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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YTN 발톱만큼만 해라." (아이디 'YTN본받기')
"YTN 노조 반만큼만 해 봐라, 어제 있었던 인사숙청을 보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더러운 노조" (아이디 '오리')
 
지난 17일 이병순 신임 KBS 사장이 한밤에 '보복성 기습 인사조처'를 한 뒤 KBS 노동조합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의견들이다.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이하 KBS 사원행동)' 소속 47명에 대한 인사가 발표난 다음날인 18일, KBS노조는 '정연주 사장 퇴진, 낙하산 사장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해단식을 치르기 위해 전북 선유도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그러자 노조 게시판에는 이에 대한 성토 글이 이어졌다.
 
"자기 조합원도 못 지키고 조합비 가지고 흥청망청 야유회나 가는 애들이 노조면 난 혁명가겠다"고 비꼬는 이부터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보복 인사 당하는 걸 보고만 있는 당신들 노조 역겹다"며 분노를 토하는 이까지 노조의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KBS 노조원들의 글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YTN 노조와의 비교다. 이들은 구본홍 사장의 인사 조처에 불복종으로, 징계 명단이 공개됐을 때는 다른 조합원들이 줄 이어 "나도 징계하라"며 맞서는 등 인사위원회 개최를 무산시킨 YTN을 예로 들며 "발톱만큼만 해라"고 꾸짖었다.
 
내용면에서나 절차면에서나 부당한 인사에 대해, 사측의 인사전횡을 감시해야 할 노조가 이렇다 할 성명서 한 줄 내놓지 않고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는 KBS는 분명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역사·덩치에서 비교도 안 되는데 YTN 노조가 더 잘 싸워
 
노조의 투쟁사나 조합원 수와 비교하면 YTN 노조와 KBS 노조에 대한 평가는 더욱 극을 달린다.
 
KBS 노조는 지난 88년 출범 이후 방송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서 있었다. 1990년 4월 서기원 사장 취임 때 '낙하산 사장 취임'을 반대하며 37일 간 제작거부에 나섰고, 당시 투쟁으로 인해 무려 117명의 KBS 사원들이 연행됐다. 지난 2003년 서동구 사장을 임명 8일 만에 출근저지 투쟁으로 중도 하차시킨 전례도 있다.
 
이런 KBS 노조의 투쟁사와 YTN 노조의 투쟁사를 비교하기에는 아직 YTN의 역사가 짧다.
 
조합원 수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지난 8월 KBS 노조가 실시한 '이명박 정권 낙하산 사장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투표권을 가진 전체 조합원 수만 4337명이었다. 반면 YTN이 9월 2일부터 나흘 동안 진행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투표권을 가진 전체 조합원 수는 395명이었다.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나 현재 KBS와 YTN 노조의 활동은 과거의 투쟁이나 규모와 반비례해서 나타나고 있다. '골리앗'에 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YTN 노조는 예상을 뒤엎고 세 달째 'MB특보 출신 낙하산' 구본홍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이런 탓에 구 사장은 예비군 사무실로, 경영기획실로 '메뚜기'처럼 움직이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회사가 징계방침을 밝히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YTN 재승인 문제'를 언급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자, 되레 연가투쟁과 더불어 '공정방송' 리본 착용과 '낙하산 사장 반대' 배지를 착용한 채 뉴스를 전했다. 투쟁 수위를 더 높인 것이다.
 
그렇다면 KBS 노조는?
 
물론 삭발도 하고,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도 했다. 또한 총파업 찬반투표까지 진행했지만, 정작 이병순 사장이 최종 낙점됐을 때에는 85.5%의 찬성률로 가결된 총파업 카드를 버리고 "낙하산이라는 개념은 '과학적'이지 않다, 이병순은 낙하산은 아니다"고 방어에 나섰다. 이후 이병순 사장 출근저지 투쟁이나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을 규탄하는 투쟁의 자리에서 KBS 노조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조합원 보호'를 존재 이유라고 했던 KBS 노조는 어디로 갔나
 
이런 노조의 책임 방기 탓에 이병순 사장 반대 투쟁에 나섰던 KBS 사원행동 구성원들은 궁지에 몰렸다. 지난 17일 야간에 단행된 보복성 인사 이후, 이사회의 요청으로 시행되는 특별감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별감사가 이뤄지면, 기습인사 조처 이상의 '보복 징계'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회사의 압박과 노조의 방임 속에서 KBS 사원행동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이번 인사 조처와 관련한 피해사례를 모아 법적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KBS 기자협회는 22일 오전 8시부터 김종률 보도본부장 사무실 앞에서 매일 1시간씩 피켓 시위에 나설 예정이다.
 
KBS 사원행동의 노력만으로는 사측의 보복을 막아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19일 국회 문화관광체육방송통신위 KBS 업무보고에서 이병순 사장이 말한 것처럼, 법정단체가 아닌 KBS 사원행동은 농성·집회 등 행위에 대해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또한 구성원 수도 현재 650여명 밖에 안돼 조직력이나 투쟁력도 부족하다. 노조의 힘이 필요한데, 노조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병순 사장에 대한 이사회의 임명제청의결이 이뤄진 지난 8월 25일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은 향후 투쟁 계획을 묻는 KBS 사원행동 앞에서 총파업을 포기하며 "KBS를 둘러싼 엄혹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차기 사장은 가급적 조속하게 선임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병순 사장 체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셈이다.
 
방통위원장의 KBS 이사장 퇴임 압박→김금수 이사장 사퇴→새 이사장 선임→전임 이사의 부당한 해임→그를 근거로 한 친한나라당 이사 선임→이사회의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이병순 사장 선임 등으로 이어지는 편법적인 현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음모에 대해서 KBS 노조는 사실상 '꿀먹은 벙어리' 행세를 했다.
 
새 사장 취임 전부터 YTN 노조나 KBS 노조 모두 '공정방송'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에 대해 결사반대한다며 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두 방송사 모두 새 사장 선임 과정에 수많은 의혹과 시나리오가 난무했고, 편법적인 방법이 총동원되는 파행을 겪었다.
 
새 사장 취임 이후, 한 쪽은 원칙을 지키는 고난의 길을 선택했고, 다른 한 쪽은 자기합리화를 통한 축배의 잔을 기울였다. 두 노조의 행보는 이명박 정권 1년차, 우리 언론 노조의 현 주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태그:#KBS, #보복인사, #사원행동, #이병순, #KBS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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