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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 인타논(Doi Intanon). 해발 2565m를 자랑하는 '태국의 지붕'에 우리가 가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도이 인타논 심장부엔 치앙마이 YMCA와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온 카렌족이 살고 있었다. 카렌족은 태국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민족, 태국 사람들도 관광이나 갈 법한 곳에 순수한 카렌족 마을을 보러가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서 아마도 우리가 처음일 것이라는 게 치앙마이 YMCA의 생각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치앙마이에서 2시간 남짓을 달려 도이 인타논의 입구에 도착했다. 도이 인타논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태국의 국립공원, 이 곳은 태국의 왕실 프로젝트(Thailand's Royal Project)가 진행되는 지역이었다. 우리를 마중나온 쏨차이(왕실 프로젝트의 매니저, 치앙마이 YMCA의 오랜 친구) 선생님은 우리에게 말했다.

도이 인타논의 왕실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농공단지, 이 곳에선 특화 작물 및 꽃 등을 실험적으로 재배한다.
 도이 인타논의 왕실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농공단지, 이 곳에선 특화 작물 및 꽃 등을 실험적으로 재배한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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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진행되는 왕실 프로젝트는 유기농으로 채소 및 과일을 재배하여 가난한 산간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영위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것이 도시의 'TESCO'나 'BIG C' 같은 외국계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되어 많은 사람들이 질 좋은 상품을 맛보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 후, 우리는 10여 분간 왕실 프로젝트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치앙마이 YMCA '요' 스텝이 말했다.

"사실 왕실 프로젝트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이 아니다. 우리의 푸미폰 왕이 가난한 태국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다음 세대에는 좀 더 발전한 태국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개인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이다. 종종 외국인들은 이 시스템을 오해하곤 한다"

왕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자부심을 느끼는지 의구심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카렌족의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떠나기 전 우리를 배웅하던 치앙마이 YMCA 피페 매니저의 말이 머리를 스친다.

"고, 그곳은 생각보다 낙후됐고, 엄청 추워. 한국에 겨울과 비슷할 수도. 단지 이틀이지만 몇 몇 팀원들은 정말 힘들어할 수도 있다고. 당신을 믿으니, 그들을 잘 돌봐줄거라고 믿어."

사실, 아까전부터 쌀쌀해진 날씨탓에 옷을 껴입기 시작하는 팀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태국에 와서 쌀쌀한 기운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를 태운 봉고차가 비포장 도로를 달린다. 비가 온 탓인지 바퀴가 헛돌기 일쑤고, 차에서 연기가 피오올랐다 사그러졌다가 반복된다. 운전을 하는 피툰(치앙마이 YMCA 스태프)이 말한다.

"가는 길이 힘들지?"

도착한 카렌족 마을. 몇 몇 관광객들이 생각하는 카렌족은 목에 링을 칭칭 감고, 원시부족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허구였다.

"미얀마의 한 부족으로만 인식되는 이들은 사실 태국의 한 민족이기도 하지. 수공예품이나 관광 등으로 수입을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카렌족은 농사나 특화작물 재배 등의 왕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어.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그들의 노동으로 그들이 자족하길 바라는 거라구."

'요' 스태프의 설명은 짧게나마 카렌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사실 이곳은 일본 고베 YMCA가 몇 차례 다녀갔다. 그들은 카렌족이 언어와 문화를 가진 훌륭한 친구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이 마을에 방문하면서 '헌 옷 보내기'나 '연락 주고 받기' 등을 통해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마을 '피텅' 이장님 집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에 선거에 의해 뽑히고, 정부로부터 일종의 보조금을 받는 이장님, 생각해보니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다른 것은 이장님 집에 화장실엔 전등이 없고, 주방엔 제대로 날이 선 칼조차 없다는 사실, 그래도 처음 우리를 본 시점부터 우리가 갈 때까지 미소 한 번을 잃지 않는 넉넉한 분이셨다.

카렌족의 전통가옥, 이 곳은 그 중에서도 주방이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곳이 바로 불을 이용하는 곳이다. 아늑하고 분위기가 제법이다.
 카렌족의 전통가옥, 이 곳은 그 중에서도 주방이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곳이 바로 불을 이용하는 곳이다. 아늑하고 분위기가 제법이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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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카렌 족의 전통 가옥. 형태는 2층 집인데 1층에는 집을 떠받치는 기둥 밖에 없다. 이곳은 가축을 키우거나 짐을 쌓아놓는 곳. 아무래도 문명의 혜택을 입었는지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고 한쪽엔 신문이 쌓여있다. 재미있는 건 돼지를 끈에 묶어서 개처럼 키운다는 점이었다.

2층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 입구로 들어가기 전 대청마루 같은 작은 공간이 있고 들어가면 거실과 작은 방 2개가 있었다. 나무로 지어진 집, 밤이 되면 제법 추울 것 같은 곳에 우리는 짐을 풀었다.

이들에게도 왕과 불교는 절대적인가 보다. 왕의 큰 사진과 집안에 모셔진 작은 재단이 이런 점을 반증하고 있었다. 이제 저녁 만찬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주방은 아래 쪽 별채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고 하는데 비가 와서 촉촉하게 젖은 땅에 모든 것이 비포장이니 가는 길이 험난하기만 하다. 이따금씩 미끄러지거나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주방 공간은 안타깝게도 싱크대의 개념이 없었다. 대충 물을 퍼다가 그릇을 씻어야 한다. 저녁 메뉴가 고기 구이인 탓에 날선 칼을 찾았지만, 무딘 칼 한 자루 뿐이었다. 주방 안 쪽 공간은 장작을 때서 양 옆에 나무 구조물에 냄비를 걸쳐서 밥을 해먹어야 하는 정말 처음보는 취사 형태가 자리잡고 있었다. 집안에 연기가 가득찼지만 이내 천장의 여러 공간으로 연기가 빠져나가고, 우리는 연신 장작불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아마 다시는 이런 체험을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식사가 진행되고, 카렌족 마을의 전통술이 나왔다. 소주와 비슷한 맛의 전통 술이 돌자 '요'는 특유의 재기를 발휘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시작은 '피텅' 이장님과 동네 청년들이 카렌족의 전통 노래를 부르면서 유쾌했다. 다음은 '피툰'이 태국의 전통 노래를 부르고, 마지막으로는 한국의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1시간여가 넘는 시간 동안 웃고 떠들며 서로의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유쾌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피텅' 이장님이 말했다.

"일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너희는 매우 예의바르고 우리를 존중한다. 태국의 일부 사람들은 우리를 업신여기고 무시한다. YMCA가 우리 마을에 들어와서 함께 활동하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당신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카렌 마을 사람들끼리 마음을 열고 살아갔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YMCA를 통해 다른 이들과 나는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일본과 한국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우리에겐 돈은 필요 없다. 우리는 그런 것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고 먹고 살만하다. 다만 당신들이 우리 삶을 위해 도움을 준다면 기꺼이 받을 것이고, 우리도 당신들을 위해 대접하고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친구이기 때문이다"

'피텅' 이장님의 말이 아직까지 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가장 힘든 것은 에둘러진 편견과 오해, 우리에겐 태국 사람들이 카렌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과 오해가 없었다. 우리가 외국인노동자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하듯이 태국인과 카렌족의 관계가 그러하지 않을까? 외국에 나오니 특이한 경험을 통해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틈이 생긴다.

다음 날 아침, 어지간히 추웠던 밤탓이었을까? 팀원들이 이불을 돌돌 감고 자고 있다. 모두들 두세겹씩 긴옷을 껴입고 발을 동동구르는 모습, 피페가 한국 날씨만큼이나 추울 것 같다고 조언해준 말은 역시 사실이었다.

우리를 위해 호두를 열심히 까주고 있는 아이들, 아마도 우리네 엄마들이었다면 손님들 많은데 오도방정이라며 아이들을 제지시켰을수도...
 우리를 위해 호두를 열심히 까주고 있는 아이들, 아마도 우리네 엄마들이었다면 손님들 많은데 오도방정이라며 아이들을 제지시켰을수도...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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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피툰과 함께 만든 끓인 밥, 태국은 아침마다 끓인 육수에 밥을 함께 넣어서 먹곤 하는데 다소 짜서 그렇지 우리에겐 더없이 좋은 음식 중 하나이다. 옆에선 이장님 댁 아이들이 우리에게 호두를 까준다고 판자위에 올라가 팍팍 호두를 밟고 있다. 어느새 재미가 붙었는지 아이들이 경쟁하듯 호두를 깐다고 집안을 쿵쿵거리고 있다. 흥미로운 건 아이들의 어머니가 그런 아이들의 행동을 제지하기는커녕 아이들이 우리를 배려하면서 재미있어 한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사고하는 방식은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

카렌족의 전통가옥 체험을 마치고 나와서 우리는 마을의 유일한 '쌍로왓 메머어' 학교로 이동했다. 산간 마을을 체험하기 위해 차 대신 1시간 여를 걸어서 이동하는 길, 조그마한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서 논 한복판을 걸었다. 주저앉을 것만 같이 아름다운 풍경이 내 곁을 스쳐지나가고, 가슴속에 담는 것도 모자라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만 하다. 어느 새 봉사자가 아닌 관광객으로 변모를 꾀했기 때문. 하지만 손에서 카메라를 놓을 수 없는 것은 아직도 내 안의 욕심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도착한 학교. 아직은 방학(태국은 대부분의 학교가 10월부터 11월 사이에 방학이다)이지만, 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학교에 모였다. 이유는 나무를 심기 위해서였다.

'요'가 말한다.

"학교 주변이 너무 휑해서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심기로 결정했대. 이것은 학교 주변도 정화하고 아이들의 교육 재료로도 쓰이겠지. 재미있는 건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을 위해 모두 자원봉사 나왔다는 점이지."

카렌족의 '쌍로왓 메머어 학교'로 가는 길. 하늘과 땅, 내가 하나되는 느낌이다.
 카렌족의 '쌍로왓 메머어 학교'로 가는 길. 하늘과 땅, 내가 하나되는 느낌이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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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품앗이 같다고 할까. 하긴 카렌 족은 친척들이 모두 한 마을에서 살고, 사람들 간의 싸움도 가부장이 조율하는 형태의 우리나라의 전통 가족과 비슷한 모습을 띄곤 했다. 생각해보니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 것 아닌가 싶다.

이 초등학교의 학생은 대략 70여명. 이 학교는 카렌 족의 중요한 희망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통해 사회를 배우고 외부 사회와의 관계를 맺는다. 왕실 프로젝트를 통해 화전에서 벗어나 정착된 마을에서 살아가고, 아 학교를 통해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중학교로의 진학을 꿈꾸고 대학 교육의 이상을 품는다. 참고로 카렌 족의 청년들은 영어를 곧잘 한다.

삽도 아니고 곡괭이도 아닌 것을 열심히 놀려본다. 땅이 잘 파지지 않지만, 마을에 부족 할머니 옆에서 열심히 파본다. 할머니는 이런 저런 노하우를 옆에서 보여주면서 손자뻘 되는 나를 챙겨준다. 힘도 별로 없는 할머니가 손을 놀리면 어느새 구덩이가 하나 파진다. 내가 땀 뻘뻘 흘리며 위아래로 놀려봤자 구덩이가 반 개 나올까 말까다.

그렇게 나무를 다 심고 우리는 카렌 족 마을에서 나왔다. 그 후 도이 인타논의 폭포도 보고 정상도 밟았다. 수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걸었고 앵글을 놀리며 셔터도 눌러댔다. 이들은 태국을 보러 왔고 도이 인타논을 즐기러 왔다. 아니 배우고 돌아갈 수도 있고 진리를 깨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다른 이들도 이들의 사는 생활 상을 체험하며 우리처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요'가 말한다.

"봉사라는 게 뭘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가 모호해지면서 친구가 되는 것. 알지? 그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열린 마음'이라고!"

덧붙이는 글 | 위 일정은 10월 21일 ~ 22일까지 진행됐습니다. 그동안 인터넷 사정이 여의치 않아 올리지 못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태그:#라온아띠, #YMCA, #KB, #도이 인타논, #카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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