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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곳이 어디냐?'라는 지인들의 물음에 저는 곧잘 이렇게 대답합니다. 바로 ‘우리 집’ 이라고,  ‘세상, 어느 곳보다 우리 집이 가장 좋다‘라고 말이죠.

이 말은, 부모님이 저 어릴 때, 나들이 떠났다가 돌아오면 늘 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자란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젠 똑 같은 말을, 길에서 막 돌아와 아이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내가 입버릇처럼 하곤 합니다.  ‘와!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그러면 저와 아이는 고개를 끄떡이다가 곧, 곤한 잠에 빠져듭니다.

지난주에도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일컫는 천년의 고도,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보낸 시간만 무려 5시간이 넘게 걸린 장거리 여행입니다. 도로가 하나도 막히지 않아 이 정도 걸렸지만 잘못하면 7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도로에서 보내게 되는 먼 여정입니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 곧 모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럼 왜 이렇게 힘들게 여행을 다니느냐고 되묻겠지요? 글쎄요. 제가 내린 정답은 이렇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을 빌리자면, 한 번은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소설을 왜 읽는가?’라고 학생들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겁니다. ‘재밌으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재밌으니까 이렇게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여행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다만 꽉꽉 막힌 도로가 싫을 따름이지요.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위치한 ‘골굴암’입니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위치한 ‘골굴암’입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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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렇게 지난주에 경주를 찾음으로, 저희 가족의 신라 방문은 세 번째가 되었습니다. 맨 처음 동호회에서 단체로 찾은 경주에서는, 정말 아쉬운 일이었지만, 석굴암과 첨성대만 돌아봤습니다. 서울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경주에 올 때 무려 9시간 이상이나 걸린 탓에, 일찍 올라가자는 분위기에 밀려 점심만 먹고 출발한 것이지요. 그때 저희는 ‘곧 다시’ 경주를 찾을 거라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작년, 결혼 10주년을 기념해 큰 맘 먹고, 두 번째로 경주를 찾았습니다. 그때는 2박 3일의 넉넉한 일정이라 불국사와 안압지, 첨성대, 계림 등등 시내 일원에 흩어진 유적지를 여유롭게 돌아봤습니다.

그래도 시간에 쫓겨 남산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경주 남산은 올해를 위해 남겨진 것인지도 모르죠. 경주는 결코 무리하게 한 번에 돌아 볼 곳이 못 된다는 사람들의 말이 맞습니다. 천천히 다음에 볼 곳은 남겨두는 여유가 필요한 도시지요.

그리하여 올해는 오로지 남산만을 목적으로 금요일(23일)부터 토요일(24일)까지 1박 2일의 일정으로 다시 경주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여행 계획이란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는 법. 남산에 오르기 전에 문무대왕수중릉을 먼저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남산은 경부고속도로 옆에서 가깝기 때문에 동해바다 쪽을 먼저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산에 올랐다가 가면 일정에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석굴사원, 골굴사

골굴사? 생전 처음 듣는 절 이름입니다. 만약 이정표에 보물 581호로 지정된 마애아미타불이 있다는 얘기만 없었어도 그냥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그런 절입니다. 하지만 이 절이 그래도 선무도로 꽤 유명한 곳인가 봅니다. 옛날 화랑들이 수련하던 심신 수련법인 선무도의 총 본산이 바로 이곳이라고 합니다.

하여간 문무대왕릉을 둘러보고 경주 남산으로 향하던 중 발견한 ‘골굴사’에 가보기 위해 저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일주문을 통과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집을 둘러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들은 바닷가에서 주운 나무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땅을 꼭꼭 찌르며 제 뒤를 쫓아옵니다. 

주차장에서부터 계속 이어진 언덕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조금 숨이 차오를 때쯤 멀리 깎아지른 벼랑에 새겨 진 마애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애아미타불이 모셔진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애아미타불이 모셔진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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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빤 꿈이 뭐야?”

그런데 뒤에서 따라오던 아이가 제 손을 잡더니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아빤 꿈이 뭐냐고 말이죠. 정말 그 난데없는 질문에 전 순간 당황했습니다. 저에겐 특별히 생각해온 꿈이 없었거든요. 아니, 저도 꿈을 꿀 수 있는지, 꿔도 되는지 순간적으로 모든 생각이 딱 멈춰버렸습니다.

“난 꿈이 요리사야.”

전 아이의 계속되는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묵묵히 들었습니다. 길은 곧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는 계단을 오르면서도 ‘헉헉’ 내쉬는 숨 사이로 쉴 새 없이 말을 재잘재잘 잇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식을 할지, 중식을 할지, 양식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얘기와 요리사가 되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합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가 말하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네 꿈을 계속 키워나가라고,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말하며 등을 두드려주기만 하였습니다.

지장굴. 이곳은 약 1500년 전에 인도에서 건너온 광유스님 일행이 함월산 지역에 정착하면서 그들의 사원 양식을 본 떠서 창건한 전형적인 석굴사원으로 지장굴을 비롯해, 약사굴, 라한굴, 칠성단, 신성단 등 여러 개의 동굴 군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지장굴. 이곳은 약 1500년 전에 인도에서 건너온 광유스님 일행이 함월산 지역에 정착하면서 그들의 사원 양식을 본 떠서 창건한 전형적인 석굴사원으로 지장굴을 비롯해, 약사굴, 라한굴, 칠성단, 신성단 등 여러 개의 동굴 군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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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유일하게 목조건물이 남아있는 관음굴입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목조건물이 남아있는 관음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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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굴 내부의 모습입니다.
 관음굴 내부의 모습입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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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약자는 정말 오르기 힘든 석굴사원입니다. 맨 밑 계단에 ‘노약자는 이곳에서 예불하라’는 말이 써있던데, 이제야 그 말뜻이 이해됩니다. 아이 손을 잡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정상을 향해 올랐습니다. 아이는 굵은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는 걸 재밌어했지만 밑을 보니 아찔합니다. 너무 어린애들을 데리고 오르면 위험합니다.

조심조심 올라가는 아이의 모습. 난간이 설치되 있어 안전하긴 하지만 잘못하면 떨어질 위함도 있습니다. 이곳에선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조심조심 올라가는 아이의 모습. 난간이 설치되 있어 안전하긴 하지만 잘못하면 떨어질 위함도 있습니다. 이곳에선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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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동그란 굴을 통과해야 마애불을 만나러갈 수 있습니다.
 가운데 동그란 굴을 통과해야 마애불을 만나러갈 수 있습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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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리 높은 곳은 아니지만 은근히 힘이 드네요. 마치 일상에서 찌든 더러운 노폐물을 다 버리고 가라는 부처의 배려 같습니다. 그렇게 바위산을 오른 지, 십 여분 만에 마침내 정상에 서 있는 마애아미타불을 만났습니다.

마침내 정상에 서 있는 마애아미타불을 만났습니다. 보물 제581호로 지정된 이 마애불은 동해안의 문무대왕수중릉을 향해서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마침내 정상에 서 있는 마애아미타불을 만났습니다. 보물 제581호로 지정된 이 마애불은 동해안의 문무대왕수중릉을 향해서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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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전망이 펼쳐져 있습니다. 바로 저 산 넘어, 저희가 금방 보고 온 문무대왕수중릉이 있겠지요?
 시원한 전망이 펼쳐져 있습니다. 바로 저 산 넘어, 저희가 금방 보고 온 문무대왕수중릉이 있겠지요?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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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에는 마애아미타불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높다란 상투 모양의 머리와 뚜렷한 얼굴, 가는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의 독특한 이목구비와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띤 형태 등은 형식화가 진행된 9세기 신라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건장하지만 평면화된 신체, 얇게 빚은 듯 계단식으로 평행되게 한 옷 주름, 무릎에서 형식적으로 나타낸 물결모양의 옷 주름과 겨드랑이 사이에 팔과 몸의 굴곡을 표시한 V자형 무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기림사적기’에는 골굴암에 열두 굴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불상은 그 주불인 듯하며 만든 시기는 9세기 경으로 보인다.”

아이가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저희 부부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습니다.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아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을 것이고, 아내는 미용강사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한 소원을 빌었겠지요. 저는 ‘저도 꿈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지금 새로운 꿈을 꿔도 늦지 않았겠지요?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



태그:#경주 골굴사, #마애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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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 혹은 여행지의 추억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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