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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수 청장의 법적 대응 거론, "미치겠다"

 

미치겠다. 그렇다. 말 그대로 미치겠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국제 앰네스티'에 대해 '법적 대응'을 이야기했다. '촛불시위'에 대한 국제 앰네스티의 비정기 조사관으로 급파된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의 보고서를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번역한 것에 대한 '법적 대응'이다.

 

경찰의 주장은,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이 있다'는 것과 함께 '오역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정 기자회견 및 보도를 요구했고,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한 곳은 오역 실수를 인정하고 시정을 약속했지만, 14세 소년 및 23세 여대생 폭행 등에 대해서는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나온 반응이 '법적 대응'이다. 궁금하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대한 그 '법적 대응'을 어느 곳에 제기할 생각일까? 대한민국 사법기관인 검찰 및 경찰에 제기할까? 어청수 경찰청장이 검찰이나 경찰에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대한 '명예훼손'을 고발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할 말이 없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자 세계 역사에 남을 코미디나 다름없는 일이다. 경찰청장의 고발이나 소송제기에 의해 대한민국 수사기관이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를 수사하는 일을 상상해보자. 이왕이면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받아보는 것은 어떤가?

 

한가지 더 있다. 검찰이 MBC < PD수첩 >을 향해 '프로그램 원본'을 요구하듯이,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의 '영문 보고서 원본'을 달라고 요구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어청수 경찰청장, 이런 일을 하고 싶은 것일까?

 

어디에 제기할지도 모르고 무작정 내뱉은 '법적 대응'

 

내가 저렇게 비아냥거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알고 봤더니, 청장이 불쑥 '법적 대응'을 내뱉기는 했지만, 어디에 법적 대응을 해야 할지 갈피조차 못잡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청 외사정보과장을 맡고 있는 김병화 총경은 지난 22일에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어청수 청장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그 상황에서, 라디오 진행자가 어청수 청장의 '법적 대응' 발언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김병화 총경은 듣는 사람을 황당하다 못해 어이없게 하는 발언을 내뱉었다.

 

"국제 앰네스티에 대해 청장님이 법적 대응을 천명하셨지만 아직까지는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법적 검토에 들어간 상태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구체적인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다'와 '법적 검토에 들어간 상태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발언에 주목해보자. '법적 대응'을 어디를 통해 제기해야 할지 방향조차 못잡고 무턱대고 내뱉은 발언이라는 이야기다.

 

국내에 해야 할까? 국외에 해야 할까? 앞서 지적했듯이, 국내에 '법적 대응'을 제기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믿을 사람 중에는, 어지간한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제외해야 한다. 그걸 누가 믿나? 경찰이나 믿지. 그 광경 자체도 이미 지적했듯이 세계적으로 내세워 자랑할 만한 코미디다.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법적 대응'을 시도한다면 국제 앰네스티 본부도 가만히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국제 문제로 확산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국외에 제기해야 할까?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기해야 할까? UN을 거쳐야 할텐데, 과연 일국의 경찰청장이 "어디에 법적 대응할지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식의" 법적 대응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현재 UN 사무총장은 한국인이다. 또다시 국제적으로 망신주려고 작정한 것일까?

 

오역 논란,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윤곽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오역 논란'이 벌어진 근거부터 돌아보도록 하자.

 

-사례 1

"there were incidents of violence as riot police sought to control surging crowds and some protenters attacked and valdalized police vehicles."(논란 부분-as riot police sought to control surging crowds)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해석= "진압 경찰이 군중을 향해 진격하거나 일부 시위대가 경찰 차량을 파손하는 등의 폭력 사태가 있었다."

경찰 해석= "진압 경찰이 밀려드는 시위 군중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일부 폭력 사례가 있었다."

 

이 부분은 사실 경찰 측 해석이 더 정확한 편이다. control이란 영어 단어 안에 '통제'라는 뜻은 있어도, '진격'이란 뜻은 없다. 하지만,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왜곡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저런 너무나도 쉬운 표현을 굳이 선택했을 가능성은 떨어진다. 이 부분은 왜곡보다는 오역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게다가, 시위현장을 조금이라도 살펴본 사람들이라면 경찰이 '밀려드는 시위 군중'을 통제하려고 노력했는지, 진격했는지의 여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애초에 '명박산성' 등의 컨테이너 및 차벽을 설치해 위헌 요소 짙은 현행법인 '집시법' 상에서도 명기된 '청와대 앞 100미터 시위 보장'조차 가로막은 당사자는 누구일까? 경찰이다. 자신들의 시위 진압의 법적 근거로 내세우는 현행법조차도 자의적으로 해석해 편한대로만 적용하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경찰 아닌가.

 

시위대의 행진에 대해 인도와 횡단보도 등에서도 가리지 않고 나타나 막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경찰이다. 지난 토요일 시위에서도 청계광장에서도 우르르 몰려다니며 시위참가자들의 앞을 가로막은 사람들은 경찰이 아니면 허깨비일까? 경찰은 그걸 '통제 노력'이라고 말하나?

 

-사례2

"Amnesty International's investigation indicated that"(논란 부분-indocated)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해석 = "조사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 해석 ="'지적했다'는 뜻을 '모두 밝혀졌다'의 뉘앙스로 번역했다."

 

'indecate'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는 '지적하다'가 맞다. 그렇다면, '지적'을 국어사전에선 뭐라고 정리했는지 확인해보자.

 

1. 꼭 집어서 가리킴.

2. 허물 따위를 드러내어 폭로함.

3. 어떤 내용으로 말함을 높여 이르는 말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의미는 1번과 2번이다. '꼭 집어서 가리키는 것'이나 '허물 따위를 드러내어'라는 표현에는 암묵적으로 '사실'이나 '사례'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몰랐던 부분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것조차도 '사실' 내지는 '진실'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거짓을 지적하다"라는 표현의 의미도, "그동안 알려져 있던 것에는 거짓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의미로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indicate'를 '사실이 밝혀졌다'는 번역하는 것도 의미상 왜곡이 아니다. "조사관이 그동안의 문제제기와 제보를 지적했다"는 것은 그 문제제기와 제보가 사실로 밝혀졌기에 지적한 것이다. 경찰은 괜한 억지부리지 말길 바란다.

 

-사례3

"Police engaged in arbitrary arrest of protesters and on-lookers;"(논란 부분-and on-lookers)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해석 = "지켜보던 사람들까지 자의적으로 연행했다."

경찰 해석 = "'~까지'라는 조사를 추가해 경찰의 조치가 과도했음을 강조했다."

 

저 정도의 번역은 한국에서도 통용되는 표현 아닌가. '시위참가자들과 지켜보던 사람들까지 연행했다'는 표현, 그렇다면 '지켜보던 사람들을 연행한 행위'가 잘했다는 의미인가? 과도한 조치를 그대로 지적하고 '강조'한 것이 뭐가 잘못인가? 초등학생도 아는 문맥 표현 가지고 장난하자는 것일까? 그렇다고 있던 사실이 없어지거나, 혹은 경찰이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나?

 

-사례4

"South Korea: Use of force against beef protesters should be investigated thoroughly"(논란 부분-force)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해석 = "대한민국: 시위대에 대한 과도한 무력 사용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경찰 해석 = "원문에는 없는 '과도한'이란 단어를 임의로 사용해 기정 사실처럼 기술했다."

 

확실히, 원문에는 '과도한'이란 뜻은 없다. 그렇다고 경찰이 '과도한'이란 말에 대해 문제제기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거론해야겠다. 대한민국 경찰은 '초등학생 연행'이라는 빛나는 업적을 전 국민에게 보여준 바 있다. 그것도 "덩치가 커서 중학생인 줄 알았다"는 해명과 함께 말이다. 그게 과도하지 않으면 뭐가 과도한 것일까?

 

게다가, 사례4에서는 맨 끝에 나온 'thoroughly'라는 단어가 보고서의 성격을 말해준다. 이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혹은 '철저히'다. 경찰의 대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저 평상적인 수준이라면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을까? 과도하기 때문에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남겨놨을 것이다.

 

누구, 경찰에 '헌법 제37조 2항' 강의해주실 분?

 

 

다시 김병화 총경의 '해명'으로 돌아가보면, 그는 또다시 경찰의 현실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촛불시위에 대처하는 검찰과 경찰의 방식은 '과잉금지원칙 위반'의 소지가 있어 헌법 제37조 2항에 위배된다는 이야기를 다시 강조한다.

 

"앰네스티의 조사 결과 내용을 보면 경찰의 정당한 법 집행이나 공권력 행사에 대한 부분은 간과 내지는 무시를 하고, 시위 참가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대부분 반영했을 뿐이다."

 

이 부분은 내가 지난 20일에 작성한 <오마이뉴스> 기사 <국제 앰네스티 조사 전 이미 한국은 국제망신 당했다>의 일부분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 37조 '국민의 자유와 권리 존중·제한'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공권력, 그리고 실정법과 현행법 등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사례에 부합한다. 이들이 애지중지하는 '집시법'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집시법'이 위헌인 이유가 곧바로 발견된다.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내용까지 사실상 침해하는 '집시법'은 사실상 위헌에 해당한다.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위헌이 되는 '과응금지의 원칙'을 판단해 봐야 한다. 헌법과 어긋나는 실정법 및 현행법을 근거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 폭력적인 과잉진압을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금지원칙의 위반'이다.

 

자신들에 유리한 현행법은 헌법보다 상위개념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글쎄, 그건 독재정권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게다가, '지켜보던 만화편집자'와 '23세 여대생 폭행설'에 관련해서는 "인권 침해의 근거로 제시한 일부 사례들조차 그 사실 자체가 없거나 허위 사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한 김병화 총경,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첨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 부분의 칼자루는 경찰이 쥐고 있으니까. 다만, 나로서는 김병화 총경이 '초등학생 연행'이라는 조직의 자랑스럽고도 빛나는 위업에 대해서는 뭐라고 해명할지, 그게 궁금할 따름이다. 초등학생 연행, 사실 국제사회에 이것만 알려져도 안 그래도 '인권지도국'인 대한민국에는 엄청난 직격탄이 날아올 것이다.

 

▲ 19일 촛불문화제 이후 가두행진 봉쇄에 나선 경찰 전경 병력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행진 봉쇄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저들이 봉쇄에 나선 저곳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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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들이 괜히 어청수 청장의 '법적 대응' 발언에 분개하는 것이 아니다.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납득할 수 없는 행위나 발언까지 일삼으니 분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찰이 해야 하는 것은 겸허한 반성이다. 쓸데없는 오역 시비는 이제라도 그만두고 '초등학생 연행'에 대한 해명을 비롯해, 지난 토요일 촛불문화제 이후의 가두행진에 대해 왜 인도에서부터 전경 병력을 우르르 이동시켜가면서 행진 자체를 막으려 했는지부터 해명하길 바란다. 더이상의 '분노의 역류' 유발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앰네스티, #어청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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