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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난 지 9일째 되는 날.


어제(15일) 태안 의항리(십리포)에 다녀왔습니다.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해안가에서 기름제거 작업을 하고 왔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물(헌옷, 작업복 등)을 챙겨 부평역에 6시 20분께 도착해 태안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지난 금요일(7일) 사고 소식을 듣고 한주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아, 인천녹색연합에서 기름제거 작업을 위해 마련한 녹색지킴이 모집에 신청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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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기름바다를 녹색의 손으로 살려내자!
- 싸움 잘하는 힘 좋은 국회의원들 모두 잡아다, 기름바다 방제작업에 투입해라!!

새벽 인천 부평역에서 태안 의항리로 출발~도착

빗속을 3시간여 달린 버스는 태안에 도착해, 거센 파도와 함께 검은 기름띠가 밀려온 구름포 해수욕장을 지나 태안 소원면 의항리 개목항(십리포, 의항리 해수욕장)로 향했습니다. 비좁은 길과 한적하던 어촌 마을 곳곳에는 방제작업에 동참한 사람들을 태운 버스들로 가득했습니다. 도착하기 30분 전에는 버스 안에서 기름제거 작업을 하게 될 의항리에 대한 소개와 기름이 남북으로 확산되고 있어 안면도도 천수만도 위험하다는 기름유출 사고 현재 상황과 기름제거 작업간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참고로 호흡기 질환이나 감기 기운이 있는 분은 방제작업을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저도 목감기 기운만 있어 전날 약을 먹고 참가했지만, 기름제거 작업간 숨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유독물질이 섞여 있는 검은 기름에서 피어오르는 기름 냄새 때문에 두통도 일으켰습니다. 하루 쉬었는데도 머리가 아픕니다. 지역 어민분들은 더욱 심할 텐데 매일 같이 기름제거 작업에 나서고 계십니다.

 

아무튼 의항리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버스에서 맨발채로 내린 사람들은 방제복과 장화,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전날 기름제거 작업을 했던 자원봉사자들이 벗어놓은 방제복을 재활용했습니다. 인솔자를 따라 기름방제 작업을 하러 간 곳은 바위와 자갈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해안가였습니다. 흡착포 박스를 짊어지고 현장으로 향하는 길에 죽음의 검은빛으로 변해버린 바다와 해안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고 소식으로 답답했던 마음은 눈앞에 검게 변해버린 바다를 보고는 더욱 답답해졌습니다.

 

▲ 새벽 인천 부평역에서 태안 의항리로 출발~도착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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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기름제거 오전 작업 실시, 12시까지

 

인천 시민들(80여명)이 함께 기름제거 작업을 한 곳은 사람들의 손길이 채 미치지 못한 바위와 자갈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었습니다. 썰물과 밀물이 반복되면서 해안가로 밀려든 기름띠들은 바위와 자갈 표면을 검게 더럽혔고, 바위와 돌 틈 사이로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현장에 줄지어 도착한 사람들은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흡착포와 헌옷가지들로 곳곳에 퍼져 바위와 자갈에 달라붙어 검은 기름때를 닦아냈습니다.

 

바위와 돌, 모래 틈에 깊숙이 밴 기름들은 잘 닦이지 않았지만, 검은 기름범벅이 된 현장의 참혹한 모습에 침울하고 답답했지만, 다들 쉼 없이 녹색의 손을 움직였습니다. 사람들의 욕심과 오만으로 죽어버린 바다가 다시 되살아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고약한 기름 냄새에도 아랑곳 않고 닦고 닦고 또 닦아냈습니다. 한 방울이라도 더 기름을 닦아내고 걷어내기 위해 거센 바닷바람과 기름바다에 맞섰습니다.

 

묵묵히 곁에서 기름제거 작업을 하던 인천녹색연합 활동가와 시민은, 검은 기름을 뒤집어쓰고 한데 모여 죽어 있는 고동들을 보고는 안타까워했습니다. 힘겹게 목숨 줄을 붙잡고 있는 고둥을 바라보는 눈은 너무나 슬퍼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도 잠시 더 큰 슬픔과 죽음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헌옷가지로 바위를 문질러댔습니다.

 

▲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기름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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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손길과 이를 돕는 자원봉사자들! 고맙습니다!

 

물때에 맞춰 기름제거 작업을 할 수밖에 없어, 제일 먼저 의항리에 도착해 기름제거 작업에 나선 인천시민들은 12시까지 오전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마을로 향했습니다. 인천녹색연합에서 점심으로 김밥을 준비해 왔는데, 녹색의 손길을 돕는 자원봉사단체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했다고 하더군요.

 

점심 급식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각 단체별로 시간대를 나눠서 실시했습니다. 점심은 육개장 국물에 만 밥과 김치였습니다. 방제작업에 동참한 자원봉사자들은 기름 묻은 손으로 국밥과 사발면을 받아 서거나 쪼그려 앉거나 땅바닥에 둘러앉아 서둘러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고 잠시 쉬었다가, 기름제거 작업에 사용할 헌옷가지들을 챙겨 다시 바다로 나갔습니다. 자투리 천을 한아름 안고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자원봉사자 여러분 고맙습니다'란 현수막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몇몇의 잘못 때문에 수많은 바다생명과 어민들의 삶이 끝장나 버렸는데도, 그 책임을 회피하고 어떤 도움의 손길도 내놓지 않는 그들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 녹색의 손길과 이를 돕는 자원봉사자들! 고맙습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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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오는 검은 바닷물 뒤로 한 채 돌아가는 무거운 발걸음

 

점심 이후 밀물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손길은 더욱 바빠졌습니다. 또다시 역한 기름 냄새로 머리가 아파왔지만, 다들 쉼 없이 바위와 자갈에 묻은 검은 기름을 걷어냈습니다. 열심히 닦아낸 그 자리를 다시 검은 바닷물이 들이닥쳐 기름범벅이 되겠지만, 다들 혼신을 다했습니다.

 

오후 3시30분 경 바닷물이 코앞까지 밀고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이날 기름제거(방제) 작업을 마쳐야 했습니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것보다 기름으로 뒤덮인 이 죽음의 바다를 놓아두고 떠나야 하는 착잡함에 발걸음이 더욱 무거웠습니다. 기름제거 작업 현장을 뒤돌아보면서, 점심을 건네주시던 자원봉사자분이 '밥 맛있게 드시고 기름 많이 닦아주세요!'라고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 밀려오는 검은 바닷물 뒤로 한 채 돌아가는 무거운 발걸음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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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검은 씨를 바다에 뿌린 그들을 문책하라!

 

기름으로 얼룩진 방제복과 무거운 장화를 벗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검은빛으로 가득한 의항리 앞바다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태안 앞바다뿐만 아니라 안면도와 인천 덕적군도 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기름유출 사고, 너무나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번 기름유출 사고, 최악의 해양오염 사고를 일으킨 원인제공자들(삼성중공업, 현대오일뱅크)은 아무 말도 없고, 어떤 복구대책과 지원, 피해보상도 보이질 않습니다. 정부와  기성언론들도 기름유출 사고의 문제점이나 사고주체에 대한 책임 추궁을 하기보다, 기름유출 방제작업에 나선 사람들의 모습과 절망하고 있는 피해 어민들의 모습만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태안 앞바다에 재앙의 검은 씨를 바다에 뿌린 그들을 저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사회공헌, 환경경영을 외쳐왔지만, 정작 이번 사고에 대한 자신들의 잘못과 죄를 인정치 않고 면피에만 급급한, 그들의 뻔뻔함과 오만방자함에 치가 떨립니다. 그런 그들을 대신해 바다를 치유하고 어민들을 돕기 위해 녹색의 손길을 내놓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역겨운 기름냄새를 맡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전무죄라 했던가요? 돈 있고 힘 있는 이들은 죄를 지어도 그 죗값을 지지 않는 세상이 더 답답하기만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기름유출사고, #태안의항리, #자원봉사, #기름제거, #방제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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