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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날이 갈수록' 지난 날 추억이 왈칵 밀려드는 그런 노래 하나 있습니다. 그 노래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수록된 노래 '날이 갈수록'입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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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붑니다. 널어둔 빨래가 춤을 추고 나무가지에 걸린 줄기콩이 흔들리고 낙엽이 산촌의 밭 자락을 휩씁니다. 낙엽은 그 일도 지루했던지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하늘로 훨훨 납니다.

 

함부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가을', 그래서 더 쓸쓸하다

 

가을을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갔더니 은행잎이 거리를 휩쓸고 있습니다. 미화원 아주머니들이 은행잎을 쓸어 담아 보지만 담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그런 날입니다. 은행잎들이 건물과 사람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가을날 거리는 황금색 물결입니다.

 

다시 계곡으로 돌아오니 바람 부는 소리가 씽씽 계곡을 훑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몸속을 파고 드는 찬 바람은 아닙니다. 훈풍처럼 느껴지는 가을 바람을 따라 산넘어 마을 소식이 마당에 머물렀다 떠나는 한갓진 오후 시간, 낮동안 우리 집에 어떤 손님이 오고 간 사실 또한 바람에 실려 산넘어 마을로 마실을 떠납니다.

 

어디 바람 뿐인가요. 서리 맞은 고추를 따던 아랫집 할머니도 집으로 마실을 왔습니다. 할머니는 어머니와 마당가에 앉아 소주 한 잔을 놓고 떠나는 가을을 아쉬워 합니다.

 

"벌써 한 해가 다 갔네…." 

 

가을이 남녘으로 떠났다지만 아직 강원도 정선은 가을을 떠나 보내지 않았습니다. 산자락에 남은 단풍이 마지막 잎새로 남을 때까지 가을은 우리들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 겁니다. 칠순을 넘긴 두 할머니도 떠나는 가을을 아쉬워 하는데, 불혹의 시대를 미혹의 시대라고 우기는 이 몸도 그러하지 않겠는지요.

 

이렇듯 가슴조차 시려지는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부터 시작한 노래를 하루 종일 흥얼거리는 노래 하나 있습니다. 지난 날 추억이 왈칵 밀려드는 그런 노래 하나 있습니다. 그 노래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수록된 노래 '날이 갈수록'입니다.    

 

 

절망에 빠진 청춘의 시절을 위로해준 노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은 한국 영화사에서 큰 획을 그은 하길종이 감독을 맡았고, 소설가 최인호의 작품이 원작입니다. 영화에 삽입된 노래 '날이 갈수록'은 당시 연세대 학생이던 김상배씨가 작사 작곡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노래를 불렀던 이는 가수 송창식입니다.

 

학교엔 휴교령이 내려지고 학생들은 쓸쓸하게 캠퍼스를 떠납니다. 거리로 날리는 낙엽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날이 갈수록' 노래는 사람을 한없이 쓸쓸하게 만들고 세상을 향해 분노하게 만듭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군 입대, 열차 차창을 사이에 두고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어린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절망의 행렬들이 열차를 타고 떠나고 군입대를 하는 그 시절, 젊은이들의 꿈과 이상은 떨어지는 낙엽과 같았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된 것은 1975년,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2학년인 1977년 어느 날입니다. 그러니까 영화와 함께 다가온 노래 '날이 갈수록'은 30년 넘게 내 입에서 떠나지 않은 셈입니다.

 

70년대 당시 대학생들의 암울한 삶을 보여준 영화 <바보들의 행진>은 당국의 검열로 30분 분량이나 삭제가 되었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중학생이던 시절, 나는 그 노래를 부르기 위해 기타를 배웠습니다. 친구들을 모아놓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럴 때 부른 노래도 날이 갈수록이었습니다. 당시 그 노래는 절망한 청춘들의 희망가였습니다. 

 

나는 그 영화를 보고 대학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기도 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최루탄이 공중으로 날아 오르는 그 시절에도 그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거리를 뒹구는 낙엽을 보았고, 그렇게 청춘과 젊음이 가는 줄만 알았습니다.

 

80년대 대학가는 영화에서처럼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고, 곳곳이 철창의 숲이자 죽음의 바다였습니다. 그 시기를 위로해준 노래가 있다면 그것은 <타는 목마름도 아니고> <5월의 노래>도 아닌 <날이 갈수록>이었습니다. 

 

 

난 시인학교의 전속가수였다

 

대학생들의 방황과 절망 그리고 시대와의 불화, 그리고 저항. 낙엽지는 거리에 서서 그 시절의 노래 '날이 갈수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엔 또다시 황금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

 

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 가을이 가네

 

하늘엔 조각구름 무정한 세월이여

꽃잎이 떨어지면 젊음도 곧 가겠지

머물 수 없는 시절 시절 시절 우리들의 시절

 

루루루루 세월이 가네 루루루루 젊음도 가네

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 가을이 가네

루루루루 세월이 가네 루루루루 젊음도 가네

 

- 영화 바보들의 행진 삽입곡 '날이 갈수록' 가사

 

서울 인사동에 '시인학교'라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리를 옮겼지만 몇 년 전까지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명소였습니다. 정동용 시인이 교장이었고, 나이와 계급에 상관없이 손님들은 학생이었습니다.

 

그 시인학교에 가면 작은 무대가 있고 무대엔 통기타가 놓여 있었습니다. 머플러를 두르고 낙엽 날리는 인사동 거리를 걸어 시인학교에 들어가면 정동용 시인이 쾡한 눈을 들어 내게 노래를 시키곤 했습니다. 

 

"야, 기희야. 기분 꿀꿀허니 분위기도 살릴 겸 노래 한 곡 해라."

 

당시 나는 시인학교의 전속가수였습니다. 노래를 잘 불러서 생긴 일은 아닙니다. 그저 주머니 가난한 소설가에게 공짜 술을 줄 수 없어 정동용 시인이 만들어낸 직업이었습니다. 소주 몇 잔으로 목을 축이고 부르는 노래는 어김없이 '날이 갈수록'이었습니다.

 

 

 "이젠 노래도 늙어 버렸네..."

 

그러나 술 값을 하려면 분위기를 살려야 했지만, 내 노래는 늦가을에 내린 가을비마냥 쓸쓸한 노래였습니다. 그럼에도 박수는 은행잎처럼 쏟아졌고, 앙코르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앙코르 곡을 부르고 자리로 돌아오면 다른 테이블에서 노래 잘 들었다며 맥주와 안주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언제나 술은 공짜로 먹었습니다. 절대로 흥겨울 수 없는 노래 '날이 갈수록'은 묘한 매력을 지닌 노래입니다.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음이 술을 절로 마시게도 합니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그 노래를 부르며 혹은 들으며 청춘의 시절처럼 방황하고 저항합니다.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오는 가을 거리를 걸어도 좋았고, 최루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던 거리에 있어도 좋았습니다. 민주화를, 독재 타도를 외치던 가을 날에도 그 노래는 잘 어울렸습니다. '날이 갈수록'이라는 노래 분위기 보다 더이상 쓸쓸할 수 없는 그 시절. 청춘들은 저항했고, 독재에 의해 죽어갔습니다. 

 

그 노래를 얼마 전에도 불렀습니다.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난 후 기타줄을 뜯으며 감나무 잎이 뚝뚝 떨어지는 남도의 어느 집 마당에서 절절하게 불렀습니다.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습니다. 하여 이 노래를 살아남은 그 시절의 모든 청춘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집에 오래된 기타 하나가 있습니다. 도시에 살 적 어느 골목에 버려진 것을 주워온 것입니다. 전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버려진 것이라 소리는 형편 없습니다. 작업실 구석에 그냥 세워둔 게 몇 해 였던지 먼지가 뽀얗게 앉았습니다. 먼지를 닦고 공명음도 사라진 기타로 '날이 갈수록'을 불러 보았습니다.

 

누구 지켜보는 이 하나 없는 작업실에서 홀로 카메라 켜고 부르는 노래라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이럴 때 가을을 유난히 타는 어느 여인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노래가 훨씬 좋았을 걸, 해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창밖을 스치던 바람만이 지나가다 웃고 있습니다.

 

"늙은 통기타라 그런지 자네 노래도 이젠 늙어 버렸네"

 

이렇게 가을 노래가 늙어갑니다. 세상이 많이 바뀐 모양입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가을 노래 응모곡입니다. 


태그:#가을노래, #바보들의 행진, #날이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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