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일 서울 시내 한 중국식당에서 열린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 왼쪽부터 정규호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원희 한경대 교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이희영 대구대 교수, 유시주 희망제작소 책임연구위원.
 5일 서울 시내 한 중국식당에서 열린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 왼쪽부터 정규호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원희 한경대 교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이희영 대구대 교수, 유시주 희망제작소 책임연구위원.
ⓒ 천호영

관련사진보기


"진리란 하늘의 고담준론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우리의 엄연한 현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오지 않았나 싶다. 공무원과 언론인, 또 학자나 시민운동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희망 찾기는 바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시대 우리사회의 희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5일 최근 발간한 '우리시대 희망찾기'(창비 펴냄) 시리즈의 의미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진리와 희망은 현장에 있다"고 강조했다.

희망제작소(이사장 김창국)는 지난 2006년 3월부터 대학 교수 등 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시대 희망찾기' 연구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각 분야의 현실을 짚어내고, 이로부터 새로운 사회개혁의 전망을 밝히려는 시도다.

지난해 6월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로 그 결실을 처음 선보였다. 그리고 뒤 이어 이번에 3권의 책을 함께 펴냈다. 시민참여형 재정민주주의의 길을 모색한 <시민이 챙겨야 할 가계부>, 교육문제의 해법을 학교 안팎에서 찾아본 <교육개혁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 시민활동가와 시민사회운동의 현주소를 진단한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 등이다.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400명의 목소리를 담다

특히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에는 '시민활동가 30인에게 듣는다'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다른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참고문헌을 뒤적이고 통계자료를 작성하는 대신 녹음기를 들고 현장을 직접 찾았다. 각 주제별로 30명 안팎의 관련자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박원순 상임이사가 강조한 대로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아래로부터의' 경험과 지혜를 체계화함으로써 다양한 현실의 맥락을 이해하고 희망의 단서를 찾고자 했다. 이런 구술면접을 통한 질적 연구방법론을 제안한 이희영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그 의미를 어부의 고기잡이에 비유해 설명했다.

"많은 경우 (연구자들은) 방안에서 자기 지식으로 짠 그물로 고기를 잡고는 그것을 현실로 얘기한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실제로 바다에 머리를 넣고 무슨 고기가 있는지를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미 발간된 네 주제 이외에도 환경, 주택, 양극화, 대안사회, 문화예술, 세계화, 평화, 사법, 복지 등 총 13개 분야에서 약 400명의 현장 사람들을 만났다.

이번 작업의 감수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한 유시주 희망제작소 책임연구위원은 "우리의 관심은 제도나 이념이 아니라 체험이었다"면서 "그런 점에서 구술자 선정도 주제에 대해 정리된 주장과 견해보다는 경험을 많이 갖고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 분야 인터뷰 때 단체대표가 아니라 중견 활동가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유 연구위원은 또한 "가능한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예컨대 사법 문제와 관련해 현직 판·검사뿐만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 여직원, 심지어 법조계 주변의 '마담뚜'까지 인터뷰해 사법부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을 담으려고 했다.

그런 만큼 인터뷰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공공재정 분야를 맡았던 이원희 한경대 교수(행정학)는 예산실·감사원과 각 부처 예산 담당자 등 전·현직 공무원들도 인터뷰했는데 "대부분 자기 이름을 밝히길 원하지 않아 다른 책과 달리 유달리 가명이 많다"고 밝혔다.

박원순 "촛불 여중생에게서 위안을 받았다"

ⓒ 창비

관련사진보기


질적 연구방법론의 대표성과 객관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유시주 연구위원은 연구자와 구술자의 대표성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이희영 교수는 그것을 '상호주관적 설득력'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30명을 조사하든 3만명을 조사하든 객관적이라고 누가 얘기할 수 있겠는가. 많은 경우 연구자는 전지전능한 관점에서 연구대상을 분석하고 진리를 재단하는데 실제로는 연구자 또한 연구대상이 되는 사회현실에서 살아가는 개인이다. 이 작업은 구술자나 연구자나 동등한 관점에서 상호작용하며 연구자 스스로 '내가 도대체 무엇을 보았는가'를 질문하면서 그것을 담아내는 연구방법이다."

이 교수는 "질적 연구방법론을 쓴다고 연구의 질이 고양되는 것은 아니다"는 경계도 덧붙였다. "질적 연구방법론은 현상의 이면에 복잡하게 놓여 있는 역학관계를 보려고 하기 때문에 단지 면접 테크닉 등을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해 모두 마쳤다. 최근 촛불시위의 흐름과 고민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박원순 상임이사는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의 움직임이라는 저류는 이미 이번 작업 과정에서 파악하고 있었기에 촛불시위가 새삼스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후속작업의 뜻을 내비쳤다.

박 상임이사는 이어 "이번 촛불시위는 한국 민주주의나 공공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자 흐름이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시민운동이나 정부 입장에서도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 자신도 "촛불시위에 참여한 여중생 등 공공의 이슈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보고 위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유시주 연구위원은 '희망찾기' 작업을 "시간과 정성이 없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노가다 같은 작업"이라고 했다. 인터뷰는 끝마쳤지만 집필 과정에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출간까지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는 시점은 내년 상반기로 예정하고 있다. 그럼 그때 한국사회는 정말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시민사회 분야 작업에 참여했던 정규호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연구로부터 얻은 결과는 희망 찾기가 아니라 희망 만들기였다"면서 "운동이란 가능성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필요성에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또 이희영 교수는 "이 책은 이것이 희망이다'고 제시하기보다는 우리 일상의 작은 실마리로부터 희망을 만들려는 작업"이라며 "우리가 각각 모색하고자 했던 희망을 좀 더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독자분들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유시주.이희영 지음, 창비(2007)


교육개혁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

정병호 외 지음, 창비(2008)


시민이 챙겨야 할 나라 가계부

이원희 지음, 창비(2008)


태그:#희망제작소, #희망찾기, #촛불, #시민사회, #박원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