다. 쌀과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 바나나와 같은 과일, 채소, 장난감, 신발, 옷, 그리고 CD도 있다. 물론 규모는 작다. 보고 있노라면 쓸쓸한 생각이 들게 하는 시장이다. 시장답게 북적이는 느낌이 들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한 시장이라고나 할까.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길 위로 나선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10박 11일동안 동티모르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태그:#동티모르, #딜리, #뚜뚜알라, #바우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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