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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입구에 붙은 '아네트 메사제 회고전' 현수막. 작가 아네트 메사제(아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입구에 붙은 '아네트 메사제 회고전' 현수막. 작가 아네트 메사제(아래)
ⓒ Annette Messa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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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여성설치미술가 아네트 메사제(Annette Messager, 1945~) 회고전이 과천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윤수)에서 6월 15일까지 열린다. 그의 이름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70년대부터 활동했고 몸에 관심이 많은 작가이다.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널려 알려졌다.

이번 대규모회고전에는 대표작 '카지노'를 비롯하여 53점이 전시된다. 몸의 내장까지도 작품으로 삼는 등 독창적이면서 괴기스럽고, 유쾌하면서 역겹고, 흥미로우면서도 도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설치방식은 붙이기, 쌓기, 모우기, 꿰매기, 거꾸로 매달기 등 다양하다.

처음엔 사진작가로 명성을 얻었으나 후에 설치미술로 전환하면서 일상에서 흔히 쓰는 색연필, 스타킹, 실끈, 직물, 봉제인형, 거울, 박제동물, 옷감, 광섬유, 병마개, 비닐봉지 등을 통해 여성 특유의 시선으로 몸의 소중함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람과 동물의 관계설정하기

'그들과 우리, 우리와 그들(Eux et nous, nous et eux)' 장갑, 색연필, 거울, 박제동물, 플러시 장난감 2000
 '그들과 우리, 우리와 그들(Eux et nous, nous et eux)' 장갑, 색연필, 거울, 박제동물, 플러시 장난감 200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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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무생물인 물질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라면 '그들과 우리, 우리와 그들(2000)'은 박제된 동물에 사람의 몸에 대한 성찰을 담은 것 같다. 주객이 전도된 듯 관객들은 천장에 매달린 거울 위에 있는 동물을 올려봐야 한다. 이것이 다소 불편하고 낯설다.

'그들과 우리'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작품은 사람과 동물의 관계설정을 생각하게 한다. 거울을 매개로 관객이 동물과 서로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친근감과 동시에 섬뜩함을 느낀다. 산 사람의 몸과 죽은 동물의 몸이 만나면 어떻게 되며, 사람과 동물이 어떻게 우열 없이 공존해야 하는지를 심술궂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남성적 무기를 여성적 관점에서 보기

'창(Les Piques)'  가변매체 창, 유리 밑의 색연필과 파스텔드로잉, 오브제, 천, 나일론스타킹, 끈, 플러시 장난감 1991-1993
 '창(Les Piques)' 가변매체 창, 유리 밑의 색연필과 파스텔드로잉, 오브제, 천, 나일론스타킹, 끈, 플러시 장난감 1991-1993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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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槍)'은 설치미술이기에 조각처럼 받침대를 쓰지 않고 그냥 맨땅에 대걸레 걸듯 작품을 세워놓았다. 작품재료로는 기존방식과는 다르게 천, 나일론스타킹, 끈, 플러시 장난감 등이 쓰였고, 창끝 유리판에는 색연필과 파스텔드로잉이 부착되었다.

사람의 몸에 유해를 가할 수 있는 무기인 창, 이 남성전용물을 여자의 노리갯감으로 대체시키면서 남성의 어리석은 폭력성을 조롱한다. 작가는 항상 신선한 충격을 주며 획기적인 진열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이런 무기의 무장해제 방식은 작가가 뜻하는 바를 유감없이 표출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형이 인간이 되는 피노키오 차용

'피노키오의 발라드(La Ballade de Pinocchio)' 가변설치 혼합매체 2005
 '피노키오의 발라드(La Ballade de Pinocchio)' 가변설치 혼합매체 2005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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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전작품 속에 나오는 꽃과 나비와 사람 등을 컴퓨터로 작동하여 움직이는 영상으로 처리하는 설치미술이 많은데, '피노키오의 발라드'에서는 가운데 베개들은 정지되어 있고 끈 달린 베개인형은 바깥 테두리선을 따라 주위를 뱅뱅 돌게 되어있다.

이 베개인형이 계속 도는 것은 마치 단군신화의 웅녀처럼 인형 피노키오가 우여곡절 끝에 인간이 된다는 동화에서 차용한 것이다. 물질이 몸이 되고 생명이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더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베개를 남성의 몸, 그것도 성기로 가정했다는 점이다. 이런 발상은 니체가 말하는 "나는 전적으로 몸일 뿐 그밖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하기야 남성 성기가 저렇게 널브려져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여성작가에게는 일상의 무료함을 덜어주고 기분을 유쾌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메사제가 70년대부터 여자에게는 금기시해온 남성의 지퍼부분을 열심히 찍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때론 남성의 성기를 자신의 몸에 그려 넣기도 한다. 이런 돌출행동은 그가 한 예술가로서 남성적 정신주의를 걷어내고 작품에서 몸의 복권을 추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팽창과 수축은 생명의 원천을 상징

'부푼-가라앉은(Gonfles-Degonfles)' 가변매체, 채색 낙하산직물, 컴퓨터시스템 2006. 컴퓨터 장치가 되어 있어 채색직물이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한다.
 '부푼-가라앉은(Gonfles-Degonfles)' 가변매체, 채색 낙하산직물, 컴퓨터시스템 2006. 컴퓨터 장치가 되어 있어 채색직물이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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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푼-가라앉은'라는 작품도 역시 몸 이야기다. 얼룩무늬가 들어간 이 직물은 여자의 내장기관을 밖으로 보여준 것이다. 수축과 팽창을 반복되는 튜브는 계속 펄럭거린다. 이것은 여자의 몸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 항상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실제로 보면 숨 쉬고 호흡하는 여성의 몸 안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없었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보니 그 가치와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된다. 이는 평화적 방법으로 여자의 몸이 지닌 위력을 알뜰하게 보여주는 도발일 수도 있다. 

여기서 또한 눈길을 끄는 건 직물의 색감이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고 화사하고 세련되었다. 역시 색은 모든 미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이 증명된다.

자궁, 휘몰아치는 바다로 비유

'카지노(Casino)' 가변설치 붉은 실크명주, 고무, 다양한 요소, 광섬유, 줄, 형광램프, 분출식 엔진과 컴퓨터시스템 2004. 한국의 설치미술가 이불작품을 연상시킨다.
 '카지노(Casino)' 가변설치 붉은 실크명주, 고무, 다양한 요소, 광섬유, 줄, 형광램프, 분출식 엔진과 컴퓨터시스템 2004. 한국의 설치미술가 이불작품을 연상시킨다.
ⓒ Annette Messa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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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작은 방)'는 여자의 자궁을 말하고 있다. 자궁에서 피가 쏟아지면서 새 생명이 잉태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작품이 가능한 건 엔진과 컴퓨터와 분출식 엔진 때문이다. 가로 세로 각각 12m 크기의 대작으로 붉은 실크명주로 씌워졌다. 이런 발상과 스케일 그리고 실감나는 연출력이 보여준 극적 효과를 보면 이 작품이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을 받을 만하다.

몸의 기능으로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한수 위 아닌가. 정말 바로 눈앞에서 자궁을 대비할만한 거칠고 엄청난 파도가 덮칠 것 같고, 광풍이 일어 붉은 빛 물결이 쏟아지는 것 같고, 천장의 블랙마스크와 만나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아 관객들은 순식간에 이에 사로잡힌다.

관음증, 여성적 입장에서 조명

'나의 소원(Mes Vœux)'  가변매체 사진, 끈, 액자 1989. 남녀 몸 부위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다
 '나의 소원(Mes Vœux)' 가변매체 사진, 끈, 액자 1989. 남녀 몸 부위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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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은 관음증이 주제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남녀의 눈, 코, 귀, 입, 성기, 엉덩이 등을 찍은 사진들이 가는 끈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관객과 술래잡기를 하듯 수백, 수천 장의 남녀사진이 뒤엉켜있다. 여기서는 성의 혼합으로 관음증은 이미 그 의미가 없어진다.

이런 아상블라주(모우기) 작품 속에서 여성작가는 남자의 몸을 실컷 보고, 남자를 택할 때도 외모, 옷차림, 나이로만 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말한다. 여자를 비하하는 속담 "여자와 프라이팬은 집에서 나오면 안 돼!", "여자는 청어야. 좋아봤자 그렇고, 나쁘면 최악이지!" 등이 횡행하는 사회를 이런 작품을 통해 희화하고 있다.

'남자와 시장과 사회'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여자

'비밀의 방' 연작  중 일부 '자발적 고문 혹은 즐거운 자학(Les Tortures volontaires)' 흑백사진, 앨범컬렉션 1972.
 '비밀의 방' 연작 중 일부 '자발적 고문 혹은 즐거운 자학(Les Tortures volontaires)' 흑백사진, 앨범컬렉션 197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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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방' 연작 중 하나인 '질투'나 '즐거운 자학'도 여성들이 고민하는 외모가 주제이다. 여성이 아름다워지려는 노력하는 건 분명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그건 분명 즐거운 자학이다. 그런데 이 자학이 정말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여자는 일면 누구나 최고의 미인이다. 그런데 '남자와 시장과 사회'에 어설프게 초점을 맞추다보면 소중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놓쳐버릴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여성자신의 몸에 대한 정체성을 찾는 것이 긴요함을 일깨워준다.

정신도 몸으로 품는 모성을 잔혹하게 표현

'기숙생들(Les Pensionnaires)'(부분화) 가변설치 박제된 새, 깃털, 종이, 양털, 젤라틴 실버프린트, 14개의 유리관 1971-1972
 '기숙생들(Les Pensionnaires)'(부분화) 가변설치 박제된 새, 깃털, 종이, 양털, 젤라틴 실버프린트, 14개의 유리관 1971-197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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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으로 그의 70년대 대표작 '기숙생들'을 보자. 작가는 어느 날 길에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죽은 참새를 집으로 가져와 털실을 입히고 모성적 따뜻함으로 보살핀다. 이를 전시에 응용하면서 그 때는 참새를 열쇠에 묶어두는 잔혹함도 같이 보여주었는데 그런 상반된 이미지가 당시 프랑스 화단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 매달린 자들의 발라드(Le Bal des pendus) 회전목마 형식의 설치미술 2002. 현대인들이 시간의 마모 속에 파편화된 모습을 풍자한 작품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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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몸의 훼손을 보여주는 근작 중 하나는 '매달린 자들의 발라드'다. 이는 랭보와 비용의 시 '사형수들의 무도회'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신까지도 몸으로 살아간 사람들 혹은 예술가들이 저주받게 됨을 노래한 것이다. 메사제의 이런 생각은 시대적 통념과는 배치되어 '사기꾼 메사제'라는 이름까지 붙게 한다.

정신도 몸에 포함시키는 그의 작품은 그래서 키치아트처럼 유치하고 경박하고 통속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위에서 보듯 흉측하고 적나라하다. 잘려나간 듯이 너덜너덜한 사람과 동물의 팔다리가 정육점 고깃덩어리처럼 걸려있다. 작가는 이게 바로 우리자신들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하여간 메사제는 몸에 대해 끊임없이 물으면서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는 마녀와 같은 상상력으로 소녀와 같은 꿈을 꽃피웠다. 또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모순들이 생길 때 이를 슬기롭게 융해시켜나가면서 생에 대한 감각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일궈냈다.

덧붙이는 글 |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지하철 4호선 대공원 4번출구로 나와 셔틀버스(20분간격) 02)2188-6232 http://www.moca.go.kr. 전시장소 1, 7 전시실 입장료 3000원. 전시설명 평일오후 1시, 3시 주말오후 1시, 3시, 5시40분



태그:#아네트 메사제,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국립현대미술관, #설치미술,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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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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