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지하철 상계역 부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입구에 뉴타운 투자 상담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있다.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지하철 상계역 부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입구에 뉴타운 투자 상담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50대 중반의 박씨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업여성이다. 자영업을 하는 박씨는 얼마 전 친구로부터 재미있는 제안을 듣게 되었다. 강북의 아파트 투자 기회가 있는데 "업계약서"를 쓰고 사라는 내용이다. 3억 2천만원짜리 아파트를 3억 9천만원 정도의 업계약서를 쓰고 매입하고 바로 팔면 7천만원 가량의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면세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잠시 돈이 묶이긴 하지만 짧은 기간에 큰 세금 부담 없이 7천만원 가량의 돈을 벌 수 있으니 괜찮은 투자 기회가 아니냐는 것이다. 박씨는 친구의 제안 내용에 솔깃하긴 했지만 3억이 넘는 돈이 묶이는 것이 부담스러워 거절했다. 괜히 잘못 들어갔다가 되파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고 업계약서라는 것도 어찌되었건 불법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골치 아픈 일만 터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과도한 부모 욕심이 '쩐모양처' 양산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엄마가 세상에, 이제 겨우 10살짜리 너를 이렇게밖에 못 키운다. 정말 미안해. 이런 세상에서 널 이렇게 힘들게 자라게 해서 미안해.'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된 딸이 어깨가 축 늘어지도록 가방을 메고 학원에 가는 뒷모습에 대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는 어느 엄마의 이야기다.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학원에 갇히는 현실은 개선이 되기는커녕 점점 해를 거듭할수록 잔인해지는 것 같다. 자녀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도 눈물을 흘려가면서까지 아이를 학원으로 떠미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렇게 가슴을 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학원으로 내모는 엄마들도 자녀를 낳아 기르기 전에는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나만은 그럴 줄 몰랐어요. 나는 절대로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정말 사교육에 열 올리는 엄마들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녀를 낳아 기르고 있는 현실은 자신이 학원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며 마음을 놓는다는 것이다. 학원비 부담에 마음이 그늘지다가도 원어민 강사 수업에 반짝거리는 눈으로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흐뭇함이 번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흐뭇함이 '과연 잘하는 것일까'라고 되묻는 의심의 목소리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래 잘 한거야. 어릴 때가 중요한데, 우리가 좀 힘들고 말아야지, 더 이상 후회하거나 고민하지 말자.'

그러나 현실은 고가의 학원에 앉아 있는 아이를 뿌듯해 하게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웬만한 월급쟁이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교육비 때문이다. 결국 기특한 아이의 모습 위로 부족한 교육비 걱정이 겹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돈을 벌기 위해 생계형 맞벌이를 시작하는 주부가 늘어나거나 재테크에 쫓아다니는 주부가 늘고 있다.

부자엄마 스트레스, '쩐모양처'를 곱게 볼 수 없는 이유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대에 70% 가까운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지만 30대에 가서 50%대로 뚝 떨어진다. 그러다 다시 40대가 되면 70%대로 올라간다고 한다. 직업도 20대는 사무직, 전문직이 높은 반면 40대는 단순생산직, 일용직 종사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0대에 결혼하면서 일을 포기하고 자녀 출산과 양육에 집중하다 다시 일터에 나오는 것이다.

학력이 높다고 해서 40대에 다시 시작하는 사회생활이 여성에게 만만한 것일 리 없다. 결혼 전 학력이나 직업에 무관하게 자녀 양육에만 10여 년 매달리다 사회에 나오면 아무래도 좋은 직업을 찾기가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뒤늦게 사회에 불편한 발을 들여놓는 가장 큰 이유가 부족한 교육비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전반적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0.3%로 증가했으나 이중 2006년 기준 전문·관리직 종사자 비율은 18.8%로 전년보다 1.3%p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70%가 여성으로 고용상황은 불안정하다. 심지어 소득 수준을 보면 남성의 63% 수준에 그쳐 5년 전(64.3%)보다 오히려 악화됐다.

상당히 많은 여성이 어렵게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에 비해 능력이 뒤처지지 않아 주목받고 있는 '알파걸'도 '빵빵한' 경제력으로 소비시장을 휘두르고 있는 '나우족'도 아니다. 일부 생존을 위해 가정의 경제적 가장인 경우도 적지 않지만 부족한 사교육비와 불안한 노후를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쉽지 않은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평범한 '엄마'들이다.

실제로 거주하는 주택의 자산가치가 10억이 넘는데도 사교육비가 부족해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는 강남엄마 사례도 있다. 그녀는 공무원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세금내고 생활비 쓰고 사교육비 감당하는 것이 턱없이 부족해 별 수 없이 하루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주위에서는 강남의 집을 팔아 강북으로 이사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아이들이라도 경쟁력 있는 사회인으로 진출시키기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강남 거주는 필수라고 여긴다. 아이들에게 창피함을 줄까 강북의 마트를 골라 멀리 출퇴근하는 피곤한 일상을 감수하면서도 최상의 교육 혜택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뒤늦은 돈벌이에 나선 엄마들과 달리 남편이 버는 돈을 잘 굴려 더 많은 교육비를 확보하려는 엄마들도 있다.

최근에 광고대행사 대홍기획에서 재미있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치동, 분당, 목동, 성북동, 평창동, 중계동 등 사교육 대표 격 6개 지역의 중산층 이상 아줌마 54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아줌마 앤 더 시티(AJUMMA & The City)'란 보고서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 아줌마들은 재테크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보인다. 조사 대상의 33.9%가 본인 명의의 부동산, 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심지어 14.3%는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그저 집안에서 내조 잘하고 아이들 건강하게 키우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이 엄마들을 보고서는 '쩐모양처'란 신조어로 표현한다. 쩐모양처들의 재테크 양상은 상당히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재테크를 위해 빚을 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을 무려 10.7%나 했다고 한다. 당연히 재테크 강연 듣기, 서적 읽기 더 나아가 프라이빗 뱅킹 센터를 방문하는 등의 노력은 일상적인 수준이다.

조사 대상의 쩐모양처들은 이렇게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재테크를 통해 돈을 열심히 모으고 불리지만 여전히 자녀교육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구 내 지출비용도 자녀 교육비가 32.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이 부채 상환 37%를 잇고 있다.

자세한 속사정을 유추해 보면 자녀 교육비를 여유있고 풍족하게 확보하기 위해 버는 돈이나 저축 같은 평범한 돈관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단기 고수익을 위해 과감하다 빚이 늘어난 재무구조를 갖게 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재무 상담이나 교육을 찾는 주부들 중에서도 과감한 재테크로 오히려 부채비중이 커져서 문제가 된 가정이 적지 않다. 사실은 사교육비와 미래 교육비준비를 대박의 재테크로 나섰다가 오히려 돈만 크게 묶인 경우라고 봐야 한다.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지하철 상계역 부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상계3동 뉴타운 후보지(자료사진).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지하철 상계역 부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상계3동 뉴타운 후보지(자료사진).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물론 일찌감치 대박 수익에 나선 사람들이 모두 빚만 지고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쩐모양처의 일부는 뒤늦게 행동하는 재테크 주부들보다 월등히 앞서 쉽게 단기 투자 수익을 실현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투자 수익도 그리 칭찬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결국 남들보다 더 많이 챙긴 수익의 상당부분이 뒤늦게 뛰어들어오는 사람들이 치르는 대가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서울을 들썩이게 한 강북지역의 집값을 둘러싼 소문들은 그냥 소문이 아니었다. 강남 엄마들의 부동산 작전이라는 소문이 그것이다.

몇 명의 쩐모양처 엄마들이 투자금을 모아 강북의 투자가치가 괜찮은 아파트를 매입한다. 그냥 단순한 매매 계약이 아니라 '업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보통은 매도자가 양도소득세 부담을 덜기 위해 다운 계약서를 작성한다. 한마디로 실제 파는 가격보다 싸게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양도소득세를 절감할 수 있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취등록세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상호 이익이다. 그런데 강북 아파트 폭등 당시에는 업 계약서가 유행했다니 어리둥절할 일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단기 투자를 위해서이다. 강북의 아파트는 소유자가 오래 산 경우가 많다. 당연히 양도소득세 비과세 면세 아파트들인 것이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매 금액을 올려 계약서를 작성해도 손해볼 일이 없다. 그러나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서 바로 팔 때 업 계약서는 대단히 유용하다. 예를 들면 3억짜리 아파트를 4억에 업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가정해 보자. 사자 마자 다시 4억에 팔아도 양도소득세가 발생하지 않는다. 결국 1억의 차익실현을 하고도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취등록세는 많이 완화되었기 때문에 업 계약서를 쓰는 것이 양도소득세 내는 것보다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업 계약서는 시세를 끌어올리는 효과까지 있기 때문에 대단히 기발한 전략일 수밖에 없다.

아마 이런 대단한 재테크 기지는 전문가의 전략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 문제는 단기에 크게 오르는 아파트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빚까지 내서 작전이 붙은 매물을 소화하는 사람이다.

상당히 많은, 뒤늦은 추격자들은 전세를 살고 있다 공포심에 무리한다. 지금까지 집 사는데 무리하는 것을 참고 참았다가 더 이상 영영 집 장만을 못해볼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갖는 것이다. 혹은 전세를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사람들이 코너에 몰릴대로 몰려 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뉴타운 바람이 불면 전세가 실종한다. 집 주인들이 전세를 빼서 매도기회를 포착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주비까지 주면서 전세입자를 내보내려 하기 때문이다.

결국 유능한 쩐모양처의 단기 고수익 전략, 차익 실현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돈에는 감정이 없다지만 이쯤되면 과연 재테크에 대해 도덕적으로 문제를 삼지 않을 수 없다. 혹은 사회적으로 도덕적 비난을 받지 않는다 치더라도 그렇게 돈만 밝히는 엄마의 모습의 그토록 바라는 자녀의 성공에 보탬이 되는 것인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태그:#재무설계, #부동산 투기, #쩐모양처, #업계약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