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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에서 가장 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가 5일 앞으로 다가왔고, 유권자의 선택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총 3700만 유권자의 선택을 좌우할 변수 중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할 점은 후보자가 당선 시 정책으로 실천할 '공약'이다.

 

많은 공약 중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후보들 간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 금산분리 문제를 다룬 방송 3사의 보도를 모니터했다.

 

'금산분리 완화'는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금산분리 정책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지, 후보별로 금산분리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나아가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다. 뉴스 보도는 단순한 공약 나열이 아닌 심층 분석을 통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보도가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금산분리에 대해 정동영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10월 18일부터 12월 12일까지 방송 3사의 관련 보도는 총 15건에 그쳤다. SBS, MBC는 각 4건, KBS는 7건의 보도에서 금산분리 공약을 다뤘다. (<표1> 참고)

 

 

금산분리에 대한 각 후보의 찬반 주장을 단순 전달한 보도가 3건, 금산분리 공약을 비교·분석한 보도는 3건(MBC 2건, KBS 1건)뿐이었다. SBS는 금산분리 공약에 대해 비교·분석한 보도가 1건도 없었다. 그 외 9건의 보도가 선거운동스케치 유형의 보도에서 다른 공약이나 유세 발언을 나열하며 금산분리 관련 정책을 한 두 마디 언급한 것이었다. 두 달간 KBS, MBC가 각 2건, 3건의 보도에서 금산분리 공약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금산분리 내용 설명엔 ‘소홀’

 

‘금산분리’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서로 지배·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다. 금융의 주요역할 중 하나가 기업 투자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감시하는 것인데 기업과 금융이 하나로 결합된다면 이런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금산분리의 원칙을 정하고 재벌의 은행소유를 금하고 있다. 금산분리를 완화하고 재벌이 은행까지 가지게 될 경우 재벌이 휘청거릴 때 은행은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국민경제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은행의 재벌 사금고 전락은 이미 IMF 당시 그 위험성을 체험한 바 있다. 또한 금산분리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은행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우리은행’의 관계를 보면 은행의 재벌 사금고 전락이 과장된 얘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금산법은 재벌총수 일가가 고객의 돈을 이용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것도 핵심이다. 삼성의 경우 삼성에버랜드라는 산업자본이 삼성생명이라는 금융산업 자본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라는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구조를 가지고 이를 기반으로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투명성과 효율성에 지속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금산분리 문제가 이렇게 복잡한 사안임에도 금산분리에 대해 그 내용을 설명한 보도는 MBC <뜨거운 쟁점>(10.19) 1건 뿐이었다. 이 보도에서 엄기영 앵커는 금융-산업 분리의 줄임말이 ‘금산분리’이고, 금산분리는 재벌 같은 대기업들이 은행 대주주가 되는 걸 제한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김수진 기자도 “금산분리는 산업자본, 즉 대기업이나 재벌이 금융자본인 은행의 지분을 4% 이상 갖지 못하도록 한 제도”라고 덧붙여 이해를 도왔다. 이를 제외한 다른 보도는 대부분 복잡한 금산분리를 단 한 줄로 정리하거나, 아예 설명자체를 하지 않는 등 매우 소홀한 태도를 보였다. (<표 2> 참고)

 

<표 2> 방송 3사 보도 중 ‘금산분리 내용’을 소개한 멘트

․“재벌의 금융업 진출제한인 금산분리” - KBS <공약비교 (경제)>(10.22) 중

 

․“재벌 같은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는데…” - KBS <금산분리>(11.13) 중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 - SBS <경제 정책 맞대결>(10.18) 중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는 이른바 금산분리원칙” “금산분리는 재벌 같은 대기업들이 은행 대주주가 되는 걸 제한하는 제도인데 그 쟁점은 무엇인지” “금산분리는 산업자본, 즉 대기업이나 재벌이 금융자본인 은행의 지분을 4% 이상 갖지 못하도록 한 제도” - MBC <뜨거운 쟁점>(10.19) 중

 

금산분리 사실 호도할 수 있는 보도 많아

 

금산분리 공약을 비교·분석(3건)하거나 후보별 찬반입장을 단순히 소개한 보도(3건)도 문제가 있었다. 대부분의 보도가 금산분리를 폐지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국부유출을 막기 위해”, “해외자본에 은행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금융자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라는 근거를 비중 있게 보여주며 “감독을 강화하면 된다”는 입장을 함께 전했고, 금산분리 유지를 주장하는 측에 대해서는 “특정재벌 편들기”, “사금고 전락” 등의 주장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KBS <공약 비교(경제)>(10.22)는 두 후보의 금산분리 입장이 ‘완화’와 ‘고수’로 맞서고 있다며 “이 후보는 국부유출을 막기 위해 재벌의 진입을 봉쇄하기 보다는 엄격히 사후 감독해야 된다”는 주장을 전했다. 이어 “반면 정 후보는 재벌이 금융사까지 소유하면 강자만 살아남는 경제 구조의 왜곡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11월 13일 <금산분리>라는 제목의 보도는 금산분리 완화 공약이 이인제 후보의 대표 공약이라며 이를 설명하고 각 후보들의 입장을 나열했다. 이명박 후보가 제기해 쟁점이 됐던 공약이라는 점에서 이인제 후보의 주요 공약으로 이를 점검한 것은 의외다. 이 보도는 “국내 기업의 은행투자로 금융 산업을 발전시키고 해외자본으로 넘어가는 은행을 지킬 수 있다”며 “재벌이 은행을 사금고화 하는 등의 부작용은 감독 강화를 통해 막을 수 있다”는 이인제 후보의 주장을 전했다. 이어 “이명박 후보도 금산분리 완화에 찬성 입장”이라고 간단하게 언급했다. 반면 금산분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후보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특정 재벌 편든다”, “재벌을 위한 것으로 폐지에 절대 반대” 등의 입장을 소개했을 뿐이다.


SBS도 <경제 정책 맞대결>(10.18)에서 두 후보가 금산분리에 정반대 입장을 보인다며 이 후보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산업자본의 참여를 원천적으로는 봉쇄할 필요가 없다”는 발언을, 정 후보는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는 특정 재벌을 편든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발언을 내보냈다.


MBC <상반된 경제관>(10.18)도 “이 후보는 기업의 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해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해야 한다”며 “감독을 철저히 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때가 됐다”는 이 후보의 발언을 전했고, “정 후보는 특정재벌 편들기가 될 수 있다”며 “10년 전에 재벌들이 종금사를 소유하고 사금고화 함으로써 외환위기의 발단이 됐던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정 후보의 발언을 전했다.

 

11월 9일 <재벌 정책>이라는 보도는 서두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을 팔려고 내놨지만 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수 없어 론스타 같은 외국자본에 넘겨줄 수도 있다”며 금산분리 반대론자들의 입장에서 금산분리 정책을 설명했다. 이어 “이명박, 이인제 후보는 기업이 은행을 가지더라도 감독을 강화하면 된다”는 입장을 전하고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후보는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가 소개했다.


모든 보도가 찬반입장을 단순전달하며 이를 해석하거나 검증하지 않았고, 찬반양론을 전하면서도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후보 등 금산분리 찬성입장은 “재벌 편들기 반대”를 주요 근거로 부각하고, 이명박, 이인제 후보 등 금산분리 반대 입장은 “국부유출 방지, 금융산업 발전, 기업발전” 등을 주요 근거로 부각했다. 금산분리 찬반에 대한 검증 뿐 아니라 찬반  양론을 다루며 근거 있는 양측 반박을 다룬 보도도 거의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금산분리’ 찬성공약은 ‘규제’라는 부정의 의미로, 반대공약은 ‘발전’이라는 긍정의 의미로 표현하여 가치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언뜻 들으면 특정재벌을 편들고 있다는 주장보다는 감독을 잘해서 국내자본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부 유출을 막는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대선시민연대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금산분리를 유지하더라도 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수 없어 론스타 같은 투기자본에 우리은행을 넘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규상 외국인도 3대 금융업종을 하는 회사가 아니면 은행을 인수할 수 없고, 국내 금융자본보다 더 많은 제약이 있다. 물론 국민은행 같은 큰 국내 금융자본이 우리은행을 인수할 수 있다. 

 

또 ‘특정재벌 편들기’라는 이유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금산법을 어기고 있는 기업이 ‘삼성’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특정재벌 편들기라는 언급만을 내보냈을 때 유권자들은 이를 어떻게 판단할까. 또 금산분리가 완화될 경우, 다른 재벌들도 금융자본을 소유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재벌의 사금고 전락’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 없이 ‘재벌 편들기’ 주장만 부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후보 등 반대론자들이 펼치는 ‘감독권 강화’로 해결 가능하다는 주장도 허구적이다. 이미 다른 법에서 이명박 후보가 주장하는 감독기능이 이뤄지고 있고, 이 규정을 강화하려고 하자 한나라당은 이를 반대하기도 했다. 사실상 아무런 보완책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명박 후보를 비롯해 금산분리 반대론자들이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사실을 교묘하게 호도해 재벌기업의 입장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데 불과하다. 이를 제대로 검증하거나 이에 대한 찬성론자들의 반박을 보도하지 않는 것은 왜곡된 사실을 유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쟁점에 대한 찬반입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줘 유권자들의 이해를 도운 보도도 있었다. MBC <뜨거운 쟁점>(10.19)은 “대기업이 주주가 될 수 없도록 한 규제 때문에 국내기업이 역차별을 받고, 우리은행을 외국자본에 넘겨줘야 한다”는 이 후보와 같은 금산분리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대기업을 배제하더라도 국민은행 등 대형은행이 매수에 나설 수 있고, 선진국에 금산분리가 시행되고 있다”는 반대 주장을 소개했다. 또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금산 분리를 완화해야 한다”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전하고, “삼성이 삼성생명을 세계적인 보험회사로 만든 건 아니다. 오히려 재벌들의 은행을 총수의 사금고로 만들어 경영권을 세습하는 데 악용할 것”이라는 찬성론자들의 입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한 찬반양론을 제대로 들려준 것이다.

 

금산분리 보도 중 삼성과의 연계성 여부성 언급조차 드물어

 

지난해 말 금산법이 개정 될 때 논란의 핵심은 삼성의 소유·지배구조였다. 삼성은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중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는 금산법의 영향을 받는 금융기관으로 금산법 개정당시 이미 법을 위반한 상태였다.

 

작년 12월에 개정된 금산법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2.26%는 2009년부터 의결권이 제한된다. 또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20.64%는 2007년부터 의결권이 제한되고 5년 내에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금산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의 영향을 받아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가 약화되고 지배구조변화가 불가피해진다. 삼성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자본과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자본 그룹으로 나눠 질 수밖에 없다. 금산분리 정책은 삼성의 지배구조와 떼어놓고 얘기하기 어려운 원칙이다.

 

삼성에게 금산분리가 달갑지 않다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은 법 준수라는 상식을 뛰어넘어 금산분리 원칙을 아예 없애려는 노력을 해왔다는 내용이 지난 8월 YTN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YTN의 <삼성 내부문건 ‘금산분리 도입’ 추진> (8.30), <금산분리 논란, 초점은 ‘삼성은행’> (8.30) 두 보도는 삼성이 금산분리 완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과 그 초점은 삼성의 은행소유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금산분리 논란은 삼성과 함께 다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송 3사의 보도에서 삼성과의 연계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KBS와 SBS의 총 11건의 보도에는 ‘삼성’이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MBC는 타사가 삼성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데 비해 2건의 보도에서 ‘삼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금산분리와 삼성의 관계를 깊게 파고들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대선은 가깝고, 공약 검증은 멀다

 

금산분리는 대선 주자들 간의 입장차이가 명확히 드러나는 의제이다. 후보들의 차별성이 드러나는 의제에서 유권자들의 선택도 명확해짐을 감안할 때 방송 3사의 보도는 대부분 미흡했다. 


대부분의 보도는 금산분리 내용 설명은 물론, 후보들의 입장이 어떻게 다르고 각각의 주장과 근거가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공약 검증에는 소홀했다. 공정성 시비 때문에 공약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찬반양론의 구체적인 내용을 비교·분석해서 보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방송보도는 금산분리 공약과 관련해 이런 최소한의 의무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후보들의 공약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다보니 사실을 왜곡한 금산분리 완화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며 금산분리 완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보도도 있었다.

 

금산분리의 핵심적인 고리인 삼성과의 연계성도 기피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금산분리 완화·폐지는 ‘삼성공화국’의 완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번 삼성 비자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삼성의 검은 그림자에 싸여 있는지 깨닫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이 막대한 사안에 대해 방송 3사가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알려줌으로써,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매번 선거를 앞두고 사회 각계는 언론에 늘 철저한 후보 검증을 요구하고, 언론은 동정보도와 경마식 중계 보도로 화답하는 불협화음이 연출됐다. 이번에도 정책선거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에 언론이 여전한 방식으로 화답하느냐 아니냐를 선택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기간 동안 방송 3사가 철저한 공약 검증을 해주기를 촉구한다. 최소한 입장이 엇갈리는 공약에 대해서라도 양측의 입장이나 근거를 충실히 전달해 유권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길 바란다.


태그:#금산 분리, #공약, #대선, #검증,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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