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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날(24일)] 맥케인은 싫고, 오바마는 불안하다?

 

어디를 가든 택시 운전사들에게 민심을 얻어 듣는 것은 재밌다. 하얀 베레모에 뿔테안경을 쓴 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 운전사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본다. 한국에서 DNC(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러 왔다고 하니 난데없이 '미친 소, 미친 소(mad cow)' 그러면서 나를 바라본다. '소' 얘기가 화제가 되는 것이 내키지 않아 그 문제는 '꼭 고기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국민에게 동의를 얼마나 구했는지 문제에 더 가깝다'라고 얘기하니 '자기도 안다'고 한다.

 

정말 아는 것일까? 화제를 바꾸고 싶어 오바마를 지지하는지 질문했다. '미국은 변화가 필요하다(America need change)'라는 답이 돌아온다. 한 마디 덧붙이며 '오바마가 집권하면 남북한 문제가 좋아져 한국 사람에게 좋을 것'이란다. 되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국에 대한 얘기를 아는 지 물었다. 좀 무례할 수도 있다 싶어(솔직히 흑인 택시운전사라는 편견을 가졌던 것도 같다), '그런 얘기는 보통 미국 사람들이 관심이 별로 없는데..'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자기는 '흑인시민운동에 참여한다'고 응답한다. 나는 오바마 등장 이후 과연 흑인들이 투표에 더 적극적이 될 것인지 궁금했던 차였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투표를 할 것인지, 또 과거에도 투표를 했는지 물었다. 부시와 고어가 나선 2000년 대선에선 미국 시민권이 없었고 2004년 대선에서는 투표했다 한다. 원래 고향은 어딘지를 물었다. '케냐'라는 응답이다. 그럼 '당신이랑 오바마는 동향이다'라 했더니, 그건 아니고 오바마의 아버지와 동향이라 한다.

 

한국에서는 아버지 고향이 자기 고향이라 했더니, 웃으면서 그것은 맞는 말이라면서 오바마와 동향 사람이 맞다고 말을 바꾼다. 사실 생각해 보면 케냐는 오바마의 고향이기보다는 뿌리이다.

 

오바마 가족이 모이면 '유엔' 같다

 

'오바마에 투표하면 죽어가는 태아들을 지지하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섬찟하다. 낙태에 유연한 입장을 가진 오바마에 대한 압박이다. 지지자들과 즉석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바마에 대해 지식이 있는 분들이 적지 않지만 그의 성장과정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보자. 전반적 줄거리는 일찍부터 오바마를 탐사해온 <시카고 트리뷴>의 데이비드 멘델 기자의 책 내용(<오바마 약속에서 권력으로>, 데이비드 멘델, 도서출판 한국과 미국, 2008)을 요약했고, 일부는 타임지 2008년 9월 1일자를 참조했다.

 

'버락'이라는 이름은 케냐 말 그러니까 정확히 스와힐리어로 '축복받은 이'라는 뜻이 된다. 오바마의 아버지 이름도 '버락 오바마'니까 오바마 후보는 오바마 주니어다. 회교도였던 아버지는 오바마에게 '후세인'이라는-지금 미국에서 꽤 버거울 수밖에 없는-중간이름을 붙여주었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의 첫 국비장학생으로 하와이대학으로 유학을 온다.

 

거기서 캔사스 출신 백인인 오바마의 어머니 쏘에토로(S. Ann Soetoro) 여사를 만나 결혼해 오바마를 낳게 된다. 다만,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정식 결혼서류는 없었으므로 사실상 사실혼 관계 정도였나 보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미국에 오기 전에 케냐에 정식 부인이 있었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천재 수준에 가까운 수재였던 것은 분명하다. 케냐에서 첫 국비장학생으로 온 것도 대단하지만 곧 하버드대학교 장학금을 받아 하와이를 떠난다.

 

그리고 그 길로 오바마 모자를 버렸다(후에 오바마의 아버지는 하버드에서 또 다른 미국 여성을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오바마의 아버지가 떠난 후 하와이대에서 문화인류학 박사를 받은 어머니는 또 다시 인도네시아 유학생과 결혼해 오바마와 양아버지의 고향으로 간다.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에서 회교학교를 다녔으며 그 시절에 곤충과 개고기를 먹는 경험담 등이 그의 책에 등장한다.

 

이후 인도네시아인 양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여동생이 태어났고 오바마와 아시아계 혼혈인 여동생은 외할아버지 내외의 손에 자란다. 그는 할아버지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하와이에서 백인들과 소수의 동양인 몇 명만이 다니는 '비싼'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의 어머니는 오바마가 20살을 갓 넘었을 때 암으로 사망했으며, 아버지 역시 그로부터 10년 전 오바마가 10대 초반일 때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케냐에는 아버지의 첫째 부인과 하버드에서 공부를 마치고 데려간 미국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형제들이 더 있다. 오바마는 이런 상황을 두고 자기 가족이 모이면 '유엔 같다'고 표현했다.

 

한편 그의 어머니로부터 오바마가 배운 것은 무한한 포용과 이해심이었지만 어머니의 방랑만은 싫어했던 것 같고, 10살 때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에 대해서는 (한 때)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같은 길을 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오바마가 그 이후 삶을 살면서 얼마만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는 편이 낫겠다.

 

다만 '나의 할아버지 역시 나의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는 그의 고백이 가슴 아플 뿐이다. 오바마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것을 자신 안에서 용해하고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데, 그것은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 내외의 포용력에서 왔다는 것이 오랜 기간 그를 추적해 온 멘델 기자의 생각이다.

 

힐러리 열성 지지자들을 보면서 박근혜 지지자를 떠올리다

 

 

전당대회가 시작되는 월요일에 덴버 시내는 전 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북적댔다. 그야말로 거리 곳곳마다 온 도로에 사람과 차가 넘쳐났다. 전날 두 세 곳에 불과했던 가판대는 이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매대 마다 오바마가 새겨진 기념품을 사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매일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콜로라도 컨벤션 센터(Colorado Convention Center)' 앞에는 입장하려는 긴 줄과 함께 두 세 사람씩 모여 시위를 하고 있었다. 대개 낙태문제, 지구온난화 문제, 이라크전 등이 그 주제였다. 물론 골목마다 중무장한 경찰들이 서있었는데, 곧잘 여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곤 했다.

 

그 중 한 무리의 사람들이 뭉쳐서 함성을 지르고 웃기도 하며 다녔는데 그들은 힐러리 열혈 지지자들이었다. 그 상황이나 열성적 모습이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 지지자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힐러리 진영은 전 날 오바마가 바이든(J. Biden)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이후 잠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으나 자신의 지지자들을 '풀어주겠다(release)'는 입장이 뉴스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중심가 외곽에는 공원이 있어 둘러 봤는데 공원 한 중간에 이슬람 양식의 큰 임시설치물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이라크 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전시관이었다. 그 옆으로는 중국 정부의 탄압을 받은 파룬공(法輪功) 수련자들이 족히 100명 정도 모여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었다. 자유주의를 노선으로 하는 민주당 전당대회장은 미국 사회의 소수계층 또는 소수가치를 가진 집단들이 입장을 표출하며 한데 섞여 가고 있었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공화당 전당대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이 슬쩍 들었다.

 

투표 의지 강한 층에서 개혁후보 불리한 현상, 미국엔 없을까?

 

 

너무 지쳐 잠시 음료수나 사 마실까 해서 지하에 있는 경전철역으로 들어갔다. 마침 신문이 있어 살까 하고 제목을 읽고 있는데 50대 초반 가량 아주머니 한 분이 '일본이 우리한테 왔다(Japan come in)'라며 두 명의 백인 할머니들을 상대로 강한 어조로 설명하고 있었다. 얼핏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다는 얘기인가 싶어 들어 봤더니 백인 할머니들이 먼저 알아듣고 '침략 말이냐(invasion)?'라며 되묻는다.

 

신문 한 장과 음료수 한 병을 내밀며 '한국 분이시죠?'라며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어휴, 어휴' 하면서 겸연쩍게 웃는다. 그냥 잠시 몇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에 대한 생각들이다. 신문을 들고 벤치에 앉아 부통령 바이든 상원의원 지명에 대한 해설과 함께 실린 여론조사 결과를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미국 최초의 대중적 전국지인 <USA TODAY>와 갤럽이 공동 조사한 내용이었다.

 

경선 당시 힐러리를 지지했던 이들의 절반 이하만이 오바마를 확실하게 지지한다는 내용이 제일 먼저 실려 있다. 힐러리를 지지했던 이들의 3분의 1은 아예 '맥케인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한다. 표집오차가 위 아래로 4%인 이 조사 상에서 '등록한 유권자' 중에서는 오바마 47%, 맥케인 43%의 지지도가 나타났으며, '앞으로 (등록해서) 투표할 것 같다'는 응답자 중에서는 오바마 48%, 맥케인 45%로 나타났다.

 

표집오차를 감안하면 여전히 경합이다. 다만 '아마 할 것이다'라는 응답자와 '이미 등록했다'는 응답자 간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오바마에게 좋은 현상이긴 하다. 개혁성향 유권자들이 젊은 층에 편향되어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대개 투표에 대한 의지가 강한 층에서 개혁후보가 불리해지는 '숨은 표' 현상이 일어난다. 이 결과만을 언뜻 보아서는 미국에서는 그런 숨은 표 현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 방에 들어와 갤럽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니 오바마에 대한 젊은 층의 지지가 압도적이다. 몇 달 전 한 시민단체 세미나에 참가해 발표했던 한미 간 투표율 특성을 분석자료를 다시 들춰보았다. 역시 미국도 연령이 높아지면 투표율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오바마의 지지도 역시 일정 수준 '거품'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다만 미국 대선 투표율은 지난해 최악의 대선투표율을 기록한 한국과는 달리 2000년보다 2004년 대선 투표율이 꽤 올라갔다. 특히 30대 이하에서는 무려 9%가 상승했다. 30대 이상에서는 단지 3% 정도 상승하는데 그쳤다. 반면 18~24세에서는 무려 11% 투표율이 올라갔다. 그렇다면 젊은 층들이 '오바마'에 열광하는 지금의 선거흐름을 볼 때 30대 이하의 투표율이 더욱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 열풍은 젊은 유권자들로부터 시작된다. 일행 중 한 분의 자제분(?)께서 부모 카드를 훔쳐다 오바마에 기부했단다. 어제 만난 교민 내외의 아들은 학교도 쉬고 선거운동 도우러 다닌다 했다. 이는 젊은층의 낮은 투표율로 인해 맥케인 후보측이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갤럽의 결과들을 가만 들여다보니 특이한 것이 또 있다.

 

연령별 구간을 보니 30세 미만, 30~49세, 50~65세로 끊고 66세 이상으로 4가지 구간을 잡았다. 재밌는 것은 50~65세 사이의 유권자의 오바마 지지가 30~39세 사이의 연령층보다 지지율이 꾸준히 높게 나타나고 있었다. 미국에서 50~65세는 '베이비붐' 세대를 의미한다. 1945년 이후 10년 간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와 그 이후 1960년대 까지 태어난 2차 베이비 붐 세대이다. 이들은 반전과 히피 문화의 상징적 세대이며, 사실 한국의 386세대와 유사한 '운동권' 세대라 할 수 있다.

 

1961년에 태어난 오바마가 한국의 386세대처럼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해서 그를 386세대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운동권 세대는 그 윗세대들이며 1차 베이비 붐 세대는 이미 은퇴기에 진입했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 되는 '연령정체성'과 특정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형성되는 '세대정체성'에 대한 접근에 있어, 세대정체성이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뒷받침 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한국의 386세대도 이렇게 될까도 싶다. 다만 해당 세대의 롤(role) 모델이 되는 386 정치인들이 대중적 신뢰를 잃어버려 미국과는 또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겠다 싶다. 이 여론조사의 또 다른 내용은 오바마의 '경륜'에 대한 문제의식이 눈에 띄는 것과 맥케인의 약점에 대한 부정적 평가 특히 이른바 '부시 제3기론'에 대한 거북한 정서 등이다. 대략 '맥케인은 싫고, 오바마는 불안하다' 정도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이번 미국 대선은 중도층을 중심으로 한 차악의 선거가 된다. 한국에서 15대와 16대 대선은 차악의 선거 성격이 짙었지만 지난 2007년 대선은 민주화 세력에 대한 절대기피의 흐름에 더 가까웠다고 볼 수 있어 이번 미 대선과는 유형이 다르다. 그러고 보니 오바마의 선거흐름은 2002년 노무현 후보의 선거 유형과 상대적으로 가깝다. 여기서 '차악의 선택'이란 내가 가장 좋은 후보를 뽑는 게 아니고, 덜 싫은 후보를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불현듯 공원에서 본 포스터가 뚜렷이 떠오른다. '맥케인' 얼굴 위 아래로 'No Third Term(3선 반대)'라는 글이 쓰여 있는 포스터였다. '맥케인이 당선 된다면 부시가 3선 하는 것과 같으니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뜻이다.

 

[네째 날(25일 화요일)]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되다

 

덴버 근처인 오로라 인근에 한인타운이 있다. 전날 저녁에 도착한 김동석(Dong Suk Kim-그는 영문이름을 쓰지 않는다)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과 그 일행들과 함께 해장국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아침에 국밥을 먹고 나니 기분이 뿌듯하다. 특별히 한국 음식을 찾아서 먹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나라 음식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김 소장과 인사를 나누고 일행을 소개받았다.

 

세 사람은 김 소장을 중심으로 뉴욕, 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Korea American Voterss' Council)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덴버로 왔다. 이번 덴버행에서 기록과 촬영 등의 역할을 맡은 김창종씨, 그리고 라이언 김(Ryan Kim) 등이 한 팀이다. 라이언 김은 오바마 캠프에서 15개월 동안 자원봉사(Volunteer)를 했고, 수개월 전 아시안계 미국인 자원봉사자들과의 화상회의에서 오바마 후보가 감사의 뜻을 전해 국내 언론에도 소개되었던 인물이다.

 

김동성 소장에게 비친 오바마에 대한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언론에서 비춰지거나 포장된 모습은 특히 나 같은 컨설턴트 출신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대부분 보좌진이 만들어 준 것이거나 아니면 연기에 달인이 된 정치인이 몸에 밴 것이든지 아니면 컨설턴트가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 준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포장지 속에 뭐가 있는지를 알아내는데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그야말로 바쁜 일정을 헐레벌떡 소화한 후에 잡혀있는 약속장소에 와서 '너 왜 왔니? 무슨 일이지? 그래 최선을 다해 볼게'라고 대충 정리하며 바쁘게 일어서는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일반적 수준의 정치인이냐를 묻는 것이었다. 오바마의 첫 마디는 '나는 당신을 잘 압니다'라는 것이었다 한다. 김 소장이 '어떻게 아느냐'라고 물었더니 '너가 너이기 때문에 잘 안다, 나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라며 유권자운동을 하는 김 소장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흡인력이나 친화력이 놀라웠다는 것이 김 소장의 설명이다. 오바마는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상대방이 온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상대방에 대해 이미 이해하는 자세를 보인다는 점, 그리고 자신과 상대방 중 상대방에 중심을 두고 대화를 진행시켰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런 정치인의 수준을 넘는 장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거물급 정치인을 만나면 만나는 사람 입장에서 조금 친절하게 대해 준다면 좋은 인상을 가질 가능성은 높다. 문제는 붕 떠서 사는 정치인들에게는 그것조차도 기대하기 쉽지 않으며, 어느 정도 일부러 상대방과 지위의 격차를 느끼도록 하는 식의 태도를 보이게 마련이다. 상대방과 내가 위아래가 없다고 느끼도록 노력하는 그 자체가 미국에서 대선에 나가려는 후보로서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오바마는 그런 점에서 '첫인상'이 화제가 되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가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가 이름 없던 시절에 만난 사람들조차 대개 첫 만남에서 그로부터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그를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평가에서 공통적인 몇 가지는 오바마가 느리고 침착하며 따뜻하며 몽상가와 같이 아련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침을 튀길 것 같은 입모양으로 '내가 누군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큰일을 해낼 대단한 놈인지'를 각인시키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일반 정치인의 모습과 꽤 다르다.

 

또 그에 대한 첫 인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의 성적 매력이다. 늘씬한 키에 깊은 눈,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그에게 대부분의 여성들이 첫 눈에 매력을 느낀다는 얘기이다. 그가 상원의원 출마를 위해 당내 경선을 뛰고 있을 때 주경쟁자 후보의 부인이 오바마와 인사를 하며 포옹하자 살짝 볼이 발개지며 수줍어했다는 기사가 실려 상대방 후보로부터 항의가 벌어지는 등의 소동이 난 것도 그의 성적 매력을 보여주는 일화라 할 수 있다.

 

남은 두 달간 힐러리는 어떤 모습 보일까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열리는 펩시센터는 동그란 지붕에 붉은 색 벽, 그리고 유리로 뒤덮인 큰 실내극장 또는 체육관이다. 아닌 게 아니라 건물 앞쪽 뜰에는 펩시 마크가 조성되어 있었다. 오바마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사람들을 실내에 가둬놓고 자리 위치에 따라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내려는 민주당 지휘부의 요청을 거절하고 스타디움에서 대규모의 대중들과 만나는 행사를 기획했다.

 

대신 4일 간 열리는 전당대회 장에서는 매일 민주당의 상하원 의원, 그리고 주지사와 시장 등이 차례로 연사로 나와 강연과 연설을 하고 있다.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매일 이 곳에 모여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들으며 웃고 환호하며 행사를 치른다. 자기가 가진 표찰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구역과 층마저도 통제되는데, 모든 문마다 자원봉사자 또는 건장한 보디가드들이 지키며 단호한 모습으로 출입을 통제한다. 내부는 매우 넓고 연사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스크린이 양 옆에 설치되고 그 한 가운데에 연사가 선다.

 

 

이 날은 힐러리 클린턴이 등장하는 날이자,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공식지명을 받는 날이라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으며 분위기도 한층 고조된 모습이다. 늦게 도착해 실내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밖에 설치된 모니터 앞에 털썩 주저앉아 행사를 보거나 실내로 통하는 출입문에 옹기종기 모여 안을 들여다본다. 여러 연사들의 차례가 지나고 힐러리가 단상에 모습을 보이자 그야말로 환호성으로 열기가 가득 찼다.

 

이 날 힐러리는 '오바마는 나의 후보이다'라고 연설하고, 원래  예정되어 있던 후보지명 투표를 철회하고 만장일치로 오바마의 대선후보 결정을 선언해 많은 민주당 대의원들을 환호와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성능이 떨어지는 내 카메라로 행사장을 담느라 보통 고생한 것이 아니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신문을 보니 그날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한다.

 

한편 이에 앞서 건강이 매우 안 좋다고 알려졌던 에드워드 케네디가 전당대회장에 참석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민주당은 전통 세력인 케네디가와 신흥세력인 클린턴가가 힘의 주축이라고 분석된다. 이번 경선에서는 널리 알려진 대로 케네디가가 오바마를 지원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맥케인만큼은 안된다'며 오바마를 지지한 감동적 연설로 상당히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막판까지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최종 투표에 자신의 이름을 넣겠다고 주장해 과연 최종투표에서 얼마나 표가 이탈할 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역시 극적인 대중 이미지 전달을 위해 참모들에 의해 기획된 중간과정이었겠구나 싶었다. 힐러리는 오바마가 당선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야 할 테니까. 오바마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힐러리의 대선도전 기회는 사실 상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오바마가 되지 않는다면 4년 후를 다시 노려볼 수 있게 된다. 과연 남은 두 달 동안 힐러리가 어떤 모습을 보일 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미 대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되겠다.

 


태그:#오바마, #미국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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