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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먹서먹했다. 느닷없이 아침이슬을 불러달라니, 그것도 공연장이 아닌 야외에서. 그것도 인기 포크 듀오 '나무자전거'에게.

그들과 지난 4일 KBS 본관 옆 공원 매점에서 만났을 때, 어색함을 느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바쁜 일정 탓에 질문지를 이제야 훑어보는 강인봉(41)씨의 눈매는 차가웠고, 그 옆에 앉아있는 김형섭(39)씨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물론 억지로(?) 밀어붙인 이유는 있었다. '자전거 탄 풍경(자탄풍)' 시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참 착해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아침이슬'을 들이민 이유

2005년 나무자전거로 '분가'하고 그들이 보여준 활동에는 분명 '무엇'이 있었다.

그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1만원짜리 콘서트를 열고 있다. '대중' 음악 콘서트가 서민들에게는 일종의 사치로 자리잡은 요즘 말이다. '팬들에게 못할 짓' 대신 '만원의 행복'을 선택한 결과다.

게다가 그들은 EBS FM 라디오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와 노래를 소개하는 <사랑해요 코리아>를 진행중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는 국내 정규 방송 중 처음이다. <사랑해요 코리아>는 얼마 전 방송위원회가 선정하는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쯤이면 '뭔가 통하리라'는 기대를 가질 만 하지 않은가.

서먹서먹함은 곧 사라졌다. 그들이 자리를 잡자마자 '아침이슬'을 연습한다. 호젓한 공원에서 정말 오랜만에 듣는 통기타 소리. "대학교 졸업하고 처음 부르는 것 같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주보다 더 고운' 노래다.

대학생 시절 "있어 보여" 즐겨 불렀다는 아침이슬, '가장 마음에 드는 소절이 어디냐'는 질문으로 본격적인 '소통'을 시작했다.

"태양과 묘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술"

ⓒ 이정환
강인봉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참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묘지'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잘 쓰지 않는데, 대부분 아름다운 가사를 쓰잖아요. 튄다고 해야 하나? 참 파격적인 부분 같아요."

김형섭 "저는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이 부분이요. 날씨와 아픔을 관조적으로 비교했다는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예술인 것 같아요. 교과서에 들어갈 만한 노래라고 생각해요."

강인봉 "김민기씨 인터뷰에서 봤는데 어떤 정치색을 띠고 만든 건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자꾸 불려지다 보니까…. 이런 거 있잖아요. 하지 말라고 자꾸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거. 오히려 이 노래를 자꾸 탄압을 하니까, 운동가요로 더 많이 불리게 되고. 그러면서 상징성이 더 짙어진 것 같아요. 그냥 놔뒀으면 많은 유행가 중 하나로 끝날 수도 있었다고 봐요."

기자 "무슨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아침이슬이 장수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강인봉 "노래라는 게 그래요. '꼭 히트시켜야지'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만들면 될 거야'하고 만든 노래는 실제 잘 안돼요. 의도하지 않고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는 빈 공간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얘기죠. 특히 우리나라는 같이 부르는 걸 좋아하잖아요. 그러니까 자신만의 추억 또는 의식과 결합된 내 노래가 평생 갈 수 있다는 거죠."

1987년 6월...군악대 이등병과 통기타 동아리 신입생

▲ 나무자전거 강인봉씨
ⓒ 이정환
기자 "형섭씨는 87년 6월에 뭘 하고 있었나요?"
김형섭 "저는 써클방에 있었어요(웃음). 말랑말랑한 통기타 동아리에 있었어요. 사실 별 의식 자체가 없었을 때죠. 1학년이었으니까 선배들이 나가자고 하면 나가고, 또 싫으면 막 도망가고…. 다만 91년도에 강경대가 데모하다가 잘못됐잖아요. 강의도 같이 들었던 친구인데…. 그 때 저희 학교가 많이 나섰죠."

기자 "형섭씨도 나섰나요?"
김형섭" 쩌(저)-는(웃음)…. 물론 저도 최루탄 안 맞아 본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는 한 번씩 다 하잖아요. 내가 무슨 '나라를 바꿔야 돼'는 의식 갖고 한 게 아니라, 동료 의식 같은 거 있잖아요. 가까이 있던 친구가 죽으니까 열 받잖아요. 그런 의식이지, 뭐."

강인봉 "저는 집회 있으면 맨날 도망 다녔어요. 최루탄도 싫고 다 싫었죠. 다만 적극적으로 참여한 적이 두 번 정도 있었어요.

과 친구가 직격탄을 맞아 한쪽 눈을 실명했죠. 어떻게 참고 있겠어요? 같은 강의실에서, 같은 과, 같은 학번으로 같이 공부하던 친구인데. 또 한 번은 학교 총장님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강제 퇴임 당했을 때였어요. 그 분이 꼬장꼬장하게 정권하고 대치하셨는데, 맘에 안 드니까 갈아치운 거죠. 좋으니 싫으니 해도 우리 대장인데…. 그 때는 평소 집회에 소극적이던 친구들도 다 참여했죠. 피부에 와 닿는 이슈가 있을 때 참여했던 것 같아요."

기자 "생각하면 그 시절에 부모님들이 '데모하지 마라'는 말씀 참 많이 하셨어요."
김형섭"저는 제주도가 고향인데요. 제주도 선배 중에 원희룡 의원이 있어요. 완전히 '제주도 대명사'였죠. 공부 잘 하기로. 저희 자랑이었는데 서울대 법대 전체 수석으로 들어갔다가 잘렸잖아요. 제주도 애들이 부모님한테 '절대 저렇게 되지 마라'는 당부 많이 받고 올라왔죠.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면 나도 돌 것 같아서. 제가 잘 돌거든요?(웃음)"

변한 사람들, 변하지 않은 사람들

기자 "87년 6월에 어떤 노래를 즐겨 불렀어요?"
강인봉 "저는 군가를 부르고 있었죠(웃음). 그 해 3월에 입대했거든요. 군악대에 있었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병들은 그 때 충정훈련을 받았거든요? 데모 진압 훈련이요. 총도 잘 쏘지 않는 부대가 1주일에 한 번씩은 꼭 방패 들고 봉 들고. 아직도 발소리를 '쿵! 쿵!'하며 굉장히 크게 냈던 게 기억에 남아요. '박살! 박살! 박살!' 이러면서…. 참 괴리감이 컸어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학교에 있다가.

하지만 저는 학생운동을 비판하는 쪽에 있었어요. 그 때야 내놓고 비판하면 완전히 나쁜 놈이 되는 시대라 말은 못했지만…. 대학 1학년 시절에 민정당 최고위원했던 이세기씨란 분이 표적이었어요. 4·19 때 학생운동 주도세력이었던 양반이 불과 20년 만에 그런 모습으로 있다는 것. 그래서 학생운동하면서 투옥되거나 하는 것들을 무슨 경력처럼 생각하는 경향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죠. 지금 내가 아는 분 중에도 있지요. 참 열심히 학생운동했던 분인데, 지금은 칭찬할 수 없는 정치인으로 서있죠."

기자 "어느 정당에 계신 분인지?"
강인봉 "뭐, 요즘은 여야가 없잖아요?(웃음) 옛날에 학생운동하는 친구들과 술 마시면서 그런 토론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어요. 그 때 굉장히 싫어했던 친구가 한 명 있었거든요? 투사였죠, 투사. 무슨 일만 있으면 바로 복면하고 돌깨는 친구. 저는 그런 모습을 싫어하는 쪽이고, 그래서 서로 굉장히 싫어했어요. 5년 전쯤 다시 만나 굉장히 친해졌어요. 술 한 잔 먹으면서 '그 때 넌 이랬다, 난 이랬다' 얘기를 하는데, 결국 뜻은 같았다는 걸 알게 됐죠.

그 친구도 지금 정치권에 있어요. 하지만 참 굉장히 어렵게 있어요. 정치물 먹다보니 옛날 돌을 던지며 타도하고자 하는 대상이 스스로 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더라구요. 제가 보기에 아직 타도의 대상은 안 돼 있는 것 같던데….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친해진 거죠."



ⓒ www.treebicycle.com
"대중 계몽? 이제 '나를 따르라'는 그만"

기자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말씀 같습니다."
강인봉 "사실 변화라는 건 필요하죠. 사람이 늘 항상 똑같으면 지겹잖아요. 대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거죠. 저희 음악으로 이야기하자면, 스타일이나 장르에 대한 변화는 가능하겠죠. 하지만 저희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음악, 가능하면 기계음이 아닌 자연음을 사용한다던가…. 이런 것들은 계속 유지해 나가야죠. 저희 정체성이니까."

김형섭 "그러니까 같은 포크라도,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해도 경향은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추억을 얘기하고, 계속 낭만을 얘기하고…. 1970년대 음악을 2007년에 하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강인봉 "진보해야죠. 문화적 권력이 위에서 아래로 이양하는 시기라고 봐요. 가수와 대중. '우리는 무조건 하니까 너희는 들어라'는 식은 먹히지 않아요. 이제는 수용자, 객석에 있는 분들이 주인공이 되고 있으니까.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되지 않나. 6월 항쟁 20년? 이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제는 '나를 따르라'는 방법은 안 된다는 거죠.

(김형섭씨를 바라보며) 지금은 길만 막혀도 막 욕하잖아(웃음). 저 사람들 이야기가 옳고 당위성이 있다는 건 알지만, 대중들은 더 이상 계몽당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필요한 정보만 주면 돼요. 자연스러운 여론 형성을 위한 운동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물론 20년 전과 비교해서 '얼마나 많이 민주화됐느냐'는 문제는 있어요. 조금 나아졌지만, 어떤 면에서는 퇴보한 측면도 있다고 봐요. 20년 전과 비교하면 더 교묘해졌다고 봐야 하나?"

김형섭 "눈 가리고 아웅하는…."

강인봉 "드러내고 나쁜 짓을 하면 알아보기도 편하고 흑백이 분명하죠. 이제는 뭔가 나쁜 게 하나 있으면, 좋은 것도 하나 살짝 섞어 버리죠. 20년 전에는 타도해야 될 적이 확실했는데, 지금은 막 적과 아군이 섞여있고, 그래서 솎아내야 되니까…. 빈부격차만 봐도 그래요. 20년 전과 비교하면 더 심해졌죠. 정말 경제 발전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어쩔 수 없는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형섭 "딱히 불만은 없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들어요(웃음). 버스에 탄 사람들 표정이 뭔가 어정쩡해요. 사람들이 뭔가, 뭔가 짜증이 나 있어요. 그런 시대에 사는 것 같아요. 뭔가 편치 않은… 옛날에는 뭐가 싫은지 확실했잖아요."

"지금은 적과 아군이 섞여있는 시대, 10년 뒤에는"

▲ 나무자전거 김형섭씨
ⓒ 이정환
기자 "10년 뒤의 6월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강인봉"정말 축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잔치라고 하죠. 서로 음식도 나누는 생일 잔치처럼, 기쁜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항쟁'이란 이름도 바꿨으면 하고, 기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어요. 우리가 이런 날이 있어서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기쁘잖아요? 물론 아직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 중에는 20년 전 요구사항들이, 그 때 바람들이 다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다 이뤄졌다면 더 이상 심각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김형섭 "우리가 천상병 시인 추모 음악회로 알려진 행사를 함께 하고 있는데요. 추모 음악회라고 안 해요. 천상병 시인 천상 예술제, 진짜 분위기가 밝아요."

끝으로 "10년 후에 나무자전거는 어떤 가수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라고 질문했다가 강인봉씨에게 혼(?)이 났다. "한참 활동하고 있을 땐데?(웃음) 와- 지금 막 은퇴시키려고 하네"라는 딱 부러진 대답에 그만 '따끔'하고 말았다.

김형섭 "이유가 있는 팀이었으면 좋겠어요."

강인봉 "필요한 가수요. 있는 게 나은 가수. 아니면 최소한 있으나마나 한 가수. 있어서 해가 되는 가수만 아니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징가Z' 부르던 소년을 기억하세요?
친숙한 얼굴들, 강인봉과 김형섭

ⓒ이정환
강인봉씨가 벌거숭이 그룹 시절에 부른 '삶에 관하여'는 아직도 블로그에 종종 오르내리는 노래다. 이처럼 강씨의 노래 중에는 눈보다 귀에 익숙한 히트곡이 많다.

어린 나이에 가요계에 등장, 올해로 가수 경력 30년을 맞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기운센 천하장사'로 시작하는 마징가Z 주제가도 강씨가 부른 노래. 강씨는 70년대 인기 그룹 '작은별가족' 멤버로 중장년층에게는 더욱 친숙한 얼굴이다.

김형섭씨는 포크 그룹 '여행스케치' 멤버로 익숙하다. 1989년부터 음악생활을 시작했으니, 김씨의 음악 경력도 어느덧 20년에 육박하고 있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김씨의 가장 큰 매력은 매끄러운 고음 처리에 있다. 그는 고음 발성이 좋은 보컬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두 사람은 1999년 '세발자전거' 시절부터 9년째 함께 활동을 하고 있다. KBS 개그콘서트 '마빡이' 주제가를 불러 화제에 올랐으며, '만원의 행복' 전국 투어 공연을 비롯 최근에는 중국 등 활동 무대를 해외로 넓히고 있다. 특히 12일에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나루아트센터에서 '가족이 함께 하는 보물찾기 여행'을 주제로 콘서트를 연다. / 이정환

태그:#아침이슬, #나무와자전거, #정치인, #강경대, #강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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