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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아무리 돌아다녀도 전세도 없고 소형아파트는 매물도 별로 없어서 빚내서 사려구요."

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에는 전세를 살고 있는데 전세 기간이 만료가 되어 불가피하게 이사가야 하는 사람의 딱한 사정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지난해부터 부동산 투자에 재미를 보고 있는 사람이다.

현재 거주하는 집은 전세이고 지난해 아파트 한 채를 매입했다고 한다. 그간 모아두었던 목돈을 전부 꺼내 투자하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올 초 강북 소형아파트들의 강세 분위기에서 집 값이 오른 것이다. 한 번 재미를 보고 나니 온통 소형아파트 생각 뿐이다. 그래서 둘러 보다가 급매물을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100만원 가계약금까지 걸었다.

 

① 금리 상승이 부동산 시장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올 초 대출금리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말 은행의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8%까지 치솟던 CD금리가 진정되는가 싶더니 다시 오르고 있다.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고 8%를 넘어섰다. 4일부터 국민은행이 연 6.44~7.94%를 적용하고, 신한은행도 연 6.48~8.08%를 적용한다. 두 은행 모두 올 1월 28일 이후 6개월 만에 최고치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른 것은 기준이 되는 3개월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의 상승 때문이다. CD 금리는 1일 연 5.69%로 한달 새 0.32%포인트 급등했다.

 

가뜩이나 고물가에 시달리는 가정경제가 오르는 금리로 심각한 재무위험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부동산 투자열기로 우리 가계 경제는 부채에 짓눌려 있는 상황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강북지역의 소형아파트들의 급상승으로 부동산 자산가치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있는 가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② 거래가 뚝 끊기고 가격하락도 시작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금리 인상이 부담스러워 집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끌었던 강남 지역을 비롯한 버블 세븐 지역의 아파트들은 거래 급감으로 급매가 쏟아지고 있고 올들어 가격 하락폭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강북의 아파트도 선거철 뉴타운 바람이 지나고 최근 들어 거래가 뜸해지면서 8월 들어 하락세로 돌아섰다. 1일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금주 서울·수도권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을 조사한 결과 서울 -0.01%, 신도시 -0.06%, 경기 0.00%, 인천 0.12%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렇게 부동산 거래가 냉각되면서 집을 반드시 팔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처분조건부 대출로 집을 산 사람들이 은행으로부터 경매 등 강제 상환 절차 통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처분조건부 대출이란 기존에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사람이 투기지역의 아파트를 추가로 구입하면 1년 안에 기존 아파트를 처분하는 조건으로 받는 대출이다. 만에 하나 1년 안에 처분하지 못하면 1년 후부터는 1∼3개월 동안 최저 16%에서 최고 21%의 높은 연체 이자를 물어야 하고 3개월이 더 지나면 금융기관이 경매 등 상환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처분조건부 대출 건수와 금액이 7만1000건, 7조2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와 같이 거래가 뚝 끊긴 분위기에서 이 대출들은 상당수가 부실화될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다. 건수와 금액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 아파트들이 경매와 급매로 쏟아져 나올 경우 시장에 주는 충격도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③ 집살 돈이 남아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집을 사려면 대단한 거부이거나 빚을 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3일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널리 활용하고 있는 주택구입능력지수(Housing Affordability Index·HAI) 개념으로 우리 도시근로자들의 주택구입능력을 처음으로 측정을 했다. 그 결과 서울의 중간가격 아파트를 대출을 끼고서라도 구입 가능한 가구소득이 우리나라 상위 20% 안에 들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마디로 서울의 중간가격 아파트를 대출없이 살 수 있는 가구가 거의 없다는 분석 결과인 셈이다.

 

주택시장이 활성화되고 가격이 상승하기 위해서는 수요자의 주머니 사정이 주택을 매입하는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분석결과를 보면 알수 있듯이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가격은 매수 여력이 있는 수요가 실종했다고 봐야 한다.

 

빚을 끼고 사는 수요도 이미 가계 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간혹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대출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 이야기는 이미 불씨가 자라고 있는데 기름을 붓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갚을 여력은 고려하지도 않은채 대출 규제를 풀어서라도 주택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무책임하고 위험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결국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기 어려운데 집을 팔아야만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세가는 강북의 아파트들조차 집값의 40% 미만을 밑돈다. 웬만한 현금 동원 능력이 안되면 전세를 끼고도 집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④ 하반기 급매가 쏟아질 수 있다

 

하반기가 되면 빚 끼고 집을 산 사람들 중 이자만 갚다가 원금까지 함께 상환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3년동안 이자만 내도 되는 거치기간이 끝나는 대출자가 하반기부터 몰려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추산에 따르면 전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거치기간 만료에 이르는 분할상환 대출 규모는 2007년 19조5천억원이었으며, 2008년에는 21조8천억원에 이른다. 2009년에는 이 규모가 48조6천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금리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는데 심지어 원금 상환 압박까지 더해지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경기전망에 스태그플래이션 우려까지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벌어질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이미 부채가 부담스러워도 버티면서 양도소득세 면세시점만 기다리는 대출자도 적지 않다. 올 하반기는 거치기간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도소득세 면세시점이기도 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원금까지 내야 하는 부담에 세금 면제라는 호재로 매물이 커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봐야 한다.

 

규제완화가 호재라고 믿고 상투잡는 건 아닐까

 

정부에서 대출규제, 종부세를 비롯한 세금 규제, 재건축 규제 등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규제 완화를 할 것이란 추측이 많다. 건설업계는 부동산 시장 위기설을 바탕으로 규제를 풀어줄 것을 한나라당에 강하게 요청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에 규제완화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알 수 없는 현실이다.

 

사례자처럼 여윳돈도 없이 단기 상승에만 기대서 빚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 자체가 시장에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 규제완화로 시장이 활성화된다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상당히 제한적인 수준일 것이 뻔하다. 대출한도를 늘린다 해서 지금같이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더 무리를 해서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투자 차익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은 반면 자칫 빚으로 상투 잡는 일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정부 또한 일부 공급자들의 위기론에만 기대 무분별하게 규제를 완화해 버린다면 시장의 위험을 스스로 키우는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규제 완화로 집값이 오를 것이니 빚내서라도 집 사야 한다는 생각은 어찌보면 순진하다 못해 너무 처절한 재테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때이다.


태그:#부동산, #쪽박, #대박, #규제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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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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