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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뇌졸중학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뇌졸중을 이긴 사람들'로 소개한 인물이 '튄다'. 의사다. 그것도 의료계에서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을지대학교 김용일 명예총장(72)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병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서울대학교 병원 부원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


언뜻 의사로서 자신의 병력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스친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담배 피지 말아라, 술 조금 먹어라, 운동 꼭 해라' 등과 같은 모범 답안만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기대도 들었다. 지난 5일 오후, 대전에 있는 을지대학교에서 김용일 명예총장을 만났다.


물론 그랬다. 담배 이야기는 역시 빠지지 않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만 해도, 하루 두 갑을 태우던 골초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귀에 꽂힌 김 명예총장의 말은 '익스큐즈'라는 단어였다. 그는 "건강에 해로운 단 하나의 습관부터 고치라"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자신에게 자꾸 익스큐즈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미 소뇌가 죽었다"... 종부성사 그리고 수술

 

"잊지도 못하네. 1993년 1월 8일이예요. 일요일인데, 그 날이...오전 10시쯤에 밥을 먹으려는데 별안간 어지러워요. 구토가 나오다 30분만에 쓰러졌어요.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구급차가 날 데려갔어요. 전혀 기억이 없죠. 열흘만에 깨어났어요."


짧다면 짧은 그 열흘, 많은 일이 있었다. CT 촬영 결과, 약 5mm 크기의 혈전(응고 혈액)이 혈관을 막고 있었다. 위치는 소뇌였다. "이미 소뇌가 죽었다"는 진단도 나왔다고 했다. 약물 치료로는 호전되지 않는 상황, 그러자 동료 의사들은 김 명예총장의 일생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린다. 수술이었다.


"아내가 성당 신부님께 연락을 했어요. 종부성사(과거 가톨릭 교회에서 주로 죽음 직전 환자에게 행하던 성사, 오늘날에는 병자성사로 바뀌었다)까지 마쳤어요. 그리고 수술실에 갔는데...두개골을 떼고 보니까, 죽기 직전까지 가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 주머니 형태로 여유 공간을 만들어줬다고 합니다."

 

여유 공간 확보? 김 명예총장의 정확한 병명은 소뇌경색이었다. 뇌졸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름 그대로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 그리고 뇌경색이다. 뇌경색은 응고 혈액(혈전)이 동맥경화증 등으로 좁아진 혈관을 막아 발생하는 뇌혈전, 다른 신체 기관 혈관에서 발생한 혈전으로 인해 뇌혈관이 막히는 뇌색전으로 다시 나뉜다.


뇌졸중이 무서운 이유는 다른 신체기관과 달리 뇌가 두개골에 싸여 있기 때문에 여유 공간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뇌가 부었을 경우, 뇌압이 올라가게 마련이고, 이는 뇌로 통하는 혈관을 눌러 신경 손상을 일으키거나, 호흡을 제어하는 연수(숨골)까지 누르게 된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이유다. 소뇌의 경우는 연수와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두개골을 잘라내 여유 공간을 만든 동료 의사들의 빠른 판단이 김 명예총장을 살렸던 셈이다.

 

"그 때 그렇게 바로 조치하지 않았으면 즉사죠. '천운'으로 시기를 놓치지 않았어요. 기다리다 안되겠다 싶으니까 바로 수술해서 살 수 있던 거죠. 무엇보다 바로 전문의를 찾는 것이 중요해요."

 

열흘 만에 눈을 떴지만...'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재차 '전문의와의 빠른 연락'을 강조하는 그의 말을 들으며 한 가지 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의사를 동료로 가질 수 있는 '운'을 일반인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은가. 물론 명예총장님한테야 '운'이 아닌, 당연한 '생'의 일부였겠지만, 일반인들도 비슷한 경우를 기대하기는 참 어렵지 않을까요?


"...그런데요.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그래도, 즉각, 최대한 빨리 신경과 의사한테 가세요. 일단 종합병원 가면, 누가 담당의인지 알게 되잖아요? 가장 빨리, 시간을 놓치지 말고, 의사 지시에 따르세요.
 
의사에게 모든 환자는 똑같아요. 의료라는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대합니다. 저도 만약 인정에 끌려 두고 본다든지, 그랬으면 어떻게 될 지 몰랐겠죠. 냉정한 판단이 저를 살렸던 거예요."

 

열흘만에 김 명예총장은 '살아났다'. 하지만 의사로 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엄연한 환자였다. 치료 약물이 "간을 쳐서" 담즙이 피부에 침착하는 부작용이 일어났다. '노오란' 피부,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혈압이 오를 수 있다는 말에 화장실에서 제대로 힘도 줄 수 없었다. 

 

허나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든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후유증이 있지 않을까. 그럼 부끄러워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수업은 어떻게 하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우울증에 빠졌다.

 

"집사람한테 현미경 사달라고 했어요. 내 취미가 현미경 사진 촬영이거든요.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할테니, 제발 소원인데, 자동촬영현미경을 사 달라. 그게 93년에 5천만원 정도였거든요? 내가 퇴직하면 5천만원쯤 나올 테니, 그걸로 사달라...(샀나요?) 샀죠. 헌데 지금 이렇게 다 회복됐잖아요. 집사람이 그래요. 제대로 속았다고(웃음)."

 

난생 처음 산보를 시작하다

 

그렇다면, 김 명예총장은 '무엇'에 속아 쓰러졌을까. 신문기자들도 물었고, 스스로에게도 물었다고 했다. '병의 이치를 따지는 학문'에 평생 종사한 사람으로,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의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론은 평범했다.

 

"일단 일이 힘들었어요. 학생들 가르쳐야지, 병리과 과장이니까 진단해야죠, 또 부원장 일을 하니까, 스트레스가 뭐...의사나 간호사 만나야죠, 또 기자도 만나야지, 뭐- 데모꾼들도 만나야지. 정신 없었어요. 그렇다보니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그 핑계로 담배 엄청 피웠죠. 하루에 두 갑씩 피웠으니까. 금붕어 커피 마시듯이 마셨고, 생활도 굉장히 불규칙했어요. 보통 밤 10시에 일이 끝났는데, 그럼 늦게까지 일한 후배들, 밥 사주고, 술 사주고...20년 이상 그렇게 했으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더라구요."

 

많은 사람들처럼 김 명예총장도 '설마'에 속았던 셈이다. "담배가 혈관 내피 세포를 벗기기 때문에, 거칠어진 혈관벽에 피를 멎게 하는 혈소판이 달라붙고, 또 거기에 섬유소가 붙어서 혈전 현상이 일어나 피가 통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전혀 운동하지 않았어요. 공부한다는 사람이 필드 나가면 보기도 흉할 것 같고 그래서, 골프도 치지 않았어요. 퇴원하고 난생 처음, 산보란 걸 시작했죠."

 

- 태어나고 처음?
"그래요. 지금도 무슨 운동을 따로 하는 것 아니예요. 산보만 해요. 그것도 1주일에 딱 한 번, 1시간. 그 1시간이 절 지금까지 버티게 만든 거예요. 담배 끊고, 커피 끊고, 운동 딱 1시간, 이게 다예요. 이렇게만 해도 괜찮았어요.

 

중병을 극복한 사람들의 얘기가 대부분 그렇듯, 김 명예총장의 투병기도 특별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투병기'의 당사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또 그 방법도 대부분 안다. 유전적 발병이 아닌 경우 대부분은 나쁜 습관을 끊어내고, 좋은 습관과 친하면 예방할 수 있다. 헌데 '백약'보다 좋은 '습관'을 자꾸 '익스큐즈'하는 경우가 많다.

 

"나쁜 습관을 끊는다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뭐, 이 핑계, 저 핑계 대잖아요? '익스큐즈' 좋아하잖아요?(웃음) 누가 어떻다고, 또 속이 상한다고 담배 피고, 향기가 좋다고 뭐 어쩌고 커피 마시고. 하지만 그런다고 스트레스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다 알잖아요."

 

"가슴이 따뜻한 의사가 먼저"

 

이제 질문은 하나 남았다. 언뜻 의사로서 드러내기 쉽지 않은 자신의 병력을 굳이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뇌졸중학회 홍보대사, 후배의 부탁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김 명예총장은 병을 앓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집사람의 ‘힘’이 아주 컸어요. 또 의사나 간호사들이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해줬죠.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입니다. 환자 마음을 알겠더라구요. 아픈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한 방의 치료나 주사, 한 봉지 약보다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완쾌했으니까 이제 가시오'가 아니라, '언제 한 번 다시 볼까요', 바로 이거라고 봐요. '가슴'이 앞서야 한다, 전문가로서 의사나 간호사가 '먼저'가 아니라, 달래주고 격려하는 의료인이 먼저다. 가슴이 따뜻한 의료인을 만들자, 그게 먼저다. 가천의대 총장 시절, 인문학을 강화시켰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 의사로서 병력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현장에 복귀하고 하루는 전화가 왔습니다. 뇌졸중 환자인데, 우울증이랍니다. 그래서 그랬죠. '포기하지 마세요. 자포자기 마시고, 쓸모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전화가 왔어요. 고맙다고, 우울증에서 벗어났다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싶었어요. 또 단순히 전문 지식이나 기술만 갖고 의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뇌졸중을 앓으면서 환자를 대하는 의료인은 가슴이 따뜻해야겠다는 것을 간절하게 느꼈어요. 이제 여기에 사회가 의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초점이 맞춰졌으면 좋겠어요."


태그:#뇌졸중, #뇌경색, #뇌혈전, #김용일, #을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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