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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왕세종>. “단 한 명의 백성도 그에게는 땅이고 하늘이고 우주였다”는 표현은 다분히 현대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세종 당시의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본문에서 설명될 것이다.
 드라마 <대왕세종>. “단 한 명의 백성도 그에게는 땅이고 하늘이고 우주였다”는 표현은 다분히 현대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세종 당시의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본문에서 설명될 것이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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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의중에 동생 충녕대군(1397~1450년)이 있다는 걸 눈치 챈 양녕대군(1394~1462년)이 일부러 비행을 저질러 폐세자를 자초했다고 전하는 야사 기록도 있다. 이런 이야기에 따르면, 이방원은 처음부터 양녕 대신 충녕을 후계자로 점찍어 두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 야사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왕세종>의 첫 방영분에서는 어린 충녕을 상당히 당당하고 야심찬 인물로 묘사했다. 위험에 빠진 충녕은 자신을 보호하는 장원이란 내관에게 “종이 주인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주인인 내가 너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하여 내관을 잠시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야사나 <대왕세종>의 관점은 다분히 결과론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충녕이 양녕을 제치고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처음부터 태종이 충녕을 의중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태종이 정말로 일찍부터 충녕을 후계자로 점찍어 두었다면, 그가 무려 14년 동안 양녕을 세자 자리에 앉혀 둔 이유를 쉽게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또 상왕으로 물러나기 9년 전부터 태종은 이미 병을 이유로 양위를 시도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충녕을 의중에 두고 있었다면,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양녕을 세자 자리에 앉혀두고 또 그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왕위를 넘겨주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종이 결국 충녕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은 양녕이 기록한 ‘자살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흔히 군왕의 장남은 ▲특별한 하자가 있거나 ▲관료집단의 비토를 받거나 ▲혹은 특출한 동생을 둔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후계자의 자리를 잃지 않는다. 양녕의 경우에는 첫 번째 이유 때문에 물러난 것이지, 세 번째 이유 때문에 물러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태종이 충녕에게 왕위를 물려준 이유는?

한편, 대왕 세종의 특출성은 왕자 시절이 아닌 군왕 시절에 비로소 발현되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세종 즉위 이후 상왕 태종이 왕권 강화를 지원하고 또 명나라 주도의 안정적 국제질서가 자리를 잡는 등의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데에다가, ‘즉위 이후에 발현된’ 세종의 특출한 자질이 결합되어 조선 왕조 최고의 안정적인 정치가 가능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왕세종>에서는 제3왕자인 충녕이 상당히 당돌한 데에다가 어딘가 야심을 풍기기도 하지만, 아무리 철없는 어린아이라 해도 왕실 교육을 받은 왕자가 그처럼 쉽사리 자신의 야심을 표출하기는 힘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왕위계승권자도 아닌 제3왕자가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는 것은 “나를 죽여 달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왕이 될 수 없는 왕자는 죽은 듯 살아야 하는 것이 전통시대 왕실의 분위기였다.

그리고 세종의 왕위계승과 관련하여 보다 더 분명히 인식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즉위 이전의 충녕이 과연 ‘왕실에서’ 성군 재목으로 인식되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물음이 굳이 필요한가?”라며 “세종대왕이 이룩해놓은 업적들을 보면 그가 성군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느냐?”며 위 질문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세종은 분명히 성군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늘날 그 누구도 그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주권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의 관점일 뿐이다. 전통시대의 왕실에서도 그렇게 인식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문제는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근대적 국가관이 아닌 전근대적 국가관에 입각해서 즉위 이전의 충녕을 바라본다면, 또 일반 백성들이 아닌 왕실의 입장에서 즉위 이전의 그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충녕에 대한 당시 왕실의 실제 인식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중국사 학자는 “동아시아에서는 대체로 당나라 때부터 국가라는 개념이 사용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이미 전근대 시대부터 국가라는 개념이 사용되긴 했지만, 그때의 국가 개념은 오늘날의 국가 개념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현대의 국가 개념은 기본적으로 서양의 국민주권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주권론에서는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 다 국가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는 국가는 곧 왕실을 가리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아무리 범위를 넓힌다 해도 사대부까지만 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무지렁이’ 일반 백성들은 국가의 범주에 끼지도 못했다.

전근대 시대에는 백성이란 국가의 운영을 위해 세금과 노역을 바쳐야 할 의무부담자로만 인식되었을 뿐, 그들이 국가의 일부를 형성한다는 관념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의 역사기록에서 군주나 위정자들이 민(民)·인민·백성들을 염려하는 표현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 바깥’에 있는 존재로서의 백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을 뿐이다.

전근대 시대에 백성은 세금과 노역을 바쳐야 하는 존재일 뿐

그리고 과거에 군주나 위정자들이 백성들을 염려하는 말을 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결국 조세·요역 징수와 연관되는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25사(史)의 식화지(경제 관련 역사기록)를 보면, 백성들의 가계나 건강을 염려하는 유지(諭旨)나 상소문이 자주 보이는데, 대개의 경우 그것은 농민경제 파괴와 농민보건 악화가 조세·요역 징수에 지장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기인한 것이었다.

백성을 국가 구성원에 포함시키지 않은 전근대적 국가관을 염두에 두고 세종 즉위 이전의 조선왕실 분위기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전근대 시대의 왕실에서 ‘누가 나라 혹은 국가를 이끌어갈 성군 재목인가’를 판단할 때에 그 나라 혹은 국가라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좁게는 왕실이요 넓게는 사대부까지였다.

그래서 전근대 시대의 바람직한 성군이란 것은 이러한 개념의 국가를 이끌어가고 또 번영시키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만약 ‘국가 바깥’에 있는 일반 백성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자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왕실 곧 국가의 이익을 해하는 자로 간주될 수 있었다.

물론 입으로는 백성을 위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발언이어야 했다. 백성들이 곤궁에 처해 민심이반이 우려될 때에나 혹은 백성들로부터 더 많은 물질적 자원을 수탈해야 할 때나, 또는 관료집단을 견제하기 위해 백성들을 ‘백그라운드’로서 거론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 애민이나 위민을 적당히 표방할 줄 아는 군주가 전근대 왕실이 생각하는 ‘현명한’ 군주였다.

전근대 동아시아 왕실의 그 같은 분위기는, 주식회사와 소비자 혹은 주식회사와 노동자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더욱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주식회사는 좁게는 최대주주·대주주나 경영진, 넓게는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이들이 상법상의 회사를 구성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노동자나 소비자도 주식회사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만, 이 둘은 회사의 구성원에는 끼지 못한다.

참고로, 노동자까지 상법상의 회사 구성원으로 생각하는 유럽 국가도 있지만, 아직은 그런 인식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노동자도 회사 구성원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회사의 법적 소유권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하는 상법에 따르면 노동자는 회사 구성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민주권론이 허상인 측면이 있듯이, 노동자를 회사의 주인으로 떠받드는 사측의 코멘트 역시 일정 정도는 허상인 측면이 있다.

그리고 주식회사는 소비자에게 상품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또 주식회사는 노동자에게서 노동력을 제공받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

이 경우, 주식회사는 어디까지나 회사의 이윤창출을 추구하지 결코 소비자나 노동자의 이윤창출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주식회사가 소비자 주권을 표방하는 경우가 있다 해도, 그렇게 하는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회사가 노동자의 복지를 위한다 해도 회사의 궁극적 목표는 어디까지나 회사 자신의 이윤창출일 뿐이다.

또 주식회사 대표이사의 자격을 판단하는 기준은 ‘누가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가’이다. 소비자나 노동자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소비자·노동자 입장에서는 훌륭한 사람일지 몰라도 회사측 입장에서는 도리어 해가 되는 인물일 것이다. 소비자나 노동자의 이익을 ‘적당히’ 표방하면서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줄 아는 인물이 주주나 경영진이 생각하는 ‘현명한’ 대표이사일 것이다.

여기서 주식회사는 국가, 최대주주는 왕실, 대주주는 공신그룹, 소액주주는 하위 지배층(사대부), 경영진은 국왕 및 조정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과 달리 상법상의 회사 바깥에 있는 소비자나 노동자는 전근대 시대의 백성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백성들은 행정서비스를 받는 대신 조세를 납부했다는 점에서 소비자에 비유될 수 있고, 국가의 보호를 받는 대신 요역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노동자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는 왕” 혹은 “노동자가 진짜 주인”이라고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경우에도 주식회사의 궁극적 관심은 어디까지나 회사의 이윤창출에 있듯이, ‘백성은 곧 하늘’이라며 백성을 떠받드는 경우에도 전근대 국가의 궁극적 관심은 왕실과 지배층의 이익창출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 따라 후계자도 선출되었다.

태종 시대에는 어떤 인물이 바람직한 임금이었을까?

전근대 역사에서 백성의 이익을 ‘진짜로’ 우선시한 군주들이 권좌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떤 이유를 이로부터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소비자나 노동자의 이익을 ‘진짜로’ 배려하는 대표이사가 주주들이나 경영진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 태종 시대의 왕실에서는 어떤 인물이 가장 바람직한 차기 ‘대표이사’로 인식되었을까? “자기 손에 피를 묻힌 태종은 다음 대에는 안정적 정치를 펼치도록 하기 위해 학자 스타일인 세종에게 보위를 넘기려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 인식에 불과할 뿐이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세력이 사라져서 국정이 그나마 안정된 것은 세종 대에 들어온 이후의 일이었다.

중앙에서는 ‘최대주주’에게 위협이 될 만한 대주주나 임원진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고 지방에서는 수많은 개미군단(재야의 반체제적 유림세력)이 회사 자체를 비토하고 있던 태종 시대에는 양녕처럼 강건한 인물이 바람직한 후계자감으로 인식되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왕실 앞에 놓인 위기상황을 타개하려면, 책 좋아하는 충녕보다는 ‘이방원 II’ 같은 양녕이 보다 더 바람직한 후계자로 인식되었다고 보는 것이 이치적일 것이다. 

왕실이 여전히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위민·애민을 입에 달고 사는 왕자가 있었다면, 그런 왕자는 주변의 칭찬을 받는 게 아니라 근심어린 시선을 받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양녕이 자책골만 넣지 않았다면, 학자 스타일의 인물이 태종 말년의 분위기에서 후계자로 부각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주식회사 조선왕조의 ‘최대주주’인 왕실의 이익을 가장 잘 보호해줄 수 있는 강건한 인물이 가장 바람직한 ‘대표이사’ 재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종처럼 ‘소비자’나 ‘노동자’를 위하는 ‘대표이사’가 왕실에서 성군 재목으로 지목되었을 것이라는 관념은 당시의 실제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강조했듯이, 소비자나 노동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대표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성군과 과거의 왕실이 생각하는 성군은 이처럼 서로 판이하게 달랐다.


태그:#대왕세종, #세종, #충녕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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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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