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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순 주교님이 1983년에 펴낸 강론 모음 <정의가 강물처럼>(형성사)을 한참 동안 읽습니다. 두 시간 조금 못 되게 읽는 동안, 앞 강론과 뒷 강론이 거의 같은 말임을 느낍니다. 여러 해에 걸쳐서 했던 강론 가운데 좀더 널리 읽을 만한 이야기를 뽑았을 터인데, 강론을 하는 때만 다를 뿐, 말하려는 줄거리는 거의 같습니다.

 

강론모음을 덮고 생각합니다. 지학순 주교님 같은 분은 무척 바삐 일하셨고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는 가운데 당신한테 주어진 사목을 베풀어야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에도 어렵게 짬을 내어 책을 읽으셨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교리나 종교를 다룬 책 말고 우리 세상을 헤아리고 우리 삶과 이 땅 사람을 돌아보는 이야기책은 얼마나 읽으셨을까요. 얼마나 짬을 내어 이와 같은 책을 들춰보셨을까요.

 

어느 한 갈래 전문가라고 내세우는 분들을 보면, 당신이 아주 잘 안다고 하는 갈래를 빼고는 거의 젬병이나 바보인 분이 많습니다. 하다 못해 손빨래 하나 하실 줄 모르는 분조차 있습니다. 찌개나 국은 끓일 줄 아실까요? 전기밥솥으로 밥할 줄은 아실까요? 라면이나마 끓이실 수 있는지?

 

그러나, 자기가 깊이 파고드는 갈래 한 가지를 ‘전문으로 잘 안다’고 하는 분들은, 바로 그 당신들 전문 갈래를 외려 더 모르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웃 갈래를 헤아리고 옆동네 갈래를 넘겨다보는 눈길이 있지 않다면, 자기 갈래가 어떻게 굴러가거나 흘러가는지 제대로 못 살피지 않느냐 싶습니다.

 

생각이 있고 눈썰미가 있는 종교인은 천주교와 기독교와 불교와 이슬람교가 다르지 않음을 알아챕니다.

 

한국사람과 필리핀사람과 노르웨이사람과 영국사람과 칠레사람과 온두라스사람과 쿠바사람과 캐나다사람이 다르지 않음을 압니다.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좁은 우물에 갇힌다고, 아무리 자기가 깊이깊이 자기 갈래를 파고든다고 해서 자기 갈래를 제대로 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한 우물에 갇힌 채 한 우물만 파서는 그 우물에 빠져 죽을 뿐입니다. 햇볕 한 줌 쬐지 못하면서 얼굴이 허연 책상물림이 될 뿐입니다.

 

한 우물을 파더라도 밥을 먹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옷을 입고 살아야지요. 우물 속에서 잘 수 있나요? 우물에서 나와 집에 들어가 다리 뻗고 자야지요. 혼자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니, 우물을 파는 틈틈이 쉬면서 이웃사람하고 이야기도 나누어야지요. 자기 우물맛이 좋다면, 항아리에 담아서 이웃사람한테 물맛 좀 보라고 건네주기도 해야 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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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도 모르면서 추송웅님 책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기린원, 1981)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연극이 무엇인지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읽습니다. 맛도 모르면서 최민식님 책 <사진이란 무엇인가>(현문서가, 2005)라는 책을 읽습니다. 사진이 무엇인지 개뿔도 모르는 주제에 읽습니다.

 

느낌도 모르면서 <슈베르트>(신구문화사, 1977)를 읽었고, 뒤이어 <쇼팽>(신구문화사, 1977)을 집어들었습니다. 노래는 돼지 멱따는 형편이면서 책은 잘만 집어듭니다. 책상맡에는 로맹 롤랑이 쓴 <베토벤>도 있고, 설리번이 쓴 <베토벤>도 놓여 있습니다.

 

책 하나 읽는다고 교육을 헤아릴 수 있을쏘냐만, 알랭이 쓴 <교육에 관한 51장>(정음사, 1979)을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가 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양철북) 고침판(2008)이 나와서 다시 한 번 읽어 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못난 머리에 한 번 더 읽는다고 새록새록 스며들겠습니까.

 

그렇지만 읽습니다. 그러하여도 읽습니다. 그렇기에 읽는달까요. 모르지만, 모른다고 해서 덮어놓을 수 없습니다. 모르니 어영부영 지나치고 싶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잘못이 아니라고 하지만, 잘못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살고픈 마음은 없어요. 제 삶이 잘 흐르는지 잘못 흐르는지 눈꼽만큼이나마 살펴보고 싶습니다. 참답게 즐기고 있는지, 아름답게 걸어가고 있는지, 다문 서 푼짜리 눈높이로나마 가누어 보고 싶습니다.

 

귄터 그라스가 쓴 <나의 세기>(민음사)를 읽는들, 이웃나라 지나온 발자취를 얼마나 더듬을 수 있겠습니까. 제임스 미치너가 쓴 <소설>(열린책들)을 읽는들, 책과 문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얽혀 있는가를 짚을 수 있겠습니까. 수잔 손탁이 쓴 <사진 이야기>(해뜸)에 적힌 어려운 말을 하나하나 새기면서 읽는다 한들, 사진을 꿰뚫는 눈썰미를 얻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한테 무엇이 없는가를 느낍니다. 저한테 어느 대목이 모자란가를 깨닫습니다. 저한테 어설픈 깜냥이 무엇인지 알아갑니다. 저한테 어줍잖은 속알머리를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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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이 되어서 하루라도 흙을 밟지 않는다면, 하루라도 흙내음을 맡지 않는다면, 하루라도 하늘과 구름과 해와 달을 올려다보지 않는다면, 농사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사가 되어서 하루라도 아이들 눈망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하루라도 아이들 매무새와 옷차림과 책가방을 살펴보지 않는다면, 하루라도 교과서뿐 아니라 다른 책들을 넘겨보지 않는다면, 차마 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된 사람은, 어머니 된 사람은, 누나 된 사람은, 언니 된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아버지답다고, 어머니답다고, 누나답다고, 언니답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르신은 어떤 모습과 매무새로 살아가고 계셔야 어르신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목사님은, 신부님은, 스님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마음닦이를 하셔야 참 목사님이요 신부님이요 스님이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새로 대통령 자리에 앉으신 이명박님은 아직도 옛 맞춤법으로 글을 쓴다고, ‘-습니다’가 아닌 ‘-읍니다’로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맞춤법은 1989년에 바뀌었으니 어느덧 스무 해가 되었습니다. 이명박님은 멀디먼 옛날 수험생일 때 청계천 헌책방거리에서 대학교재를 아주 싼값에 얻어서 보았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명박님이 1989년 앞에 나온 예전 책을 헌책방에서 사서 읽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옛날 책을 읽지 않으시고 옛날 신문을 읽지 않으신다면, 옛날 맞춤법에 글쓰기가 익숙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신문쯤은 읽으신다면, 그리고 잡지쯤은 읽으신다면, 나아가 요즘 사람들이 두루 읽는 소설책 한 권이라도 읽으신다면, 더욱이 문학책만이 아니라 인문학 책도 좀 읽으신다면, 글을 쓰면서 ‘-읍니다’로 적는 글버릇을 이어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아니, 모르지요. 지금 우리 나라 맞춤법은 전문 학자조차도 실랑이가 있을 만큼 예외조항이 많고 올바르게 서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명박 님은 ‘올바르게 서 있지 않은 우리 맞춤법’을 비판하고픈 마음에서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글을 적을 수 있습니다. 영어를 너무 사랑해서 맞춤법을 틀리게 쓴다기보다는, 우리 나라 한글학자와 국어연구원 공무원들이 좀더 똑바로 일하라는 뜻에서 자꾸자꾸 글잘못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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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 하시네요>(안국)라는 책을 헌책방에서 만납니다. 1987년에 나온 판입니다. 이 앞으로도 나온 책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 뒤로 여러 출판사를 거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람 이야기가 두고두고 읽히며 오래오래 재미를 선사합니다.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하날오름)라는 책을 거의 다 읽습니다. 앞으로 열 쪽쯤 더 읽으면 끝입니다. 제주 오름 사진만 찍어 온 김영갑님이 1996년에 낸 수필모음입니다. 1996년에 처음 나온 뒤 판이 끊어졌다가 다른 출판사로 옮겨서 읽히고 있습니다. 새로 나온 판을 보니 사진을 많이 넣었습니다.

 

<셋 둘 하나>(사계절)라는 어린이책을 다 읽고 나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최나미님이 2007년에 낸 동화책으로, 짧은 이야기 셋을 실었습니다. 썩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작품모음을 내기 앞서 조금 더 헤아려 보았으면 어떠했을까, 조금 더 묵혔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산하)라는 어린이책을 읽고 있습니다. 첫머리가 잘 안 읽혀서 한동안 덮어놓는다고 하다가 한 해를 훌쩍 넘기도록 못 넘기고 있었어요. 엊그제부터 다시 손에 쥐고 읽어나갑니다. 2006년에 우리 말로 옮겨진 작품입니다. 글이며 그림이며, 우리 나라에서 어린이책을 쓰는 분들이라면 오래도록 새겨 읽으면서 고개 끄덕일 대목이 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대목을 느끼지는 못하겠구나 싶네요. 저도 처음에는 그저 그렇네 하고 지나쳤습니다.

 

<식사장애>(학지사)라는 책이 2003년에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옆지기가 먼저 읽고는 저한테 “다른 책보다 이 책을 먼저 읽어요” 하면서 건넵니다. 그러나 청개구리인 저는 다른 책과 겹치기로 읽습니다. 읽는 내내, 이 책을 먼저 다 읽어도 좋겠네 하는 생각이 들지만, 좋은 책은 오래도록 맛보면서 즐기는 버릇이 있기에, 적어도 두어 달쯤은, 아니 반 해쯤은 붙잡고 싶습니다.

 

동네 어른들, 또는 옛동무들한테 책을 선물해 줍니다. 구멍가게에 들러서 과자 한 봉지(500원) 사면서 책을 선물합니다. 초등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 한 접시(1000원)를 먹으면서 책을 선물합니다. 단골 술집에서 세겹살을 구워먹고(두 사람 몫 8000원) 나오는 길에 책을 선물합니다.

 

이웃 동네 신부님한테도 책을 선물하고, 옆지기 동생한테도 책을 선물하고, 제가 펴내는 잡지를 받아보는 독자 가운데 몇몇 분한테도 선물합니다(마음으로는 모두한테 드리지만, 물건으로는 모두한테 못 드립니다. 안타깝게도). 선물하는 책은 1만2천 원짜리. 책이름은 <똥꽃>(그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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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에 고향 동네인 인천 배다리로 돌아왔으니, 이제 한 해를 채우는 셈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인천 이야기랍시고 끄적인 글을 모아 보니 제법 부피가 됩니다. 영차영차 글쪼가리를 엮어 봅니다. 인천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는 일이 드문 형편을 생각하면, 인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없다는 소리인 한편, 인천 이야기를 써서는 돈이 안 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인천 이야기만 이러하겠습니까. 서울 이야기를 쓸 때 얼마나 돈이 되던가요. 부산이나 대구 이야기는, 광주나 목포 이야기는, 제주나 원주 이야기는 얼마나 돈이 되는지요.

 

돈이 되는 글은 얼마나 책으로 묶을 만한가를 생각해 봅니다. 글쎄요. 사람들이 많이 읽는다고 하는 글은 어느 만큼 책으로 묶을 값어치가 있는가 헤아려 봅니다. 글쎄, 글쎄.

 

요즈음 사람들이 책을 멀리한다면 무엇보다도 책이 재미없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다음으로는 책이 자기 삶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면 요즈음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 재미를 느끼거나 찾는가요. 어디에서 자기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만나거나 얻을까요. 요즈음 사람들이 찾는다는 재미는 얼마나 재미있는 재미인가요. 요즘 사람들이 찾아나서는 도움되는 일이란 얼마나 도움되는 도움인가요.

 

글뭉치를 종이로 뽑아서 옆지기한테 건넵니다. 옆지기가 부지런히 읽어 줍니다. 다 읽고 어떤 이야기를 해 줄는지 모릅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손질해서 출판사로 보내 볼 생각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저한테 주어진 몫인 ‘부지런히 쓰자’는 다짐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얼마나 널리 읽힐 만한 글이 될는가 모르지만, 다문 한 가지라도 ‘요즈음 사람들이 찾아서 읽을 만한 책’이 되도록 마음을 쏟고 힘을 쏟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저는 저한테 주어진 몫대로 애쓰면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읽을 만한 책을,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읽을 만한 책을 써내야 한다고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거든요. 읽을 만한 책이 없으면 우리 스스로 ‘읽을 만한 책’을 써내면 됩니다. 재미있는 책이 없으면 우리 스스로 ‘재미있는 책’을 만들어낼 일입니다. 훌륭한 정치꾼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정치판으로 나아가든지, 우리 둘레 훌륭한 사람을 찾아내어 훌륭한 정치꾼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줄 노릇입니다.

 

몸에 좋은 먹을거리가 보이지 않으면 스스로 땅을 갈아 곡식을 얻을 노릇이에요. 지금 자기 집이 살 만하지 않다면, 손수 다리품을 팔아서 다른 집으로 옮기거나 자기 몸품을 팔아서 손수 집 하나 지을 일입니다.

 

손에 때가 탔으니 손을 씻습니다. 마음에 때가 탔다면 마음을 씻습니다. 배속에 든 것이 없으니 밥을 먹습니다. 마음속에 든 것이 없으니 책을 읽습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슬기나 지식이 늘지 않습니다. 꾸준히 몸을 움직여서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키우고 가다듬어야 슬기가 늘고 지식이 쌓입니다. 하루아침에 쌓을 수 없는 슬기와 지식입니다. 하루 세 끼니 밥을 오래오래 먹었다고 해서 늘어나지 않는 슬기와 지식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린이 마음을 가꾸는 책을 읽어 줄 일입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젊은 마음을 북돋울 책을 가까이할 일입니다.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늙은 마음을 다독일 책을 손에 쥘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그:#책읽기, #책이 있는 삶, #책, #절판,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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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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