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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대한민국의 여러분께

우선 간략히 제 소개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저는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로마 본토를 공략하고 있던 기원전 210년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로마에서 태어나 자란 로마의 시민입니다.

나라는 전쟁 중이었고 전 평민 출신이었지만, 운 좋게도 유복한 환경 속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건강한 육체와 리더십을 키워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마시민이라는 것에 대한 남다른 자긍심을 가지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

20대에는 카르타고 군과의 치열한 전쟁에 몇 년간 참전했고, 30대 중반이 되어서는 많은 로마시민들께서 제 능력과 참여의식을 높이 사주셔서 평민 계층을 대변하는 호민관으로 선출될 수 있었으며, 이후 죽기까지 원로원 의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로마인으로서 평생을 살아왔던 제가 대한민국을 향한 갑작스러운 편지라니, 여러분께서는 다소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께서 저희 로마의 역사와 로마인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나서부터는 저 역시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과 로마

▲ 아우구스투스 평화의 제단
ⓒ 한길사
무슨 일이든 관심을 갖다 보면 자기의 의견이 생기는 법인지라, 대한민국을 일정 기간 동안 지켜보다보니 몇 가지 조심스럽게 조언 드리고 싶은 부분들이 생겨나더군요. 이 세상을 먼저 살다 먼저 떠난 사람으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이 몇 마디 조언이 과연 여러분 중 몇 분에게 의미 있게 읽히게 될는지, 또 얼마나 적절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향한 깊은 애정을 담아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제가 알기로, 대한민국과 저희 로마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륙의 끝에 붙어 삼면이 바다를 면한 반도국가라는 지형적 유사성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전 국토가 초토화되는 전쟁을 겪기도 했고, 성실하고 근면한 국민성 덕에 짧은 시간 안에 선진국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일궈내기도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정치적으로는 독재세력에 저항한 수많은 눈물겨운 투쟁들도 있었으며, 지금은 어느 정도 살만하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산적되어 있는 사회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는 2007년의 대한민국은, 제가 살아왔고 또한 제가 깊이 사랑하는 우리 로마사회와 닮은 구석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또 상당히 다른 부분들이 보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로마와 대한민국이 어떤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그 '다름'의 의미는 제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걱정되는 대한민국의 경제 불균형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 한길사
아시다시피 저희 로마는 귀족과 평민간의 오랜 계급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배타적 권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귀족계급들로부터 오랜 투쟁 끝에 호민관이라는 평민의 강한 대변자를 내세울 수 있었고, 국법에 의해 귀족 중에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사리분별 못하는 자가 호민관을 해치지 못하도록 '신체불가침'이라는 매우 특별한 권리까지 부여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만큼 평민들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귀족과 평민은 세간의 명예와 소유의 정도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모두 공화정 아래 평등한 로마시민이었습니다. 저 역시 평민 출신이었지만, 결국 로마 원로원 위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도 출신으로 인해 불리한 대우를 받거나 제 능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박탈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민 출신이더라도 스스로의 출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신세를 한탄하게 되는 일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한민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그간 정치적 자유는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확장이 되어 온 반면, 경제적 자유는 점차 억압되는 폐쇄적인 사회구조로 급격히 이행해 가는 것 같습니다.

자본을 소유한 경제엘리트의 시장지배력이 절대적이 되어가면서 무산자에게는 성공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재산의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 견고한 형태의 계급이 형성되는 것은 대부분의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입니다만, 대한민국에서 특히 이와 같은 불균형 현상이 -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심화되어, 다수의 보통 시민들의 삶 자체가 과도한 수준으로 버거워지는 - 심화되어 가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부분입니다.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꿈꾸어 볼 수조차 없는 '기회 박탈의 사회'에서는 그 기저에서부터 분노가 생기기 마련이고, 자칫 '분노가 일상화된 사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로마의 시스템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로마 역시 효과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사회였지만, 그러한 리더십이 남용되거나 일부 상류층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되지 않도록 다수 평민들의 끊임없는 견제와 투쟁의 세월을 겪었습니다.

우선,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치 세력화 했고, 활발한 소통을 통해 계급 내부적 합의를 도출해 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적극적인 의견개진과정을 통해 귀족들로부터 실질적인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구조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대한민국 사회의 평범한 시민 여러분들이 스스로 만들어가고 쟁취해 가야 할 몫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절박하게 싸우고 있는 여러분이지만, 코 앞 싸움에 몰입되어 지쳐버리지 말고 더 큰 시야로 세상에 바라보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여러분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여러분 스스로의 몫입니다.

뿌리 뽑아야할 대한민국 상류층들의 '졸부정신'

로마인으로서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또 하나의 안타까운 부분은 다름 아닌 '귀족정신의 상실'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상실된 대한민국은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만, 미래가 없어 보입니다. 상류층으로서의 진정한 명예와 품위를 추구하기 보다는 경박한 부의 과시에 몰두하고, 정작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대한민국 상류층들의 피폐한 졸부정신은 반드시 뿌리 뽑혀야 할 것입니다.

허리디스크로 군 면제를 받고서도 훌륭한 골프 실력을 자랑하는 재벌2세와 국회의원할 줄 알았으면 아들 국적포기 안 시켰을 거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국회의원, 아들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너무 슬프다고 말하는 국립대 교수가 소위 대한민국 오피니언 리더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일은 로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 역시 호민관 출신이었지만, 치열한 전투현장에 나가 명예롭게 목숨을 걸고 싸웠고, 저 뿐만이 아니라 저와 죽을 고비들을 함께 넘긴 로마군 전우들은 모두 귀족들과 평민으로 이루어진 시민들이었습니다.

▲ 트라야누스 시장
ⓒ 한길사
기원전 3세기 전반 로마가 타렌툼 원정에 나섰을 때의 로마는 어땠습니까? 지중해 최고의 명장이었던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에 맞서 로마군은 용감히 싸웠지만 결국 수세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피로스왕은 강화를 제의하면서 협상을 위해 600명의 로마군 포로를 본국으로 돌려보냈지만, 강화가 체결이 안 될 경우 포로송환조치를 철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결국 강화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던 600명의 포로는 조국의 명예를 위해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다시 기꺼이 적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명망 높은 귀족의 자제도 있었고, 높은 관직을 갖고 있는 자도 있었습니다. 일신의 안위에 신경 쓰기보다 헌신하여 국가의 명예를 지킨 것입니다.

한니발 전쟁 때도 칸나이 전투 참패 이후 이와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번엔 포로의 숫자가 무려 8000명이나 되었고 이 중엔 원로원 의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로들의 몸값을 요구하는 한니발의 요구는 로마 원로원에 의해 거절되었고, 8000명의 포로들은 가족들과 짧은 재회 후에 다시 적들의 수중으로 돌아가 결국 그리스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과연 이들은 다시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자신들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을까요? 오랜 전쟁과 포로로 잡혀있던 고초의 시간 겪은 후 그 짧은 가족과의 안락한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사지로 떠나야 하는 그들의 심경은 과연 어땠을까요? 그것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숭고한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지도층의 솔선수범은 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칸나이 전투 이후 심각한 위기가 초래된 로마에서는 전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전쟁 비용 충당을 위한 국채가 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먼저 모든 원로원의원들이 부동산을 제외한 전 재산을 전쟁수행비용으로 헌납함으로써 시민의 동참에 앞장섰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에 이와 같은 총체적 위기가 있었다면 대한민국의 지도층도 이와 같은 희생의 모습을 보여주실 수 있겠는가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 이 순간 과연 무엇을 보고 느끼고 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은 있습니까?'라는 질문도 덧붙이고 싶군요.

로마인들의 원칙주의적 성향을 본받자

마지막으로 한 부분만 더 말씀드리고 이 장황한 편지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저희 로마인들은 간혹 지나치게 원칙과 규칙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미련하고 둔한 원칙주의자로 후세 역사가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 로마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발전을 이룬다거나, 혁명적인 사회 변화가 일어나거나 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최소한 혁명적인 변화가 그 실체로서는 존재할지언정 기존의 외적 틀은 유지하려고 노력했을 만큼 우리 로마인들은 원칙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기준에서 본다면 좀 답답해 보일만 하지만, 이것은 그저 보수적 성향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리어 기존의 관성을 깨지 않으려 했던 것보다는, 즉흥적이고 원칙이 없는 것을 견제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겁니다.

▲ 마르켈루스 극장
ⓒ 한길사
저는 이런 꾸준한 원칙주의 덕에 로마가 몇 세기동안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발전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회에 만연한 지배적 가치는 로마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 같습니다. 빠른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순발력이 중시되고, 사회 전반적으로 적용되는 공통의 원칙이 강조되기 보다는 각자의 생각과 가치를 더욱 중요시 여기는 다원주의가 급격히 새로운 가치로 부상했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다양한 생각의 힘이 필수불가결한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이러한 가치추구가 간혹 지나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 뿐일까요?

지켜오던 기존의 모든 가치는 다 낡은 것으로 치부되고, 무조건 새로운 것이 선한 것으로 여기다 보니 사회 전반이 무책임한 즉흥성과 무규범상태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이미 각종 인터넷 게시판으로 대표되는 여러 대한민국의 '사상의 자유시장'에서는 합의된 원칙과 규칙이 사라진 지는 오래고, 언어폭력과 인신공격, 비합리적인 매도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획일적 가치와 사고를 강요당했던 암울한 지난 시절에 대한 역사적 반동 작용으로 이해해 보려고도 합니다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원주의'와 '무책임한 자기주장'이 혼동되고 있다고 밖에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이 절망적인 아노미 상태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대한민국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사회 속 인간의 본성이란 본래 그런 것이고, 과연 어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렇지 않은 시대를 발견할 수 있겠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텐데, 맞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희 로마에서도 특정사안들에 대한 갑론을박은 항상 있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상호가 인정하는 불가침의 원칙이 있었다는 점이 다른 부분입니다.

원칙이 결여된 토론은 진흙탕 속 개싸움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로마인들은 일단 세워진 원칙이라면 지키려고 노력하고, 상황이 변하여 그 원칙이 현상에 부합하지 않을 땐, 그 원칙을 무시하기 보다는 다시 새롭게 정비하고 수정하려 노력했습니다.

저는 앞에서 말한 '원칙'을 현대의 말로 '상식'이라는 말로 바꿔 부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순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가정한다면, 그 발전의 원동력은 사회구성원이 대체로 동의하는 기본 원칙, 즉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려면 아직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만, 이 글을 읽고 잠시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분 덕에 희망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여러분 모두의 건승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사랑과 관심을 담아,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 보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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