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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막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언론계에서는 벌써 '과거의 권언유착 관계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 80년대에나 있었을 일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면서 '프레스 프렌들리'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부 하 권언관계에 대한 전망은 더욱 어둡다.

 

26일 프레스센터 7층 레이첼카슨룸에서 열린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주최 '이명박 정부 출범 한 달, 권언관계 진단 토론회'는 이 '어두운 전망'을 조금이나마 밝혀보려는 시민사회와 학계, 언론현업 관계자들의 고민을 모으는 자리였다. 짧게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한 달, 길게는 인수위부터 석 달 동안 정부와 언론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전망을 모색한 이 토론회는 만족할만한 구체적인 방도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이 위험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언론현업과 시민사회가 앞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필요성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낸 것은 성과였다. 특히 앞으로의 권언관계에 대한 우려가 워낙에 큰 때문인지 긴급하게 준비된 토론회임에도 취재기자들을 포함해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토론회장을 찾아 이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토론회는 권혁남 한국언론학회 회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이 발제를 했고, 류정민 <미디어오늘> 정치팀장과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 송정록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양승동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회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김유진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1개월, 권언관계 진단과 전망'이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음성적 언론통제' 부활에 대한 우려"와 "언론은 '프레스프렌들리'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했다.

 

김 처장은 권언관계에 대해 "'건전한 긴장관계' 정도가 제대로 된 게 아닌가 싶다"며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프레스 프렌들리'가) 그 안에 '잘 지내보자'는 걸 나타낸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언론의 기본 임무이고, 그 임무에 충실한 언론은 권력과 '친화(親和)'하기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면 '프레스프렌들리'는 일종의 형용모순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때문에 '프레스 프렌들리'가 일반적인 '권언관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권언유착'의 영어식 표기"에 그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김 처장은 이미 몇 가지 징후들이 '이명박 시대 권언관계'에 대한 우려를 현실화시키고 있다며, 사례별로 범주를 나눠 제시했다.

 

김 처장의 분석에 의하면 첫째 '언론사 사주를 통한 외압 의혹'이 있는데 여기에는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논문표절 관련 <국민일보> 보도 통제가 해당된다. 둘째, '음성적인 언론인 사찰 의혹'으로 인수위 시절 전문위원으로 파견된 문광부 박모 국장의 이른바 '언론인 성향조사' 문건 파문이 있다. 셋째, '관행 차원의 비정상적 권-언 관계'로 삼성뇌물인사 명단 공개 관련 청와대 측 해명에 대한 YTN 돌발영상 삭제와 YTN 기자들에 대한 징계가 여기에 해당된다. 넷째, '색깔론 등 정치공세를 통한 독립성 훼손'으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인적청산론'과 뒤이은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한 대대적인 사퇴압박이 대표적이다.

 

부적절한 엠바고, 관행으로 합리화되나?

 

김 처장은 이 사례들 가운데 YTN 돌발영상 삭제와 징계가 "제일 큰 문제"라며 특히 "출입처와 기자들 사이의 관행 때문에 오히려 돌발영상 팀이 징계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부적절한 관계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정착될 우려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돌발영상'을 통해 청와대의 엠바고가 가지는 문제는 드러났지만 "접대 등 현장에서만 알 수 있는 관행들이 현재도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김 처장은 '이명박 시대 권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도 몇 가지 제시했다. 먼저 객관적 요인으로 '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대응 능력', '청와대, 한나라당의 언론계 인맥', '언론관련 기구의 구성'을, 주체적 요인으로 '대통령·정부 여당의 신념, 인식', '언론인들의 신념과 인식', '언론통제 대한 국민 의식'을 들었다.

 

권언관계에 '경제위기'가 거론되는 게 생뚱맞을 수 있으나 김 처장은 "'경제 대통령'을 내세웠으나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위기 상황을 맞았을 때 정치권력은 언론의 비판을 통제하고 싶은 유혹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면서 "그리고 각종 규제완화 조치와 그에 따른 이권을 언론통제 수단으로 활용하려 들 수도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나 한나라당으로 간 언론인들의 경우 여러 가지 우려지점이 있으나 김 처장은 특히 "(이들이) 언론사에 대한 '외압'의 통로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관련 기구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위원회 구성에서 보듯 "합법적인 공간을 통해 방송 정책을 좌우할 수 있게 된 정부 여당이 지상파 방송, 특히 공영방송에 대해 균형 잡힌 정책을 펼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김 처장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관계에 대해 "CEO 시절 언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활용하는 '노하우'를 습득해 실용적인 측면에서 '프레스프렌들리'를 할 수 있으나, 본인에게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언론별로 차별을 둘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며 "(언론인들에게) 공정 보도, 진실 보도를 제약하는 외압이나 권언유착 시도가 있다면 실체를 밝히고 싸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고 요구했다. <국민일보>나 YTN 사례처럼 "정치권력의 외압 의혹이나 부당한 권언관계가 드러나게 되면 정부는 여론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김 처장은 무엇보다 "정치권력이 언론 보도를 통제 또는 관리하려드는 시도에 대해 국민들의 거부 반응이 매우 격렬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이것이) 외압과 통제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처장은 향후 대응에 대해서는 이런 여러 가지 측면들을 고려하면서 "시민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레스 프렌들리'는 메이저 언론의 민원해결책?"

 

이어진 토론자들의 토론도 김 처장의 발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류정민 팀장은 '언론친화적'이라는 말에 대해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으로 언론은 제대로 비판하고 정부는 겸허히 비판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에 비해 현재 이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프레스 프렌들리'는 "메이저 언론의 민원을 해결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류 팀장은 또 이명박 정부가 보이고 있는 '언론 길들이기 징후' 가운데 "거액의 소송을 남발하는 것이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몇 억원의 소송을 통해서 압박을 행사한다면 기자는 비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손석춘 원장은 참여정부의 권언관계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긴장관계지만 내면적으로 유착관계가 아니었나 싶다"며 한미FTA, 비정규직,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 등의 사안과 관련해 참여정부와 보수언론이 보인 입장의 동일함을 꼬집었다. 즉 "권언유착이 노무현 정부 아래서도 있었는데 다만 표면화되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 들어 표면화되었다고 하는 게 앞으로 우리의 대응방법을 모색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겠는가"라는 지적이다.

 

손 원장은 또 <동아일보> 등이 사설과 칼럼에서 노골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편드는 모습을 지적하며 "언론사의 구조를 바꿔나가는 일 못지않게 저널리스트의 본분을 살려나가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송경재 교수는 시민사회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선출 받지 않은 권력인 언론 또한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되고, 이 역할을 시민사회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역할이 "민주주의 발전, 사회의 다양성, 여론의 다양성에 있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송 교수는 "지금 언론은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권력이 잘못하고 언론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비판하고 있다"며 "시민의 힘이 존재하는 한 쉽게 권언유착이 나타나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송정록 부회장은 지역언론과 권력과의 관계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참여정부의 경우 지역신문지원특별법 등으로 지역 언론에 대한 정책을 공식화한 부분이 있는 반면, 이명박 정부는 이런 제도 없이 지역언론을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각 지역을 방문하는 것과 관련해 송 부회장은 "대통령이 지역에 오면 지역언론들은 이를 비중있게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총선 시기에 이런 식으로 지역언론을 활용하려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임명 강행, 무리하는만큼 방송장악 의지 크다"

 

양승동 회장은 권언유착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양 회장은 "유인촌 장관이 장관실 옆에 기자실을 두겠다고 했는데 그게 유착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며 이명박 정부가 취재지원시스템선진화방안을 '원위치'하겠다면서 '프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 회장은 특히 이명박 정부가 최시중 씨 방통위원장 임명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최씨 임명을 모두 반대하고 있어 총선을 앞두고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럼에도 임명을 밀어붙이는 것은 그만큼 방송을 가만 둬서는 안 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양 회장은 "정권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며 "PD 등 방송인들이 그냥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이를 위해 "앞으로 방송사 내부에서 공방위나 편성위 같은 권력의 압력을 막아낼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데 많은 비중을 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권력이 언론을 길들이려고 하거나 유착관계를 가지려 하는 등 이명박 정부 하에서 '권언관계'가 과거로 회귀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그렇다고 해서 권언관계가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았다. 언론인들 스스로가 그런 상황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의식이 '권언유착'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언론인들은 언론인답게,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답게 자신의 역할과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었다. 그럴 때 어느 토론자의 말처럼 "국민들도 방패막이가 되어줄"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박진형 기자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입니다.


태그:#민언련, #이명박, #권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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