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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게임>(The Game) 

 

돈 많은 노인에게 없는 것은 젊은 몸. 젊지만 가난한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돈. 두 사람의 욕구와 희망사항이 만나면?

 

두 사람은 '돈'과 '몸'을 걸고 단 한판에 끝나는 내기를 한다. 결국 두 사람의 몸이 바뀐다. 돈도 젊음도 다 잃어버린 청년(겉모습 아닌 속만 청년!)이 무엇을 원할지는 분명하고, 반대로 이제 돈도 젊음도 모두 가진 노인(역시 겉모습 아닌 속만 노인!)은 여기서 더 무엇을 원할까?

 

하루 아침에 노인이 된 청년. 다른 사람이 노인 취급하는 것이야 억울해도 당연한 일이지만, 느리고 둔해진 몸 자체가 힘들다.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 아무리 우리가 '노인생애체험(여러 가지 도구와 장비들을 이용해 노인의 몸이 되어 보는 체험)'을 해본다 해도 진짜 노인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열망했던 젊은 몸을 가지게 된 노인은 어떨까. 가장 먼저 마구 마구 놀아본다.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어울리고. 그래도 그는 늘 혼자 남는다. 왜 그럴까. 그 대답을 나는 소설 <바디>에서 찾았다.

 

소설 <바디>(The Body) 

 

유명한 작가이며 대학교수인 애덤은 어느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의 소개로 '새 몸'을 갖는다. 영화가 살아 있는 젊은 몸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라면, 소설에서는 이미 생명이 떠난 젊은 몸을 옷 사입듯이 골라 입는다.  

 

다른 사람들은 영원히 '새 몸'으로 갈아입지만 애덤은 6개월의 시한을 정하고, 새 몸으로 해 볼 수 있는 온갖 경험에 도전한다. 그 도전은 자유, 여행, 쾌락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무릎과 등이 몹시 쑤시고,  치질이 있고 궤양과 백내장도 있'는 60대 중반의 몸이지만 애덤은 예전의 그 몸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는 애덤의 새 몸을 탐내는 사람들이 뒤쫓으면서 그의 소망과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애덤이 자유를 누리며 맘껏 여행을 하고 육체적 쾌락을 누린다 해도 사람들은 그를 좀 다르게 느낀다. 그것은 혹시 몸과 마음 혹은 몸과 정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데서 오는 어떤 차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애덤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혼자다. 영화 속에서 젊은 몸을 얻은 노인의 외로움은 바로 이런 스스로 일치하지 않음, 스스로 겉도는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덤은 그동안 살아왔던 생활 환경과 가족들에게서 물리적인 거리뿐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를 가진 채 세상을 맘껏 떠돌면서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자녀들이 어렸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지, 이제는 늙고 쇠약해진 아내를 얼마나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곳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새 몸'을 입는 일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었다.

 

젊은 몸, 늙은 몸

 

영화에서는 젊은 몸을 빼앗아 바꾸고, 책에서는 젊은 몸을 빌린다. 물론 빌려주는 몸의 의견같은 것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영화와 책 모두 '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준다. 내가 아닌 나, 내 몸 이 아닌 나를 꿈꿔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막상 생각과 감정과 기억만 나 자신이고, 몸은 내가 아니라면 어떨까.

 

소설 속 표현대로 '추하고 유지비도 많이 드는' 늙고 병든 몸 역시 나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 할 때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마음 내려놓을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몸만 나인 것이 아니듯 마음만 나인 것도 아니다. 몸과 마음이 다 합쳐져야 나다!

 

그러니 몸을 빌릴 것도, 빼앗을 것도 없이 내 몸 그대로 입고 잘 간수하고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살아야지.

덧붙이는 글 | * 영화 <더 게임 The Game, 2007>(감독 윤인호 / 출연 변희봉, 신하균, 이혜영, 손현주)
* 책 < 바디 The Body>(하니프 쿠레이시 지음, 공경희 옮김 / 열음사, 2007)


태그:#더 게임, #바디, #몸,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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