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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고단한 해가 피눈물을 적실 무렵

마포 상수동에서 한강시민공원 가는 길가

채소와 생선을 파는, 세상 때가 디룩디룩 낀 트럭에

지는 해처럼 동그란 눈 부릅 뜬 명태 서너 마리 걸려 있다

꾸덕꾸덕 마른 명태

마치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 같다

작은 설날이나 작은 추석날

온 식구 한자리에 모여 살아온 이야기 나눌 때

어머니께서 주욱죽 찍어주시던 그 꾸덕꾸덕한 명태

형제들끼리 막걸리 한 잔 나눠 마시며

고추장에 찍어먹던 그 명태의 살가운 맛 떠올라

만 원짜리 한 장 남은 지갑 큰 맘 먹고 꺼내

트럭에서 명태 네 마리 3천원

편의점에서 막걸리 2병 2천4백원 주고 산다

서둘러 2평짜리 방에 홀로 들어와

그때 어머니께서 찢어주시던 것처럼

손으로 명태를 주욱죽 잘게 찢는다

막걸리 한 잔 쭈욱 들이킨 뒤

잘게 찢은 명태 세상살이처럼 씹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이 세상 모든 자식은 불효자라던

윤재걸 선배의 말이 귀에 쟁쟁하게 울린다   

 

- 이소리, '명태' 모두

 

마른 명태 벽에 걸어두는 것은 '변치 말라'는 뜻

 

머리 끝에서부터 꼬리 끝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명태. 명태, 생태, 동태, 황태, 북어, 코다리, 노가리 등등…. 이 세상에 명태처럼 많은 이름을 가진 물고기도 있을까. 명태찜, 생태탕, 동태국, 황태탕, 황태찜, 북어국, 코다리무침, 노가리구이 등등…. 이 세상에 명태처럼 많은 조리를 할 수 있는 물고기도 있을까.

 

명태는 어느 지역에서 잡았느냐, 어떤 방식으로 잡았느냐에 따라 그 이름도 갖가지다. 갓 잡았거나 얼리지 않은 것은 생태, 얼린 것은 동태, 한겨울 얼었다 녹이기를 거듭한 것은 황태, 그대로 말리면 북어(건태), 반쯤 말려 쫄깃쫄깃한 것은 코다리, 명태 새끼를 말린 것은 노가리라 불리는 명태는 제 각각 특유의 맛이 나는, 사시사철 건강음식이다.

 

명태(明太)란 이름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다. 조선 인조 때 함경도 관찰사가 명천군을 순시하고 있었다. 그때 반찬으로 내놓은 생선이 담백하고 맛이 꽤 좋아 이름을 물었다. 지역 주민이 말하기를 "명천에 사는 태(太)씨 성을 가진 어부가 처음으로 잡아온 물고기"라 했다. 그 말을 들은 관찰사는 명천의 명(明)자와 태(太)씨 성을 따 명태(明太)라 이름을 지었단다.

 

1960~1970년 대. 나그네가 어릴 때 살았던 경남 창원군 상남면(지금의 경남 창원시 상남동, 사파동 일대)에서는 집집마다 안방 머리벽에 말린 명태 두어 마리를 걸어놓곤 했다. 그때 나는 왜 마른 명태를 안방에 걸어놓는지 몰랐다. 까닭에 어머니에게 '비린내 나게 왜 하필 안방에 명태를 걸어두느냐'며 짜증을 낸 적이 있었다.

 

"야가(이 아이가). 누군 그걸 몰라서 안방에 걸어두고 있는 줄 아나. 바깥 마루벽에 맹태(명태)를 걸어놔 봐라. 도둑고양이나 쥐가 맹태를 가만 두것냐? 고양이 앞에 생선이란 말도 듣지 못했냐?"

"그런데, 맹태로 와 걸어 놓십니꺼?"

"명태는 시간이 오래 흘러도 잘 썩지 않는다 아이가. 그라이 '변치 말라'는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기라. 그라고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잔다 안 카더나. 그라이 온갖 잡귀와 도둑을 밤낮으로 감시한다는 그런 뜻도 들어 있는 기라. 맹태 눈과 쫙 벌린 주둥이로 좀 봐라. 니도 무섭제?"

 

 

공해독 술독 풀어주는 바다의 최고 생선, 명태

 

명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생선이었다. 오죽 했으면 옛말에 '맛 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는 명태'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명태는 말리는 방법에 따라 황태, 북어, 동태 등 그 맛과 향이 달라진다. 게다가 시중에서 흔히 구하기 쉬운 명태는 건강효과까지 뛰어나 값비싼 약재 이상의 효능을 갖고 있다. 

 

명태는 우리 몸 안에 찌든 공해독을 풀어주고 소변이 잘 나오게 하는 것은 물론 특히 술독을 풀어주는데 탁월하다. 이와 함께 화공약품이나 농약 중독, 광견독, 지네독, 연탄가스 중독 등 각종 독성 제거에도 뛰어나다. 명태는 그 밖에도 알레르기 체질 개선 및 알레르기로 인한 각종 질병과 통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까지 있다.

 

명태는 겨울 생선이다. 따라서 예전에는 겨울에 잡아 말려둔 북어를 먹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양어업 기술이 뛰어나 사시사철 손쉽게 생태까지도 구할 수 있다. 명태는 흰살 생선이다. 흰살 생선은 특히 단백질이 많고 지방이 적은 까닭에 맛이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먹는 맛살류 대부분도 명태살로 만들어진다.

 

명태는 열이 많이 나는 질환에도 좋다. 특히 감기 몸살이나 급성질환에 걸렸을 때 뜨거운 생태국을 먹으면 이마와 목덜미 곳곳에 땀이 송송 솟아나면서 회복도 빨라진다. 더불어 명태는 열을 가하면 살이 쉽게 풀어지기 때문에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노인들에게도 좋고,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손발이 찬 사람에게도 아주 좋다.

 

그 집에 가면 바다를 조리하는 예술가가 있다

 

"이 집 간판 이름을 윤재걸(시인, 언론인) 선생님께서 직접 지어주셨어요. 사실 처음에는 아내의 고향을 생각해서 호남식당이라 지으려 했지요. 근데, 바로 옆에 전주식당이라는 간판이 있잖아요. 그때 윤 선생님께서 지역적 차별성이 분명해야 된다면서 지금의 이름을 지어주셨지요."

 

비 오락가락하는 저녁나절, 배가 꼬르륵거릴 무렵인 오후 7시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구반포 아파트 쪽으로 가다 보면 나즈막한 상가 아래 손님들이 벌떼처럼 북적이는 집이 있다. 생태탕(7천원)과 대구탕(8천원) 등, 주로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으로 맛갈스런 생선탕을 전문으로 조리하는 7평 남짓한 식당이 바로 그 집이다.  

 

고향이 충남 서천이라는 이 집 주인 김지호(64)씨는 지난 15년 동안 바다 생선을 전문으로 조리해온 생선의 달인이다. 바다 생선이 그의 손에 닿았다 하면 곧바로 뼈 속까지 시원해지는 얼큰한 탕이나 매콤하면서도 뒷맛이 끝내주는 여러 가지 찜 등으로 탈바꿈한다. 바다를 조리하는 예술가가 따로 없다.

 

그중 이 집에서 뽀글뽀글 끓여내는 생태탕은 사시사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여름날씨처럼 무더운 요즈음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생태탕을 맛깔스럽게 먹고 있는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입 안 가득 침이 절로 고인다. 특히 술을 많이 마신 뒤 이마와 목덜미에 땀을 비오듯이 쏟으며 후루룩 후루룩 떠먹는 생태탕의 시원한 감칠맛은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쉬이 잊지 못한다.          

 

1년 앞에 먹은 술독까지 쏘옥쏙 빠진다

 

이 집 생태탕의 특징은 생태머리, 생태 몸통 2토막, 두부에 무, 콩나물, 대파, 쑥갓 등 여러 가지 채소가 듬뿍 들어 있어 얼큰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이 일품이다. 시커먼 뚝배기 안에서 이열치열로 팔팔 끓고 있는 국물 한 수저 입에 떠넣으면 1년 앞에 먹은 술독까지 쏘옥쏙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입에 넣으면 마치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생태살의 고소하면서도 깔끔한 맛도 일품이다. 생태탕 국물이 반쯤 비어갈 즈음 소주 한 잔 홀짝거리며 느긋하게 꺼내먹는 꼬들꼬들한 곤이의 야들야들한 맛도 다른 집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독특한 감칠맛이 배어 있다.

 

생태탕을 먹으며 가끔 집어먹는 충남 서천에서 가져온 어리굴젓과 묵은지, 고등어조림, 시골된장으로 버무린 취나물, 오이김치, 싸리버섯의 맛도 생태탕과 찰떡궁합이다. 게다가 밑반찬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차려내는 이 집 주인의 눈썰미도 살갑다. 물가가 아무리 비싸도 밑반찬만큼은 푸짐하게 차려내겠다는 투다.        

 

"다음에 오실 땐 저희 집 특별메뉴인 낙지초회(대 2만원, 소 1만5천원)를 한 번 드셔 보십시오. 저희 집 낙지초회는 서해안 갯벌에서 갓 잡아낸 산낙지를 살짝 데쳐, 식초를 살짝 친 무생채와 함께 먹거든요. 한 번 먹어본 손님들이 낙지의 쫄깃한 맛과 새콤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다른 집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새로운 맛이라고 그래요."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끝없이 치솟는 기름값과 생필품 값에, 미국산 미친 소 수입에, 도덕성까지 결핍된 이명박 정부에 울분이 터져 밤새 술을 마신 다음 날, 이 집에 가서 얼큰하면서도 썬한 생태탕 한 그릇 먹어보자. 이열치열이라고, 뜨거운 김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생태탕 한 그릇에 무더위와 세상 시름이 속시원하게 사라지리라. 


태그:#생태탕, #어리굴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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