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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재미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참으로 재밌게 읽었다. 물론 로마인들은 배울 게 참 많은 민족이다. 하지만 책에서 표현한 대로 "로마인들은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민족이었다"고 한다면 다소 무리가 있는 표현이다.

로마인들은 다른 정복자들에 비해 '비교적' 관대했다는 것이 로마인들이 정복지에 관대했다는 표현으로 뒤바뀐 것은 잘못된 것이며 역사에 대해 큰 주변 지식이 없는 어린친구들이 이 책을 보았을 때 큰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는가 생각된다. 그들 역시도 때에 따라서 살인, 강간, 학살을 일삼았다. 그게 바로 전쟁이다. 인간적인 전쟁이란 아쉽게 없다. 전쟁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들이 이민족을 지배한 것은 이민족에게 해방을 주기 위해서가 아닌 모든 정복자들이 그랬듯 그들의 영토에 대한 야망 때문이다. 다만 여러 거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징기즈칸, 알렉산더, 히틀러, 나폴레옹에 비해 비교적 관대했다는 것이다. 흙은 하얗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검은색 숯에 비해서는 비교적 하얗다고 할 수는 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바로 집어넣는 것보다 먼저 개구리를 물에 넣은 다음 천천히 물을 끓여 요리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며 개구리의 거친 반항없이 쉽게 죽일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개구리를 죽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로마인들도 정복자이며 전쟁을 일삼았다. 그러한 사실을 간과한다면 오히려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기 쉽다. 큰 제국을 만들었다는 것이 곧 그들이 위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은 그들의 정복사를 동경하는 제국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러한 사고의 전제하에 그들의 그런 대제국을 이루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과 그들이 그에 대처하는 자세는 세계화에 거친 바람을 맞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에 관해 나의 견해를 피력하고 싶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불현듯 <데미안>의 알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나를 가두고 있는 이 알을, 기존의 패러다임을 부수는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사상적 바탕을 두고 있는 이 사상의 틀을 깨야만 또 하나의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며 로마의 정신은 우리에게 그 답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과거 우리나라가 외세의 침략에 의해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외세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로마군이 적군에 대한 방어를 성벽에만 의존하지 않았듯 우리나라의 방어는 무력투쟁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민족주의라는 정신적 방패에 많이 의존했던 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런 점이 오랜 기간 동안의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정신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그리 확률이 높아 보이지 않는 조국 광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바치지 않았으리라!

그 당시에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어쩌면 꼭 필요한 정신적 버팀목이었을지 모른다. 오랜 식민지를 청산하고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둘로 갈라져 자본주의, 공산주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우리가 뭉칠 수 있게 도와주었던 민족주의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앞에 그리 강한 힘이 되지 않았던지 6.25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남겼다.

한동안 우리나라의 한쪽은 공산주의를, 또 한쪽은 자본주의를 국시로 여기며 국민을 교육시키고 이념적 사회를 확립시켜나갔다. 자본주의 한쪽에서는 독재와 민주, 진보와 보수라는 두개의 테두리가 서로 세를 이루며 겨루어 왔다. 이러한 이념들은 많은 분쟁을 야기하지만 꼭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대륙의 끝에 위치한 우리들이 자의로 혹은 타의로의 선택한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고 그 운명에 적응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아마 유대인들이 그들이 갖고 있는 배타적 유일신을 갖고 있는 것도 유목민으로서 그들이 타 부족들로부터 지킬 수 있는 정신적 힘이 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지금 우리는 또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유대인들도 더 이상 유목생활을 하지 않듯 우리 역시 우리를 지키려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제 우리는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이제 접어들고 있다. 지금 우리가 민족주의를 들고 나온다는 것은 한 여름에 두꺼운 갑옷을 입고 다닌 것과 같다. 무서운 사실이지만 어쨌든 FTA 체제 안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 유쾌한 단어는 아니지만 우린 지금 세계화를 겪어야만 한다. 이제 우리만의 길을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우리들이 지금까지 가졌던 가치들 민족주의, 자본주의, 진보, 보수 등의 틀을 뛰어 넘는 것이다. 우리도 그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나서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랑스 혁명이 드높인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이념에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념의 방해를 받지 않으니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그만큼 쉬워진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해지면 그것과 이념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체제에 아무리 좋은 면이 있어도 이념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체제라는 이유만으로 그 좋은 면에는 눈을 감아버리게 되는 법이다."

감히 충격적인 문구였다. 많은 사람이 생명을 바쳐 싸우고 지켜온 이념으로부터 탈출하라는 말은 내게는 충격적이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옳다 그르다는 식의 내 이념의 잣대로 미리 판단을 했었다. 그것은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나는 민주적 가치를 우선시 여긴다. 그러한 가치들에 반하는 여러 보수인사들이나 과거 친일 인사들의 주장을 아예 들으려 하지조차도 않았다. 그들은 포용의 대상이 아닌 착출의 대상이었고 악이었다. 보수나 친일인사들에게도 그들 자신을 반대하는 인사는 '빨갱이'에 불과한 무리들일 뿐이었다.

진보주의자들은 친일이나 독재를 하면서 혹은 재벌의 비합적 지배를 통해 부정한 이득을 취득한 자였고 그들과의 타협은 곧 타락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마치 쇄국론자들의 외국과 교역을 한다는 것은 곧 국가를 파는 것이라고 하는 것처럼, 기독교신자들이 다른 신을 인정하는 것은 곧 내가 믿는 신을 부정한다는 식의 논리를 우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의식 깊숙이 그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옳고 그들의 틀렸다는 생각은 내가 마치 내가 적으로 생각했던 수많은 독재자들과 다를바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워야 한다. 이념으로서 자유로워야 한다. 옳지 않더라도 그들을 인정할 수 있는 힘이다. 악한 것을 포용하라고 하니 그것은 이상한 말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악하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내 기준의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 생각을 바꾸라는 말은 아니다. 상대를 단지 존중하란 말이다. 그것은 굴복이 아니다. 절대 굴복이 아니다. 그것은 변절이 아니다. 그것은 포용이다. 이념보다 더 양보하기 힘듯 것이 바로 종교이다. 로마인의 다신교 문화는 그들이 심지어 종교에서 조차 상대를 인정하는 문화를 갖고 그것이 세계대국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로마도 처음부터 그런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신과 정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여러 민족과 부딪치고 전쟁을 하면서 심지어 자기보다 훨씬 약한 민족들도 자신과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통해 무력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다.

근래에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많은 분쟁들은 대화나 타협이 아닌 세 대결로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모든 집단 나름이 자기의 논리가 있고 철학이 있다. 상대가 내가 생각하기에 옳지 않다고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누르려고만 한다면 상대 역시 결사항전의 자세로 나가게 된다. 옳지 않은 것이라도 너무 무섭고 인정할 수 없더라도 그들을 포용해야만 한다.

그런 무서움과 거북스러움을 넘어 포용하는 용기가 더 큰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관문이라는 사실을 로마인들은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리를 옥죄고 있는 두꺼운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가?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간 우리는 이 두꺼운 알을 깨고 더 넓은 세계로 날아갈 거란 것을 확신한다. 로마인이 그랬듯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지만 언젠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을 맞이하게 될 거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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