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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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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부터 16일까지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화가 최경태 개인전이 열린다. 18세 이상만 볼수 있다.

5일. 화가 작업장을 찾았다. 경기도 양평 강상면 대석리에 농가주택을 손질했다. 작업실, 침실, 주방이 길게 일자 구조로 되어 있다.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이다. "(충북) 금왕 작업실보다 훨씬 좋군요"라고 물으니 "타일이 깔린 욕실에서 샤워하는게 꿈이었는데 드디어 이루었다"며 즐거워했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할 캔버스 작품이 이젤에 걸려 있다. 붉은 천위에 젊은 여성이 무릎을 세워 벌린 채 누워 있는 그림이다.

그는 쉰이 되도록 혼자 산다. 그는 "포르노가 좋고 중독된 것 같다"라 했다. 작가든 누구든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 최경태는 현실에 촉수를 대고 자신만의 삶을 자유롭고 솔직하게 그리는 화가다. 화가로서 상상하고 연출하고 표현한다. 그러나 정작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려면 불안하단다.

2002년 음화 전시 판매 및 음란문서 제조 교사 판매 배포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2년 가까이 외롭게 혼자서 법정과 싸움을 벌였다. 정부는 궁핍한 화가에게 벌금 200만원을 물리고 절박하게 표현한 작품 31점을 압류했다. 압수된 작품은 불태워 사라졌다.

마광수 교수, 김인규 교사도 그랬다. 세사람의 성향은 다르지만 겁많고 소심하고 섬세한 작가들이다. 그러나 '통념에 반한다' 하여 음란물 유포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창녀는 음란하고, 교수는 음란물을 만들면 안되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생 성기는 예술사진에도 못 나오게 꼭꼭 숨겨야한다는 것이 통념이고 기준이었다. 같은 인간들인데도 말이다.

5년이 흘렀다. '무서워서 어쩔까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하고보자'라며 저지르는 전시 란다. 그가 사는 방식이다. 그래도 이번엔 미술전문기획사 '아트불루'가 힘이 되고 있다. 앞서 뉴욕에서 전시회를 했다. 이때 80쪽 분량의 도록도 함께 발간했다. 뉴욕에서는 아무탈 없이 잘치뤘다.

이제 다시 서울이다. 음란물에 대한 이중적이고 고무줄 잣대에 죽어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있다. 작가로서는 생존의 문제요, 예술로서는 표현의 자유 문제다. 논란이 예상되고 궁금하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은 서문에 "자본주의 시대에 성문화가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를 통렬하게 발언하는 전시회"가 될거라고 했다. 몇 달전 '불량아트'를 전시기획한 류병학은 "작가들이 '혹시 내 작품도 소각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회에서는 절대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없다. 예술은 불량해야 한다. 예술이란 모름지기 사회 통념에 딴지를 걸고 도전해야 한다"라고 했다.

최경태의 그림은 현실적이다. 젊은 여성들의 성기를 통해 자본주의 성문화를 담아내고 있다. 아랫입술을 깨물거나 아련한 시선으로 오르가즘에 이른 표정도 있다.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가는 사귀는 모델에게 상황을 연출시킨다. 실제 상황을 촬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필요한 이미지를 선택하여 그림으로 옮긴다. 여성의 성기는 섬세하면서 도발적으로 물들어 있다. 남성들의 성적욕망을 자극하길 바라는듯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향해 조롱하는 듯하다. 그래서 처연하고, 애틋하고, 연민도 있다.

급발진하는 버스속처럼 갑자기 뒤로 떠밀려 넘어진 모습도 있다. 중심을 잃고 몸이 흩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여고생의 치마가 말려 올라가고 다리가 벌어지고 육감적인 속살이 드러난다. 어떤 승객은 느끼하게 노골적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 승객은 훔쳐 보고는 안본척 하고, 어떤 승객은 민망한듯 시선을 돌리며 운전수를 책망한다.  이어 상상해보자. 맨 뒤좌석에 다소곳이 앉아 이 상황을 보고 있던 동료 여고생이 있다. 이 때 운전수와 승객들을 향해 가랑이를 활짝 벌려 치마속을 보여주며 외친다.

'자 봐라 봐, 맘껏봐라 싸가지들아!'

최경태의 최근작들은 후자에 가깝다. 젊은 여성들의 샅이 까발려진 원인은 이 사회에 있다. 그의 그림은 성적욕망을 부추기기보다는 가랑이를 벌리게 만든 사회와 자본을 겨누고 있다. 그리고 진정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 동시에 반문하게도 한다. 까발려진 젊은 여성들의 그림들은 사회 현실을 통찰하여 보게 한다. 남성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이다. 마초가 아니라 페미니즘에 가까이 있다. 80년대 민중판화를 그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그는 '인간답게 사는 세상, 희망의 세상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젊은 여성들이 생존을 위해, 부를 위해, 신분상승과 권력을 위해 성을 상품화하고, 상납하고, 로비하는 현실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그런 것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자본주의의 부추김과 성문화에 말을 걸고 싶은 것은 작가로서 당연하고 정당하다. 그의 말걸기는 노골적으로 '음란'을 다룬다. 거침없이 자유롭다.

자유, 민주, 자본주의에서 음란은 '선악'의 문제인가? 아니 '선호'와 '선택'이 아니던가.  공산주의라면 이런 일이 깜도 되지 않을거다. 지금 세상은 자본주의다. 최경태의 그림은 자본주의 성문화를 패러디하고 있다. 이게 문제라면 아이러니다.


태그:#최경태, #포르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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