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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사건 피해자 어머니 인터뷰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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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아가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만 하기를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정말 갈피를 못 잡겠어요. 범인이 안 잡혔으니 불안하고 답답할 따름입니다. 단순폭행사건이라니요. 일반인도 CCTV를 보면 다 압니다. 잡으면…, 내 새끼한테 한 만큼 똑같이 돌려주고 싶어요. 경찰이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건 오보입니다."

안양 어린이 유괴살인사건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에서도 어린이 납치미수사건이 발생해 국민적 충격을 주고 있다.

마침 이 사건이 벌어졌던 날은 경찰이 어린이범죄와 관련된 치안종합대책을 발표하던 날인 데다, 안이한 늑장수사 의혹이 불거져 더 큰 비판을 받고 있다. 피해를 당한 어린이의 어머니는 경찰의 초동수사와 늑장수사에 상당한 불만을 피력했다.

지난 26일 오후 3시 40분경 하굣길에 집앞 엘리베이터 안에서 50대 남성으로부터 폭행과 흉기위협을 당한 A(10)양의 어머니 신현경(가명)씨는 아직도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31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자택에서 만난 신씨는 "처음 CCTV를 본 뒤에 말문이 막혔다"며 "아이가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기는 했지만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다"고 소회했다.

"낯 안가리는 발랄한 아이... 요즘에는 매일 등하교 함께 한다"

어머니 신씨는 "평소 낯을 안 가리고 활발한 아이였는데 이 사건 이후로 혼자서는 아무 데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며 "요즘에는 매일 등하교 길을 딸아이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친구들 생일잔치에도 홀로 다녔는데 최근에는 전혀 그렇지 않아 엄마로서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는 "아직까지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한 데 화가 난다"며 "우리 아이에게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고, 또 다른 집 아이가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정말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이어 "경찰이 좀 더 일찍 주변을 탐문했다면 용의자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속상하다"며 "이제는 범인이 숨으려고 들면 얼마든지 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어머니 신씨는 "아파트 CCTV 화면을 본 다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안양어린이유괴살인사건이었다"며 "이제는 엄마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게 됐다"고 탄식했다. 엄마들이 직접 아이를 데리고 가고 데려오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정도로 한국의 범죄도 날로 흉포화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지난 26일 어린이 유괴 미수사건이 발생했던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 입구에 31일 오전 가해자의 모습이 찍힌 CCTV 화면 사진이 내걸려 있다. 이 수배전단은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제작해서 붙였다.
 지난 26일 어린이 유괴 미수사건이 발생했던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 입구에 31일 오전 가해자의 모습이 찍힌 CCTV 화면 사진이 내걸려 있다. 이 수배전단은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제작해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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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어린이 유괴 미수사건이 발생했던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 승강기 내부에 31일 오전 관리사무실에서 내건 범인의 모습이 담긴 CCTV 사진 전단이 붙여 있고, 사건 당시 부서진 거울이 붙어있던 곳에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난 26일 어린이 유괴 미수사건이 발생했던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 승강기 내부에 31일 오전 관리사무실에서 내건 범인의 모습이 담긴 CCTV 사진 전단이 붙여 있고, 사건 당시 부서진 거울이 붙어있던 곳에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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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가 기자에게 전한 사건의 재구성은 이렇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돼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파트 1층에 사는 잘 아는 아줌마가 "잠시 내려오라"고 해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끔찍한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이 산산조각 나 있고, 딸아이의 신발 두 짝이 하나씩 따로따로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딸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 엄마"라며 목이 터져라 울었고, 그 아이를 지켜보던 신씨도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신씨가 처음 아이를 봤을 때는 입가에 피가 없었지만, A양을 구한 '1층 아가씨'가 봤을 때는 입에 피가 흐르고 머리가 흐트러져 있었으며 신발도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또한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서는 매우 허름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으며 눈빛이 이상했다고 했다.

그는 짐짓 딸아이가 못된 짓을 당한 것은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해서 일단 진정은 됐지만 사건발생 6일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그의 놀란 가슴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애가 그 날 사고를 당한 뒤 학원은 물론이고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며 "도대체 그 남자가 어디서부터 우리 딸을 미행해온 건지, 아파트 지하나 1층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건지, 어떻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해 너무 답답하다"며 수사촉구를 당부했다.

50대 남성이 A양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아파트 3층에 내린 뒤에 이 광경을 집 안의 비디오폰으로 본 3층 아줌마의 목격담도 전달했다.

'조용히 해!' 악을 썼던 그 남자는 누구?

신씨는 "아줌마가 잠을 자는데 밖이 소란스러워 비디오폰을 들어보니 어떤 남자가 계속 '조용히 해' '조용히 해' 그래서 어떤 아빠가 아들을 혼내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고 들었다"며 "그 아줌마에 따르면 이 남자는 키가 170㎝정도 됐으며 마른 체구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이라고 전했다.

또한 신씨는 "정부가 어린이 치안대책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며 "외국에는 어린이범죄에 연루된 피의자에게 전자팔찌도 채우고 고속도로 한길에서 '나는 ○○범죄자'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국내에는 아직도 처벌이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동네주민들도 급작스러운 사고소식에 황당한 표정이었다. A양의 앞집 할아버지 최병항(77)씨는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경찰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처리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는 서두르는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 변래언(35)씨도 "어린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많이 불안하다"며 "격일 근무라 아내 혼자 아이를 돌보는 때가 많아 더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일흔 살의 할머니는 "우리 동네에 그런 일이 없었는데 참 놀랐다"며 "범인을 빨리 잡아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웃주민 이종순(53)씨도 "내가 13년간 이 동네에 살지만 이런 일은 처음 본다"며 "범인을 빨리 잡아야 주민들이 편안하게 발 뻗고 잘 텐데 걱정"이라고 혀를 찼다.

이 아파트의 경비원 원철연씨는 "잠깐 순찰 돌고 온 사이에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며 "내가 본 것은 어린 아이가 '엄마, 엄마'하면서 우는 것만 봤고 어머니도 꽤 놀란 눈치였다"고 전했다.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에 찍힌 초등생 폭행. 납치 시도 장면. <SBS 화면 촬영>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에 찍힌 초등생 폭행. 납치 시도 장면. <SBS 화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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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잠시 순찰 돌고 온 사이 끔찍한 일이..."

방송을 통해 이 소식이 처음 알려진 뒤로 18대 총선 지역구 출마자들도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31일 오전 일찍 김현미 통합민주당 후보가 다녀갔으며, 오후에는 김영선 한나라당 후보가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날 오후 일산경찰서에 마련된 수사본부를 찾아왔다.

엿새째 사건이 지속 중인 가운데, 피해를 당한 A양은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양은 남모르는 사람이 스치고 지나가면 흠칫 놀라고 그 때 사건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해도 "듣기 싫다"며 아무런 언급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신씨의 막내딸 A양의 책상 위에서는 곰인형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고 있었지만, A양의 멍든 동심은 쉽게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과 유우익 대통령실장이 31일 오후 지난 26일 발생한 초등학생 유괴 미수사건의 수사본부가 설치된 경기도 고양시 일산경찰서에 도착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유우익 대통령실장이 31일 오후 지난 26일 발생한 초등학생 유괴 미수사건의 수사본부가 설치된 경기도 고양시 일산경찰서에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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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정신이상자 소행? 전문가는 "범죄 경력 많아 보여"

한편, 이기택 일산경찰서 서장은 이날 오전 10시 30분경 강금실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과 김현미 후보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초동수사의 부실을 주장하며 면담을 신청했으나 만나지 않으려고 피해다니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또한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 '여자 어린이'를 노린 범죄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단순 폭행사고로 처리하려고 하는 등 총체적인 부실수사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실제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 범인이 처음부터 술에 취했거나 정신이상자의 행동일 것으로 추정하고 단순폭행으로 사건을 처리하려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돈을 노린 유괴나 성을 목적으로 한 의도된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사실상 경찰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안양어린이유괴살인사건의 교훈을 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대 행정학과 표창원 교수는 "아직 범인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CCTV 화면으로 봤을 때 돈을 노린 유괴나 성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 범죄로 보인다"며 "범인은 오래 전부터 범행을 결의한 뒤 대상을 물색,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표 교수는 "범인은 도주과정에서 전혀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인기척을 느꼈을 때 바로 1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4층으로 올라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왔으며 발각 뒤에도 뛰지 않고 일반인처럼 유유히 걸어서 아파트단지를 빠져나간 것이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표 교수는 이어 "이 같은 대담함을 봤을 때 범인은 범죄경력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침착한 범인의 행동은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그:#어린이 납치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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