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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자유방임주의는 이제 끝났다.'

이번 미국발 금융쇼크를 계기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주요 국가 정상들이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금융 시장 붕괴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세계적인 금융 감독 시스템 마련을 비롯해 '시장 규제'를 통한 새로운 시장질서 구축을 적극 촉구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금융 시장 개입 최소와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 기조로 '영미식 자본주의'의 첨병에 섰던 국가다. 하지만, 기존 방침을 바꾸고 오히려 시장 규제를 주창하고 나섰다. 이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영국] 브라운 총리 "세계적 차원의 금융 감독 기구 설립하자"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자료 사진).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자료 사진).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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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26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촉구하는 동시에, 대규모 금융기관들을 감독할 수 있는 세계적인 규모의 감독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브라운 총리는 "은행이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자본이 세계적으로 이동하면서 그 위험성도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다"며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감독도 단지 한 국가의 차원이 되어서는 안 되고, 세계적인 차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말까지 30개의 주요 기관들이 이 감독기구에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경제 질서가 불투명성이 아닌 투명성에 기초한 '건전한 은행 시스템과 강력한 감독 시스템'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요체.

영국 정부의 이런 변화는 매우 이례적이다. 영국과 미국 정부는 오래 전부터 금융 규제에 반대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금융위기에 영국은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올해 들어 영국의 주요 은행 중 하나였던 노던 락(Northern rock)이 붕괴하고, 영국 최대 모기지업체인 HBOS(Halifax Bank of Scotland)가 문을 닫는 등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시장 규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

브라운 총리는 토니 블레어가 총리를 맡을 당시부터 오랫동안 재무장관을 맡았기에 금융 시스템과 경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로 더 이상의 방관은 독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시장 만능주의는 미친 생각"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 ITAR-TAS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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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더욱 노골적으로 현 금융위기를 비판하고 나섰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시장은 어떤 규제와 어떤 정치적인 개입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말아야 한다며 시장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믿는 것은 미친 생각"이라며 "시장이 언제나 옳다는 생각도 미친 생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시장의 자체적인 규제 기능으로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식의 자유방임주의가 끝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 대안으로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 모델을 구축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금융과 감독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르코지는 또 금융기관 등 경제계 임원들이 고액연봉을 받는 잘못된 관행을 연말까지 규제하는 등 뜯어고치겠다고 엄포하고 나섰다. 그는 임원의 연봉에는 "부정과 스캔들이 연관되어 있다"며 "임원의 임금은 실제적인 경제업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중도보수세력의 후보로 대통령이 되었고 친미주의자로 불릴 정도로 원래 시장에 우호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이번 금융위기가 몰아닥치자, 실물 경제 성장의 둔화 등 위기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BBC 방송은 프랑스의 경우 금융기관들이 주택담보 대출을 소극적으로 하는 등의 관행이 이미 자리 잡혀 있어, 이번 금융위기로 인한 피해가 적은 국가 중의 하나라고 보도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 "미국 정부는 무책임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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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헤지펀드 등 투기성 자본을 규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세계 정상들에게 적극적으로 촉구했다. 당시 영국과 미국은 이를 거부했지만 이번 금융 위기를 통해 그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된 셈.

메르켈 총리는 미국 금융위기에 대해 "정부 감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은행과 신용기관들이 작동되도록 허용한 것은 무책임한 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작년에 독일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서 국제 시장의 투명성 확보 및 규제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했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 등이 그 '경고'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당시에 참석자들은 "우리는 더 이상 투명성이 필요 없다. 모든 것이 등급평가를 하는 신용기관들에 의해서 작동되고 있다."는 분위기였다고 메르켈 총리는 설명했다.

한국 자본주의는 어디로?

유럽연합 국가들은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투기자본을 강력히 규제하고 금융기관과 신용평가 기관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가치와 그 시스템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깔려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미국을 모델로 신자유주의 국가로 더욱 폭주하는 대한민국. "7000억 달러의 국민 세금을 투입해서라도 부실을 해소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뼈저린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영국마저 새로운 경제 질서를 짜려는 시점이다. 우리의 경제정책,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철학과 새로운 지향점까지 깊숙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태그:#미국 금융위기, #신자유주의, #고든 브라운, #사르코지,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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