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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관이 독특한 헤이리 마을의 건물.
ⓒ 조미나
사람에 따라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시끌벅적한 곳에 가서 쇼핑을 하거나 신나게 놀면서, 어떤 사람은 혼자 조용히 침잠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나는 후자다.

나와 같은 '나홀로족'을 위해 혼자서 조용히 떠날 수 있는 여행을 준비했다. 하루종일 사람들과 부대껴서 지쳤다면 이제는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는 여행을 하자. 에피쿠로스는 "혼자 밥 먹고, 혼자 다니는 건 사자나 늑대의 삶"이라고 했지만 하루쯤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늑대의 삶'이 거슬리면 자신을 스스로 친구삼아 대화하는 시간이라고 해두자.

나는 가끔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경기도 파주 헤이리 마을에 간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헤이리만이 갖고 있는 매력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15일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찾은 그곳은 15만평 땅에 작가, 미술인, 영화인, 건축가 등 370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집과 작업실, 미술과, 갤러리 등 주거복합 문화예술 공간을 지어 생활하고 있다.

▲ 외벽이 철로 만들어진 건물.
ⓒ 조미나
아직도 공사 중인 건물이 많아 주변이 어수선하다. 하지만 이색적이고 개성강한 건축물과 영화,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헤이리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갓진 여행을 원한다면 평일에, 그것이 힘들면 주말이라도 오전 중에 방문하자. 적당히 데워진 봄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듯 헤이리를 거닐 수 있을 것이다.

헤이리 마을은 부지가 넓어 하루에 다 돌아보기에는 무리다. 홈페이지에 먼저 들러 꼭 가보고 싶은 곳과 진행 중인 행사 정보를 얻는 것이 좋다. 헤이리에 지도가 비치되어 있지만 시설이 너무 많아 자칫하면 15만평을 끝없이 헤매는 수가 있다.

헤이리의 가장 큰 특색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개성 강하고 특이한 구조의 건축물이다. 슬슬 걸으며 외관만 구경해도 반나절이 훌쩍 갈 정도다. 하지만 너무 실험적이거나 콘크리트, 철제 등의 차가운 재료를 써서 녹색경관과는 동떨어진 감이 없지 않다. 헤이리에서는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리는 설계를 했다고 하니 앞으로 진행될 공사를 두고 볼 일이다.

1번 게이트로 들어가면 갤러리 진아트가 있다. 그 길로 쭉 올라가면 북까페 반디가 나온다. 타원형으로 지어진 반디 건물은 참 귀여워 보였다.

먼저 북하우스에 가기로 했다. 이곳은 레스토랑과 책방, 갤러리, 공연장이 함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외형도 굉장히 특이하다. 헤이리의 많은 건물들이 콘크리트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지어졌지만 북하우스만의 특징은 거기에 나무를 조화시켰다는 점이다.

북하우스는 콘크리트와 나무를 조화롭게 구성해 따뜻한 거목의 이미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책방이 넓어서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다. 내부기둥도 책꽂이로 활용해 거대한 책 전시장 같다. 행사하는 책은 다른 곳보다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 갤러리처럼 꾸며진 내부를 구경하면서 간간이 눈에 띄는 제목의 책장을 넘겨보기도 했다.

이달 말부터 '고물들의 화려한 외출'전

▲ 영화 자료를 모아 둔 영화박물관
ⓒ 조미나
▲ 옛날 잡지를 모아 둔 곳. 차범근 감독의 오래 전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정겹다.
ⓒ 조미나
오후가 되니 책방에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북적임을 피해 오정희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를 사서 밖으로 나와 갈대광장으로 향했다. 갈대광장 주변에 빙 둘러 있는 민속악기 박물관과 인테리어숍 아오카에루에 들어갔다. 민속악기 박물관은 입장료 5000원을 내면, 세계의 다양한 악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간단한 음료도 제공된다. 특이한 모양의 악기에 대해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아오카에루는 가운데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뻥 뚫린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이곳에서는 인테리어 관련된 소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2층 갤러리에서는 이달 28일부터 6월30일까지 '고물들의 화려한 외출'이란 제목의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 전시회는 길거리에 버려진 것들만은 가지고 만든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특색 있는 전시회와 이벤트를 제공하려는 문화예술인의 노력이 참 반가웠다. 그런 노력들이 너무 상업적으로 발전해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으로 국내외 다양한 잡지를 판매하는 매거진 하우스에 들어갔다.

남자들이 자동차관련 잡지에 열중해 있었다. 패션잡지도 각 나라별로 판매하고 있었다. 2층 카페로 올라갔다. 카페에서는 각종 잡지를 열람할 수 있고 느긋하게 커피도 즐길 수 있었다. 커피를 시키고 북하우스에서 산 <내 마음의 무늬>를 펼쳤다.

이 책은 오정희씨가 그동안 자신의 시간을 뒤돌아보며 쓴 산문집이다. 그녀의 문장력에 숨이 막혔다. 작가는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작품을 쓸 때 느낌,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마음 등을 담담하면서도 예리한 필체로 적어나갔다. 이 책을 읽으며 아직 젊은 나이지만 지나온 나의 삶을 자연히 되돌아보게 됐다. 나이 드는 것이 무엇인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그곳에 조용히 앉아 있자니 도시의 바쁜 일상과 나의 고민, 불안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일상에서는 그런 평온을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문득 다음날 펼쳐질 반복적인 일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있지도 않은 먼지를 몸에서 털어내듯 상념을 툭툭 치고 일어났다.

▲ 1970년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타임캡슐 방.
ⓒ 조미나
▲ 딸기 캐릭터
ⓒ 조미나
특히 어린이들한테 인기가 좋은 '딸기가 좋아'. 쌈지의 딸기 캐릭터를 이용한 아기자기한 상품이 많다. 인테리어도 귀여워서 여기저기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입장료는 일반 3천원으로 쌈지미술창고도 입장할 수 있다.

헤이리를 나오면서 아등바등 살아온 나의 조급함을 조금은 덜어내고 온 느낌을 받았다. 진지하게 나의 일상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빠른 세태에 맞춰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쪼개 그것을 실행한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다. 아주 큰 계획들에만 치중하다 보면 나중에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길을 잃게 된다.

성취감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헤이리는 나에게 스스로 돌아보며 일상의 중요함을 일깨워줬다. 다음에는 게스트하우스와 한옥펜션에서 하루쯤 묵으며 예술인들과 대화할 기회를 갖고 싶다.

오늘 하루 홀로 떠도는 외로운 늑대가 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얻은 것 같아 뿌듯했다. 혼자 돌아다녀도 눈치 봐야 할 불편함이 전혀 없는 헤이리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 넌더리가 난다면 헤이리가 아니어도 좋으니 혼자 책 한 권 덜렁 들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곳에서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잠시 관계 속에서 벗어나 착한 자식, 자상한 아빠, 포근한 엄마, 성실한 회사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깨에 진 짐을 내려놓고 오롯이 '나'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덧붙이는 글 | ※교통안내, 전시회 및 행사, 쿠폰과 관련된 정보는 헤이리 홈페이지 www.heyri.net에서 확인 수 있다.

<나만의 여행지>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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