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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심은 사람> 표지
ⓒ 임미숙
"이곳은 프로방스의 위대한 작가 지오노가 태어나고 살고 잠든 곳이니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오노의 고향 마노스크의 입구에는 이런 팻말이 걸려 있단다. 유명한 비평가 허버트 리드는 프랑스의 암흑기를 이끈 작가로 지오노를 꼽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이 지오노를 이렇게 위대한 위치에 올려놓았단 말인가.

지오노를 유명하게 만든 데에는 그가 글을 쓰는 철학이 남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나는 이 세계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결심은 그가 30여년에 걸쳐서 수정과 집필을 하게 되는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을 완성 시킨다.

본질과 일치하는 인간, 엘제아르 부피에

지오노는 본질과 일치하는 인간을 내세웠다. 그의 이름은 성서의 엘르아잘에서 유래하는 '엘제아르 부피에'였다. 지오노는 오랜 시간 엘제아르 부피에를 관찰했고, 그는 이름만 작가가 지은 실존 인물이었다. 부피에를 찾은 지오노는 자신의 심정을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표하고 있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9쪽)

1913년, 산악지대로 여행을 간 '나'는 물을 구하다 우연히 양치기를 발견한다. 그는 말은 없었으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집 또한 아주 깨끗했다. 심지어는 옷 또한 단정하여 단추 하나 달랑거리지 않았다고 표현되어 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너무 가난한 나머지 자살까지 시도하였으나 나는 부피에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웠다고 이 시절을 회상한다. 부피에는 밤새 가려낸 도토리를 버려진 땅에 심었으며, 그것이 참나무인 것을 나는 알게 된다. 그는 지난 3년간 10만 그루를 심었으며, 이중 실질적으로는 1만 그루의 성과를 올릴 뿐이라고 한다. 당시 부피에는 50대였으며 그는 이미 아내와 아들마저도 잃고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태였다.

1차대전 이후에 부피에가 만든 숲은 이미 방대해져 있었다. 시냇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갈대가 움직였다. 그리고 변화는 서서히 일어났다. 그는 고집스레 선한 사람이었다.

1920년 이래로 나는 매해 그를 찾아갔고 그는 여전히 '완벽한 고독 속'에서 살고 있었다. 1935년에는 천연 숲을 정부에서 조사했고, 나는 정부 관리 중 하나인 친구에게 '숲의 비밀'을 말하게 된다.

1945년 엘제아르 부피에는 87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이후 사람들은 재건을 위해 노력했으며 산 전체에는 건강한 생명력이 뿌리내린다. 고대의 생이 부활한 것이다. 1913년 당시 집 열두 채와 세 사람만이 지키고 있던 마을은 이제는 만 명 이상의 사람이 살게 되었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황량한 대지를 약속의 땅'으로 바꾼 것이다.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The men who planted tree)

▲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
지오노의 많은 작품은 이미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1934년 <보뮈뉴의 사나이>는 <앙젤>로, <모상의 조프르와>는 <조프르와>란 제목으로 만들어졌으며, 1963년 <기분전환 없는 왕>은 시나리오와 각색까지 지오노가 동참했다. 그 중에서 <나무를 심은 사람>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지오노가 이 작품을 발표한 것은 1953년의 일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지 발표한 후 <보그>지에 의해 출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년 동안 그는 계속 작품을 다듬었다.

1985년에는 화가 마이클 매커디가 삽화를 그리고, 87년에는 프레데릭 바크가 그림과 감독을 맡아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다. 바크는 애니메이션을 위해 한 쪽 눈을 실명하면서 5년 반 동안 2만 장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후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와 제2회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60회 아카데미상 단평상,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룬다.

1970년 10월 지오노는 심장 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리고 그가 생을 마감한 이후에도 <나무를 심은 사람>은 꾸준히 읽혀 왔다. 프랑스의 많은 지성들은 그를 위대한 지성 중에 한 명으로 기억한다. 앞서 언급한 허버트 리드의 말은 프랑스 문학에서 지오노가 가지는 입지를 굳건히 지켜준다.

1930년부터 1946년까지 암흑기의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는 앙드레 지드도, 폴 발레리도 아니고 광휘에 싸인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그 누구도 아니다. 그들은 바로 농민 아나키스트인 지오노이며, 참다운 크리스천이라 할 베르나소스, 그리고 쉬르레알리스트 브루통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세 사람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했으며, 깊은 도덕성을 가지고 현대의 가치관에 저항했다. - 허버트 리드

필자가 너무도 좋아하는 비평가와 그를 통해서 본 장 지오노. 구두점 하나에도 시인의 사상이 담겨 있다고 말하는 허버트 리드가 칭찬하는 장 지오노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나는 혹시 엘제아르 부피에와 같은 인물은 아니었던가.'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스스로가 부피에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가 내리던 지난가을에 읽은 이 책은 필자 자신을 당혹케 하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나는 과연 본질과 일치하는가. 필자는 글을 빌려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대구산업정보대학교 도서관 홈페이지와 도서관 웹진 LIBNEWS '책마을'코너 등에도 실렸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

프레데릭 백 그림, 장 지오노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두레아이들(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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