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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클라에스 올덴버그가 만든 작품 스프링(Spring·샘)
▲ 스프링 클라에스 올덴버그가 만든 작품 스프링(Spring·샘)
ⓒ 이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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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 다녀왔습니다. 광화문 5번 출구를 나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다슬기였습니다. 이것은 스웨덴 출신 클라에스 올덴버그가 만든 스프링(Spring·샘)이라는 작품입니다.

스프링은 청계천 복원 1주년을 맞아 KT가 제작비 34억 원을 들여 서울시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올덴버그는 '도자기와 한복, 보름달 등의 한국적인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지만, 다슬기 모양의 스프링이 그의 영감을 잘 표현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한국 작가가 작품을 만들었다면 많은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제작 과정 및 작가선정이 폐쇄적이었다는 사실이 아쉬웠습니다.

2년 만에 다시 보는 청계천 야경은 어쩐지 전보다 어두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이 전보다 더 흐려졌고, 분수 불빛도 예전만큼 밝지 않았습니다. 이는 부착 조류가 대량으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청계천은 물의 투명도가 크게 낮아지고 바닥도 검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다 청계천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진 않을지 우려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밝은 시민들의 표정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습니다. 산책 나온 가족, 데이트하는 연인, 청계천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외국인 등.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들에게 청계천은 필름에 담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청계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작은 야외 사진전이 광교 아래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청계천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옛 청계천 모습이 젊은이들에게 충격적인 듯 했습니다. 사진을 보던 20대 남자가 말했습니다.

"우와~ 완전 판자촌이네, 사진 합성한 것 같아."

같은 20대인 저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 속에 담긴 청계천 몇십년 역사는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대한민국의 아픈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청계천이 더러운 하수구로 전락한 것은 일제 강점기였습니다. 그 후 전쟁을 거치면서 청계천은 판잣집이 즐비한 길이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복개공사를 했습니다. 청계 고가도로가 완공된 것은 1971년 8월 15일입니다. 그러나 34년 이후 2005년, 청계천은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예전 청계천 복개 당시 주변에 살던 많은 사람들은 봉천동, 신림동, 상계동 등으로 강제 이주 당해 달동네를 형성하였습니다. 복개 후 그 위에 노점을 하며 생계를 잇던 900개의 노점상은 청계천 복원으로 동대문 운동장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청계천 노점상들이 모인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 벼룩시장이 내년 3월 철거된다고 합니다. 동대문 운동장 공원화 때문입니다. 894개 노점은 서울시 소유인 옛 숭인여중 운동장 터로 이전해야 합니다. 삶의 터전과 생계수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이들의 절박한 심정이 또다시 격렬한 시위로 표출되진 않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광교 아래 청계천 사진전 광교 아래에서 열린 청계천 사진전
▲ 광교 아래 청계천 사진전 광교 아래에서 열린 청계천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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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 아래 청계천 사진전 광교 아래에서 열린 청계천 사진전
▲ 광교 아래 청계천 사진전 광교 아래에서 열린 청계천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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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전교 아래에서는 10월 말까지 하는 제12회 서울시 좋은 영화 감상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약 20여 명의 사람들이 돌계단에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푹신한 의자는 아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 발소리와 말소리가 고스란히 들리지만, 풀벌레 소리,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하는 영화 상영은 제법 운치가 있었습니다.

산책 가에 심어진 풀들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한참을 걷다가 청계천가에 앉아 물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손가락만한 검은 물체 수십 개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버들치입니다. 어찌나 많은지 두 손을 모아 물을 떠내면 손에 잡힐 것 같았습니다. 방금 사진전에서 본 옛 청계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더럽고 냄새 나던 청계천에 새 생명이 살아 숨쉰다는 것이 다시 한번 놀라웠습니다.

물고기 청계천에 서식하는 물고기, 버들치로 보인다
▲ 물고기 청계천에 서식하는 물고기, 버들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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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가 넘는 다리 아래를 지나는 동안 산책로에서 단 하나의 쓰레기도 보지 못했습니다.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는 아이도, 애완동물을 산책하는 아주머니도 없었습니다. 청계천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물고기를 잡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이 이만큼이나 성장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습니다.

동대문운동장 역으로 가기 위해 버들다리 계단으로 올라오자 전태일 기념상이 있었습니다. 상반신만 있는 기념상은 제법 컸습니다.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눈이 작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선한 인상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스스로 분신자살을 해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동대문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가 피고 버린 듯한 담배꽁초가 전태일 기념상 주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습니다. 노동자의 팍팍한 삶이 담배꽁초에 녹아있는 듯 했습니다.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가 떠올랐습니다. 과연 전태일이 분신했던 당시보다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개선되었을까요?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의 모습은 높은 국가 경쟁력, 글로벌 기업, 화려한 청계천이라는 모습에 가려진 우리 사회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전태일 버들다리 위에 있는 전태일 기념상 입니다.
▲ 전태일 버들다리 위에 있는 전태일 기념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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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청계천 복개를 "개발시대 효율성만을 앞세워 지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복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을 것입니다. 먼 훗날 지금의 청계천이 "눈속임하기 위한 3년 졸속의 미봉책"으로 불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진 순조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강북지역 개발은 10년 장기 사업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청계천 복원 2년, 생태계 복원과 도심 재개발 사업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입니다. 최근 청계천에 출몰한다는 쥐떼와 부착조류로 탁해진 청계천 수질이 걱정스러웠습니다.

지난 50년간 청계천은 여러 모습을 거쳐 오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습니다. 청계천 벽면에 새겨져 있던 '이명박 시장의 확고한 신념과 담대한 추진력'이라는 평가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병박 시장 평가 청계천 벽면에 새겨진 이명박 시장에 대한 평가
▲ 이병박 시장 평가 청계천 벽면에 새겨진 이명박 시장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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