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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가 넘은 시간, 오늘도 요란한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뜹니다. 습관처럼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서두릅니다. 준비라고 해봐야 메신저 백팩을 챙겨 메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지난 3월부터 이 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지금까지 버스나 지하철을 탔다면 이런 즐거움은 영영 맛보지 못했겠지요.

모든 준비가 끝나면 4층 자취방에서 접이식 미니벨로 스트라이다를 들고 1층으로 내려와 페달을 밟습니다. 코스는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서 숭례문 인근의 사무실, 시간은 넉넉잡아 20분 정도 걸립니다. 차도 많고 매연도 심각하지만 매일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자전거 출퇴근을 하는 이유는 지난 2월 소실되어 버린 숭례문과 제 자신이 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숭례문 화재, 최초 목격... 용의자 검거를 돕다

2008년 2월 10일 저녁 8시 50분. 저는 YTN 앞에서 신당동으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 있었습니다.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고, 당진 집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출근을 해서인지 몸이 나른하더군요. 이런 저런 생각에 창 밖을 바라보는데 버스가 신호대기로 숭례문 옆에 멈춰섰습니다. 그때 습관처럼 화려한 조명에 웅장한 자태를 뽐내던 숭례문을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나이 일흔은 다되어 보이는 노인이 사다리를 펴고 숭례문 누각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추위를 피하는 노숙인이라 생각을 했습니다.(지금에 와 생각해도 그건 정말 그릇되고 어리석은 판단이었습니다. 숭례문 화재 때 마음 고생, 몸 고생 많으셨던 노숙인분들께 다시금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고할까?'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가 귀찮은 마음에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경찰서에 전화를 했더라면…' 아직도 그 생각에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집에 돌아가 습관처럼 YTN을 켰는데 속보가 나오더군요. '숭례문, 누전으로 보이는 화재 발생'이라는 자막과 함께. 순간 '아차'라는 생각에 망연자실했습니다.

'혹 아까 본 그 사람이 불을 낸 것은 아닐까? 얼굴은 기억 나는데 어디에 이야기를 해야 하지.'

정신을 가다듬고 우선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숭례문 화재는 누전이 아니라 방화인 거 같습니다. 제가 퇴근길에 용의자를 목격한 것 같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주세요."

다음으로 YTN에 전화를 걸어 당직 기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게 연휴 마지막날 TV에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다가 밤 11시경 "화재가 일단락 되어간다"는 보도를 접하고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에 긴 한숨을 내쉬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2시가 되었을까요? YTN 당직 기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TV를 보고 있냐"고 묻더니 숭례문이 전소됐다는 소식을 전해주더군요. 순간 잠이 확 깼습니다. TV를 켜니 정말 숭례문이 전소가 되었더군요. 그리고 스튜디오와 생방송으로 전화 연결을 했습니다. 목격 당시의 상황과 인상착의를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더군요.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신고했더면 국보 1호가 저렇게 힘없이 쓰러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숭례문 화재가 발생한 다음날 출근길. 숭례문의 웅장함은 사라진지 오래고 장막을 치기 위한 공사만 한창입니다.
▲ 불타버린 숭례문 숭례문 화재가 발생한 다음날 출근길. 숭례문의 웅장함은 사라진지 오래고 장막을 치기 위한 공사만 한창입니다.
ⓒ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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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경에 남대문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조사에 응해 달라면서. 이날부터 사나흘은 경찰서, 회사, 용의자 검거현장까지. 정말 정신 없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결국 방화 용의자인 채모씨가 체포되었습니다. 딱한 사정도 있었지만 문화재를 불태우는 것은 방식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정신 없는 며칠이 지나고 언론은 저를 숭례문 화재의 '최초 목격자'로 보도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상금'이라는 명목으로 150만원이 제 통장에 입금됐습니다. 공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묘한 느낌의 돈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노숙인 단체에 기부하고, 밥 사고... 남은 돈은 무얼 하지?

국보가 불타는 현장을 처음 목격했다는 이유로 포상금을 받는다는 게 왠지 맘에 걸렸지만, 의미 있게 쓸 준비만 되어 있다면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앞서 언급했듯이 제가 YTN과의 첫 인터뷰에서 인상착의를 '노숙인'으로 표현하면서 고통 받으신 노숙인분들을 위해 인권단체에 일부를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드릴 작은 선물과 3일 동안 업무를 제대로 못 봐도 아무 말없이 응원해준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 몇몇에게 밥을 샀습니다.

그런데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들더군요. 웃고 즐기기 보다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는 않을까. 퇴근길 앙상한 몰골만 남은 숭례문을 바라보며 고민을 했습니다. 무얼 하면 좋을까?

며칠을 고민하고서야 결정한 것이 "자전거를 구입해서 자전거 출근을 시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시골 출신인 제게 지하철과 만원 버스는 지옥과 다름 없었고 저 하나라도 자출을 한다면 그만큼의 CO2가 줄어들거라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숭례문과 약속을 했습니다.

"네가 다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날까지 자출하며 너의 모습을 바라보겠노라고."

숭례문 화재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포상금 150만원을 받았습니다. 일부는 기부하고, 밥사고.. 남은 돈으로 구입한 스트라이다. 이 자전거로 8개월째 자출을 하고 있습니다.
▲ 숭례문 화재 포상금으로 구입한 자전거 숭례문 화재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포상금 150만원을 받았습니다. 일부는 기부하고, 밥사고.. 남은 돈으로 구입한 스트라이다. 이 자전거로 8개월째 자출을 하고 있습니다.
ⓒ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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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자출이 이제 8개월을 넘어섰습니다. 자출길 숭례문은 장막에 가려 그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사람들이 바쁘게 들락거리는 걸 보면 제 모습을 찾기 위한 공사가 한창인가 봅니다. 그 사이 저는 자전거 동호회에도 가입했고, 발바리라는 녹색교통 모임에도 참석하며 숭례문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출퇴근길에 YTN에도 살짝 들립니다. 그리고 속으로 약속을 합니다.

'낙하산 사장이 물러나고 YTN이 정상화 될 때까지, 아니 언론에 대한 정부의 장악의도가 끝날 때까지 자출을 계속하겠다.'

한국언론 최초로 숭례문 화재현장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해준 YTN. 그 YTN이 아니었다면 제 자출도 없는 이야기가 되었을 테니까요

쉽지 않은 자출길 '서울시의 약속' 공염불 되지 않길

하지만 여전히 자출은 쉽지가 않습니다. 차들은 연신 경적을 울려대기 십상이고 심지어 어떤 운전자는 자전거는 보도로 다니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서울시가 21일 자전거도로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자전거 도로도 늘리고, 지하철에 샤워시설이 갖춰진 주차시설도 만든다고 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차선 하나를 자전거에게 내어 주겠다는 그 약속이 보여주기 행정에서 끝나지 않길 기대해봅니다.

숭례문 화재로 시작된 자출, 이제는 서울시가 자전거 중심의 도시로 거듭날 때까지 계속해보렵니다. 지구를 맑게 만드는 출근길, 함께 시작하지 않으시겠어요?

덧붙이는 글 | 2008 자출 여행 응모글입니다.



태그:#자출, #자전거, #숭례문, #스트라이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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