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요즘 신문마다 꽃이 한창이니 어서 가보라고 하네요. 아직 시샘하는 추위가 남아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화사한 봄이지요. 저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자연에 대해서는 신비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잘 알지 못하기에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날 이끄는 자연.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주변의 꽃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이따금 야외 스케치를 나서기도 하면서 꽃과 풀을 가까이서 만났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자연과 친해지고 즐기는 데도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종종 선생님을 따라서 '옛골'이란 동네에 스케치를 하러 가곤 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완전히 바뀐 곳이에요.

거기서 말로만 듣던 외양간이며 달구지·시골집·농기구 등등을 보았습니다. 지게를 지고 산에 오르시던 할아버지를 보며 신기해하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의 기억

<몽유도원도> 일본 덴리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의 모습을 안견에게 그리게 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런 기억도 떠오르는군요. 어느 따스한 봄날이었습니다. 졸음이 쏟아지는 어두운 교실에서 그림을 그리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날씨라서 그랬는지 선생님께서 야외 스케치를 나가자고 하셨습니다.

신나서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수업을 하기엔 이미 마음이 들떠 있었죠. 저와 몇몇 친구들은 선생님 눈을 피해 나무 밑에서 사춘기 소녀들답게 웃으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심한 듯 우리를 보시더니 아무 말씀도 없이 우리를 언덕 위로 데려가셨습니다. 꾸중을 들을까봐 우리는 걱정을 하며 조용히 따라 나섰죠. 그런데 언덕을 넘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란! 눈에 황홀한 벼락을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미적 충격이랄까요. 저희 모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말 그대로 분홍의 바다였거든요.

융단처럼 깔린 연두색 풀들의 바탕 위에 짙은 고동색의 나무줄기만 빼고는 온통 분홍이 축포를 터트리듯 피어있는 과수원. 사이사이 검은 점이 박혀있는 치맛자락 같은 꽃 더미는 이 세상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내내 말씀이 없는 채 미동도 않고 조용히 그 풍경을 바라만 보고 계셨어요. 그렇지만 그 모습이 '이런 풍경 앞에서 뭔가 느끼는 거 없니?' 물으시는 것만 같았어요. 지금도 그 물음이 귀에 생생합니다. 사실은 여름이 되어 복숭아만 보아도 그 때 그 풍경과 소리가 떠오르곤 하지요. 맛과 색과 소리의 공감각이라고나 할까요.

몽유도원도, 보기 전에 느꼈다

1996년 호암 갤러리에서 '조선전기국보전'이 열렸습니다. 여기에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전시되었어요.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덴리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해외 반출이 아주 드물어요. 특히 한국에 내놨다가는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일본으로서는 가장 내놓기 꺼려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해요. 그러니 제가 이 그림을 본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위의 전시회가 우리나라에서 <몽유도원도>를 볼 수 있는 두 번째 전시회였어요.

당시 호암 갤러리에는 관리상의 이유로 그림을 상당히 어두운 곳에 놓았어요. 유물은 밝은 빛에 노출될수록 빨리 손상되기 때문이지요. 간신히 그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컴컴한 실내에서 사람들에게 밀려나지 않으려고 팔꿈치로 버티며 간신히 그림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림은 과연 듣던 대로 대단했어요. 보자마자 생각이 떠오르는 대신 소름이 쭉 돋았을 정도거든요. 모든 잡념이 없어지고 그림 속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 여름밤에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서늘함이랄까요? 그림을 '보았다'기보다는 '느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 그 어딘가를 관통하는 시원한 느낌 말이에요.

그림 속에서는 분홍으로 피어난 복사꽃이 바람에 날릴 것 같고,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사람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어요. 엷은 분홍의 꽃 사이로 금박 꽃술이 살짝 보여 더욱 화사하고 신비롭게 보였습니다.

복사꽃의 분홍 색깔은 거의 날아가 없어져 희미한 기운만 남았는데도 제 눈에는 붉게 보였습니다. 그것이 '옛골'의 풍경과 겹쳐진 까닭입니다. 그림을 통해 추억이 되살아나고, 이러한 미적 경험은 추억을 더욱 공고하게 만듭니다.

<몽유도원도>와 유토피아

▲ 올 봄 아름답게 핀 복사꽃. 한자 문화권에서 복사꽃은 '이상향'이자 '여성의 아름다움'이고 '성적 정념'이다.
ⓒ 이화영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대표적인 산수화입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을 꾸고 나서 그 내용을 안견에게 들려준 뒤에 그리게 한 것입니다.

이 그림에 안평대군이 '몽유도원도'라는 이름과 그림이 그려진 경위와 내력을 직접 써넣었죠. 여기에 신숙주·정인지·박팽년·성삼문 등 당대 최고의 문사들이 쓴 그림에 대한 감상의 글, 즉 시 형식의 '제발(감상·비평 등을 적은 문장)'이 모두 23편이나 곁들여 있습니다.

그림은 3일 만에 완성되었다고 해요. 꿈에 본 신선계의 풍경이 희미하게 사라지기 전에 생생하게 복원하고자 온 정성을 쏟은 것이죠.

그림은 현실계와 이상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현실계는 먼 곳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어요. 마치 우리가 강과 들을 바라보듯이 멀리 산이 있고 강이 흐르며 앞쪽에는 꽃이 핀 복숭아나무가 몇 그루 서 있지요. 반면 이상계는 산 아래에서 산위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두 세계는 깊은 계곡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계곡의 바위는 수직 구도를 이루고 있고, 그 계곡 사이에 지그재그로 길이 나 있어요. 그래서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길을 따라가노라면, 어느 순간 이상계인 도원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뭉글뭉글 피어오르듯이 연기처럼 그려져 있는 바위 때문에 그림은 전체적으로 구름이 머리를 쳐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유토피아는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려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림 속 도원경, 어느 길로 갈까요?

서양어로 유토피아는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동양의 도원경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겠지요. 쉽게 갈 수 없으니 도원경인 것입니다. 봄날의 아주 짧은 한 순간 복사꽃은 피었다 지고, 그 순간을 놓치면 우리는 또 한 해를 기다려야 합니다. 복숭아꽃이 가득 피어 있는 풍경이 도원경이 아닐 수 없겠죠?

일반적으로 글씨나 그림은 모두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가면서 봅니다. 그렇지만 보통의 두루마리 그림과 달리 <몽유도원도>는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견해도 있어요.

물론 얼마 전 안타깝게 돌아가신 미술사학자 오주석 선생님에 따르면,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오른쪽에서 왼편으로 보는 게 맞다고 합니다.도원경을 보고 돌아오느냐, 보러 들어가느냐 하는 시점의 문제일 것입니다.

어쨌든 이 그림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훌륭합니다. 작가가 의도한 순서대로 보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보여야 할 텐데, <몽유도원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더욱 논란이 커지는 것이겠죠. 화집을 놓고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구도와 짜임새가 정교해서 과연 걸작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덧없어라! 복사꽃 흐드러진 봄날의 꿈이여!

<사시장춘> 신윤복, 18세기, 지본담채, 27.2x15.0, 국립중앙박물관
위에서 말했듯이, 이 그림을 그린 직접적인 계기는 안평대군의 꿈이에요. 하지만 이그림의 기원은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입니다. 중국 역대 화가들은 이 이 시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조선에서도 역시 그러했지요.

이 이야기 속 무릉도원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무릉'이란 곳에 한 어부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강에서 고기를 잡는데 어디선가 복숭아 꽃잎이 막 흘러내려왔어요. 어디서 흘러내려오나 하고 따라 올라가보니 강이 시작되는 곳에 동굴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서 동굴을 빠져나가자 평화롭고 아름다운 별천지가 펼쳐졌어요. 마을 안에는 진나라 때 전쟁을 피해서 도망간 사람들의 후손들이 수백 년 동안 세상과 떨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어부를 융숭히 대접해서 보냈어요. 어부는 자기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와 관가에 그 사실을 알리고, 그 곳을 찾으려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못 찾았다고 합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이처럼 복숭아꽃을 이상적인 세계에 피어있는 꽃으로 여겨왔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몽유도원도>가 이상계에 대한 꿈을 그리면서도 실제로는 권력투쟁의 한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권력투쟁 한가운데 몽유도원이 있었네

<몽유도원도>를 그릴 당시의 현실 속에는 처절한 권력투쟁이 펼쳐지고 있었어요. 야심가 형님 수양대군이 내미는 사약을 마셔야만 했던 동생 안평대군과 이 그림을 찬미하는 시를 바친 선비들에게 불어 닥친 피비린내. 안평의 꿈은 이 일촉즉발의 권력투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소망의 표현이었을까요? 모르겠어요.

안견은 이 적막한 황홀경을 그리며 안평대군에게 닥칠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어떤 예감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안평대군은 꿈에 대해 안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여럿이 들어갔는데, 둘만 나왔다"고. 안견은 그 이야기를 듣고 가까이 와 있는 죽음의 냄새를 맡았던 것이죠.

안견은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안평대군의 집을 빠져나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안평대군이 아끼는 귀한 중국 먹을 훔쳐서 도포자락에 넣었습니다. 안평대군은 당연히 사람을 불러 먹을 찾는 소동을 벌였지요. 그 와중에 안견이 일어서며 먹을 떨어트리자, 안평대군은 노하여 안견을 내쳤습니다.

안견은 부리나케 안평대군의 집을 빠져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양대군의 무리들이 그 집을 덮쳤습니다. 모두 죽고 안견과 신숙주 두 사람만이 살아남은 것이죠. 꿈 그대로이죠. 믿겨지나요?

덧없어라! 복사꽃 흐드러진 봄날의 꿈이여! 안평대군과 그의 사람들은 모두 죽고, 이 그림만 남아 후세에 전해졌습니다. 다음의 시는 안평대군이 이 그림에 붙인 글입니다.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꾸었나,
은자들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니 참으로 좋을시고,
천년을 이대로 전하여 봄직하지 않은가.
삼 년 뒤에 정월 초하루 밤,
치지정 안평대군의 거처 이름.
에서 다시 이를 펼쳐보고서 짓노라.

世間何處夢桃源, 野服山冠尙宛然.
著畵看來定好事, 自多千載擬相傳.
後三年正月一夜, 在致知亭因披閱有作. <안견과 몽유도원도> (안휘준·이병한 공저, 예경산업사) 161쪽에서 재인용.


꽃이 지기 전에 들판으로 나가세요

복숭아꽃은 따뜻한 봄날 화사하게 피어난 아름다운 미인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날씨가 가장 좋은 4~5월에 피는 분홍색 꽃은 수줍은 처녀의 뺨처럼 붉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삼국유사>에 나오는 미녀의 이름은 아예 '도화랑'입니다.

또 복사꽃과 관련해서는 '인면도화'라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복숭아꽃처럼 어여쁜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하는 된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인데요. 만나지 못할수록 애틋한 그리움이 깊어져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게 생각이 되지요.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로 복숭아꽃은 아름다운 여인, 젊은 여자를 상징합니다.

또 춘화에도 잘 등장해요. 남녀의 성적 정념에 가장 잘 어울릴 꽃이기 때문이지요.

풍속화가 신윤복의 <사시장춘>이란 유명한 춘화에도 이 꽃은 피어 있어요. 한갓진 구석 방, 방문 앞에 급히 벗어던진 듯한 남녀의 신발 두 켤레, 문 앞에 술병을 들고 온 계집종이 그려져 있지요.

이 춘화에는 '기척을 내고 술병을 들이밀어야 하나, 모른 체 돌아서야 하나' 고민하는 계집종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방문 옆에 꽃이 한창 핀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요.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님은 이 그림을 한국적 춘화의 으뜸으로 친다고 합니다. (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손철주, 생각의 나무) 42쪽 참조)

색을 밝히는 바람난 여자의 사주를 '도화살'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하긴 복사꽃이 얼마나 예뻤으면, 옛날에는 집안 여자들이 바람날까봐 정원에는 이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현대여성들은 도화살 아니라 세상없어도 복숭아꽃처럼 예쁘기를 바랍니다. 열아홉 처녀아이의 볼처럼 발그레한 복숭아꽃, 잠시 머물다 사라질 안타까운 아름다움이지요.

이 봄, 그 꽃이 다 지기 전에 들판으로 나가보세요. 저는 시댁이 있는 강원도 춘천으로 복숭아꽃을 보러 떠납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서적 :  <동양명화감상 (이상희, 니케)> <회화 (이원복, 솔)> <그림, 보는만큼 보인다 (손철주, 생각의 나무)>


태그:#복숭아꽃, #도화, #복사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