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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로, BBK 전 대표인 김경준씨가 16일 국내로 송환돼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하고 있다. 김씨가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려하자 수사관이 제지하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로, BBK 전 대표인 김경준씨가 16일 국내로 송환돼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하고 있다. 김씨가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려하자 수사관이 제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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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증거로 보기엔 적절치 않다."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검사의 말이다. 검찰은 이처럼 태연했다. '이명박 강연 동영상'이 공개된 뒤 정치권을 비롯한 시민사회 진영이 발칵 뒤집혔는데도 검찰은 지난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떳떳하다는 뜻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BBK 사건의 의혹을 풀 수 있는 핵심 당사자다. 유력 대권후보이기 이전에 BBK 사건의 실체적 진실 여부에 따라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사법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이 후보에 대해 '서면 조사'에 그쳤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서 인용했던 부분 중의 하나는 소위 "이 후보가 'BBK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발표문에 이를 언급했던 것은 검찰이 이 후보에 대해 면죄부를 준 주요 이유 중의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명박 강연 동영상'은 핵심적인 증언자의 한 명이었던 이 후보의 진술 번복과도 같은 중대 사안이다. 이에 대해 '나의 수사결과는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는 식의 즉자적인 검찰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바야흐로 특검 정국이다. 삼성 비자금 특검에 이어 17일 오후 BBK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물론 검찰의 입장에서 특검은 달갑지 않다. 홍만표 법무부 홍보관리관은 이날 오전 10시 BBK 특검법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특검법 자체가 헌법정신과의 충돌, 실효성과 비용들의 문제점이 있다"며 "법치주의의 정착과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권익 보호를 사명으로 하는 검찰 기능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정치적인 이유로 검찰의 신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일이 더 이상 없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BBK 특검법을 불러들인 것은 검찰이었다.

새로운 증거 속속 등장... 그러나 검찰은 정치적 공세로만 판단

정봉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LKe뱅크가 BBK 지분을 100% 소유했음을 입증할 김경준 자필메모를 감췄다. 이명박 후보를 무서워하는 검찰이 메모 내용을 숨긴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정봉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LKe뱅크가 BBK 지분을 100% 소유했음을 입증할 김경준 자필메모를 감췄다. 이명박 후보를 무서워하는 검찰이 메모 내용을 숨긴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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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홍보관리관의 말은 얼마 전 김수남 삼성 특별수사 · 감찰본부 차장검사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김 차장검사는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 오전 브리핑에서 "특검법은 국민들이 그 사건이 우리, 기존 검찰의 관할이 아니다고 하는 것"이라며 "검찰에 몸을 담고 있는 저로서는 답답하다"고 토로한 적 있었다.

김 차장검사의 말처럼 특검법은 국민이 검찰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BBK 수사결론이 발표된 직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이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검찰은 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검찰이 자신을 회유하고 협박했다"는 진위 파악도 안 된 '김경준 메모' 때문이라고, 대선 정국에서 각 당들이 자신들의 정략적 목표를 위해 여론몰이를 했기 때문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은 자신들에게 뒤집어씌워진 '의혹의 오물'들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가 적어도 두 번은 더 있었다.

우선 BBK 지분 소유 관계가 설명된 김경준의 자필메모에 대한 검찰의 설명이다. 처음 검찰이 공개한 자필메모는 단 1장이었다. 이 메모에는 김경준이 만든 종이회사인 BBK BVI가 BBK의 지분 100%를 소유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검찰은 지난 5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메모가 "2001년 2월에 작성됐고 김경준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넘겨받아 김경준이 직접 자신이 작성했다는 진술까지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또 이것이 BBK가 김경준의 1인 회사라는 증거 중 하나라며 기자들에게 복사본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정봉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검찰이 발표한 메모와는 다른 내용의 자필메모를 공개했다. 정 의원이 공개한 메모에는 "LKe뱅크가 BBK BVI의 지분 100%를 매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LKe뱅크가 BBK의 지주회사라는 김경준의 주장과 맞아떨어진다.

최재경 특수1부 부장검사는 이에 대해 "메모 작성 시점과 장소도 밝히지 않고 '검찰이 은폐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 훼손"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도 지난 16일 "신당에서 내놓은 자필메모는 제출받은 적도 없고, 존재를 안 적도 없다"며 "자필메모가 있다고 해서 그 이면에 진행된 일이 있어야 신빙성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검찰이 새로운 메모에 대해 '정치적 공세'로만 대응하면서 검찰의 답변 뒤에는 물음표가 어김 없이 따라 붙었다. 왜 검찰은 정 의원에게 메모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나. 또 제출받지 않은 메모 뒤에 진행된 일이 없다고 어떻게 확답할 수 있나.

"피의자가 자인한 진술이 나왔다면 당연히 수사해야"

지난 2000년 10월 17일 광운대 최고경영자 과정 특강에서 이명박 후보 강연 내용을 담은 동영상 화면. 16일 대통합민주신당이 공개한 이 동영상에 따르면, BBK를 이 후보가 설립했다는 발언이 담겨있어 그 파장이 주목된다.
 지난 2000년 10월 17일 광운대 최고경영자 과정 특강에서 이명박 후보 강연 내용을 담은 동영상 화면. 16일 대통합민주신당이 공개한 이 동영상에 따르면, BBK를 이 후보가 설립했다는 발언이 담겨있어 그 파장이 주목된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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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공개된 '이명박 강연 동영상'에 대해 내놓은 검찰의 답변에도 물음표는 생겼다.

김 차장검사는 16일 긴급 브리핑을 두 차례나 열어야 했다. 지방에 있던 최 부장검사도 급하게 올라왔다. 그러나 "기존 인터뷰와 동영상 내용과 다를 것이 없어 새로운 증거로 보기에 적절하지 않다"며 "검찰은 5천900여개의 복구된 컴퓨터 파일 분석과 자금추적, 참고인 진술 등을 통해 BBK투자자문이란 회사는 1999년 4월27일 김경준이 단독으로 설립해 운영해온 `1인 회사'라는 점이 객관적 물증으로 입증된 상태"라고 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그러나 민변 관계자가 내놓은 답변은 이와 달랐다.

"BBK 실소유주가 누구냐 하는 문제가 수사의 핵심사안인 가운데 피의자가 자인한 진술이 나왔다면 당연히 수사가 들어가야 한다. 더군다나 육성이 담긴 동영상 아닌가."

검찰은 BBK 실소유주 문제를 확정지으며 의혹이 된 명함이나 인터뷰에 관해서는 "객관적 물증에 의해 사실관계가 확정됐기 때문에 더 이상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이 후보가 스스로 BBK를 설립했다고 밝힌 <일요신문>, <중앙일보>, <동아일보>, <월간 중앙> 등의 인터뷰에 대해 "BBK의 소유관계를 확정하는 것은 객관적인 물증이다"며 "이 수사는 말로 결정될 수 있는 수사가 아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강연 동영상'은 그동안의 인터뷰들을 '오보'라고 했던 이 후보의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줬다. 더불어 이달 초 검찰의 서면조사에서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고 인터뷰한 기억은 없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던 이 후보의 답변도 거짓임이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동영상이 조작됐을 가능성은 오늘 이 후보가 광운대에서 특강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라졌다.

그런데도 검찰은 "새로운 증거로 보기 적절하지 않다"며 수사 가능성을 닫았다.  

검찰의 수사대로라면 분명 김경준의 회사가 분명한 BBK를 왜 이 후보는 여러 번에 걸쳐 자신이 설립했다고 한 것일까. 검찰은 자신이 스스로 BBK를 설립했다고 밝히는 이 후보를 다시 수사할 필요성을 정말 느끼지 못했을까. 사람들은 검찰이 밝힌 BBK의 법적 소유 관계 이면의 다른 진실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진실을 향한 갈증 ... 특검만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BBK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 검사가 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6층 브리핑실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던 도중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있다.
 'BBK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 검사가 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6층 브리핑실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던 도중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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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BBK 수사결과가 발표될 때, 최 부장검사는 "더 이상 수사 검사로서의 궁금증은 없다"라고 말했다. 김 차장검사는 "검찰은 의혹을 해소하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 날부터 오히려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더 커져갔다. 서울중앙지검의 정문 앞에서, 광화문과 명동 거리에서 사람들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 않고 검찰이 무엇을 수사했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적어도 검찰이 김경준의 송환 이후 짧은 기간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온 힘을 기울여 수사한 점은 인정한다. 지금도 검찰은 특검이 되더라도 더 이상 새롭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토록 진실을 향한 갈증이 깊어질 때, 검찰이 그것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며 등을 돌려버린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결국 검찰이 국민들에게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특검만이 해결책이라고 '권유'한 셈이다.


태그:#BBK, #이명박 강연 동영상, #BBK 특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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