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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칼'이라는 표현은 특히 자주 쓰이는 비유 중의 하나다. 사실 비유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표현 그대로, 양쪽에 날이 있는 칼이다. 칼을 사용할 때는 날이 하나만 있으면 된다.

'다다익선'이라고 무엇이든 많을수록 좋다는 말도 있지만, 필요하지도 않은 반대쪽 날이 있다면 베려고 하지 않았던 부분도 베게 되어 일이 복잡해지는 수가 있다. 한쪽 날로 베면 다른 쪽 날이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을 베게 되는 양날의 칼. 때로는 하려고 했던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른 부분만 베게 되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렇다면 한쪽 날만 있는 칼을 이용하는 게 낫겠지만 양날 칼만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도 상태가 시원찮은 양날칼밖에 없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예 칼을 버리고 칼이 필요없는 다른 일을 찾든가, 아니면 긴장을 풀지 않고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그 칼을 사용하든가.

개인적으로, 이 상황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부문을 꼽으라면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데 있어서의 사료를 들겠다.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사료를 바라보는 자세에 대해 말을 하자면 끝도 없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적당히 받아들이고, 적당히 배제하라'. 취사선택은 비단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저술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으로 알고 있을 터인 이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꺼내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내가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의 주제로 선택한 제재이기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 연작의 첫 페이지를 넘길 때만 해도, 나는 로마의 역사나 유산 자체도 아니고, 흔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알려진 <대비열전>처럼 로마와 다른 나라, 혹은 한 로마인과 그 로마인과 비교될 만한 다른 위인의 비교도 아니고, '사료의 취사선택'처럼 지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택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같은 사건을 두고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으니, 사료의 취사선택이라는 말을 의식한 것이 <로마인 이야기>가 처음인 것도 아니었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 연작을 읽을 때만큼 그 딜레마를 체감한 적은 없었다. 작가는 통사를 전개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고 중요한 장면을 묘사하며 로마인이 아닌 우리로서는 알지 못하는 당시상황과 정세를 해설하는 동시에 상황을 해석하고, 정황을 추측하고, 때로는 사료에는 전해지지 않는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 넣는다.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독자와 거리를 두고 있다. 연구자의 공통된 견해나 정설이 아닌 부분을 쓸 때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만한 부분은 가급적 생략하는 구어체에 익숙한 사람은 거추장스러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이 방식은 철저하게 사료에 입각한 실증적인 연구를 지향하는 사람도, 풍부하고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도 만족 시킬 수 없다. 사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전자는 눈살을 찌푸릴 것이고, 입증된 사료에 있지 않은 이야기는 아무리 유명하고 흥미로워도 서술하지 않거나 설사 언급한다 치더라도 정황상 불가능하거나 사실일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단서를 다니 후자는 김이 빠져 고개를 돌릴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잠재적 독자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료를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과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하려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딜레마가 확장되고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가 선택한 방식은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은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식 중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데 가장 근본적인 사료는 이전 시기의 역사서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다룬 고대의 저작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기>에서 사실만을 기록하려 노력한 것은 작가 시오노 나나미도 말했듯이 순수한 사실 이외의 것도 섞였다면 사실을 기록한 부분의 진실성도 사람들이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카이사르와 같은 시기의 로마인이 카이사르를 바라볼 때만이 아니라, 후세의 우리가 역사연구를 할 때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처럼 나도는 뜬소문을 기록했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경우라면 정사를 연구할 때에는 완전히 무시할 수 있으니 차라리 낫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면, 연구자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남아있는 사료가 부족하다면, 연구자는 어떻게 연구해야 할까.

역사서도 결국에는 사람이 편찬하는 것이니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사람이 자신이 사는 시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사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조선왕조실록>처럼 지배층을 비롯한 당대인에게서 철저하게 차단되어 편찬되는 기록이 아닌 이상 당대의 사건, 특히 정치투쟁이나 내전을 기록하려면 아무래도 집권자에게 유리하고 패배한 정적에게는 불리하게 쓰기 마련이다. 당대나 그 직후에 편찬된 역사서라면 현장성은 확보되지만 공정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또 감정적으로 들끓은 사건이라면, 당시의 기록보다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난 뒤의 기록이 더 객관성을 지닌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서술된 역사서도 절대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왜곡되었거나, 윤색되었거나, 유실되었거나,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떠도는 와중에 없는 이야기가 생겨났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대상이 되는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후세의 인식을 보여 주는 사료로는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역사 연구의 사료가 그렇듯이 온전히 믿기보다는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도 남아 있는 역사서는 로마사 전체를 포괄하여 연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로마인은 투쟁에서 패배하고 역사에서 사라진 사람의 흔적을 지우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아우구스투스가 카이사르의 신격화를 위해 인간적인 면모가 배어나올 법한 카이사르의 글은 모두 없애라고 명령한 것이나 몇몇 황제들이 죽은 직후 원로원이 내린 '기록 말살형'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로마인은 설사 반역자로 선포되었다 해도 개인 저작을 의도적으로 없애려고 하지는 않았고 그에 대해 타인이 논하는 것도 금지하지 않았다.

로마제국 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가 소시적 카이사르 암살 직후의 로마 내전에 대한 역사책을 쓰려다가 어머니의 만류로 포기한 적은 있지만, 이것은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와 안토니우스의 피를 이어받은 클라우디우스의 혈통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었다는 이유가 컸다. 2차 3두정치 때 키케로가 살해된 직후에도 키케로의 저작이 간행되었고, 카이사르는 키케로가 로마의 실권자가 되자 자신을 겨냥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카토>를 쓰자 이 글을 출판금지하지 않고 자신이 그 글을 반박하는 <안티 카토>를 쓰는 방식으로 대응했지 키케로의 저작을 회수하여 폐기하거나 출판금지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많은 역사서가 소실되었다. 작가가 <로마인 이야기> 연작에서 몇 번이나 언급한 리비우스의 <로마사>가 중세에 상당 부분 유실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고, 그 외에도 단편만 남아 있거나 제목만 전해지는 역사서가 많다.

이런 경우 연구자는 당대 인물의 개인기록에 주목한다. 근현대사를 연구할 때에는 개인이 쓴 일기가 미시사의 주요한 자료가 되지만, 로마 연구에는 수많은 편지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개인이 쓴 편지는 역사가의 저작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자유로운 의견 표출이 가능하며, 역사서에서 다루기에는 부적합한 사소하고 일상적인 부분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때로는 당대 역사서에는 실을 수 없을 만한, 로마 내부의 투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공적이나 미담을 기록하기도 하고, 특정한 사건이나 정황을 진술하는 유일무이한 사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단점도 있다. 때로는 필요했기 때문에, 때로는 잘못 알았기 때문에, 때로는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규모나 정황을 실제보다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지간히 본인에게 솔직하지 않은 이상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자신이 말려든 사건에 대해 진술하면서 아전인수식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쓴 경우도 많을 것이다. 편지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글이니만큼 이런 일을 인간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지만, 역사가의 입장에서는 곤란하기 그지없다. 후세의 우리는 과연 어떤 점이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이렇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기에 역사서나 역사서의 일차 사료만으로 연구를 한다면, 총체적인 골격은 짤 수 있을지언정 세부적인 살을 붙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공식적인 출판물에서 직접 다루지 않는 부문이나 미시사의 경우에는 공인된 기록 이외의 사료로 연구를 하게 된다. 때로는 전후사정을 모르는 일반인은 황당해할 정도로 사소한 부분에서 데이터를 얻는데, 벽돌제조시기를 기록한 벽돌의 낙인으로 건물의 신축 및 보수사업이 활발했던 시기를 추정하는 연구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로마는 도로나 다리처럼 실용적인 건축으로 유명한 나라이며, 로마의 건축은 연구주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로마 건축을 연구하는 데 있어 건축담당기관이 로마가 지속했던 기간 동안의 건축 현황을 기록한 보고서라도 전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런 기록은 없고, 역사서에 전하는 건축 기록은 극히 단편적이며 그나마도 많은 부분이 유실되었다. 그렇기에 다른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했고, 많은 벽돌이 제조된 때가 곧 건축물이 많이 지어졌을 때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재고라는 경제적인 개념을 고려하지 않은 막연한 예측이 아니라, 로마 벽돌공장과 벽돌 소비 사이클의 면모로 보아 벽돌이 제조된 직후에 쓰이지 않고 몇 년, 몇십 년 동안 창고에 쌓여 있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명제를 전제로 하여 추론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게 되면, 문헌기록에만 의존했을 때에 비해 보다 생생하고 세부적인 연구가 가능해진다. 새로운 길을 찾는 독창성과 직관은 비단 발명가에게만 요구되는 기질이 아닌 것이다.

사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피할 수 없는 난제이다. 특히 역사서의 경우에는, 책 자체의 생명력을 좌우하는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재나 문헌으로 실증할 수 있는 것만 역사로 인정한다면 일반인의 흥미를 끌지 못해 일반인과 괴리된 학문이 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역사연구 및 역사서술이 지나치게 경직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실증할 수 없는 부분까지 역사서에서 다루다 보면, 흥미 위주로 흘러가 역사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실제와 부합하건 말건 재미있다 싶은 부분만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실인 양 생각한다면, 근거 없는 뜬소문을 사실인 양 믿어 당사자를 인신공격하거나 무조건 추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큰 딜레마는 사료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연구자의 주관에 의해 받아들여야 마땅한데 그 주관이 사실과 동떨어진 해석을 빚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도 자연히 이런 딜레마와 마주쳤고,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택한 방식은, 때로는 도발적일 정도로 자의적인 해석과 정설과는 동떨어진 견해를 제시하되 그러한 부분은 작가 개인의 생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부분에는 어디까지나 작가 개인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언급을 빠뜨리지 않았기 때문에, 최소한 이 책을 보고 작가의 추측과 견해를 기정사실로 믿었다가 다른 책을 보고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는 사실과 소문을 뒤섞고 저자를 비롯한 당대인의 견해가 서술기준이 되는 여러 사서보다는 사료적 가치에서 월등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사료의 취사선택을 책을 서술할 때뿐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강조했고,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허구에만 의존하여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것을 막고자 노력했다. 논란이 되는 부분에서는 어떤 부분이 논란이 되는지 설명한 다음, 그 판단을 독자에게 맡겼다. 역사 연구보고서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지만 작가도 누차 말했듯이 <로마인 이야기>는 철저하게 사실에만 입각한 역사서가 아니라 대중에게 로마에 대해 말하고자 쓴 책이므로, 독자가 맹신하지 않는 이상 그리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

실증적 역사서술을 중시하는 이에게는 가벼워 보일지 모르고 흥미를 중시하는 이에게는 재미있을 만한 부분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로마인 이야기>가 대중에게 역사를 알리는 데에는 최고의 전범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비단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렸다는 것만이 아니라, 역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사료의 취사선택이 어떤 것인지를 잘 드러냈으며 나아가 독자에게 그 자세까지 몸소 가르쳐 주고 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모집 응모.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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