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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혼자서 생활했던 내게는 습관이 있다. 손톱 반달 크기를 보고 행복해 하는 것이다. 손톱 반달 크기로 건강을 체크하는 것이다. 손톱 반달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지는 날에는 종일 걱정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손톱 반달로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타당할까? 결론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손톱반달과 건강 상태는 상관이 없으며 사람에 따라서 크기가 큰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톱 반달을 보며 건강을 체크한다.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총선 예상 투표율이 50% 이하라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유권자들의 참여 열기를 막고 있는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쉽게 유권자의 책임의식 결여를 이야기한다. 그럴까? 우리들이 어렸을 적 장래 희망을 묻노라면 절반 정도가 판사, 변호사이고 절반 정도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더 이상 어린아이들에게 정치인이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도 아니요, 희망의 대상도 아닐 것이다. 그들로 불리고 있다는 뜻이다.

정치 냉소주의가 팽배하고 불편할 뿐더러 싸움박질 하는, 없었으면 하는 대상일 수도 있다. 사랑의 대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참여의 이유를 상실해 가고 있는 중이다. 선거 때만 되면 ‘퍼주기’식 선심성공약들이 난무하고 선거이후에는 ‘나몰라라’ 하는 정치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약속에 대한 책임의식 없는 정치인들의 잔치에 수동적으로 참여하기 싫다는 뜻이다.

사실, 대운하, 연금, 세제, 교육 등의 정책 논쟁들은 슬금슬금 피해가고 해택은 늘리고 넓히겠으며 세금은 조금 걷겠다는, 무조건 개발하여 부동산가를 높여 주겠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믿으며 투표하는 유권자가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정치권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선은 짠할 것 같다. 손톱 반달이 조금만 커지면 호들갑떨며 건강을 자랑하던, 사라지는 날에는 종일 걱정하며 투덜거리던 나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을까? 총선 후보자들에게 의정활동계획서를 유권자들에게 내 놓으라고 촉구한 것은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의정활동계획서를 내놓았다는 것이 정치권의 건강성을 체크하는 보편적 잣대로 충분하지 않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자그마한 증거라도 내보라는 애정 어린 권고였다.

다행히 실천본부의 권고에 따라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의정활동계획서를 공천심사과정에서 기본 서류화하였고 유권자들에게 공개 발표한 275명의 후보들이 있었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많이 고민했을 것이고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촌각을 타투며 지역주민을 만나야 하는 시간을 쪼게 자신의 계획을 담아야 했을 것이다. 감사하며 건승을 빈다. 이런 것들이 정치권의 책임의식을 높이는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 본다. 과거의 화려한 경력과 말로만 하는 정치를 끝내겠다는 선언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산수는 시장에 맡겨두어도 충분하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도 될 수 있고 셋도 될 수 있는 무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곳이 정치권이다. 서로가 멀어지고 달라지는 사회양극화 현상,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내일에 대한 떨쳐낼 수 없는 불안, 해소방안을 내놓고 미래비전으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유권자, 있는 것을 잘 해내는 것은 관료들의 몫이다. 지금 존재하지 않은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 합의해가는 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인의 몫이다.

매니페스토. 고해성사라고도 하고 공적 책임선언이라고도 한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과거를 솔직히 고백하고 내일을 위한 책임선언을 하는 것이 매니페스토다. 산업화 시대를 위한 것들이 지금에는 맞지 않은 것들이 무엇 무엇이며 내일을 위해서는 이것을 하자는 제안과 대화가 담긴 것이 매니페스토다. 

오늘도 매니페스토 활동가들은 정치권을 손톱반달처럼 보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한 성숙한 민주주의, 신뢰공동체 구현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는 이들의 말을 지면을 통해 전해 본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처장


태그:#매니페스토, #고해성사, #책임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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