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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9년 설립된 경기고등학교. 108년째 한국의 명문고등학교 명맥을 유지해온 가운데 현직 교사들이 촌지를 받고 학생의 성적을 조작해 조기졸업을 시켰다는 의혹에 따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경기고 현직 교사들이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받고 학생의 조기졸업을 위한 성적조작사건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지난 5월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수사종결 이후 검찰의 수사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2005년 서울 배재고 교사의 '검사 아들 답안지 조작사건' 이후 사립학교 교사들의 성적조작사건이 간헐적으로 발생했으나, 공립학교에서 이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1899년 설립돼 10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고에서 교사 여러 명이 한꺼번에 성적조작사건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조기졸업 도와준 대가로 금품수수... 시험볼때 자리 비우기도

국가청렴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이 사건에 대한 진정서를 접수한 뒤 교사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고, 진정 내용이 일부 사실로 밝혀짐에 따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오마이뉴스>가 국가청렴위원회 조사 결과를 토대로 취재한 바에 따르면, 경기고 현직 교사 B씨는 지난해 4월 학부모 K씨로부터 조기졸업을 신청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현금 100만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국가청렴위는 B교사가 같은 해 7월 교내 조기졸업 담당 교사인 C씨로부터 '수학Ⅱ'와 '미분과 적분' 시험에 대한 채점을 의뢰받았고, 그 뒤 B교사는 학생 A가 써낸 답안지를 다시 수정하라고 한 뒤 채점해 성적을 조작했다는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청렴위는 또 경기고 조기졸업 담당교사인 C씨가 학생 A가 조기졸업시험을 치르는 가운데 한문과 체육 필기고사를 볼 때 고사장을 지키지 않고 무단으로 자리를 비웠으며, 이 사이에 학생 A가 부정행위를 할 수 있도록 책임을 방조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 성주영

A학생의 담임교사 D씨는 조기졸업 추천서와 조기졸업 사무관리를 담당하면서 학부모 K씨로부터 잘 부탁한다는 인사와 함께 3차례에 걸쳐 230만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교사 B씨에 대해서는 수뢰 후 부정처사·허위공문서 작성·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혐의로, 조기졸업 업무담당 교사 C씨는 직무유기 혐의로, 담임교사 D씨는 뇌물 수수 혐의로, 교사들에게 돈을 건넨 학부모 K씨는 뇌물공여 혐의로 각각 불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서울중앙지검에 전달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오광수)는 현재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교육부 민원조사 담당관실에서도 국가청렴위원회의 조사 즉시 관련내용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으며,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관련 교사들에 대한 징계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학교 "공부 잘하는 학생... 문제 없다"

검찰과 교육인적자원부를 비롯한 사정당국과 감독기관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과 달리, 경기고 당국은 명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날 때까지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영만 경기고 교장은 지난 12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검찰이나 국가청렴위원회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를 받지 못해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면서 "사법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 교사들도 명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난 게 아니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수업과 담임업무를 중단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이영만 교장은 "A군의 조기졸업은 경기고의 평준화 이후 최초로 시도된 일이었다"며 "A군을 조기졸업 대상자로 선정한 것에는 전혀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A군은 조기졸업 신청 당시 500명 가운데 전교 1등이었고 국어·영어·수학·과학 등 주요 과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나타냈었다"면서 "A군이 공부 잘하는 아이라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모두 아는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수학과학경시대회에 나가 입상한 경력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만 교장은 "A군이 중학교 때도 탁월한 실력을 갖고 있었던 학생"이라며 "탁월하니까 조기졸업을 하려고 한 것 아니겠냐, 시원찮은 아이라면 조기졸업을 엄두나 낼 수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무엇보다 이 교장은 A군이 조기졸업 이후 진학한 대학에서도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경기고등학교 본관 입구. 이영만 교장은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왜 성적을 조작해 조기졸업을 했겠냐"며 "꾸며낸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교사의 부정행위 방조는 꾸며낸 이야기"

교사들이 조기졸업 성적조작을 대가로 촌지를 받았다는 조사결과에 대해, 이 교장은 "담임교사 D씨가 받았다는 230만원은 조기졸업 업무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A군의 담임으로서 평소 학부모에게 받았던 촌지가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수학교사 B씨도 이 교장에게 찾아와 "A군의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며 "돈을 받은 사람이 없는데 준 사람이 있을 수 있냐"고 역으로 물었다.

조기졸업 담당교사 C씨가 고사 중에 무단으로 자리를 비웠다는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학생 시험 보는 시간에 자리를 피해줬다는 것은 조심해서 말하시라"며 "아직 사실로 확인된 게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영만 교장은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잠깐 자리를 비웠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교사가 자리를 비우고 그 사이에 학생이 부정행위를 하도록 방조했다는 것은 꾸며낸 얘기"라며 "시험감독이 한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화장실 갈 수도 있고… 어떻게 공부 잘하는 애가 부정행위를 할 수 있겠느냐, 본인도 그 같은 말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발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조사결과가 발표되면, 이 교장은 "문제가 된 교사들에 대해 법대로 처리할 예정"이라며 "사실로 확인되면 학부모회의를 열어 모든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조기졸업이수인정위원회 구성과 관련해서는 "전혀 잘못이 없다"며 "해당 교과목 교사 2명씩 12과목 전 과목 교사들이 참여해 이수인정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계획서를 냈고 그에 따라 집행했다"고 말했다.

조기졸업신청서류에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고 강조하는 이 교장은 "A학생은 조기졸업 규정에 오버되고도 남을 정도로 뛰어났다"며 "4과목 빼고 모두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탁월한 아이였다"고 피력했다.

▲ 경기고등학교 3학년 교무실 앞 복도. 일부 교사들은 기자의 출입을 막기 위해 한때 교무실을 잠그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장학사 "수험생만 놔두고 자리 비웠다? 명백한 직무유기"

그러나 김연배 서울교육청 학력평가 고사담당 장학사는 "2005년 '배재고 성적조작 사건' 이후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험감독 교사를 2명씩 배치한다"면서 "학부모 1명을 더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조기졸업시험을 치른 학생이 단 한 명뿐이었기 때문에 고사 당일 1명의 시험감독 교사를 배치한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고사 중에 그 어떤 이유로도 자리를 떠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장학사는 "조기졸업시험이든 그 어떤 시험이든 성적부정을 막기 위해 시험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것은 교육부 학업성적관리시행지침에도 적시된 사실"이라며 "수험생만 놔두고 자리를 비운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경기고의 한 교사도 "2005년 부임한 이래 단 한번도 시험감독이 1명이었던 적이 없다"며 "경기고는 학부모 1명과 시험감독 교사 2명, 총 3명으로 시험감독이 이뤄진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시험감독으로 교사 1명만 투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시험감독이 시험 치르는 학생만 남겨두고 화장실에 간다는 것도 문제가 있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사는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잘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사정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이 교사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만 문제가 된 교사들이 정상수업을 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매우 미안한 일"이라며 "교장의 직권으로 수업과 담임 업무를 강행하는 것은 지극히 관료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 교사는 "이번 조기졸업을 위한 성적조작사건이 학생 일반에게 모두 불이익을 준 상황은 아니지만 매우 끔찍한 일"이지만, "경기고의 공식 입장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경기고 학부모들은 "학교를 고려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학부모 E씨는 "한국의 명문 고등학교인 경기고가 자칫 구설에 휘말리게 되면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학생들을 생각해서 조용히 넘어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교사들은 <오마이뉴스>의 취재에 모두 함구했다. 수학교사 B씨는 지난 12일 기자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며, 조기졸업 담당교사 C씨는 "검찰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취재에 응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담임교사 D씨도 교내에서 기자와 만났지만 "230만원을 수수한 바 없다"고 잘라 말하고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일부 교사는 기자의 교무실 출입을 막기위해 문을 잠그기도 했다.

한편 경기고를 조기졸업한 A학생은 현재 한 국립대학 1학년에 재학중이다.

태그:#경기고등학교, #이영만 교장, #교육인적자원부, #서울시교육청, #국가청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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