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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동안 어수선했던 광화문 일대가 "이명박 OUT"을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 메워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초저녁이 되자 광화문에서 덕수궁까지 길게 자리잡고 앉은 시민들은 서로의 손과 손을 통해 촛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지각생들은 파이낸스센터, 동화면세점 건물 앞 등 인도에 자리를 잡고 촛불을 밝혔다.

 

6·10 항쟁 21주년 기념일이었던 10일, 50만명의 손에 들린 수많은 촛불은 그동안 열렸던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중 그 어떤 날보다도 크고 밝게 빛났다. 광화문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곳을 찾았을까?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나온 아기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할 2008년 6월 10일을 함께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기자는 '역사의 주인공'들에게 멋쩍은 대화를 시도하며 궁금증을 풀어갔다.

 

촛불은 못 들었지만, 마음만은 '함께'

 

한창 촛불문화재가 흥이 날 무렵, 동화면세점 앞에 자리잡은 한 노점상 주인이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회 덕분에 매상이 좀 올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리를 잘못 잡았는지 장사가 잘 안 된다", "하지만 자유 발언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이 자리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애기들도 이렇게 많이 나오고... 문제가 심각하긴 한가봐."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자꾸 이것저것 묻는 기자에게 "요즘은 무서워서 함부로 말 못해. 조심해야지"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나는 장사를 하려고 나오긴 했지만, 저기 서서 열심히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과 마음은 같아"라며 속내를 비쳤다.

 

노점상 아주머니 뒤로 '명박산성'이 눈에 띈다. 10일 경찰이 시위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쌓은 이 컨테이너 박스들은 시민들에 의해 '경축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명박산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 중 손녀와 다정히 서 있는 80대 노모가 눈에 띈다.

 

 

평창동에 산다는 할머니는 딸과 손녀와 함께 집회 장소를 찾았다. 몇 번이나 집회 장소에 나와봤다는 할머니는 "나야 힘이 없어서 여기저기 잠시 둘러보고 가는 게 전부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든든해" 하며 웃으신다.

 

대통령이 뭘 잘못한 것 같냐는 질문에 "쇠고기 문제 하나를 보면 열을 알지. 지금 사람들이 외치는 말(이명박 OUT)이 옳아. 우리 손녀도 '이명박' 하면 '으쌰으쌰' 하면서 같이 외친다니까" 기특한 눈으로 네살배기 손녀를 바라보신다.

 

함께 나온 할머니의 딸(40대 주부)은 "어머니가 먼저 나오자고 하신다"며 "이런 집회에 가족과 함께 나오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다칠까봐 주로 낮에 잠시 나오는 편"이라며 "아이와 어머니가 모두 즐거워해서 나올 때마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첫 경험, 집회가 이렇게 즐겁다니

 

파이낸스센터 앞 인도에 힘겹게 자리를 잡은 50대 자영업자 이씨는 지난 '87년 6월'을 떠올렸다. "그때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힘을 보태지 못했다. 20년 만에 시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곳에 나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중학생인 두 자녀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한 그는 "아이들에게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며 "이런 게 진정한 교육이다. 우리 가족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3학년인 두 남매는 "시험준비 기간이라 학원에 가야 하는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곳을 찾았다"면서 "TV로 볼 때와 느낌이 너무 다르다. 즐거운 축제에 온 기분이다"라며 연신 피켓을 흔들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다양한 피켓을 들고 지나가는 걸 보고 "나와 직결된 문제인데... 쇠고기 문제, 0교시 문제에 너무 무신경했던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올 거냐는 기자의 물음에 "다음 촛불집회에는 꼭 친구들과 함께 와보고 싶다.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고 진지한 얼굴로 답한다.

 

같은 시각, 수많은 인파 속에서 무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리는 한 여성을 만났다. 높은 구두의 정장차림을 한 20대 후반 여성은 막 퇴근이 늦어져 친구들과 함께 오지 못했다며 "정말 엄청난 규모다. 친구들 못 찾으면 혼자 있어야 되는데"라며 잠시 울상을 지었다.

 

대학시절 한 번도 집회에 참여해 본 적 없다는 그녀는 "오늘마저도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어 급작스레 광화문을 찾았다고 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집회는 무조건 위험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촛불 문화재'다, '축제다'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한 번 와보게 됐다"고 했다.

 

"직장인이 되고 보니 사회 문제에 더 관심이 가는 게 사실"이라며 "쇠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민영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라고 토로했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런 분위기라면 오늘을 계기로 집회에 자주 참여할 수 있겠다"고 웃으며 바쁜 걸음을 옮겼다.

 

제2의 촛불 들고 또 만나요

 

그녀와 헤어진 후, 기자도 촛불을 밝히고 대열과 함께 했다. 가슴에는 '근조 열사정신 계승, 쇠고기 전면재협상'이라고 쓰인 검은 리본도 달았다.

 

 

가수 안치환씨가 '내가 광우병에 걸려 병원에 가면' '광야에서' 등의 노래를 열창하자 촛불시위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자유발언대에서는 쇠고기·대운하·학교자율화를 겨눈 규탄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앉아서 축제를 즐겨야겠다'고 마음먹은 기자는 혼자 있는 그 자리가 전혀 외롭지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이 되어 광화문에서 최고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음이 행복했다.

 

6·10 대규모 집회는 시작일 뿐이다. 대운하, 의료민영화, 학원자율화 등 우리가 밝혀야 할 촛불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 계속될 시민들의 외침과 그들의 문화제를 기대하며 촛불을 높이 들고 외쳤다.

 

"이명박 OUT!"


태그:#6월10일,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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