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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사시에 동원령이 선포되면 동원예비군들이 부여받는 동원보직과 관련된 우편물을 받았다. 그런데 내 직책이 다름 아닌 운전병이다. 군에 입대하면서 작성한 수많은 인적사항에 운전면허증이 있었다고 허위기재를 한 적이 없었던 기자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실제로 전쟁이 터진다면 운전병으로 직무를 해야 할 텐데 '무면허증 운전병'보고 전시 상황에서 어떻게 하라는 건가. 이것도 군 복무 중에 배웠던 '까라면 까'라는 사고방식의 일종으로 보아야 할까. 그런데 기자와 같은 무면허증 운전병이 한 두명이라면 안심하겠지만 만약 그 이상이라면 이는 유사시에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 동원보직 관련 서신이다. 무면허인 기자에게 유사시 직책은 운전병으로 기재되어있다.
ⓒ 황진태
한반도 전쟁 위기가 현저히 낮아진 요즘, 동원령이 선포되는 파국이 초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수많은 예비군들이 군 시절에 훈련받았던 주특기와 다른 동원직책을 받더라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유사시를 가정하여 운전면허증도 없는 병사가 운전대를 잡는 오합지졸이 동원예비군의 현주소라면 당연히 군의 동원병력 관련 행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군 시절로 돌아가서 기자가 부여받았던 주특기는 장갑차 조종수였는데 주특기가 조종수였음을 알고서 운전면허증 조차 없는 기자로서는 무척 막막했었다. 막상 장갑차 조종훈련을 받으면서 숙달은 되었지만 일반 자가용도 무면허 일반인에게는 위험할 텐데 하물며 장갑차와 같은 중장비를 단 한 달 동안 훈련받고서 자대에 배치된다는 것은 최근 국방부가 병사들의 각기 특성을 반영하여 주특기를 부여한다는 방침과도 거리가 멀다.

운전면허증이 있는 훈련병이 장갑차 조종을 더 능숙하게 했음은 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면에 티코조차 몰아 보지 못했던 훈련병이 수 십 톤에 육박하는 중장비를 조종할 때의 심리적 부담감이 어땠을 지를 추측하는 것은 더할 말이 없다.

행정학의 일종인 조직관리론에서는 직책에 의한 가장 원활하게 운영되는 조직으로 군대를 손꼽는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동원직책조치는 조직관리론에서 말하는 직책에 의한 유연성이 높은 조직인 군대와는 괴리가 큰 인사행정이다.

주특기 교육에서 사용되는 혈세만 하더라도 엄청난 액수일 텐데 단지 의무복무 2년 동안만 사용하려고 그 막대한 세금을 걷는 것일까. 전쟁이 발발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겠지만 막대한 혈세를 사용했던 만큼 전역 이후에도 현역 시절에 주특기를 감안한 동원 예비군을 조직하는 것이야 말로 전쟁가능성을 낮추고, 국민의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막대한 혈세로 훈련시킨 주특기 교육을 의무복무기간에만 사용하고, 전역 후에는 그 능력을 살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현행 동원정책은 세금 먹는 하마이며, 운전면허증 없는 예비군이 유사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은 동원예비군을 오합지졸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국방부의 동원예비군 행정의 허술함을 드러낸다. 차후 이러한 문제점들이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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