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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강남 토박이다. 기억이 흐릿한 어린 시절 전라도 전주와 서울 마포구에서 살았던 것 빼고는 20년 넘게 강남에 눌러 앉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이 곳이 지금처럼 고층 건물들로 번잡스러웠던 것은 아닐거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땅 한 뙈기에 어마어마한 가격을 가짐에도 빈틈없이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어느덧 지금의 강남 풍경이 나에겐 제일 익숙하다.

여자친구(M)의 ‘추억 더듬기’에 따라 나섰다. 초등학교 때 이사 오고 나서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동네를 찾아 가보기로 한 것이다. M에게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다. 

장소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 강남구에서 차를 타고 불과 30분만에 도착한 이곳을 M은 14년 만에 와 본 것이다. 한 없이 커 보였던 운동장은 손바닥 만해지고 차들이 쌩쌩 지나다녀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어야 건널 수 있었던 도로는 이제 보니 겨우 왕복 2차선이다. M은 저장 된 영상과 눈 앞의 영상을 교차해 가며 즐거워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동교초등학교 앞에 위치해 있는 이 문방구는 20여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 20년이 넘은 문방구 서울 마포구 망원동 동교초등학교 앞에 위치해 있는 이 문방구는 20여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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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통로와 온갖 문방 용품들로 가득차 있는 벽과 천장.
▲ 문방구 내부 모습. 비좁은 통로와 온갖 문방 용품들로 가득차 있는 벽과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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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내부 공간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진열해 놓았다.
▲ 주렁주렁 엮어져 있는 필기구들 좁은 내부 공간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진열해 놓았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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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은 "학교, 가게 다 그대로네. 동네가 어릴 때랑 하나도 변한 게 없어"를 연발했다. 그 중 내 눈을 놀라게 한 것은 학교 앞 문방구였다. 낡은 2층 건물의 1층을 차지하고 있는 문방구는 한 눈에 봐도 하루 이틀 된 게 아니었다.

문방구의 밖은 물총, 검, 인형세트 등 갖은 장난감으로 뒤덮여 있고 입구는 비좁았다. 실내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통로가 ㅁ자로 나 있고 벽은 온갖 문방 용품들로 점령 당해 있다. 키가 189인 나는 낮은 천장과 주렁주렁 달린 학용품들 때문에 허리를 피고 걸을 수도 없었다.

“문방구 아주머니도 그대로셔”

신기한 듯 M은 외쳐댔다.

“제가 10여 년 전에 여기에 살았어요. 준비물 깜박하면 학교에서 뛰어나와 여기서 사가고 그랬는데.”
“그러고 보니 얼굴이 익네. 여기에 많이 왔던 애들은 커서 봐도 딱 보면 알지.”
“아주머니. 여기 문방구 얼마나 됐어요?”
“20년도 훨씬 넘었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야.”

때마침 하교 시간이라 문방구 옆의 분식점에서는 애들이 줄 서서 ‘떡꼬치’, ‘컵떡볶이’, ‘팝콘치킨’ 등을 기다리고 있다. 내겐 추억의 불량식품들이 분식점 앞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애들은 앞 다투어 사간다.

선반에는 추억의 불량 식품들이 놓여있고 아이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 분식점 선반의 불량 식품들 선반에는 추억의 불량 식품들이 놓여있고 아이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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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온 것 같았다. 아니 시골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번잡한 서울의 도심 속에서 불과 30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 20년도 넘은 문방구와 가게들이 온전히 버티고 있다. 주인도 그대로다. 난 M에게 “여기 서울 맞니? 왜 변하지 않은 거지? 강북이라 그런가?”하고 물으며 예상치 못한 묘한 경험을 즐거워했다.

M이 하교할 때 늘 사먹었다던 떡꼬치를 물고 M이 살던 2층 단독 주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 없어지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걸었던 우리는 온전히 서 있는 주택을 보자 뛸 듯이 반색했다. 오래된 주택은 허름하다.

여자친구가 14년전에 살았던 2층 단독 주택은 허름해 보이고 주위에는 신축빌라들이 가득하다.
▲ 어린시절 살았던 단독 주택 여자친구가 14년전에 살았던 2층 단독 주택은 허름해 보이고 주위에는 신축빌라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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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내방이었고, 2층은 언니 방이었고...” M의 설명을 들으며 집 앞을 서성거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뒤에서 “뭐 하는 거냐”고 물으셨다. 알고 보니 집주인이셨다.

“예전에 제가 여기 살았었거든요. 그래서 찾아와 봤어요. 혹시 괜찮으시면 안에도 둘러봐도 될까요?”
“아 그렇구나. 집 안에는 사람이 있어서 안되고 밖이나 한번 둘러봐.”
“정말 그대로네요. 여기에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거 지저분해서 다 뽑았지. 그리고 이 집 며칠 있으면 다 헐려. 다세대 연립 주택을 짓기로 했거든. 우리도 수일 내로 이사 갈 거야.”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며칠 만 늦게 찾아 왔어도 M은 추억 속 집이 허물어지는 광경을 보고 씁쓸해 하지 않았을까. 아니. 헐린다는 소리에 이미 씁쓸해 하고 있었다. 집 바깥을 둘러보며 한참을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추억을 곱씹으며 돌아왔다.

집에 와서 마포구 망원동에 대해 검색해 보니 현재 이 곳은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신축빌라 건축 붐’이 일고 있는 지역이다. ‘투기수요’가 몰리고 ‘지분쪼개기’가 성행이란다. 집값도 급등하고 있다. 며칠 후면 M의 추억의 공간도 ‘빌라 건축 붐’ 앞에서 무기력하게 헐릴 것이다. 

내게는 과거 속이나 시골에서나 있을 풍경에서 묘한 유쾌함을 느끼고 농사 지을 땅이든, 허름한 건물이든 어디든 가만히 놔두지 않는 ‘돈’의 진리(?)를 거듭 깨닫게 해준 마포구 망원동이었다.     

강남 토박이를 놀라게 한 변하지 않은 서울 풍경도 내게 익숙한 풍경으로 변해갈런가 보다.


태그:#문방구, #마포구 망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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