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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정자나무가 살아있는 마을, 마을은 아름다운 공화국입니다."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풀꽃세상)이 13번째 풀꽃상으로 '정자나무'를 선정하고 오는 11일 전북 임실 진뫼마을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부상은 임실 진뫼마을 정자나무가 받는다.


'풀꽃세상'은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고, 그에 대한 감사와 연민의 표시로 매년 '풀꽃상'을 주고 있다. 제1회 동강의 비오리를 시작으로 보길도의 갯돌, 새만금 갯벌의 백합, 지리산의 물봉선 등이 그간 상을 받았다. 올해로 13번째 맞이하는 풀꽃상은 마을공동체를 상징한다는 의미로 '정자나무'를 선정했다.

 

"정자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신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조촐한 작은 마을 앞과 뒤, 마을 어귀를 지켜주었던 정자나무는 같이 먹고 일하면서 놀았던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었습니다.


오래 된 마을의 오래 된 정자나무는 가난한 마을을 풍요롭게 꾸며주는 찬란한 풍경이었으며, 마을 사람들의 뜻을 한마음으로 묶어주는 마을 공화국의 전당이었습니다.


임실 진뫼마을 정자나무는 섬진강 가 강 언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강과 마을과 논과 밭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이 느티나무는 진뫼마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신적인 지주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새 잎 피는 봄날 햇살, 사람들이 가득 차 있던 여름날의 그늘, 가을의 고운 단풍과 눈이 하얗게 쌓인 이 정자나무는 오랜 세월 변함없이 마을을 지켜주는 큰 어른이었습니다.


속도와 경쟁만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마을공동체는 사라지고 해체되어 그 나무 아래는 텅 비게 되었으나, 마을 사람들의 걱정과 근심과 괴로움과 기쁨과 슬픔들을 달래주던 이 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의연하게 지켜왔으며 지금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어 공동체를 이루며, 지금도 곳곳에 그 풍요함과 우람함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는 마을의 상징인 이 땅의 모든 정자나무를 대표하여  '임실 진뫼마을의 정자나무'에게, 희미해지는 마을공동체를 되살리고 돕고 나누던 두레의 마음이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염원하며 열세 번째 풀꽃상을 드립니다."<풀꽃세상, 정자나무 선정이유>

 
부상을 받아 시상식이 열리는 내 고향 진뫼마을. 정자나무 아래 모여 한 세대를 풍미하고 떠났던 마을 사람들과 이 땅의 모든 정자나무 아래서 마을 공화국을 이뤘던 분들과 더불어 이 상의 의미를 누리려 합니다.

 

아래 글은 지난 5월 4일 진뫼마을 정자나무가 새순 돋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던 이야기를 쓴 글입니다. <전라도닷컴>에서 옮겨와 다시 싣습니다.

 

정자나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친구야! 고맙다’ 
 


 ▲ 올해는 두 정자나무가 나란히 연둣빛 잎을 내밀었다.
ⓒ 김도수

 

겨우내 위 아랫집에서 헛기침 소리 한번 들리지 않고 적막하기만 하던 진뫼마을에 진달래 피고 소쩍새 울고 산벚꽃 환하게 피어났다. 마을 앞 강변엔 연둣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새싹들 파릇파릇 돋아나 봄물 한창 오른 진뫼마을의 봄.


마을 앞 섬진강 가 언덕에 봄이면 언제나 연둣빛 새순 틔우며 활기찬 '희망의 봄'을 선사하던 정자나무. 들녘에 나갈 때나 돌아올 때나 마을 사람들의 삶을 풋풋하게 해줬다.

 

  
 ▲ 2000년부터 큰 정자나무가 봄이면 제때 새순을 틔우지 못하고 한 가지씩 죽어가고 있었다. 
ⓒ 김도수

 

 

▲ 2006년 봄. 정자나무가 끙끙대며 혼 힘을 다해 새순을 내밀고 있다

 ⓒ 김도수

 

그런 정자나무가 2000년부터 봄이면 제때 새순을 틔우지 못하고 한 가지씩 죽어가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살려내야 할 정자나무. 2005년 12월 임실군청 담당공무원에게 민원편지를 썼다. 그 결과 2006년 11월, 뿌리 주위를 단단히 덮고 있던 시멘트를 철거하고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영양주사도 맞고 동공(구멍)부위 수술도 하는 종합치료를 받았다.


내가 진뫼마을에 태어나 정자나무에게 받은 사랑이 얼마나 컸던가. 뒤돌아본다. 마을 사람들에게 베푼 은혜 얼마나 컸던가. 헤아려본다. 한없는 고마움에 봄이면 새싹 틔우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는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 고향에 가기 싫었다.


봄이면 제때 새순 틔우지 못하고 있는 정자나무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 들녘에 나가거나 돌아올 때마다 무거운 발걸음 옮기며 "어쩌꺼나! 올해도 또 정자나무가 잎을 못 피워부네." 가슴을 치며 안타깝게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 2006년 11월, 뿌리 주위를 단단히 덮고 있던 시멘트를 제거했다.
ⓒ 김도수


▲ 죽은 나뭇가지도 잘라 주었다.
ⓒ 김도수

 

올 봄을 나는 얼마나 기다렸던가. 봄이 되면서부터 고향에 가기만 하면 시선은 늘 정자나무에 머물러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작은 정자나무처럼 올해는 싱그럽게 새싹이 올라올 것인가. 아니면 작년처럼 사력을 다해 새순 틔우다 한 가지씩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혹시 저러다 저러다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가슴 졸이며 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주말 아침. 아내와 함께 달려간 고향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박수를 치며 날뛰는 봄을 맞이했다.


"여보! 빨리 와 봐. 정자나무 잎이 올라오고 있어. 와! 드디어 살았다. 작은 정자나무와 똑같이 잎싸구가 올라와분당게."


코흘리개 어린 시절, 오일장에 가신 어머니 따라가려고 치맛자락 붙들며 정자나무까지 따라가 엉엉 울면 어머니는 "눈깔사탕 사올텅게 여그서 쫴께만 놀고 있어라"며 달랬다. 눈물 콧물 뒤범벅이 된 정자나무 아래서 오일장에 가신 어머니가 빨리 돌아오기만을 나는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점심 때쯤 멀리 보따리 이고 종종걸음치고 오는 어머니를 발견하면 나는 좋아서 껑충껑충 뛰며 맨발로 달려갔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나는 정자나무 아래서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 “여보! 빨리 와 봐. 정자나무 잎이 올라오고 있어. 와! 드디어 살았다. 작은 정자나무와 똑같이 잎싸구가 올라와분당게.” 
ⓒ 김도수

 

"도수성! 치료히붕게 정자나무 잎이 야물딱지게도 올라와부요. 시멘트를 긁어내부러서 그런가. 아니먼 영양제를 맞아서 그런가. 하여간 신통허게 잎이 골고루 피어불고만 잉? 잎도 작년처럼 시들시들허게 안 올라오고 번들번들 윤이나게 올라와부러."


마을회관으로 나오던 이장을 만났는데 정자나무를 바라보며 "형님이 정자나무 야물딱지게 살려부렀소! 내가 헐일을 히붕게 고맙기만 허네요."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어이, 이장! 근디 시멘트 걷어낸 곳은 자네가 어떻게 좀 처리 히불소. 군청 담당자가 정자나무 치료험선 주위도 깨끗이 정리해준다고 약속 힜는디 예산을 반영 못해 나중에 처리해준다고 힜어. 근디 아마 몇 년은 걸려야 헐 것 같혀. 아무래도 시방 갱본 앞에 시멘트 다리 뿌수고 새로 놓고 있는 저 양반들한테 잠시 도움을 좀 받아야 헐 것 같혀. 휴일 날은 저 양반들도 쉬어붕게 내가 만나기 힘들잖여. 긍게 자네가 이야기 좀 해주소. 자네가 오리지날 이장 아닌가. 하하! 잠깐이먼 됭게 부탁히 봐. 도자로 바닥 좀 판판허게 골라불고 저그, 프로 야구장에 있는 흙 몇 번 퍼다 메꽈불먼 깨끗이 정리될 것 같혀. 군청에다 자갈 깔아달라고 힜는디 강변에 있는 저 모래 흙이 훨씬 더 좋을 것 같혀. 긍게 공사 끝나기 전에 자네가 신경 한번 바짝 써 주소 잉."


"알았어요. 제가 공사허는 사람들한테 마을 애로 사항 하나 처리해달라고 부탁 헐게요. 간단헌 것잉게 부탁허먼 안 들어주겄소. 근디 공사 다 끝나갈 쯤 부탁히야제 시방 허먼 바쁜 게 안 히줄것이요."


 잎이 활짝 핀 정자나무 아래로 다가가 오랜만에 부둥켜 안아본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누님과 사진을 찍었던 곳에 웅크리고 앉아본다.


"그 때도 장다리 꽃 예쁘게 피던 봄날이었지. 정남이 누나 시집가던 날, 여기서 누나가 내 손을 잡고 결혼식에 사진 찍으러 왔던 사진사에게 부탁해 사진을 한 컷 찍었지. 그 때 찍은 사진이 있더라면 어린 시절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 텐데…."


코흘리개 어린 시절, 친구들은 정자나무를 다람쥐처럼 잘도 올라가는데 나는 오르지 못했다. 운동 신경이 부족했던 것이다. 나무 위에 올라가 콧노래 부르며 즐거워하던 친구들.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 아래서 늘 서성이던 나는 친구들 도움으로 나무에 오를 수 있었다. 양손을 길게 뻗은 다음, 친구들이 왼발을 받쳐주면 가지를 부둥켜안고 몸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오른발을 가지에 올리며 힘겹게 올라갔다. 발버둥치며 잡던 큰 가지는 하늘을 향해 더 올라가버려 내 키가 따라잡지 못해 아직도 오르려면 버겁기만 하다.


한번 오르고 나니 나는 자주 오르고 싶었다. 친구들만 있으면 발을 받쳐 달라 해서 자주 오르던 정자나무. 슬며시 몸을 기대본다. 그러다 양손을 뻗어 안아보는데 정자나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친구야! 고맙다. 나와 처음 만나던 날, 너는 어머니 등에 업혀왔었지. 그러다 아장아장 걸어서 내 곁에 다가오기 시작해 발등에 오줌도 누고 등과 어깨에 올라타 나를 간질여주었지.


그러다 너는 어느 날 내 곁을 홀연히 떠나버렸지. 니 후배들까지 내 곁을 떠나가면서 나는 외로운 나무가 되어갔단다. 봄이면 새순 틔워 예쁘게 몸단장하고 잎을 팔랑거려도 아무도 찾지 않은 진뫼마을의 봄이 되어갔지. 시끌벅적 떠들던 마을 사람들 다 떠나가자 외로움은 더욱 깊어만 갔고 내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갔단다.


엎친 데 덮친다고 영양분 뽑아 올리며 나를 지탱시켜주던 뿌리 위에 시멘트가 발라졌지. 그래서 봄이면 영양분이 모자라 몸살을 하며 제때 잎 피우지 못하고 끙끙거렸고 굵은 가지가 하나씩 죽어가는 아픔을 겪어왔지. 하지만 니가 고향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난 만세를 부르며 너를 반겼지.


가끔씩 니가 자식들 데리고 와서 나랑 함께 놀아줄 때 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단다. 주말이면 내 곁에 달려와 보살피며 사진도 찍어주고 보듬어 안아줄 때 나는 기뻐서 눈물을 흘렸단다. 그래서 몸이 아파 시들시들했지만 너에게 보여주려고 봄이면 온 힘을 다해 새순 틔우려 노력했었지.


친구야! 고맙다. 내가 아파 힘들어 할 때 니가 달려와 보살펴주고 의사까지 불러와 치료해준 덕분에 올 봄에는 연두색 옷을 다시 꺼내 입고 너에게 이렇게 멋진 폼 잡고 자랑스럽게 뽐내며 서 있단다.


봄이면 다른 친구들은 새 옷 갈아입고서 자랑하는데 나는 그 모습만 지켜보며 몸살을 하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봄이면 이러다 내가 혹 죽는 건 아닌지, 죽어가는 가지를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고마운 친구야! 너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 땀 닦아주는 친구로 늘 여기에 서 있을 테니 삶의 생존 터전에서 살아남으려 매일 전쟁을 치를 때 햇볕 쨍쨍 내리 쪼이거든 언제든지 내 곁에 달려와 푹 쉬거라.


아! 살만한 봄이여. 찬란한 봄이여. 내 친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는 봄날이여!

 

덧붙이는 글 | '정자나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는 기사는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ch01.html?&number=9350) 온라인 상에 올려진 글입니다.


태그:#정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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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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