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1 -

서울 연세대학교 앞에는 '번듯한' 새책방이 없습니다. 신촌나들목까지 나오면 <홍익문고>가 있습니다만, 이곳은 '신촌에 있는 책방'이지 연세대학교 앞 책방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강대학교 앞에도 책방은 없습니다. 이웃한 이화여자대학교 앞에도 책방은 없습니다. 다만, 이대역에서 신촌나들목으로 가는 길목 안쪽 땅밑에 큰 책방이 하나 있는데, 이곳도 이화여대 앞 책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마땅한' 책방이 없기로는 고려대학교 앞도 마찬가지입니다. 'ㅅㄱㅇ(SKY)'이라고 일컫는 손꼽히는 대학교 앞이건만, 이 대학교들 앞은 술집으로 줄줄줄 기나긴 거리가 이루어져 있음에도, 책집은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나라 안에서 손꼽히지 않는다는 대학교 앞에 '넉넉한' 책방이 없기로는 전국 어디를 가도 비슷합니다. 대학생이 스스로 지성인도 아닌 지식인조차 되지 않게 되고,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분들도 지성인도 아니요 지식인조차 아닌 직업인만 키우고 있음을 헤아려 본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더 따지고 보면,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이 부지런히 '학교 앞 책방에 가서 책을 사서 읽어'야, 그 초중고등학교 아이들도 책방 나들이를 배웁니다. 대학 교수부터 꾸준히 '학교 앞 책방에 찾아가서 책을 읽고 사고' 해야, 그 대학교 아이들도 책방 나들이를 합니다. 학생들이 책을 안 읽어도, 교수라도 책을 읽어 준다면, 대학교 앞 책방이 문닫을 걱정이란 없습니다.

혜화역 둘레에 자리한 <이음책방> 앞모습.
▲ 책방 <이음책방> 혜화역 둘레에 자리한 <이음책방> 앞모습.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 2 -

지난 7월 2일, 서울 대학로에 자리한 <이음책방> 한상준님은 당신 인터넷방에 '공청회를 연다'는 글을 올렸습니다(blog.naver.com/eumart). <이음책방>이 대학로 한켠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겪는 어려움을 남김없이 털어놓으면서, 이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하는 슬기를 듣고 싶다고 합니다.

지금 '대학로'라고 일컫는 혜화동 둘레에는, 삼선교로 빠지는 나들목에 새책방 한 곳, 성균관대 앞에 인문사회과학책방 한 곳, 옛 혜화여고(지금 혜화초) 옆에 헌책방 한 곳, 이렇게 책방은 세 군데 있고, 여기에 인문책과 예술책을 중심으로 다루는 <이음책방>이 깃들면서 '대학로에서 꺼져 가는 책 문화'를 지피는 노릇을 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대학로에 책방이 있나?' 하고 눈여겨보지 않고 있기에, 어디에 어떤 책방이 있는지 알아보지 못할 뿐, 대학로라고 하는 데에는 오래도록 책방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곳 젊음과 문화가 넘친다고 하는 골목골목마다 작은 극장과 찻집과 고기집과 술집은 빽빽이 들어차게 되면서도, 책방은 '대학로 한복판'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 테두리를 차지할 뿐이었습니다. <이음책방>은 이와 같은 '메마른 책밭'에 '싱그러운 책잎'을 틔우고자 혜화역 앞 골목 안쪽에 자리를 얻어서 올해까지 세 해째 책 문화를 나누어 오고 있습니다.

 - 3 -

<이음책방>이 오늘 공청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은, 성균관대 앞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일꾼은, "문화예술 공연을 해도 공연하는 분들이 책을 보나. 몸짓만 있지. <이음책방> 같은 곳은 나라에서 이삼백은 지원해야 해. 우리 책방 앞에도 도로깎기 하고 보도블록 새로 까는데, 이거 왜 하냐고 물어 보니까, 이걸 해야 내년에도 예산이 나온대. 그게 예산이 수십 억이야. 그러면서 문화나 예술에 대한 지원이나 복지는 없어. 책값을 카드로 결재해도 수수료가 3% 똑같고, 골프장은 더 싸. 우리가 내는 세금이 다 촛불집회 할 때 전경차 세워 놓고 에어컨 틀고 비디오 틀며 게임하고 놀고, 그런 게 광장이잖아. 그렇게 쓸 돈이 있으면, 이렇게 어려운 책방들 도와서 세금 감면을 해 주던가, 월세 부담을 해 주던가" 하는 이야기를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해마다 안 갈아도 되는 거님길 돌이건만, 이 거님길 돌을 갈아치우는 데에만도, 서울 혜화동과 명륜동 둘레에는 육십 억 원이 넘는 돈이 바쳐지고 있는 셈입니다. 참말로 그 거님길 돌을 꼭 갈아야 했을까요. 튼튼하지 않은 돌을 깔지 않았을 텐데, 그 돌이 적어도 열 해나 스무 해는 버티어 줄 텐데. 열 해 동안 육십 억 원이라면 육백 억입니다. 육백 억이라면 <이음책방> 같은 '책 문화 쉼터'를 육백 군데까지는 열지 못할 터이나, 아무리 못해도 백 군데를 열 수 있지 않을는지요.

혜화동과 명륜동 거님길 돌을 바꾸는 데에 쓸 돈을, 혜화동과 명륜동 구석구석에 '조촐하고 예쁘장한' 동네 새책방이나 도서관을 백 군데쯤 마련해서, 책방과 도서관에서 일할 사람을 모으고, 또 이렇게 책방과 도서관을 꾸려나간다면,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문화가 태어나는 가운데, 사람들 일자리도 늘릴 수 있는 한편, 세금도 알맞춤하게 잘 쓸 수 있지 않을는지요.

<이음책방> 안쪽 모습.
▲ 책방 안 <이음책방> 안쪽 모습.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 4 -

꿈과 현실은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나 꿈으로만 머물 수 없는 생각이며, 현실이 되어야 하는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꿈을 현실이 되도록 하려는 조그마한 빛줄기를 모으려는 마음으로, 저녁 나절 틈을 내어 <이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우리 마음을 살찌울 책 한 권 골라서 읽고, 책을 사고 나오는 길에 <이음책방> 일꾼한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한 마디 두 마디 건네면서, 앞으로도 이곳이 대학로에서 '한국에서는 버림받는 책 문화'를 고이 지키며 북돋울 수 있도록 함께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은 <이음책방> 일꾼이 띄운 글 모두입니다. <이음책방>은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나들목으로 나와서 동숭아트센터로 가는 길목에서 왼쪽 골목으로 꺾으면 땅밑에 있습니다.

 이음책방의 안정적 경영토대 마련을 위한 공청회
이음책방이 걸어온 길 3년, 앞으로도 가야할 길을 꿈꾸며

 ┌ 때 : 2008년 7월 14일 월요일 오후 8시
 ├ 곳 : 이음책방
 └ 참석예정자 : 이음책방 운영과 향후 책방 진로에 관심이 있는 분들 모두.

2005년 10월 1일에 영업을 시작한 이음책방은 올 가을이면 세 돌이 됩니다.

저는 좋아하는 책과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이음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서점 개업시 이미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이 도서유통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으면서 소형 서점들은 점점 없어져가는 추세였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책방을 어디에 낼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고 있는 동네도 돌아보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홍대 근처도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굳이 대학로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어째서 대학로라는 문화의 거리에 서점이 하나도 없을까 하는 의구심과, 문화의 거리라면 유동인구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2, 3년은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자금을 가지고 있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책방 운영을 통해 어떻게든 자금난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당분간의 고통도 각오했습니다.

영리목적의 사업체인 이상, 책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려야 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다행이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음의 뜻을 알아주는 고객님들이 점점 늘었습니다. 그 결과, 책방 운영만 놓고 본다면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라온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책방을 시작하며 차입한 자금에 있었습니다. 자금난은 저의 예측과 다르게 진행됐습니다. 매출 상승이 이루어지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책방운영의 전반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 책방을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운영자인 저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과연 유흥문화만 남은 대학로에서 책방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속에서도 책방은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매출 증가를 이루어왔고, 그 결과 대학로의 작은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었습니다. 원탁 테이블에 놓여 있는 이음책방 방명록을 볼 때마다,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이 한편으론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각오를 다지곤 합니다.

이음책방에서 지금까지 가졌던 다양한 행사들은, 책방이 단순하게 책만을 사고파는 공간으로서만 아니라 문화적 소통의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책방은 많은 분들의 ‘이음고리’가 되고자 합니다.

2005년 12월의 조병준 시인과 함께한 독자와의 대화 행사 이후 신현림 시인, 이건섭 건축가, 손승현 사진작가, 강영숙 작가, 윤성희 작가, 편혜영 작가, 백가흠 작가, 구본창 사진작가, 김경주 시인, 김애란 작가, 장정일 작가, 육명심 사진작가와 함께 한 행사 및, 2007년 매월 책읽는 사람들을 위한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무료연극공연행사, 2007년 4,5월  최창근 작가의 <봄날은 간다> 희곡낭독 공연, 2007년 7월 김민웅 선생님과 함께 한 북콘서트, 임종진 사진작가의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사진전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갖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행사는 이음책방을 사랑하는 주위 분들의 기획과 협조 아래 아무런 대가 없이 치러진 일이었기에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차입으로 시작한 책방운영은 개인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처한 어려움을 책방을 자주 찾는 몇몇 손님 및 작가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한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며 이음책방이 앞으로도 유지 지속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들으며 책방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는 많은 분들과 의견을 나누고 힘을 합쳐 헤쳐 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방안 가운데서 이음책방이 앞으로도 버텨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는 법인으로의 전환과 일시적인 자금운영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선불제 후원방식 및 '이음책방 상품권' 판매를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음책방을 사랑하는 분들의 조언과 협력을 구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청회 자리를 7월 14일 월요일 오후 8시 이음책방에서 가질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리를 함께 하셔서 이음책방이 대학로에서 문화사랑방 역할을 지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08년 7월 2일
 이음책방지기   한상준 올림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이음책방, #이음아트, #대학로, #혜화동, #책문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