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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당신은 친구와 함께 텔레비전을 본다. 보던 프로가 재미가 없었는지 당신의 친구는 정신없이 채널을 계속 돌렸고, 우연히 튼 화면에는 난생 처음 보는 세 명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당신이 하는 말. "뭐 볼 게 있다고 교육방송을 틀었어? 그리고 모르는 애들 나와서 떠드는 걸 우리가 볼 필요는 없잖아" 당신의 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더니 이내 채널을 돌리고 만다.

물론 이런 일은 흔하다. 보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에게 큰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하나, 놓쳐버린 프로그램에 미처 알지 못했던 즐거움과 의미가 있다면 우리가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화면을 다시 돌려 세 명의 수다에 집중해 보자. 웃고 떠드는 가운데 녹록치 않은 영화 내공을 지닌 그들은 다름 아닌 세 명의 영화감독. <밀애>, <발레교습소>의 변영주 감독,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이 바로 그들이다.

외부인이 아닌 현장에서 촬영장을 지휘하고 연출하는 감독인 만큼 그들이 내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모호하지 않은 구체적인 사례로 즐거움을 준다. 영화비평가들은 전문적이고 난해한 말들을 늘어놓아 대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아나운서나 연예인 진행자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오락토크쇼에나 적합한 말장난으로 일관해 영화정보를 보는 것인지 그 말을 듣는 것인지 헷갈리게 한다. 기존 공중파의 영화정보프로그램이 사실 대부분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신작을 위주로 영화 내용을 친절하게(?) 소개해주는 방식도 시청자들을 화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반면 세 명의 감독이 진행자로 나서는 <시네마 천국>은 그런 전형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자유로움이 돋보인다. 첫 번째 코너 '당신이 영화에 대해 알고 싶었던, 그러나 차마 묻지 못한 것들'은 그럼 점에서 <시네마 천국>의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방식은 간단하다. 매주 시의적절한 주제 하나를 정해 세 명의 감독이 대화를 나누는 것. 아귀가 들어맞는 토론을 하는 것은 아니나 산만한 가운데서도 주제의 핵심을 짚을 줄 아는 그들의 대화는 시청자의 가슴을 추적추적 적신다. 때론 허무한 유머가 떠돌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차표에 적힌 종착역을 잊지 않는다.

첫 번째 코너 '당신이-'이 주는 주제의 감각도 언급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올해 칸 영화제를 앞두고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한국영화에만 무섭도록 집착했다. 국가대표 선수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 같은 홍보성 기사는 보는 사람들의 머리에 한 길만을 파고 그 길로만 가라고 강요한다.

반면 <시네마 천국>이 선택한 주제는 '칸이 사랑한 여인들'이었다. 공식 경쟁 부문에 출품된 영화 <밀양>의 전도연에서 시작된 여배우 이야기는 강수연을 비롯해 이자벨 위페르와 이자벨 아자니 그리고 비요크까지 넘나든다. 시청자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는 차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그 다음 코너인 '처음처럼'과 '이 영화 이 장면'은 <시네마 천국>의 양념과도 같다. 영화배우나 음악 감독 등이 나와 영화에 대한 추억을 읊는 '처음처럼'은 우리들 마음속에 영화는 어디에 있는지 되새기게 만든다. '이 영화 이 장면'은 네티즌의 선별로 꾸며지는 명장면 코너. 둘 모두 머리가 아닌 가슴을 후비는 사랑스러운 매력을 지녔다.

두 코너가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면 '불멸의 B무비'는 머리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주류 영화들을 뛰어넘는 유쾌함과 충격을 지닌 B급 무비. 그들 영화 특유의 매력을 편견의 시선 없이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 이 코너의 장점이다.

'지금 시네마 메시지가 도착 했습니다'는 영화 현장이나 작지만 다양한 영화제를 소개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노동석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같은 독립영화나 환경영화제 등을 이토록 자세하게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다양한 장점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칸이 사랑한 여인들' 편에는 영화 <밀양>에 대한 존경만 있었을 뿐 그 이상은 없었다. 같이 출품된 김기덕 감독의 <숨>에 대해서는 제목만 말하고 훌륭한 연기를 펼친 지아나 영화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 영화계에서 비교적 홀대를 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은 세 감독의 대화에서도 완전히 소외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 진행자의 직업이 영화감독이란 것은 그들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한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배우나 작업 환경 등 단점에 대해 지적하고 싶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진행자 셋은 말하면서도 계속 누군가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시원하게 뚫리지 않는 대화의 호흡은 그렇게 꼭 한 번씩 끊기곤 한다.

이렇게 몇몇 아쉬운 점이 있지만 <시네마 천국>이 여타 영화정보 프로그램에 비해 탄탄한 내실을 지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쾌하고 때론 발칙한 세 영화장이들의 수다는 매주 금요일 밤 영화여행의 좋은 길라잡이가 된다.

쏟아지는 영화정보와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에 녹초가 되었다면, 한 번쯤은 머릿속 편견을 지우고 리모콘 버튼을 눌러라. 당신은 아마도 창밖에서, 책상 밑에서 그리고 귓가에서 퍼지는 그들의 수다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태그:#시네마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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