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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벙벙한 아이를 반장으로 뽑은 이유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라고 물으면 한 반에서 서 너 명씩은 “대통령이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고등학생인 아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한번은 아들 아이에게  넌지시 "너도  반장 한번 하지 그래?" 라고 했더니 아인 손사래를 치며 “그 귀찮은 걸 왜 해요? 잘못하면 아이들한테 원망이나 듣는데요. 난  그런 거 안 해요”라며 딱 잘라 말했다.

 

그 뿐이 아니다.  자기반  아이들이 서로 의논을 해서 적당히 아이들 말 잘 듣고 공부는 중간 정도인 애를 반장으로 뽑았다면서 까닭을 들려줬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참 기가 막혔다.

 

공부하기 싫고 오락을 하고 싶을 때라든지 귀찮은 일이 생기면 반장의 등을 떠밀어 선생님께 가서 해결책을 얻어오도록 시키려고 약간 어리벙벙한 아이를 반장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반장이 혹  떠드는 아이 이름을 칠판에 적을라치면  이름이 적힌 아이는  “야! 내가 언제 떠들었어? 그리고  내가 너 찍어줬잖아. 내가 아무래도 반장 잘못 뽑았어”라고 투덜거려서 반장이 함부로 이름을 적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너무 똑똑하거나 너무 어리석은 아이를 뽑으면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적당히 말 잘 듣는 아이를 허수아비 반장으로 뽑는다는 말에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모른다.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모든 일에 대한 무관심, 특히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든다. 무관심한 이유는 개인주의의 발달, 성숙한  민주주의가 자리 잡지 못한 사회 풍토, 밤낮 서로 멱살잡이나 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와 염증 탓이기도 할 것이다.

 

20년 후에도 민주주의 누리며 살라는 보장은 없다

 

<10대와 통하는 정치학>은 ‘철수와 영희’ 출판사가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제 1권으로 내놓은 야심작이다.

 

글을 쓴 고성국 박사는 서문에서 “지금은 간혹 정치 얘기를 입에 올릴라치면 할 일 없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가만히 앉아서 얻은 것이 결코 아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누군가 대가를 지불했기에 이만큼의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다. 지금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20년 후 우리의 자녀들이 여전히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며 살라는 보장은 없다“라는 말로 10대가 왜 정치와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서양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데 프랑스 시민혁명을 비롯한 3번의 피 흘림의 역사가 있었다.  대한민국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라는 거대한 민주화의 물결로 마침내 군부독재를 마감시켰다. 민주화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전방에서 시위를 주도한 학생과 지식인들, 그  학생들을 숨겨주고 먹여주며 “너희들 마음 다 안다”며 힘을 북돋아 준 수많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힘이 있었기에 대통령 직선제라는 값진 열매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무한경쟁에 내몰려  대학입시 외에 아무 것에도 눈길을 돌리지 않는 10대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얻는 것인지, 정치가 무엇인지,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는 무엇이 다른지, 좋은 정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어떻게 해야 민주정치를 잘 할 수 있는지, 국민의 기본권, 정당과 사회단체가 하는 일, 지구촌의 민주주의 등을 조목조목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저자나 출판사의 야심찬 의도대로 10대들이 정치 무관심에서  벗어나 정치와 민주주주에 대한 호기심을 되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사실 정치학이나 민주주의를 이론으로 터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가정, 유치원, 놀이방, 학교, 동아리 모임, 지역 사회 등에서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약자, 장애인,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고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 책임감이 따르는 자유를 통해서 자유와 방종이 어떻게 다른지, 권리에는 왜 책임과 의무가 뒤따라야 하는지를  삶 속에서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한다.

 

10대 손주와 80대 할아버지가 침을 튀기며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하고 조율할 때  진정 민주사회가 앞당겨질  것이다.

 

그렇게  힘이  권력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세상, 각자의 다름과 능력의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 낙하산 인사, 권력은 가진 자의 전유물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지고 모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회복한 세상이 온다면 아이들은 서로 다투며 기꺼이 “내 꿈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는 거예요”라고 대답하지 않을는지.

덧붙이는 글 | 10대와 통하는 정치학/고성국 글.배인완 그림/철수와 영희/10,000원


10대와 통하는 정치학 - 고성국 박사가 들려주는 정치와 민주주의

고성국 지음, 배인완 그림, 철수와영희(2007)


태그:#10대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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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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