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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가을 문턱 때늦은 오후에 섬진강 자락을 따라 구례의 소금강이라 불리우는 오산(鰲山)의 보물, 사성암(四聖庵, 전라남도 문화재자료33호)을 아내와 함께 찾았다.

 

마침 '는개'가 내리고 그 비에 휘감긴 사성암은 마치 선경(仙景)의 세계를 옮겨다 놓은듯 황홀경을 연출한다. 안개비처럼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 는개에 쌓여 <토지>의 길상과 서희가 만나던 그 때도 그러했을까?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오산(鰲山,531m)의 꼭대기에 위치한 암자, 원래 오산암이라 불렸으나 4명의 고승(연기조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이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 이름 지어진 신비한 암자이다.

 

이 절은 백제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벼랑에 가파르게 걸려있는 공중전각, 약사전은 그 모습 자체가 경이롭다. 거기에다 원효대사가 선정에 들어가 손톱으로 그렸다는 '마애약사여래불'(전남 유형문화재 제222호)이 음각으로 암벽에 새겨져 있어 더욱 불가사의하다.

 

사성암에서 굽어보면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과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지리산 자락, 그리고 풍수지리의 선각자인 도선국사가 전하는 3대명당터인 구례의 넓은 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99칸의 운조루(雲鳥樓)가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길지에 세운 양택으로 알려져 있다. 

 

*삼대명당 : 금환락지(金環落地,금가락지가 떨어진 터), 금구몰니(金龜沒泥,금거북이 진흙 속에 묻힌 터), 오보교취(五寶交聚, 금 은 진주 산호 호박 다섯보물이 쌓인 터)

 

사성암에는 수령 800년을 자랑하는 귀목나무(느티나무) 두 그루가 바위틈을 뚫고 우람하게 서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고찰의 향연이 그윽하고 사성암을 수호하는 듯한 그 역사의 목향(木香)에 그만 득도의 경지를 느끼게 해준다.  

 

사성암의 수호신 귀목나무를 지나면 그 옛날 '뗏목을 팔러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슬픔에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전설이 깃든 소원바위를 만난다. 동전을 바위에 올려놓고 손을 모아 합장하는 내 아내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상념을 뒤로하고 암벽 속의 미학적인 조형물, 산신각을 접하면 눈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들어온 민간신앙의 산신(山神)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불린다. 이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요소로서 불교의 토착화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이를 보면 적대적으로 배타적이기만 한 다른 종교의 무상함을 산신각은 명증하게 시위하고 있는 듯하다.

 

산신각 바로 옆 암벽에는 도선국사가 수도했다 하여 붙여진 도선굴이 구례의 벌판과 지리산 자락을 그림액자처럼 선사하고 산정(山頂)의 시원한 바람을 함께 안겨준다.

 

산암벽을 돌아 나오는 경사면에서는 미학적 경지가 극도에 치달은 아름다운 담벽과 는개에 흠뻑젖은 담쟁이, 그리고 산안개와 틀에 박힌 세류에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았던 원효대사의 숨결이 묻어있을 법한 강아지풀을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부부나 연인들의 사랑산책 코스로 권할만 하다.

 


태그:#사성암, #는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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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없음도 대답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다. 더 좋은 민주주의와 사람사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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