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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 왜 이명박에 '쓴소리' 던졌나
ⓒ 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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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향후 5년간 한국을 잘 이끌어갈 거라고 보세요?"

질문을 받은 예순둘 소설가의 눈빛이 잠시 허망하게 흔들렸다. 1972년 데뷔한 이래 36년간 '문장'과 '그림'에만 열정과 애정을 쏟아온 이외수.

갑작스레 받은 '정치'와 관련한 질문은 당혹스럽고, 그러기에 피해가고 싶기도 했을 법하다. 허나, 잠시의 망설임 후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의외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처음으로 인간세계에 존재하는 정치의 의미를 어렴풋이 실감한 것 같네요.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오늘까지 한국의 정치가 내 기대에 부응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이명박 당선인이 잘 한다면 박수와 칭찬을 아끼지 않겠죠. 허나, 부정과 비리·부패가 또 다시 반복된다면 작가의 양심에 따라 냉철하게 지적하겠습니다."

'예술지상주의자' 이외수는 왜 이명박을 비판했나

소설가 이외수.
 소설가 이외수.
ⓒ 오마이뉴스 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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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둔 지난해 12월. 소설가 이외수가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각종 정책과 그간의 행적을 비판하며 '정치적 발언'을 쏟아냈을 때 이를 의아해하는 독자와 네티즌들이 적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작가' 혹은, '예술지상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명박 비판'은 수위가 높았고, 명망을 지닌 작가라면 지니기 마련인 '조심스러움'마저 배제한 단호한 것이었다. 이외수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oisoo.co.kr)에 게재됐던 몇몇 대목을 옮겨와 본다.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분이 국어와 국사를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십니까?"(이 당선인이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나 국사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면 어학연수를 안 가도 영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 말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를 지적하며)

"경제를 살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돈만 잘 벌어 오면 도둑질을 하건, 오입질을 하건, 상관치 않으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들이십니다."(도덕성보다 경제부양 능력이 중요하다는 이명박 지지자를 비판하며)

"BBK를 본인이 설립했다고 말씀하실 때의 입술도 네거티브 전문가들에 의해 조작된 거라고 우기실 건가요? 희생자가 무려 5200명이나 되는 금융사기사건에 연루되신 분께서 대통령을 하시겠다니….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토록 무지몽매해 보이셨습니까."(이른바 '이명박 강연 동영상'이 공개된 후)

위와 같이 거침없는 의견 피력으로 사람들의 지지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그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한창인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있을지 알고 싶었다.

또,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한국 최고의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은 이외수의 '예술적 근황' 역시 궁금했다. 이런 의문을 품은 채 그의 작업실이자 살림집인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을 향해 동료와 차를 몰았다.

손에 잡힐 듯 내려앉은 겨울하늘 아래 싸락눈 흩날리는 강원도 산골마을은 적요했지만, 바로 그 고요함이 선물한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래는 별과 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과 벗해 살고 있는 이외수를 만나 전해들은 이야기를 '정치' '예술' '생활'이란 세 개의 키워드로 정리한 것이다.

[정치] "한글이 모독받았다고 생각했고, 화가 났다"

'천상 예술가'였던 이외수가 어울리지 않는 '정치평론가'적 태도를 취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는 이명박 당선인의 '국어와 국사 영어 강의 발언'이 "한글을 모독한 것"이었고, 그 때문에 "실망하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나는 한글로 글을 쓰며 살아온 사람이고, 그런 까닭에 누구보다 우리글을 사랑합니다. 한글의 우수성은 유엔의 의뢰를 받아 연구를 진행한 권위 있는 언어학자들도 이미 인정한 바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자부심이지요. 그런데, 이 당선인의 발언은 그의 문화, 교육, 역사 인식을 의심케 했습니다. 실망스러웠지요. 하지만, 더 놀란 건 내 의견이 알려진 후 이를 곡해해 인신공격을 하던 일부 지지자들의 태도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내 외모까지 들먹이며 욕설을 하더군요."

이외수는 최근 한나라당에서까지 '월권 지적'이 나오고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행보와 향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몇몇 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주저 없이 털어놓았다. "돈만 많다고 선진국이 된다고 믿는다면 그건 착각"이라는 말과 함께.

"국민의 의견을 존중하며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데 최근 모습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대운하 건설 추진방침 등을 보면 조급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고요. 또한, 건설관련 예산은 증가하는 반면 복지예산과 교육예산이 삭감될 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아직도 한 달 몇십 만원으로 어렵게 연명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요.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야박해 보여서 걱정됩니다."

"소설가가 소설이나 쓰지 왜 정치에 관여하는가"라는 비난도 있음을 전하자 "밥상 위에 썩은 음식이 올라왔는데, 그걸 그냥 먹는다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겠습니까"라는 다분히 문학적인 반문을 던진 이외수는 이명박 당선인과 정치 관련 뉴스를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내고 있는 언론에도 당부와 격려를 잊지 않았다.

"신문과 방송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보는 일입니다. 언론은 사회를 발전시킬 수도, 퇴보시킬 수도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소중한 존재지요. '도덕은 시궁창에 보내도 경제만 발전시키면 된다'는 위험한 논리를 펴서는 곤란합니다. 이에 더해 개인적 바람을 말하자면 언론이 문화·예술의 발전에도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어요."

예술과 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는 물론, 한국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솔직담백하게 들려준 이외수.
 예술과 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는 물론, 한국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솔직담백하게 들려준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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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내 그림이 나눔을 실천하는 방편으로 사용되길 바란다"

장편 <꿈꾸는 식물> <장수하늘소> <칼> <들개> <벽오금학도> <장외인간> 중편 <겨울나기> 단편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등으로 대표되는 이외수 소설의 매력은 '절망 속에 내재된, 절망을 뛰어 넘는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때론 우울과 슬픔, 한편으론 눈물과 연민으로 수백만 독자들에게 다가섰던 작품들. 그는 이제 어떤 소설을 꿈꾸고 있을까?

"소외, 어둠, 방황이 내 초기 소설들의 주제였습니다. 주인공 대부분이 불행했지요. 어떤 독자들은 책을 읽고 절망과 좌절을 흉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닦으며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부터는 구원의 문제를 작품 속에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벽오금학도>가 그 시작이었지요. 이젠 '행복'이 무엇인가를 모색해보고 싶습니다. 행복의 본질이 뭔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보려고요."

인터넷을 통해 젊은 감각을 호흡하고 있다는 이외수는 '주 종목'인 소설 외에 '그림'으로도 일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먹을 찍어 한 획에 세상사 시름과 고뇌, 환희와 열망을 표현하는 그는 자신의 그림이 '나눔을 실천하는 작은 수단'으로 쓰이길 원하고 있었다.

"글과 그림을 두루 하고 싶어요. 두 가지를 통해 '잘 놀다간 사람'으로 평가받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글은 내 생활을 해결해주는 방편이니, 그림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으면 합니다. 먹에는 고결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에 그림은 수행과 다름없다고 느끼고 있지요. 이제껏 개인전을 3차례 정도 했는데, 그림 가격이 300만~400만원 정도 됐습니다. 그건 모두 청소년가장 돕기에 쓰고 있어요. 내 수행이 누군가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즐겁습니다."

언필칭 '문화권력'의 근거지이자 활동구역으로 불리는 유명 문예잡지들과는 일정의 간격을 두고 작품을 써 온 이외수. 그는 "작가와 독자, 출판사가 있으면 소설을 쓰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말한다. 문예지의 힘과 평론가의 펜 끝에서 흔들리는 유약한 문인들이 흔한 세태에서 보기 드물게 당당한 태도다. 그렇다면, 그에게 '소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소설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굳이 이야기하자면 전봇대 같은 것 아닐까요? 비판자들에겐 오줌 누기 좋은 지저분한 기둥에 불과하겠지만, 그 위에 걸쳐있는 전깃줄을 통해 인간세계의 정신과 내면을 밝혀주는…."

[생활] "예술영화 하겠다는 아들을 지지한다"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 이외수의 작업실.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 이외수의 작업실.
ⓒ 오마이뉴스 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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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S 오락프로그램 '1박2일'에 출연해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생소하게 여기는 10대들에게도 친숙해진 이외수. 그는 '순수예술은 고귀하고, 대중예술은 천박하다'는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고, 인간이 구가하는 아름답고 즐거운 행위 모두가 예술"이란 생각을 지녔기 때문이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구분은 무용하고,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외수의 큰아들은 예비 영화감독이다.

7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중국에서 영화관련 공부를 하며 단편영화를 연출해온 그는 현재 <주먹이 운다> 등을 만든 류승완 감독 밑에서 실전경험을 쌓고 있다.  

"아들이 예술영화를 고집하고 있어 불안합니다.(웃음) 하지만, 나는 아들의 지향을 신뢰하고 그 길이 옳다고 생각하며 지지합니다. 작은아들요? 내 곁에서 '감성마을'의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술경영 공부도 하면서요."

두 아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애정을 드러내며 웃는 그에게 내처 아내에 대해서도 물었다. '넉넉하지 않은 소설가의 반려자'로 오랜 세월을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왔기에 '동지'라 불러도 좋을 사람에 관해 그가 이야기한다.

"사실 나는 글만 쓰고 생활에 관련된 모든 문제는 아내가 해결합니다. 우리 집의 실권자인 셈이지요. 경제권도 아내가 가졌습니다(웃음). 2년 전 여기로 옮겨오며 시골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생존의 전장인 도시와 달리 이곳은 아직도 공동체의 훈훈함이 남아있는 곳이지요. 나는 물론 아내도 가난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게다가 여긴 돈 쓸 일이 거의 없는 곳이니 그 가난이 불편하지도 않아요."

채광 좋은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이외수가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그는 벌써 4년째 여름과 겨울 두 차례 문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매번 40여 명이 참석하는 꽤 큰 규모다.

그는 이 강좌를 무료로 열고 있다. 강의가 있을 때면 수강생들 덕분에 시골마을이 젊은 활기로 넘친다. 오후에 시작된 수업이 끊임없는 토론으로 이어져 새벽까지 계속되는 날도 있다고 한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움을 이룬다". 이외수와 수강생들의 구호다.

[남은 이야기] "'나쁜 놈'이 없어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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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다. 62년이란 녹록하지 않은 세월을 예술과 함께 지내온 이외수에게 "올해 사라졌으면 좋을 것 한 가지와 꼭 필요한 것 한 가지만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필요한 거요? 물질만 중시하는 게 아니라, 정신도 귀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제발 '나쁜 놈'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나쁜 놈'이냐고요? 자기만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죠."

이외수의 집 '감성마을'에는 매달 250여 명, 한해 3천여 명의 사람이 찾아온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럼에도 그는 이들을 누구 하나 홀대하는 법이 없다.

이러한 태도는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 사람에게서 길을 찾는다'는 진리를 알고있는 자만이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닐까. 그렇다. 이외수는 분명 '자기만 잘 되길 바라는 나쁜 놈'이 아니었다.


태그:#이외수, #감성마을, #강원도 화천, #이명박, #예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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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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