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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2월 '서울대학교 제60회 학위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대 종합체육관으로 향하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심상치 않다. 정치를 할 모양이다.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훌륭한 분'이 정치를 한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다. 다만 자신이 정치한다고 나선 것이 아니라, 기존 정치권에서 영입을 제의받고 있는 점은 첫 발부터 불안해 보인다.

물론 '대세론'을 장악했다는 한나라당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을 일은 없다. 당연히 지지도를 전부 합쳐도 10%를 넘기 힘든 열린우리당, 탈당세력, 그리고 민주당 진영에서 경쟁적 '구애'가 한참이다. 아직까지 제대로 '뜬' 후보가 없는 비한나라당 진영이 급한 마음에 누구라도 데려오고 보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에는 '상아탑 잔혹사'라는 것이 있다. 교수나 학자 출신의 정치인이 현실 정치에서 성공한 예가 별로 없어서 나온 말이다. 물론 그 '분'들의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 명성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김동길 교수를 비롯해 이홍구 전 총리, 이수성 전 총리, 조순 전 서울시장 등 모두 쟁쟁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로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며 여의도에 초빙된 학자 출신 중, 본선 근처나마 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은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정치 엘리트의 충원 구조가 다른 미국이지만 43명의 역대 대통령 중 순수 '생업' 교수 출신의 대통령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100년 전 즈음 프린스턴대 총장을 지낸 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Thomas Woodrow Wilson)이 유일한 교수출신이지만, 그 역시 대통령이 되기 전 이미 주지사 등을 거치며 정치경력을 쌓았다. 또 콜럼비아대 총장을 지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원래 군인 출신으로 총장을 지낸 후에 나토 사령관을 했으니 학자 출신으로 보기는 역시 어렵다.

사실 정치인은 대중과 살을 맞댄 '스킨십'의 역사가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상당한 시간 동안 자신의 선택과 성과를 통해 자신의 지지층 또는 소속정당의 지지층과 일체감을 만들어 나간다. YS와 DJ는 '민주화+지역성'을 중심으로 지지층을 규합했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오랜 기간 '비굴하게 타협하지 않는다'라는 모토를 몸으로 증명해 오면서 대통령이 되었다.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지지도를 자랑하는 이명박 전 시장 역시 '일해서 성공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나름대로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거의 어느 나라 정치든지 혜성같이 나타난 신인보다는 대중과 친숙해지고 자신을 알리는 '숙성' 과정 속에서 인지도와 지지도를 축적한 정치인 출신이 지도자가 된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후보로 초빙된 '학자', 왜 본선에서 힘 못쓸까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 이상적 대통령상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글로벌 시대의 '기업인(14%)'도 아니고 정직한 '시민단체 출신(6%)'도 아닌, 때만 되면 온갖 매는 혼자 다 맞는 '정치인'이 절반가량(49%)의 지지를 얻어 국민이 원하는 차기 대통령의 직업 1위로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2007년 2월 21일 KSOI 전화조사).

우리 정치에서 곧잘 '새로운 인물'의 뛰어난 능력과 품성을 이유로 그를 대권주자 반열에 올려놓는 것은 대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됨됨이와 재주로만 지도자를 뽑는다면 총리를 승진시켜 대통령을 만드는 것이 제일 낫다.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떠벌이에다 대개 도덕성에도 좀 하자가 있는 '대중정치'가 행정을 지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별 탈 없이 일을 잘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이라고도 불리는 대중의 '집단적 희망'과 소통하며 나라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개 대중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겠다는 제3후보들은 국민으로부터 친밀감을 전달하거나 일체감을 조성하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3후보가 정치하는데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사전지식'이 있다. 총선이나 지방선거와 달리 대선만큼은 '인물'이 주도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정치세력이 모인다 해서 대선의 흐름을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반대로 인물 스스로의 '지지도'가 높으면 어차피 정치세력은 따라 붙는다. 만일 제3후보가 정치권 진입 전 스스로의 브랜드로 이미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정치권 내부의 수많은 갈래들과 위에서 아래까지의 무수한 '정치인생'들의 이해관계에서 한 치도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뺨' 몇 대 맞는 것은 예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역사 속의 수많은 정치인들이 '암살'도 당하는 판에 말이다. 현실 정치는 교수 시절에 옳은 일 한 번 하고, 빛나는 논문을 발표하면 칭송을 받는 때와 다르다. 밥그릇이 달린 문제에 있어서는 상대방이 옳기 때문이라도 때려 눕혀야 하는 게 현실 정치이다. 친구는 손을 잡고, 적은 굴복시키는 '정치력' 아니고는 배겨나질 못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제 3후보들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기존의 정치세력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하는 것은 가련하다. 게다가 정치하면 집안 망한다는 소리를 듣고 '내 명예는 지키겠다', '내 돈 만큼은 안 쓰겠다'는 정도의 헛소리를 해대면 아예 약이 없다. 아무도 돈을 내놓으라고는 안했다. 함께 고생하더라도 자신에게 정치적 생명을 걸고 따르는 무리들과 동고동락을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는 '권력의지'라는 개념과도 연관성이 있다. 즉 대선은 비록 자신이 밥을 먹여준 것은 아니나 자신의 밑에 있던 뛰어난 부하들이나 여유 있는 명사들과 하는 것도 아니며, 주변을 둘러쌓고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국회의원'들과 하는 것도 아니다. 출세한 이후에 단 한번 만나서 농담하고 밥 한끼 먹을 만한 자격도 없던 '서민'과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 번쩍번쩍한 금배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 역시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철학과 리더십 틀에서 동원해야 하는 '자원'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제3후보의 현실정치 적응하기... 결국 '정치력'이 문제다

@BRI@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세간의 논의에 시비를 걸자면 '충청'을 대표하니 호남과 충청을 연결하는 매개로서 성공한다는 바로 그 '논리'이다. 지금 정치권에도 유명한 충청인들은 많다. 이미 정치에 뛰어는 심대평 전 지사도 마찬가지이지만 이해찬 전 총리, 유인태 의원 등 다들 한가락 하는 분들이다. 전북 출신이라 전북 여론을 다 휘어잡고 있지도 않고, 전남 출신이라 전남여론을 다 잡고 있지도 않다. 그 동안 충청인들과 어떤 교감도 없이 어느 날 충청을 대변하겠다는 것은 정치에 대한 몰이해도 몰이해거니와 국민을 모욕하는 일이다.

지금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지지도는 1%를 채 넘지 못한다. 이를 국민의 목소리로 바꾸면 '저게 누구야'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비록 이름 석자 정도는 안다 해도 어떤 사람인줄은 모른다. 정치지도자가 근본적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자리라면, 또 정치세력에 얹혀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이 맞는다면 정 전 총장은 지금 시간이 없다.

자의든 타의든 '결심'을 소리 내면서 할 필요는 더욱 없다. 스스로 꼭 만들고 싶은 세상이 있다면 그냥 어느 날부터 정치를 시작하면 된다. 이번에 대통령이 되고 안 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사실 '상아탑 잔혹사'든 뭐든 과거의 역사나 경험에 꼭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역사는 새롭게 쓰면 되니까 말이다. 다만 정운찬 전 총장은 정치에 나오기 전에 과거의 제 3후보들과 무엇이 달라야 할지, 그리고 짧은 시간에 수많은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알고 나왔으면 좋겠다.

'나라를 위해 나를 바칠까 말까' 혼자 고민하는 모습과 '국회의원'들에 둘러싸여 밑바닥이 어딘지를 못 보는 모습 등 지금까지는 과거의 제 3후보와 다르지 않다. 작은 역사든 큰 역사든 역사를 바꾸려면 그 정도로는 안 된다.

태그:#정운찬, #서울대, #대선,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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