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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운동장에 홀로 선 박민지.
 운동장에 홀로 선 박민지.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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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좀 바꿔 주세요."
"예…?"

"엄마 바꿔 달라구요."
"… 우리집 엄마 없는데… 엄마 아빠 이혼해서, 저 할아버지랑 살아요."

아차, 싶었다. 당황한 8살 박민지의 목소리는 전화선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순간 나도 놀라고 당황했다. 전화를 잘 못 건 양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리고 머리를 감싸 쥐며 자책했다. 조손가정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를 바꿔달라고 하다니.

미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민지 할아버지가 받았다. 친구 없이 홀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민지를 취재하겠다는 뜻과 <오마이뉴스>의 '정체'를 설명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어렵게 승낙이 떨어졌다. 2월 25일 오후의 일이다. 그때 서울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경남 통영 사량도... 민지 만나러 가는 길

'나 홀로 입학생' 박민지. 민지는 통영 사량도 돈지분교에 홀로 입학한다.
 '나 홀로 입학생' 박민지. 민지는 통영 사량도 돈지분교에 홀로 입학한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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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는 섬 소녀다. 경남 통영 사량도에 산다. 서울에서 남쪽 바다로 달려가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민지를 만나기 위해 25일 밤 바로 짐을 꾸렸다. 서울에서 밤 11시 30분 통영행 심야버스를 탔다. 서울의 '눈'은 통영에서 '비'로 바뀌었다.

사량도는 통영 가오치항에서 배를 타고 40분 정도 가야한다. 요즘에는 하루 다섯 차례 배가 오가며 육지 통영과 사량도를 연결시켜 준다. 민지가 사는 돈지리 마을은, 배가 닿는 사량도 금평에서 다시 20여분 동안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역시 하루 다섯 번 오가는 버스가 돈지리와 '읍내' 금평을 연결해 준다.

걸어가면 1시간 30분 거리. 걷기를 택했다. 어차피 버스 시간도 맞추지 못했다. 남해를 왼쪽 옆에 끼고 걷는 길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길을 걷다 사량초등학교 4학년에 다닌다는 아이들 둘을 만났다. 길동무 삼으려고 말을 붙였다.

"너희는 누구랑 살어?"
"저는 엄마 아빠랑 사는데, 쟤는 엄마 없어요. 이혼하고 도망갔대요."
"아니야! 중학교에 입학하면 엄마가 나 도시로 데려간다고 했어!"
"치, 뻥이지? 너 왜 아저씨한테 거짓말 하냐!"

'육지 것'의 괜한 물음이 두 아이를 다투게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금방 내 곁에서 멀어져 갔다.

사량도 사람들은 돈지리를 "끝내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돈지리에 도착하니 그 이유를 금방 알게 됐다. 뒤에는 지리산(국립공원 1호 지리산과 이름이 같다)이 마을을 감싸고, 정면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태양은 뜨고 질 때까지 돈지리를 비춘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민지가 홀로 입학하는 사량초등학교 돈지분교가 있다.

26일 오후, 민지는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언니 소은이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중을 나왔다. 할아버지 박부일(69)씨는 집으로 안내했다. 마을 곳곳에는 버려진 폐가가 쉽게 눈에 띄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섬에서 살라 합니까. 먹고살기 힘드니까, 전부 도시로 떠나는 거지요.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늙은 사람들은 한 명씩 죽어가니까, 이렇게 집이 버려지는 것이지요."

마을 앞 바닷가를 걷는 민지와 소은.
 마을 앞 바닷가를 걷는 민지와 소은.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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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다녔던 돈지분교... "언니도, 나도 홀로 입학"

민지·소은 자매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매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민지가 네 살이던 2004년, 부모는 이혼을 했다. 그리고 자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할머니 강점자(65)씨가 네 살 민지를 업어 키웠다.

방에 들어서니 할아버지는 미소를 띠며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봤을 때 대단히 중요한 책인 듯했다. <1934~2006, 사량교육 칠십년>. 곧 민지가 입학하는 돈지분교의 모든 역사는 그 책에 담겨 있었다.

"여기 우리 할아버지 있어요. 아빠도 있고, 큰 아빠도 있어요. 여기요. 히히히. 큰 아빠는 잘 생겼는데, 우리 아빠는 못생겼어요."

이미 많이 들여다봤는지 민지가 능숙하게 책을 펼쳤다. 흑백 사진이 몇 장 나왔다. 그 중 민지가 손가락으로 머리가 덥수룩한 남자아이를 가리켰다. 민지의 아버지였다. 열 세살의 그는 '제30회 졸업생(1981 학년도) 남 10명 여 12명 계 22명'라고 적힌 흑백 사진 속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 박부일씨 역시 돈지분교 2회 졸업생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졸업한 돈지분교에 3남 1녀를 보냈고 졸업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손녀가 돈지분교에 다니고 있다. 3대가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돈지분교 30회 졸업생. 이 사진 안에 민지의 아버지도 있다.
 돈지분교 30회 졸업생. 이 사진 안에 민지의 아버지도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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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아이들 많았지…. 당시엔 120가구 정도 됐으니까. 운동회하고 그러면 얼마나 재밌었다고. 그런데 이젠 뭐 언제 폐교될지 모르니…."

돈지분교는 1946년 첫 입학식을 치렀다. 학생 수가 가장 많았던 때는 1964년으로, 172명이 다녔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학생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재 돈지분교의 전교생은 민지까지 포함해 6명이다.

이중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이는 단 한 명뿐이다. 민지·소은 자매를 포함해 5명은 조부모들과 살고 있다. 돈지분교가 소속돼 있는 사량초등학교 한 관계자의 말에서 섬 아이들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섬 아이들 50% 조손가정"

"전체 섬 아이들 약 50% 정도가 조손가정입니다. 도시의 부모님들이 이혼했거나 사망한 경우가 많죠. 다들 어렵게 살고 있죠. 상황이 그렇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엄마 아빠가 없는 게 여기서는 흠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에요. 물론 아이들 마음은 좋지 않겠죠."

사량도에는 사량초등학교 본교와 네 분교(돈지·내지·양지·읍덕)가 있고, 여기에는 총 79명의 아이들이 다닌다. 이중 절반이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다. "먹고살기 힘들어 섬을 떠난 젊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은 뒤, 여러 사정으로 가정이 해체되면 다시 아이를 섬으로 보내는 것이다.

한 교사는 "꼭 부모님이 있는 가족만이 옳고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조부모들이 늙고 병들면 아이들이 돌봄을 잘 받지 못하게 된다"며 "적지 않은 섬 아이들이 외로움을 벗 삼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돈지리에 왔을 땐 민지네 집에 머물며 함께 밥을 먹고 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자매와 할머니 할아버지 네 명은 좁은 방 한 곳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방은 몇 개 더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기름 값이 비싸서 난방은 안방만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아 바다 일을 더 이상 못한다. 아들딸이 보태주는 생활비로 살아가고 손녀들을 키운다.

할아버지 박부일(69)씨와 민지는 선후배가 된다. 할아버지는 돈지분교 2회 졸업생이다. 민지의 아버지 역시 30회 졸업생이다.
 할아버지 박부일(69)씨와 민지는 선후배가 된다. 할아버지는 돈지분교 2회 졸업생이다. 민지의 아버지 역시 30회 졸업생이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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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처 민박집으로 향했다. 민박집에 누워 <1934~2006, 사량교육 칠십년>를 펼쳤다. 그리고 돈지분교 최고의 순간을 그 안에서 만났다. 1990년 5월 17일자 <경남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외딴섬마을 전교생이 63명의 미니학교 핸드볼 팀이 3천여 명이 넘는 도회지학교들을 차례로 누르고 '90 경남소년체전'에서 우승의 영광을 안아 '하면 된다'는 입지전을 이룩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지난 12일 하오 1시 50분께 울산공대체육관에서 연장전까지 펼치는 진주 도동국교와의 결승전에서 1점차로 돈지국교의 우승이 확정되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12명의 선수, 20여 명의 학부형 선생님들이 서로 얼싸안고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은 핸드볼 골대가 없어 나무각목을 받치고 헌 그물을 끼워 만든 골문에서의 연습, 경비부족으로 전지훈련이나 친선경기조차 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오직 지도교사의 집념 어린 정성과 피눈물나는 극기훈련을 통해 이룩한 성취의 눈물이었다."

오늘날과 달리 문장이 긴 기사지만, 돈지분교의 환희와 기쁨은 잘 전달됐다. 하지만 돈지분교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돈지분교 핸드볼 팀은 전국소년체전 경남대표로 출전자격을 얻었지만 경비조달이 어려워 출전을 포기했다. 그리고 핸드볼 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자매에게 남겨진 약속 "엄마가 데려간대요"

자매는 "5학년 되면 데려가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다.
 자매는 "5학년 되면 데려가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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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 민지·소은 자매가 놀러 왔다. 언니 소은이가 "아저씨, 전화 한 통만 쓸게요"라며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했다. 누구에게 전화하려는 걸까. 역시 엄마였다. 자매의 엄마는 부산의 한 대학교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도 잠시 통화를 했다. 자매의 엄마는 "아이들이 밝게 자라고 있어 다행이지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은 뒤 소은이는 지난 겨울 엄마 아빠와 함께했던 기억을 풀어냈다. 소은이와 민지는 지난 1월에 부산에서 엄마와 약 20일 정도를 함께 살았다. 그때 자매는 평소 함께 살지 못하는 부모님과 밥을 먹고 노래방에 갔다.

소은이는 "난 <텔미>를 부르고 민지는 춤을 췄어요. 재밌었는데 엄마 아빠는 좀 어색해 하더라구요. 두 분 대화도 딱딱하게 뚝뚝 끊기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옆에서 민지는 "맞아"라며 웃었다. 그런 동생을 보고 소은이도 웃었다. 그리고 소은이는 "5학년 되면 엄마가 우리 데려간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27일 아침, 할아버지는 손녀이자 후배인 민지·소은 자매를 이끌고 돈지분교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민지에게 "학교 입학하니 좋으냐"고 물었다. 민지는 "네!"라고 소리쳤다. 할아버지는 웃었다. 홀로 입학해도 민지는 즐거웠다. 이유는 없다. "그냥 좋다"는 게 민지의 말이다.

학교 옥상에 서니 마을 앞바다가 보였다. 남도에는 벌써 봄바람이 강했다. 운동장에 선 할아버지와 민지·소은 자매는 작아 보였다. 할아버지는 사투리로 "봄바람이 부네예"라고 소리쳤다.

사실 민지가 홀로 입학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민지에 앞서 언니 소은이도 홀로 입학을 했다. 두 살 많은 언니 소은은 민지에게 선배이자 친구다. 언니 소은이가 겪은 많은 일은 동생 민지가 겪을 일이기도 하다. 반대로 민지의 현재는 소은이 과거다.

방파제 위를 나란히 걷고 있는 언니 박소은과 동생 박민지.
 방파제 위를 나란히 걷고 있는 언니 박소은과 동생 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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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은 3월 4일... "아저씨가 친구 보내줄 거예요?"

자매와 바닷가로 향했다. 민지는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린 바닷가에 도착할 때까지 이런 대화를 나눴다.

"민지야, 친구 없이 혼자 입학하는데 괜찮아?"
"언니 있어서 괜찮아요. 그래도 친구 있으면 좋겠어요."
"몇 명?"
"음… 5명. 근데 왜 물어요? 아저씨가 친구 보내줄 거예요?"
"…"

바다에 도착해서 자매는 나를 '배제'하고 둘이서 잘 놀았다. 자갈이 깔린 해안가를 달리는가 하면, 정박해 있는 배에 뛰어오르기도 했다. 주로 언니 소은이가 앞서 걷거나 행하면, 동생 민지가 따라했다. 민지가 넘어지면 소은이는 일으켜 세우고 옷을 털었다. 소은이는 사량초등학교 교가를 불렀다. 아직 입학도 하지 않은 민지도 알고 있었다. 민지는 "언니가 불러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불모산 장한 영기 세례를 받고 깨끗한 동강 바다 거울로 삼아 씩씩하게 갈고 닦는 사량어린이. 거룩한 낙원지를 이룩하리라. 조촐하게 피어나는 외딴 꽃송이 길이길이 빛나리라 우리 사량교."

자매의 노래는 바닷가에 작게 퍼졌다. '육지 것'의 눈엔 그 모습이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사량도가 자매에게 낙원인지 아닌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민지는 "엄마 아빠와 노래방 갔던 게 제일 재밌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난 뒤, 어쩌면 민지는 언니와 함께 바닷가를 뛰노는 지금을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그 기억으로 삶의 힘겨운 고개를 넘을 수도 있다.

자매의 엄마는 정말 아이들을 데려갈까? 그렇게 되면 "끝내주는 곳" 사량도 돈지리에는, 그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다녔던 돈지분교에는 누가 남지? 다시 1시간 30분을 걸어 배 타러 가는 길 내내 여러 생각이 들었다. 민지의 입학식은 3월 4일에 열린다.

박민지, 박소은 자매. 언니 소은이도 2년 전 홀로 입학을 했다.
 박민지, 박소은 자매. 언니 소은이도 2년 전 홀로 입학을 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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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나 홀로 입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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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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